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보고서

[평화누리통일누리] 한일 기본조약과 청구권 협정 체결 50주년의 의미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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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평화누리통일누리 145호>에 실린 글입니다.



한일 기본조약과 청구권 협정 체결 50주년의 의미와 과제



고영대  평화통일연구소 상임연구위원/ 평통사 공동대표


 

1965년 6월, 박정희 정권은 일본과 한일 기본조약과 청구권 협정 등을 체결하여 일본과 의 국교를 정상화하고 일본으로부터 유·무상 5억 달러의 청구권 자금을 받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당시 국민들은 이를 대일 굴욕외교, 구걸외교라고 규탄하며 격렬히 반대하 였고, 박정희 정권은 이를 계엄으로 탄압하였다.

한일 기본조약은 일제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의 반성과 사죄를 담고 있지 않으며, 청구권 자금도 일본이 이를 경제협력 자금이나 독립 축하금으로 부를 만큼 식민지배 책임에 대한 배상이 아니었다.

 

한일 기본조약과 청구권 협정 체결로 일제 식민지배 청산은 원천 봉쇄되어 왔다. 일본은 한일 기본조약 2조(“대한제국과 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과 협정은 이미 무효”)를 근거로 식민지배를 적법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으며, 청구권 협정 2조(“양국 및 국민 간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청구권 문제가 …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를 근거로 식민지배에 대한 배 상을 피해 왔기 때문이다.

이로써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버마,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남)이 일제 침략전쟁의 책임에 따른 배상을 받은 것과 비교해 매우 굴욕적이다. 또한 위안부, 징용·징병, 원폭 피해자들도 일본 정부로부터 배상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식민지배 피해자들이 낸 일본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한 배상 소송도 청구권 협정 2조를 근거로 일본 법정은 물론 한국 법정에서조차 번번이 패소를 당해 왔다.


한국이 대일 식민지배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지 못 한 1차적 책임은 2차 세계대전에서 승전한 미·영 연합국에게 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후 대소 냉전체제를 구축하면서 전범국 일본을 동아시아 냉전체제의 거점으로 삼기 위해 일본의 침략전쟁의 책임과 배상을 면제해 주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체결(연합국과 일본의 강화조약, 1951. 9. 8)하였다. 나아가 미국은 한일에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따른 한일 기본조약과 관련 4개 협정 체결을 강권했으며, 이를 성사시킴으로써 한국을 일본 안보의 방파제로 삼고 일본을 축으로 한 냉전체제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한편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2조에 서 독도에 대한 일본의 권리 포기를 명시하지 않음으로써 한일 기본조약과 함께 체결된 어업협정(독도 수역을 한일 공동어로구역으로 규정)과 더불어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계속 주장할 수 있는 근거로 되었다.

 

한국이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의 사죄를 받아 내지 못한 다른 원인은 박정희 정권의 대미, 대일 굴욕적 자세에 있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미국의 요구에 따라 한일 기본조약과 관련 협정 체결을 서둘렀으며, 제2 이완용을 자처한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 부장이 일본의 주장에 굴복해 식민지배 책임과 배상을 포기하고 독도 영유권을 방기한 것이다. 정권의 정통성을 국가의 정통성과 맞바꾼 것이다.

 

냉전체제가 무너진 후에도 비정상적인 한일관계는 정상화되지 않았다. 냉전체제가 와해되고 한국 등 식민지 국가들에서 민주 정권이 등장하는 세계정세의 변화가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입장을 전향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가장 전향적인 반성과 사과를 담고 있다는 고노 담화나 무라야마 담화조차도 침략과 식민지배의 합법성을 전제로 하고 있어 시대착오적인 한일 기본조약과 청구권 협정의 틀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대법원은 2012년 일제 침략과 식민지배 및 배상 회피를 헌법에 위배되는 불법적이고 반인도적인 것으로 판결함으로써 한일 기본조약과 청구권 협정에 조종을 고했다. 일제 침략과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배상 책임을 담는 신조약과 협정 체결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한일관계의 정립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 정권은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면 부정하고, 지난 정권에서 이루어진 최소한의 사죄마저 지워 버리는 역주행을 하고 있다. 오바마 정권도 일본의 식민지배 사죄에 눈을 감고 있으며, 오히려 식민지배 사죄를 요구하는 한국을 견제, 비판하고 있다.
나아가 미일 정권은 미일신가이드라인과 안보법제 개정을 통해 자위대의 작전 범위를 전 세
계로 확장시키고 한미일 3각 미사일 방어망과 군사동맹 구축을 통해 중국을 포위하는 21세 기 판 냉전체제를 재현시키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일 정권은 한국군이 일본 방위와 자위대의 집단자위권 행사를 지원하도록 하기 위해 한국을 군사적으로 일본에 복속시키고 있다.

 

이렇듯 현 시기 한일관계는 한일 기본조약과 청구권 체결 당시보다 험난한 파고를 맞고 있다. 신냉전체제 구축으로 한반도와 동북아는 냉전시대를 능가하는 대결과 전쟁 위협에 빠져들고 있으며, 한국은 한층 격화된 남북 대결과 중국과의 군사적 적대관계를 감수해야하는 어려움에 처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한반도 재침략을 노리는 자위대를 우리 손으로 지원해 주는 자해(?)적 상황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어려운 정세 속에서 박근혜 정권이 사드 도입을 사실상 기정사실화하고 아베 정권의 역사 역주행과 군국주의화와 집단자위권 행사를 막을 아무런 담보도 확보하지 못한 채 미국의 압력에 밀려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나섬으로써 한국이 신냉전체제 속으로 더욱 깊숙이 발을 들여 놓고 자위대의 한반도 재침략을 용인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이에 일본이 군국주의화와 재침략을 포기하고 호혜적 한일관계 수립에 나서도록  견인하는 과제는 북일수교 및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길을 열고, 동북아 평화공동체 수립으로 나갈 수 있는 전제를 마련하는 일로, 일제 침략과 식민지배를 적법화하고 남북 대결과 분단을 떠받쳐 온 한일협정 체제(1965년 체제)를 청산하는 과제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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