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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5] 평화누리통일누리:::제66호::: <특집-허세욱 열사여! 자주와 평화의 불꽃으로 영원하소서!> 허세욱 열사여! 자주와 평화의 불꽃으로 영원하소서! --- 부천평통사 황영희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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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허세욱 열사여! 자주와 평화의 불꽃으로 영원하소서!]

허세욱 열사여!

자주와 평화의 불꽃으로 영원하소서!

부천 평통사 황영희

 

허세욱 열사가 가신 후 조용하면서도 넓게 그분에 대한 추모 대열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허 열사 소식을 접하고 평통사에 가입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열사의 뜻을 되새기고자 분신전야에서 장례까지의 과정을 정리하였습니다. 부천평통사 황영희 회원(현직 중학교 교사)이 보내주신 참가기에 몇 가지 기록들을 첨부하였습니다. 이후 좀더 보완하여 허세욱 열사에 관한 자료집을 발간할 계획입니다. -편집자주-

 

 

 

 

● 3월 29일 목요일 
허세욱 회원, FTA 타결이 임박했다는 소식에 29일부터 손수 만든 1인 시위 피켓을 걸고 청와대 앞 시위에 나섬.

 “노동자들은 기본적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한미FTA와 같이 나라의 미래가 좌지우지되는 사안이 있을 때는 기꺼이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겨우 머릿수 하나 채우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꼭 필요한’참여라고 생각한다.”(참여연대와의 29일 인터뷰)

 

 

● 3월 30일 금요일 
허세욱 회원, 민주노동당 대표 단식농성장 텐트를 손봐줌.

 오늘 밤이 FTA 협상 시한 마지막이라 하여 답답한 마음으로 시청 앞을 향했다. 학교에 일이 있어서 집회시간보다 한 시간 늦게 8시에 도착했는데 아직도 한대기련 주최 등록금 인상 반대 집회가 계속되고 있었다. 평통사 깃발을 찾아갔더니 서울에 직장이 있는 사람들만 집합 명령을 내려서인 지 10명 정도의 아는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등록금 집회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서 있는데 허세욱 동지가 다가와 찬 바닥에 앉으면 춥다고 손수 FTA반대 글을 쓰신 스티로폼 대자보를 깔고 앉으라고 주신다. 여러 장을 써오셔서 괜찮다고 하여 해영이랑 염치불구하고 깔고앉았다. 이후 허세욱 동지는 대자보를 메고 집회 장소를 순회하셨기 때문에 다시 만나지 못하였고 신문에서 그 얼굴을 뵐 줄은 상상도 못했다.

 


분신 전 1인시위에 나선 허세욱 열사

 

 

● 3월 31일 토요일
허세욱 회원, 농성장에 나와 투쟁하는 동지들을 격려함.

 

 

● 4월 1일 일요일 “숭고한 민중을 우롱하지 마라!” 
오후 3시. 허세욱 회원은 후배 동료에게 연락하여 집에 써 둔 자신의 편지글을 집회장에서 읽어줄 것을 부탁함. 이에 후배 동료는 저녁 촛불행사장에서 허세욱 회원을 만나기로 약속하고 허세욱 회원의 집에 있던 편지를 민주노총으로 가져옴. 
오후 3시 50분. 민주노총, 허세욱 회원의 편지를 확인하고 경찰에 위치추적을 요청함. 
오후 3시 55분. 한미 FTA 고위급 회담이 열리는 하얏트 호텔 앞, 경찰의 봉쇄 속에 항의 기자회견이 열리는 동안 부근 주택 골목에서 분신. 
용산 중대병원에서 응급조치 후 한강성심병원으로 이송함. 한강성심병원, “전신 63% 화상에 51% 정도가 3도 화상이며, 환자가 분신과정에서 구호를 외쳐 기도를 통해 폐에 연기가 흡입되어 기도화상과 함께 호흡곤란을 겪고 있으며 특히 폐에 피가 고이는 패혈증 증상을 보이고 있어 사망가능성이 70~80%임”이라고 발표.  
 

 



허세욱 열사가 동지들에게 남긴 유서

 

 

● 4월 2일 월요일
오후 4시 협상장인 하얏트 호텔에서 우리측 대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미측 카란 바티아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가 한미FTA타결 공식발표.
1년이 넘게 지속되며 막판 협상시한 연장을 거듭하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마침내 최종 타결된 2일 저녁 1천여 명의 시민들은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 모여 “한미 FTA 협상 무효”를 외침.

 4월 1일에는 집안 일이 있어 밤 12시가 넘어 집에 들어왔다. 아침 신문 1면에 「FTA에 반대하며 노동자 분신」소식을 읽었을 때 놀라고 안타까웠는데,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 사진을 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날 우리에게 깔고 앉으라며 스티로폼을 주신 분....... 그 분의 성함이 허세욱인 줄 그 때서야 알았다. 평택 집회에서도 아주 많이 뵈었지만 말씀이 없으셔서 이야기를 나눠보진 못했는데......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무거워서 하루종일 얼굴을 펼 수가 없었다. 내가 심각한 표정으로 인터넷 기사를 읽고 있는데 옆자리 선생님이 말했다. “아무리 답답해도 그렇지, 어떻게 저런 끔찍한 일을?”
자기 목숨이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나도 살아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오죽 절박한 심정이었으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을까. 전에 수학과 모교수가 판사에게 석궁을 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저렇게 성질머리가 더러우니까 인격에 문제가 있어서 쫓겨난 거야.”하는 거였다. 하지만 약 10년에 걸쳐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자세히 알고 나니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하고 이해가 되었다. 내 옆자리 선생님도 나쁜 사람 아니고 생각이 없는 사람 아니다. 다만 FTA 폐해의 심각성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 절박함을 이해 못하기 때문에 현상만 보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세종문화회관 앞에 도착하니 계단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보였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30만 조합원 중 3천명이라도 모이라고 말했지만 사람들은 1천명이 좀 안돼 보였다. 계속 걱정이 되고 마음이 무거워 몸짓패가 나와 춤을 출 때 왠지 박자를 맞춰 줄 수가 없었다. 
한상렬 목사님께서 “손끝만 난로에 닿아도 온몸이 화들짝 놀라는데 온 몸이 불 속에...”라고 하시며 내가 분신을 하지 못해서 허세욱 동지가 분신을 하셨다며 지도부의 고통을 말씀하실 때 그 고통이 그대로 전달되어지며 눈물이 흘렀다.

 


병상으로 달려온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와 강기갑 의원

 

 

● 4월 3일 화요일 
오후 4시 30분경 ‘한미FTA저지범국본’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서 ‘한미FTA협상 폐기’촉구 기자회견 개최. 노무현 퇴진 입장을 공식적으로 천명.

 

 

● 4월 4일 수요일
민주노총 사무총장 이용식,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위원장 정종권, 참여연대 사무처장 김민영,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미군문제팀장 유영재,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장 박석운, 수술을 반대하는 가족을 설득하기 위해 “허세욱 님의 치료를 포함한 이후 발생할 사안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질 것을 약속합니다.”는 각서를 씀. 
오후 2시경 허세욱 동지, 사체피부이식수술을 받음. 
한강성심병원 앞과 광화문에서의 촛불행사가 이날부터 매일 열림. 한강성심병원 앞 천막농성 시작함.

 


쾌유를 기원하는 마음을 모으는 회원들

 

 온갖(이 표현 속에 함축된 의미를 상상할 수 있을까?) 난관을 뚫고 한 수술이 성공적이었다는 허세욱 분신대책위 상황실장 박석민 민주노총 대협실장의 상황 설명으로 한강성심병원 앞 촛불집회가 시작되었다. 
허세욱 동지는 피부 이식수술 후 고통 감소를 위하여 1주일 동안 수면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한다. 이식용 사체 피부 값만 2천만원에 달하여 모금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다. 
병원 앞이니만큼 우리는 박수도 함성도 자제하고 오직 허세욱 동지의 기적같은 쾌유만을 간절히 빌었다. 허세욱 동지의 활동을 사진으로 모은 슬라이드를 상영했는데 늘 말없음표 같은 표정을 뵐 때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모든 투쟁의 현장에 계셨지만 항상 뒤편에 자리하셨기에 사진이 별로 없다고 했다. 서울평통사 막내 슬기양의 편지에서 500원 짜리 아르바이트 이야기를 들을 땐 허세욱 동지의 천진난만함과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고, 세종문화회관 앞 집회 때 민주노총의 어떤 분이 분신 현장에서 찾은 500원 짜리 동전 이야기와 이어지며 가슴이 아려왔다.
서울 평통사 서영석 대표는 쾌유를 바라는 이야기를 통해 “허세욱 회원이 우리에게 바랐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얼마나 많은 고민, 번뇌를 하였을까? 우리들은 그 분이 바랬던 한미 FTA 반대 투쟁과 누구나 밝게 웃을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싸워 나가자”고 말했다. 이어서 한미 FTA 반대 입장을 밝히며 전국적으로 반대 강연을 다녔던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정태인 씨가 허세욱 님을 생각하며 쓴 글과 향린교회 나성국 목사의 글이 낭독되었다. 동지의 쾌유를 비는 마음으로 한 송이씩 꽃을 꽃병에 모으며 앞으로 매일 8시에 촛불집회를 하기로 하고 집회를 마쳤다.

 

 

● 4월 5일 목요일, 한강 성심병원 앞
기독교인들 주최로 한미 FTA체결 무효와 허세욱 회원의 조속한 쾌유를 바라는 촛불행사가 진행됨.
관악주민연대 등 허세욱 동지의 쾌유를 비는 발길이 끊이지 않음.

 

 

● 4월 6일 금요일
오후 7시 10분에 병원에 도착하니 운수노조 조합원들이 집회를 거의 마쳐가고 있었다. 그 분들이 모두 가고, 사람이 적어서 오늘 8시 촛불집회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여중생 촛불집회 때는 세 사람이 모여 한 적도 있다고 집회를 열기로 했다. 참가자들이 십여 명이다보니 둥글게 둘러서서 자신을 소개하고 동지의 쾌유를 비는 이야기를 하며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사람들의 발언을 듣기만 하다가 말을 하려니 힘들었다.
“세욱이 형”이라고 부르는 택시 노동자가 “운전만 성실히 하고 조합 활동만 열심히 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열심히 사신 분인 줄 처음 알았고 자신이 부끄럽다”며 형의 뜻을 이어받아 세상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말씀하셨다.

 

 

● 4월 7일 토요일, 대학로 집회

 


대학로 시청까지 행진하는 참가자들

 

 김현숙 사무장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오늘 집회 때 모금을 할 예정인데 부천에서 일찍 올라갈 사람이 없으니 일찍 갈 수 있으면 모금을 도와주라고. 인도에 부스를 설치하고 모금운동에 들어갔다. 마이크를 잡은 유영재 미군문제팀장님은 “한미 FTA를 저지하기 위해 몸을 던진 허세욱 동지를 위한 모금운동에 동참해달라”고 호소했다. 멈춰 서서 편지글을 읽어보는 사람은 있었지만 전체 대회에서 모금이 있어서인지 그리 많이 참여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활동 속보를 보니 17만원이 모금되었다고 한다. 
대학로 집회가 끝나고 거리행진이 시작될 때까지 모금을 하느라 인도에 서있었기 때문에 집회에 집중하지 못했다. 도중에 가수 박준이 나와서 “노무현 개 새끼”를 선창하여 모두 따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초등학생 두 명이 우리 모금 부스에 와서 내용을 읽어보다가 한 명이 친구에게 “FTA가 뭐야?”하고 물었다. “FTA하면 사람들이 살기 힘들어진다는데 대통령이 하려고 하는 거야”라고 친구가 말하자 “아! 그래서 아까 대통령 욕 했구나” 하며 걸어갔다.

 

 

● 4월 8일 일요일 
서울평통사 서영석 대표 등 6인이 병원 앞에서 촛불 켬

 

 

● 4월 9일 월요일, 모금
새로 학교를 옮긴 탓에 모르는 선생님들이 많아서 약간 망설였지만 모든 선생님들에게 쪽지를 띄우기로 결정했다. 허세욱 동지는 유서에 동료들이 모두 비정규직이라고 모금을 하지 말하고 하셨지만(돌아가시면서까지 동료들 걱정을. ㅠ.ㅠ) 선생님들은 정규직이니까.... 모금을 하게 된 경위를 짧게 설명하고 자세한 내용은 파일로 첨부했다. 
파일은 상황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에 전교조 남부 지회장인 조남규 선생님이 전교조 전체 결정이 이루어지기 전에 먼저 남부지회 소속 학교 분회장 들에게 보낸 “FTA 반대하며 분신하신 허세욱 동지를 도웁시다”를 그대로 사용했다. 모르는 사람이 많아도 한 부서에 한 사람씩은 알기 때문에 봉투를 하나씩 가져다드리면서 자기 부서에 이야기하여 걷을 수 있겠느냐고 물어 할 수 있다는 선생님은 그렇게 하고 말하기 어렵다는 선생님 부서는 내가 직접 이야기 하여 걷기 시작했다. 
16일, 사무실에 갔을 때 장례식 이틀 전이라 주정숙 대표님이 “오늘 집회에 부천 평통사에서 1차로 40만원을 모금해 가야 하는데...” 걱정스러운 듯 말씀하셨다. 주대표님께 “바로 그 금액이 여기 있어요” 하고 드렸더니 갑자기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당황하여 왜 그러시냐고 했더니 너무 고마워서라고..... 사람들이 마음이 많이 약해지신 듯하다.

 

 

● 4월 10일 화요일 
“우리 민중 다 죽이는 망국적 한미FTA 폐기하라! 허세욱 동지 뜻 이어받아 한미FTA 저지하자!”제91차 미대사관 앞 반미연대집회 개최

 

 

● 4월 11일 수요일

 


허세욱 회원이여! 일어나소서... 회원들의 절실한 기도. 4월11일.

 

평통사, 허세욱 회원 쾌유기원 촛불행사 개최. 50여명의 참가자들, 빗속에 촛불을 켜고 쾌유를 기원하는 엽서를 씀. 
광화문에서도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촛불행사 개최. 오종렬, 한상렬 등 FTA범국본 대표자들 참가.

 

 

● 4월 12일 목요일
병원 앞 농성장, 4일부터 진행된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평통사 등 동료들의 밤샘 쾌유 기원 계속됨. 
 

 

 

● 4월 13일 금요일
FTA범국본, 전국사회비상대표자회의 개최. 6월 말 한미 FTA무효 총궐기 투쟁 결의

 

 

● 4월 14일 토요일
한강성심병원 앞, 민주노동당 관악구위원회, 동작구위원회, 상도동 철거민, 한겨레 신문 홍세화 기획위원 등 100여 명 참석 쾌유 기원 
부산, 한미 FTA타결 무효 국회비준 반대 부산시민 2차 촛불문화제 개최

 

 

● 4월 15일 일요일, 벚꽃 축제에서 꽃잎이 지다
쾌유를 기원하는 동지들의 바램도 헛되이, 병상에서의 2주간의 사투 끝에 허세욱 회원, 숨을 거둠. 
‘허세욱 장례대책위’는 고인의 유지 받들어 반FTA투쟁을 확대전개하기로 하고 18일 자체 장례식, 21일 범국민추모제를 개최하기로 결정.

 부천 도당산 벚꽃 축제에서 평통사를 알리기 위하여 이어울림이 노래 공연을 했다. 우리가 여섯 곡을 부르는 동안 다른 분회원들이 평통사를 알리는 피켓과 풍선을 들고 응원을 했다. 활짝 핀 벚꽃과 화창한 햇살 속에 공연이 끝났을 때 가슴 무너지는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허세욱 동지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수술 결과가 좋다고 하여 우리는 모두 희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구름같은 벚꽃에 둥둥 떠다니던 마음이 땅바닥으로 내리 꽂히며 현실로 돌아왔다. 건강하게 회복하셔서 우리와 함께 투쟁하실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었는데......
그 분의 힘들었던 삶과 치열했던 투쟁과 고통스런 분신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 슬픔이 차오르다 보니 고통을 두려워하는 나로서는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다면 고통 속에서 사는 것보다 차라리 돌아가시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4월 16일 월요일, <가족>에 대하여
병원측, 대책위와 아무런 협의 없이 가족들에게 고인의 시신을 내어줌. 가족들, 동지들의 조문을 막고 오전 11시경에 화장함. 한독노조 동료들, 바람에 흩날린 유골을 수습함.

 


관에 허세욱 열사의 유품을 담는 동지들

 

 제목만 써놓고 먹먹함에 뭐라 써야할지 모르겠다. 허세욱 동지가 돌아가신 후, 아니 분신 후부터 그 가족들이 보여준 모습에서 큰 슬픔을 느낀다. 동지는 자신의 가족과 같은 민중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는데 막상 그 가족들은 삶에 치이느라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 지 파악할 겨를이 없었나보다. 어떤 한 사람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그 가족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한다는 것은 어떻게 표현될까? 누구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가장 원하는 것을 하도록 하는 게 아닐까? 소망의 가장 결집된 형태인 유언조차도 무시하는 사람들이 “가족”의 이름으로 하는 막무가내 행동을 어찌 해석해야 할까?
한강 성심병원 앞에서 허세욱 동지 추모 촛불 집회가 열렸다. 민주노동당 김용한 경기도 위원장은 허세욱 동지를 죽음으로 내몰고 시신을 빼돌려 돌아가신 지 하루 만에 화장한 사람은 노무현이라고 말했다. 병원이 무슨 힘이 있고 가족이 무슨 힘이 있어 그런 일을 벌이겠는가. 아무리 그렇다한들 민주노동당, 참여연대, 평통사 등의 대표를 비롯한 어르신들이 빗속에 무릎 꿇는 조문도 거절하고 소박한 유골함도 없이 비닐 봉지에 유골을 담아 합사함에 부어버린 사람들.....

 

 

● 4월 17일 화요일
광화문 마지막 추모제, 동료들이 수습해온 유골과 동료들이 모아낸 유품으로 입관

 

 

● 4월 18일 수요일,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 - 장례식 날
한강성심병원 발인 - 민주노총 앞 노제 - 관악주민연대, 한독택시 앞 노제 - 하얏트 호텔 앞 노제 - 용산 미군기지 앞 노제 - 시청 앞 범국민 추모식 - 마석 모란공원 안장. 
“열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고 허세욱 장례식, 광화문 인근 700여 촛불로 마무리

 마음은 함께 했지만 직장에 매인 몸이라 저녁이 되어서야 추모제에 참석했다.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소중한 사람이 떠나고서야 소중한 사람인 줄 알았다”는 추도사가 대다수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해주며 안타까움을 더했다.
꽃다지의 노래를 듣고 있는데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평생 어렵게 사시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고 그 절박함에 못 이겨 분신으로 돌아가신 동지의 아픔이 떠올라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가족의 감사는커녕 배척을 받아 뼛가루를 담아온 종이봉투를 넣은 빈 관으로 장례를 치르느라 새벽부터 고생하신 분들의 노고는 하늘이 알아주시리라.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애통함으로 모든 예의를 다해 가시는 길을 애도함에 허세욱 동지도 위로가 되셨을 것이다.

 


용산기지에 허세욱 열사의 유골을 뿌리고 시청으로 행진하는 참가자들

 

백 사람이 진심으로 울어주면 그 사람은 천국으로 간다고 한다. 백 사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애도를 표한 허세욱 동지는 천국에 가셨을 것이다. 이제 남은 일은 우리에게 맡기시고 차별과 고통이 없는 곳에서 편히 쉬소서.

 18일 낮 12시경, 방한 중인 이탈리아 로마노 프로디 총리와의 정상회담 이후 청와대에서 개최한 공동기자회견에서 노 대통령은 “우리는 한-EU FTA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효과에 주목하고 조속한 FTA 협상 개시가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말했다.

 

 

● 4월 21일 토요일
평택 황새울 일대에서 평통사, 평택범대위, 팽성주민 등 50여명, 고 허세욱 열사의 삼우제를 염.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는 700여명의 시민 사회단체 회원들이 참가함. 
광주전남, 순천 등 지역에서도 추모집회 개최.

 

 

 

“한국과 미국의 정부가 한미FTA에 합의했을지 모르지만 우리 국민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국민들의 의사를 저버리고 망국적 한미FTA를 강행한다면 더 이상 한국의 정부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미FTA저지 투쟁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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