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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 평화누리통일누리:::99호::: [사람] 결심대로 실천하는 분, 매향리 추영배 선생님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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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

결심대로 실천하는 분, 매향리 추영배 선생님

김현숙 (부천평통사 사무국장)

하루의 시작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도로 시작한다는 추영배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이 기도가 20년간 이어져 왔다고 하니 선생님의 열정과 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매향리 주민대책위 고문님으로 알고 지낸 지가 수년이 되었고, 매월 열리는 국방부 앞 평화군축집회와 미대사관 앞 자주통일평화행동에서 자주 뵈었지만, 정작 선생님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한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선생님 연세가 만으로 65세 되셨는데, 운동은 언제부터 하시게 되었나요?

음~~ 그러니깐 군대를 제대하고 아마 74년 쯤이었나봐. 서울에 올라와 사업을 하게 되었어. 봉제공장이었는데. 그때 청계천 일대는 하꼬방1)과 다리에 굴을 파고 사는 사람이 많은 빈민촌이었지. 이 사람들이 봉제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어.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어느 날, 길을 가고 있는데 아기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들려. 그래서 울음소리를 찾아 가봤더니 산모가 아직 탯줄도 끊지 않은 상태에서 졸도해 있는 거야. 아기는 울지, 철거반들이 집을 철거한다고 지붕을 뚫어 놔 비는 방으로 쏟아지고 있지...... 정말 가슴이 미어지더군. 탯줄을 내 이빨로 끊고 미역을 사다주면서 결심을 했지. 이제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병든 자를 위해서, 힘없는 사람을 위해서 살아야겠다.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겠다. 아마 가슴에 새긴 것 같아. 그때 내 나이가 서른이었어.

 

아... 운동의 처음 시작은 빈민운동이셨군요. 그런데 어쩌다 매향리로 가시게 되었나요?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를 보게 되었어. 남양만 방조제를 만들어 간척지가 생기면 그 곳으로 청계천 빈민들을 강제이주 시킬 계획이라고 쓰여 있더군. 매향리 옆 마을 이화리라는 곳인데 그 기사를 보고 바로 내려갔어. 청계천 주민들보다 1년 먼저 내려가 자리를 잡아놓아야겠다는 생각이었지. 그때부터는 농민운동을 하게 되었지. 그러던 87년이었나 봐. 돈 벌러 쿠웨이트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전만규 위원장이2) 고향으로 돌아 왔어. 전 위원장이 고향에 돌아와 보니 아버지가 폭격장 소음 때문에 고통받다가 자살하신 거야. 돈을 벌어 고향을 떠나 살고 싶었던 전만규 위원장이 그러더군 “내가 고향을 떠날 것이 아니라, 저 놈들을 내쫓아 보내야 겠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남양만으로 내려오기 전 꾸었던 꿈이 생각이 났어. 꿈에 아론과 홀3)의 피를 보았거든. ‘아! 내가 이 사람을 도와주기 위한 하나님의 계시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형으로써 전만규 위원장한테 보탬이 되는 일을 하여야겠다 생각하고, 그 후론 집안 일도 도와주고 서로 서로 챙기며 매향리 폭격장 폐쇄를 위해 투쟁을 시작했지.

 

매향리 폭격장이 주민들의 끈질긴 투쟁으로 결국 2005년 폐쇄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으면 들려주세요.

이 투쟁에 주민들이 똘똘 뭉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사건이 하나 있어. 이 투쟁이 알려지기 전이니깐 아마 88년이었나 봐. 일요일 아침이었는데 주민들이 미군기지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었어. 뭐 그때는 어떻게 하는지도 잘 모르니깐 그냥 우르르 몰려 간 거지. 그런데 미군이 나와서 부위원장 머리를 야구 방망이로 내리친 거야. 피가 철철 흐르고 다들 놀라서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지. 그런데 그때 철조망 안, 미군기지 안에 있던 기지촌 여성들이 하이힐을 벗어 미군을 향해 달려들며 뒤통수를 때린 거야. 그 전날 아마 파티가 있었나봐. 그 여성들이 비록 미군 때문에 먹고 살기는 하지만 제 나라 사람이 미군에게 맞아 피 흘리는 모습을 차마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던 거지. 아! 정말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더니 한민족이라는 걸 가슴으로 느끼는 순간이었지. 절대로 물러서면 안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어. 그 뒤 주민들이 똘똘 뭉쳐 싸움을 하게 되고 2000년 오폭 사건이 발생해서 TV에 보도되기도 했고, 그런데도 이 놈들이 사격연습을 계속 하겠다면서 황색 깃발(사격훈련이 진행된다는 경고 깃발)을 내걸었지. 그 모습을 본 전만규 위원장이 깃발을 찢다가 구속이 되었지. 그때부터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투쟁을 하게 되었어. 그리곤 승리한 거야. 민간인의 손으로 승리한 유일한 투쟁이지.

 

‘승리했다’시면서도 약간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시는데, 요즘 요즘 매향리는 어떤가요?

매향리 폭격장이 폐쇄 되고 그 곳에 평화공원을 조성하려고 하였잖아. 그런데 정부가 예산부족이라고 핑계를 대면서 점점 늦어지고 있어. 4대강이다. 전쟁연습이다. 뭐다 하면서 쓸데없는 곳에는 잘만 쓰면서 말이지. 아마 정권이 교체 되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 원래는 농섬을 중심으로 떨어져 있는 포탄을 국방부가 수거해야 하거든. 그런데 이놈들이 전혀 신경을 안 쓰는 거야. 그래서 대책위 기금으로 주민들이 직접 포탄을 수거하고 있어. 대책위 사무실에 산처럼 쌓여 있지. 내 생각에는 평화공원이 세워지면 경제적 효과도 아주 높을 것 같아. 왜냐하면 골리앗 미국을 상대로 다윗인 주민들이 싸워서 승리한 경우는 세계에서도 별로 없거든. 하루에 400~500번 정도의 폭격이 진행된 지옥 같은 곳이 싸우면 된다는, 아주 평화로워 질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곳이 될테니까. 세계 평화운동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되지 않을까?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느낄 수 있는 평화교육의 장으로 만들 계획이거든.

또 어색하신 듯 살짝 미소를 지으신다. 지난 9월에는 미군이 매향리 소음피해 배상금 91억여원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는 뉴스도 있었습니다. 매향리는 아직도 싸우는 중입니다.

 

요즘 건강이 안 좋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좀 어떠신지요?

요전에 태풍이 불어왔잖아. 그때 지붕에 문제가 생겨서 지붕에 올라갔다가 떨어져서 다리를 좀 다쳤어. 병원에서는 한 3개월 쉬어야 한다고 하는데...... 다리를 약간 절고 있는데 그래도 뭐 다닐 만은 해.

 

어유~ 그런데도 매번 이렇게 집회에 참석하시는 거예요?

몸이 아프더라도 정신만 있다면 어딜 못 가겠어. 비록 하루하루 모이는 우리의 힘이 작아 보이긴 하지만 뭐 20명이 모일 때도 있고 30명이 모일 때도 있으니깐. 하지만 그 힘이 축적되어 자주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 된다는 것을 나는 믿으니깐 동지들이 있는 곳이라면 힘을 보태야지. ‘너 하나 없다고 별로 표 안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야. ‘우공이산’이라고 하잖아. 모이고 모이면 태산도 움직일 수 있거든.

 

평통사 후배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신다면은요?

이 투쟁은 하루 이틀에 이루어 질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를 이어서 해야 되거든. 혈기왕성한 후배들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지. 그래야 평화통일 된 조국의 주역이 될 수 있을 것 아니야. 그리고 독일이 통일방법이야 어찌 되었든 통일이 되고 나서 힘들었잖아. 그것을 거울삼아 통일이 되어도 힘들지 않고 희생이 덜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연구도 하고 그래서 방법도 찾아내어 전 세계와 우리 정부의 귀감이 되었으면 해. 그리고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라는 희망과 소망을 가지고 꼭 이루어 후손들에게 존경 받을 수 있기를 바라.

지금 평통사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운이 좋은 사람들이야. 나도 그 일원이라는 것이 무척이나 자랑스럽거든. 이명박 정부가 앞뒤 없이 미국이 하라는 대로 하는데 이것을 바로 잡고 민족의 아픔을 대변해 주는 곳이 평통사거든. 반미투쟁하면 사람들이 무턱대고 빨갱이라고 하는데 이런 말에 주눅 들지 말고, 반미투쟁이 한국정부를 도와주는 거라 생각해. 왜냐하면 똑바른 정부라면 미국에게 ‘국민이 반대해서 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꺼리를 제공해 주거든. 그러나 정의로운 일을 해나가다 보면 아픔과 고통이 따르기 때문에 인내하고 후퇴하지 말고 묵묵히 앞으로 나가면 반드시 평화로운 세상이 실현이 될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쭉 나가길 후배들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가장 감사한 사람은 누가 있을까요?

오늘 아침에도 집을 나오면서 내 아내에게 말했어. ‘내 영광은 당신의 영광이고 당신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 삶이 있는 것이라오.’ 정말 아내가 착해서 너무 감사하지. 감옥도 세 번이나 갔다 왔는데도 아니라는 말 한마디 안하고 묵묵히 아이들 잘 키워주고 집안 살림도 잘 해주고 너무 감사하지. 세상에서 가장 감사한 사람이야.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아마도 지난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지시나보다.)

가을이 오면 눈부신 아침 햇살에 비친 그대의 미소가 아름다워요~~~~ 추영배 고문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하늘은 잔뜩 흐려있었지만 살짝 살짝 비친 고문님의 미소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 하꼬방은 ‘상자같은 방, 궤짝같은 방’이란 뜻이며 판자로 벽을 만들어 흡사 궤짝같이 지은 허술한 판잣집을 가리키는 말이다.

2) 매향리 폭격장 폐쇄 주민대책위 위원장

3) 성경에 나오는 인물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애굽을 나올때 모세를 도와준 인물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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