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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30] < 신년인터뷰:회갑 맞는 해방둥이 > ⑤문규현 신부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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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9 05:10 송고

< 신년인터뷰:회갑 맞는 해방둥이 > ⑤문규현 신부


(서울=연합뉴스) 이봉석 기자 = "제가 내년 환갑인가요? 그것 참. 새해 소망이
있다면 부안군민들이 반핵싸움을 통해 얻은 피눈물의 성과인 `부안독립신문' 구독자
가 더 많이 늘어나서 신문사가 안착했으면 합니다. 또 국가보안법이 폐지된 화해와
상생, 평화통일의 세상에서 살고 싶고요."

천주교 전주교구 부안본당 문규현(文奎鉉) 주임신부. 그는 1945년 1월 1일 호남
평야가 드넓게 펼쳐진 전북 익산시 황등면에서 태어났다. 기자가 알려주기 전까지
그는 며칠 뒤면 자신이 환갑을 맞는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다. 너무 바
빴기 때문이다. 그가 현재 맡고 있는 것들만 봐도 사정이 대충 짐작된다.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 상임대표,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상임대표, 민족
화해자주통일협의회 상임대표, 전북평화와인권연대 공동대표, 생명평화연대 상임대
표, 전북지역 인터넷 대안신문인 `참소리' 대표 등.

지난 6월에는 오프라인 격주간 신문인 `부안독립신문' 대표이사라는 직함을 하
나 더 얻었다. 딸린 식구들이 많은 만큼 성탄을 앞둔 그는 몸이 두 개, 세 개가 돼
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부안과 명동성당, 서울시청 앞 집회 등을 오가느라 정신 없
는 시간을 보냈다.

"생일에는 특별한 계획이 없습니다. 제 태몽이요? 글쎄요. 정월 초하룻날 새벽
에 태어나서 만삭이신 어머니가 제사준비 다 하시고 저 낳느라 무척 고생하셨겠다
하는 생각을 하죠. 또 친인척들이 다 모이는 날이니 덕담과 축하를 많이 받지 않았
을까 하는 짐작만 즐거이 해봅니다. 저는 정말 특별한 거라곤 아무 것도 없는 사람
입니다."

1989년 8월 방북한 임수경 씨를 데리고 휴전선 북쪽에서 판문점을 통해 걸어 내
려왔던 그는 어느덧 `통일의 사제'에서 새만금 갯벌살리기와 부안 핵폐기장 반대운
동에 앞장서고 있는 `생명ㆍ평화의 사제'로 탈바꿈해 있었다. 그는 차세대전투기(FX)
사업 반대 운동과 불평등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개정 운동 등에도 관여했지만
지난 해 새만금 갯벌과 만난 것을 생애 최고의 기억으로 꼽는다.

"지난 해 65일 간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한 삼보일배(三步一拜)를 하면서 아
스팔트 위에 핀 아주 작은 꽃들이 저를 보고 환히 반기고 웃어주던 순간들이 제 인
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전에는 이웃이나 우리라는 개념에 사람만 있었는데,
이것들과 만나면서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들의 존엄성과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았지
요. 자연, 그 생명들이 아니면 인간 생명도 존재할 수도 없다는 공존과 공생의 절대
성, 그런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4남 3녀 가운데 셋째로 태어나 성신중ㆍ고, 가톨릭대를 졸업한 그는 1976년 바
오로라는 세례명으로 사제서품을 받았다. 5대째 가톨릭 신앙을 지켜온 가정에서 자
란 그에게 사제직은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형인 정현 신부는 그보다 10년 앞선 19
66년 바르톨로메오란 세례명으로 사제서품을 받았다. 문정현 신부도 `길 위의 신부',
`깡패 신부' 등 별명으로 불리는 운동가이다. 문규현 신부는 자신에게 형은 `살아
있는 예수님이자 스승'이라고 말한다.

"형님은 아픈 몸으로도 늘 평화를 실천하시고, 만들기 위해서라면 어디든 마다
않고 다니십니다. 수많은 사람이 현실과 타협하고, 또 그 연세면 생색이나 내고 적
당히 뒷자리에 물러앉아 대접이나 받으려 하는데 형님은 거꾸로 살고 계십니다. 변
함없이 소외된 사람들 편에 서 계시고 그들을 찾아다니시지요."

1988년 5월 서울 명동성당에서 `양심수 석방', `올림픽 남북공동 개최' 등을 외
치며 할복 투신자살한 서울대생 조성만(당시 24세) 씨도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
다. 조씨는 그에게 `도대체 사제란 무엇입니까'라는 평생의 화두를 남긴 채 떠났다.

"사제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당연히 하느님이시면서 인
간으로 살기를 자청하셔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 그 분의 죽음과 부활이지요. 그
분은 죽음으로서 생명과 부활을 이루셨어요. 끊임없이 고통받고 분열된 삶의 현장
속으로 자신을 낮추고 자신을 녹이고 있는가, 과연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
사제직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매순간, 그리고 평생 묻고 대답하며 묻고 대답하고
그렇게 가는 긴 여정의 벗이지요. 답을 알고 있다 해서 그렇게 살고 실천하는 것하
고는 다른 거거든요. 중요한 건 삶이에요."

그는 모든 생명들이 서로 돕고, 화해하는 현장에는 어김없이 예수님이 계신다고
단언한다. 어떤 이는 그의 `예수론'은 `개유불성(皆有佛性)'을 강조하는 불교의 가
르침과 닮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닮은 모습으로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이 성서의 가
르침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생명체에는 신성한 면들이 담겨 있다는 것이거든요. 그
런 점에서 불교나 천주교나 다를 것이 없다면, 이건 진짜로 우주 만물의 보편적 진
리로 받아들여져야 하지 않을까요? 모든 생명을 성스럽고 경건하게, 귀하게 대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람들하고 더 허물없어지고 낮아져서 아예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개
인적인 새해 소망이라는 그는 "내년 소망이 다 이뤄지길 바랍니다"는 새해인사를 건
네자 "해방둥이니까 통일이 되는 것을 봐야지요"라며 웃었다.

anfour@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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