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2013. 9. 12] “미국인들, 전쟁이 옳은 길 아님을 깨달아… 시리아 개입 반대 분출” (경향신문)

평통사

view : 3042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9112225035&code=970201
  • ㆍ반전단체 ‘코드핑크’ 공동설립자 메디아 벤저민

    “서맨사(Samantha), 시리아 문제의 외교적 해결에 당신의 파워(Power)를 좀 쓰지 그래요.”

    지난 6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수도 워싱턴DC의 미국진보센터 앞. 분홍색 티셔츠를 입은 한 자그마한 여성이 조롱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만든 진보성향의 싱크탱크 미국진보센터에서는 이날 서맨사 파워 주유엔 미국대표부 대사의 강연이 예정돼 있었다. 

    파워는 잠시 후 매우 자신이 없는 모습으로 강연장에 들어와 “시리아 문제는 이제 외교적 해법이 소진됐다.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지지해달라”는 내용의 원고를 고개도 들지 않고 20여분간 읽고는 질문도 받지 않고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시민운동가 그리고 학자로서 인도주의적 위기에 미국이 아닌 유엔이 개입해야 한다는 소신을 피력해온 파워로서는 별로 마음에서 우러난 강연은 아니었던 것 같다.

     
    반전운동 단체 ‘코드핑크’의 공동설립자 메디아 벤저민이 6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의회 앞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워싱턴 | 손제민 특파원


    파워가 질문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으니, 기자는 분홍색 티셔츠의 주인공을 만나러 갔다. 반전운동 단체 코드핑크(Code Pink)의 공동설립자 메디아 벤저민(60)이다. 동료들과 의회 앞에서 밤샘농성을 하기 위해 이동하는 그를 따라갔다.

    “외교관으로서 외교적 해법이 소진됐으니 전쟁을 하게 해달라고 지지자들에게 말하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요. 서맨사는 워싱턴에서 진보진영에 전쟁을 지지해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뉴욕에서 외교를 해야 맞는 것 아닌가요.” 

    서맨사 파워를 매우 아프게 할 지적이었다. 벤저민은 “미국은 유엔·아랍연맹(AL) 시리아 특사 라크다르 브라히미를 거의 지원해주지 않았고,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이란 등 여러 나라를 한데 모아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정권과 반정부군에 전쟁 중단을 요구하는 데 에너지를 거의 쏟지 않았다. 그러면서 다른 옵션이 남아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웃기는 얘기”라고 했다.

    벤저민은 지난 3일 오후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존 케리 국무장관이 시리아 군사개입의 정당성을 역설한 직후 방청석에서 “케리, 베트남전의 네이팜탄을 벌써 잊었는가”라고 항의해 그 자리에서 쫓겨난 인물이다. 당시 케리 장관이 뒤를 돌아본 뒤 “내가 27세에 처음 이 위원회에 나와 증언했을 때 저 활동가와 매우 비슷한 느낌을 가졌다”고 한 말은 지난 9일자 워싱턴포스트가 뽑은 ‘금주의 발언’에 선정됐다.

    벤저민은 1960년대 후반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을 하며 반전활동을 하게 됐다. “미국이 베트남전에 나간 게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 생각했어요. 당시 미국이 네이팜탄, 고엽제 등 화학무기를 쓰는 것을 보고 반대운동을 했어요.”

    ‘한때는 존 케리와 한배에 탔었네요’라고 말을 건네자, 벤저민은 “그는 나보다 좀 더 나이가 많고(케리는 69세다), 상원의원과 대선 후보 때 여러 차례 만나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를 동지라 부르지는 않겠다”고 했다.

    반전운동 단체 ‘코드핑크’ 공동설립자 메디아 벤저민이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의회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장에서 ‘시리아 군사개입 반대’라고 쓴 종이를 들고 시위를 벌이다 경호원들에 의해 쫓겨나고 있다. 워싱턴 | AP연합뉴스

    벤저민은 이라크전 반대운동을 벌였던 2002년 11월 여성 평화운동가들의 단체인 코드핑크를 설립했다. 코드핑크의 분홍색은 9·11 테러 직후 적색, 황색 등 다섯 가지 색깔로 테러경보를 내린 조지 W 부시 행정부를 조롱하기 위해 채택한 것이다. 벤저민은 10년 전 부시의 이라크 침공은 막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인터뷰 도중 지나가는 시민들이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응원하는 모습에 그는 여유있게 손을 흔들며 화답하기도 했다.

    “이 나라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면 의회가 군사력 사용 결의안을 부결할 것이고, 의회가 반대하는데도 오바마가 전쟁을 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런 점에서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고 봐요. 이 나라 사람들은 이제 분연히 떨쳐 일어나 자기 지역구 의원 사무실과 타운홀 미팅에 달려가고, 전화를 걸고, e메일을 보내 ‘우리는 또 다른 전쟁을 원치 않는다’며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미국인들이 분연히 떨쳐 일어나고 있다기보다는, 그저 전쟁에 지친 것(war-weary) 아닌가’라고 묻자, 그는 “나는 그걸 전쟁에 지쳤다기보다 전쟁에 대해 현명해졌다(war-wise)고 표현하겠다”고 말했다. “미국인들은 지난 11년간 전쟁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왔는지 봤어요. 그것은 엄청난 고생이었고, 자원의 고갈이었으며, 전 세계에 적들을 더 많이 만든 것이었어요. 미국인들이 거리로 뛰쳐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전화선과 e메일을 통해 그들의 의견을 쏟아내고 있지요. 그들은 전쟁으로 가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는 자기 생각을 표출할 기회를 활용하고 있어요. 그래서 나는 지금 미국에서 풀뿌리 차원의 자발적이고, 조직되지 않은 반란(uprising)이 일어나고 있다고 봐요.”

    ‘대중의 전쟁에 대한 현명함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느냐’는 물음에 그는 “(2001년 9월11일) 쌍둥이빌딩을 때린 것과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면 똑같은 감정이 일어나 우리를 공격한 누군가와 또 한번 전쟁을 벌여보자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한 종류의 도발이 없는 한 지금 같은 감정 상태는 매우 강력하고 한동안 미국 사회를 지배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많은 사람들이 금융위기를 겪으며 항구적인 전쟁 상태를 더욱 바라지 않게 된 것 같다. 전쟁은 우리의 국익과 호주머니 사정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게 미국인이 터득한 전쟁에 대한 현명함의 실체였다.

    그가 요즘 의회와 백악관 앞을 오가며 미국 관리들을 마주칠 때마다 외치는 구호는 “전쟁을 할 돈으로 의료보험, 교육, 녹색 일자리에 신경 쓰세요”이다. 이 구호는 삶에 힘겨워하는 미국 시민들의 귀에 쏙쏙 들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벤저민은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 “많은 이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병력을 줄여야 한다고 할 때 오히려 늘렸고, 무인공격기 드론을 사용해 민간인들을 죽이고, 국제법에 반해 항복하고 체포된 사람들을 재판받을 권리조차 주지 않고 죽여버렸다”며 “그는 미국이 국제법을 지키고 평화정책으로 나아가겠다는 어떠한 진지함도 보여주지 못했다”고 매우 박하게 평가했다.

    ‘그래도 시리아 화학무기에 대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으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을 뿐이에요. 우리가 바샤르 알 아사드를 공격하면 그도 우리에게 반격할 것이고, 우리가 또 공격하게 돼 있어요. 그러면 에스컬레이트(확전)가 되는 거죠. 설사 에스컬레이트가 되지 않더라도, 그것은 미국이 불법 침략에 개입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왜냐하면 유엔의 승인이 없는 개입이기 때문이지요. 미국은 그렇게 할 권리가 없어요. 미국은 다른 수단을 써야 합니다. 왜냐하면 시리아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전쟁을 멈추는 것이고, 협상을 통한 해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미국이 군사행동을 하면 그러한 목표에서 멀어질 뿐입니다.”

    코드핑크는 여성적 관점에서 세계에 만연한 군사주의 문화를 고발하는 활동을 해왔다. 벤저민은 반전 공약을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된 오바마가 시리아 군사개입을 하려는 데에는 마초 근성도 한몫했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시리아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말한 것을 상기하며 스스로를 박스 안에 가둬버렸어요. 그것은 일종의 마초 근성인데, ‘내가 그것을 설정했으니 이제 나는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코드핑크가 남성들에게 닫힌 조직은 아니다. 이날 벤저민과 함께 집회에 나온 이들 중에는 남성 활동가들도 많았다. “코드핑크는 여성에게만 열린 조직이 아니지만, 우리는 특히 어머니, 할머니, 자매, 딸, 여성노동자, 여학생, 여교사, 여성예술가, 여성작가, 여가수 등 분노한 모든 여성들이 분연히 떨쳐 일어나 전 지구적인 군사주의 문화에 항의했으면 해요.”

    코드핑크는 주로 온라인을 통해 기부금을 모은다. 코드핑크의 e메일 리스트에는 18만명의 기부자 명단이 있으며, 한번 기부요청서를 보내면 2만달러가량의 기부금이 들어온다고 한다. 그는 “그 돈으로 예멘, 파키스탄, 이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요르단강 서안지구 등을 방문해 ‘공공외교(citizen diplomacy)’라는 것을 많이 한다”고 했다. 

    코드핑크는 이번 시리아 군사개입 반대 시위단체들 가운데 기자가 가장 많이 목격한 단체 중 하나였다. 상원 외교위 청문회든, 하원 외교위 청문회든, 서맨사 파워의 강연이든 내가 가는 곳마다 그들은 먼저 와 있었고,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는 “우리는 (정부의) 내부 회의에도 많이 들어간다. 비밀회의 장소도 알아낸다. 일급 기밀이어야 하는 곳도 뚫고 들어간다”고 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정부 내에 공모자라도 있느냐’고 묻자, 그는 웃으며 “우리는 투명망토를 입고 있으니까”라고 답했다.

    그는 인터뷰 끝에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나도 하나만 물어보자”며 “미국 관리들이 시리아와의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대는 얼토당토않은 이유 중에 북한에 화학무기를 쓰지 않도록 신호를 보내기 위해서라고 한다. 미국의 시리아 폭격이 북한에 좋은 신호를 보낼 것이라 생각하나”라고 했다. 기자는 “좋은 신호를 보낼지는 잘 모르겠고, 북한이 핵무기를 더욱 놓지 않게 될 것 같다”고 답했다.

    벤저민은 피곤한 듯 인터뷰 내내 연신 하품을 했다. ‘피곤하겠다’고 말을 건네자 “어젯밤에도 늦게까지 있었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루 종일 뛰었고, 오늘도 여기서 밤샘농성을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에너지가 넘친다”며 씨익 웃어 보였다.

    환갑의 이 자그마한 여성은 나이와 달리 무척 젊어 보였고, 특히 마이크를 잡고 시민들에게 호소할 때는 무척 커 보였다.

    먼저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주세요.

    창닫기확인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