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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9] 고 이근재 열사 장례 - 더 이상 죽이지 마라!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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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죽이지 마라!
11월 9일, 고 이근재 열사 장례
2007-11-09, 일산 복음병원
 

△ 9일 오전 8시 30분 일산 복음병원에서, 고 이근재 열사의 장례식이 열렸습니다.
 고 이 근재 동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고양시 노점탄압 책임자 처벌과 생존권 보장을 위한 비상대책위는, 10월 17일 "노점상 싹쓸이 단속으로 고 이근재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고양시청은 즉각 사죄하라!"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이번 죽음의 성격을 사회적인 타살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지난 5월, 고양시는 생계형 노점상의 생존권을 보장해주겠다고 했다가 그 다음날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꿔서 노점상 집행부들을 구속 시키고 수배를 내리고 또 다시 단속을 자행했고. 지난 10월 11일에도 무려 3백여 명의 용역깡패들이 무차별한 단속을 자행하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위협적인 상황에 놓인 노점상들은 그야말로 벼랑 끝에 내몰린 심정일 것이라며. 10월 12일 이근재씨가 평소와는 다르게 '당신에게 정말 미안하다', '세상 살기 힘들다.' '장사를 못하니 나라도 나가서 노가다라도 해야지······.'라며, 가방을 챙겨들고 집을 나섰고. 싸늘한 시신이 되어 우리 곁에 돌아 왔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11월 2일 "고양시의 노점단속 발표는 또다른 이근재 열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는, "이씨의 장례일까지 미루기로 했던 단속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며 "조만간 단속에 나서겠다"고 한 고양시를 비판하면서.
노점상은 노점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로서, 하루에 만원을 벌거나 10만원을 벌거나 노점을 하지 못하는 순간 소득이 끊기게 되는 노점상에게 단속은 사형선고와 다름없다고 호소했습니다.
고양시의 이러한 단속 계획 발표는 또 다른 이근재 열사를 만들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말입니다.
이근재 열사 약력
-59년,서울 면목동에서 목수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가난한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나서 3살때 고양시 능곡으로 이사와 줄곧 고양시민으로 살아왔던 동지 였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만 졸업한 이근재 열사는 책상․걸상등을 만드는 노동일로, 어려웠던 집안형편을 도우면서 살던중, 81년 미망이신 이상미씨와 결혼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둔 단란하고 평범했던 한 가정의 가장이였습니다.  
-결혼후에도 책,걸상들을 만드는 조그마한 공장에서 평범한 노동자로 생계를 유지하던 중 10여년전 IMF 직전에, 다니던 공장이 부도가 나자 졸지에 실직자가 되었습니다.
-실직 후 곤란해진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10년전 지금의 노점자리, 고양시 서구에 위치한 문화초등학교앞에서 붕어빵 노점상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노점상으로 피곤하고 고단한 삶이였지만 태어날때부터 가난했던 열사였기에 그의 역정에서 채득된 근면함과 성실함으로 아이들을 키워왔고, 붕어빵이 삶의 전부임을 알았기에 혹독한 비바람과 엄동설한 혹한을 온몸으로 이겨내며 살아왔던, 노동하는 노점상이였습니다.
-지난 5월경 “생계형 노점상은 생존을 보장해 주겠다.”던 고양시장은 단 하루만에 입장을 바꿔 품격도시 운운하며 노점상 싹슬이 단속을 발표하였고, 더불어 노점정비기금 10억도 모자른다며 21억을 더 증액해 버렸습니다.
-바로 그 직후부터 이근재열사는 없는사람은 건강이라도 해야한다며 부인과 함께 아침이면 해왔던 운동도 중단하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단속을 걱정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그러던중 지난 10월 11일 주엽역 폭력단속현장을 지켜보면서 침통해했고, 그날저녁 미망이신 부인에게 “당신고생시켜 미안하다.”는 말만을 남긴채 다음날 새벽 추리닝 두벌만을 싸들고 어디론가 나갔던 이근재 열사는 싸늘한 시신이 되어 가족들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열사는 태어날때부터 돌아가시기까지 가난한 삶이였지만 가난속에서도 검소하고,성실하게 살고자 노력했던 한사람의 평범한 서민 그 자체 였습니다.  주변사람들에겐 항상 소탈한 웃음으로 다가왔던 이웃집 아저씨이자 동료노점상이였습니다. 가난했지만 아이들에게는 누구보다도 자상한 아빠였고, 부인에게는 더 없이 다정,다감한 한집안의 가장이였습니다.  
누가 이렇게도 소박하게 살고자했던 한 집안의 가장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까?
-도시 품격만을 고집하며 서민생존은 안중에도 없었던  고양시장 강현석입니다. 자신의 안위만을 위하여 한입갖고 두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강현석 고양시장은 이근재열사를 죽음으로 내몬 진짜 주범인것입니다. 동지여러분 투쟁합시다.! 그리하여 반드시 열사의 영정앞에 머리숙여 사죄하고, 그책임을 질때까지 우리모두 힘을모아 투쟁을 전개합시다. (구호)
 

△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이 추모사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장례식에서 참가자들은 추모시-비시(非詩)적인 삶들을 위한 편파적인 노래-와 추모사 등을 통해 고양시를 비판했습니다. 노점상 수백 명의 노점단속 비용으로 31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혈세를 쏟아 붓도 있다고 말입니다.
 

△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오늘 집회를 하면서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주한미군을 몰아내야 할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돌아왔습니다,  최근 열린 한미안보연례협의회의(SCM)에서 한미 당국은 2008년도에 "동맹국을 위한 전쟁비축물자(WRSA-K) 협정을 체결"하기로 했는데. 이는 미국이 한국에 저장하고 있는 약 13억 달러에 이르는 도태 또는 노후탄약 운반 및 폐기비용 부담을 한국에 떠넘기기 위한 일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우리 정부는 미국의 강요에 못 이겨 1조원 안팎에 이르는 국민 혈세를 쏟아 부어 대부분 쓸모없는 이 물자를 사들이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양시의 노점단속 비용 31억원 혈세가 한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는데, 그렇다면 1조원 혈세는 과연 몇 사람을······.

△ 9일 오전 10시 30분 태영프라자 앞에서, 추모행진이 시작되었습니다.

△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에서는, 본부 김종일 사무처장과 미군문제팀 유영재 팀장 그리고 서울 평통사 윤영일 자원봉사자 등이 함께 했습니다.
 2시간 동안 행진을 하며, 로버트 게이츠 미국방장관 현충원 참배 반대집회(11.7)에 대한 동작경찰서의 불법적인 탄압 역시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합법적으로 신고된 집회에 대해 경찰 스스로 쳐놓은 폴리스 라인을 넘어와 참가자를 폭력으로 고착시키고 현수막과 피켓을 파손하는 등 집회를 원천적으로 탄압한 동작경찰서 책임자를 처벌해야 할 것입니다!"
 노점단속 비용 31억원을 들여 고양시청은 시민을 이렇게 만든 것입니다, 동작경찰서는 집시법 제22조 "집회 방해 금지 조항 위반하면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에 따라 자기 자신을 조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보호해야 할 시민을 오히려 괴롭히는 시청과 자신이 지켜야 할 법을 도리어 위반해서 스스로를 조사해야 하는 경찰.
우리는 이것에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업습니다, 특히나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 동작경찰서의 경우는 로버트 게이츠 미국방장관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정작 미국방장관을 보호해야 할 경호원은 따로 있고, 경찰은 한국민의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보호해야는데······. 한국의 경찰은 로버트 게이츠 미국방장관을 보호한 셈이기 때문입니다.

△ 9일 오후 12시 문화초등학교 앞에서, 고 이근재 열사의 노제가 치뤄졌습니다.
 추모행진의 끝, 노제가 치뤄진 곳은 고 이근재 열사가 일하던 문화초등학교 앞이었습니다. 초등학교 길 건너, 리어카 정도는 넉넉히 들어갈 만해 보이는 작은 공터. 열사의 직장, 노점상의 직장이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고 이근재 열사가 붕어빵을 팔던 바닥. 오늘은 배와 사과 그리고 제물이 놓였고, 언제나 붕어빵을 사주었을 문화초등학교 학생들도 구경을 나온 듯 했습니다.
 오늘 집회에는, 서울 경기 인천 전국노점상총연합을 중심으로 750 명 내외의 사회단체 회원들이 함께 했는데. 특히나 잘 걷지 못하시는 나이 지긋한 노점상 어르신들께서도, 끝까지 함께 걸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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