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연대

[2014-03-15] 유성 희망버스 참가기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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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 희망버스를 다녀오면서 - 오직 연대투쟁만이 노동자 민중의 살길이다

유성희망버스가 315일 전국 각지에서 출발하여 옥천으로 모였다. 서울을 비롯하여 무려 39개 지역에서 왔고, 희망버스 97대에 분승하여 참가자는 3천명이 넘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인원과 수많은 취재진이 참가한 것은 유성기업 문제가 본격적으로 사회 공론화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탄이다.

평통사에서는 배종열 전 상임대표님을 비롯하여 서울, 경기남부, 대전충청, 대구, 광주전남, 목포 평통사에서 대표와 회원 등 10여명이 참가하였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옥천으로 몰려들자 경찰은 혹시나 있을 고속도로 점거 등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3천명 이상의 경력을 동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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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의 대오는 154일째 유시영 사장 구속’ ‘영동과 안산공장 공장장 파면’ ‘사회적 합의등의 이행을 촉구하며 유성기업 영동지회 이정훈 지부장이 올라가 점거투쟁하고 있는 옥산 광고탑 아래에서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이정훈 지부장은 감격해하며 계속 손을 흔들었다.

결의대회의 압권은 이정훈 지부장과 이정훈 지부장 부인의 발언, 상징의식이었다.

이정훈 지부장은 오늘을 기다리며 며칠 째 잠을 설쳤다. 여러 동지들을 보니 더욱 힘이 난다. ‘유시영 사장 구속’ ‘영동과 아산공장 공장장 파면’ ‘사회적 합의가 실현될 때까지 계속 내려가지 않고 투쟁하겠다. 지난 3년간의 유성기업 투쟁의 종지부를 찍고 민주노조 사수를 현실화 시키겠다는 단호한 발언으로 참가자들의 결의를 드높였다.

이어 등장한 이정훈 지부장 부인의 발언은 참가자 모두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남편이 노조 초창기 때부터 활동을 해서 월급을 27만원 가져온 때도 있었다. 그래도 남편이 옳은 일을 한다고 믿고 온갖 어려움을 참아왔다. 작년 1017일은 결혼기념일인데 남편이 출근하면서 할 말이 있으니 저녁 때 보자는 말에 결혼기념을 기억하고 있는가 하여 가슴이 설레었다. 그런데 저녁 때 와서 유성기업 문제 해결을 위해 옥천 광고탑 점거투쟁을 해야 하니 이해해달라는 말을 했다. 서운했으나 남편의 의지를 알기에 동의했는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다. 국정감사와 국회청문회를 통해 유성기업의 문제가 폭로되고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법원에서도 해고자 원직복직 판결이 내려졌음에도 전혀 이행이 안 되고 있다. 그동안의 과정이 너무 억울해 남편이 투쟁을 계속하고 있으니 사회 각계 여러분들이 끝까지 연대하여 함께 문제해결에 나서달라는 이정훈 지부장 부인의 눈물어린 호소는 참가자 모두의 심금을 울리고 두 주먹 불끈 쥐게 만들었다.

이어 참가자들의 지지격려 글이 담긴 수많은 소자보가 끈으로 연결되어 옥탑위에 있는 이정훈 지부장에 전달되는 상징의식이 진행되었는데 장관이었다. ‘유시영을 구속하라’ ‘사회적 합의 이행하라’ ‘ 민주노조 사수하자’ ‘박근혜 정권 규탄한다는 참가자들의 구호가 외쳐졌고 민주노조 사수가를 제창하면서 결의대회가 마무리되고 이정훈 지부장을 남겨 둔 채 유성기업 본사가 있는 아산공장으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유성기업 아산공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경찰은 수천의 경력을 동원하여 공장 전방 1km 지점부터 경찰차량으로 도로를 막고 광화문에서 자주 보았던 바리케이트를 도로에 설치하여 참가자들의 공장접근을 막았다. 참가자들은 경찰에 강력히 항의하며 도보로 공장 앞에 집결했다.

일단 유시영 사장 면담을 위해 희망버스 지도부가 공장으로 진입하려 했으나 이미 공장 안에 수많은 경찰이 배치되어 공장 진입을 막았다. 1시간에 걸친 실랑이가 있었으나 끝내 공장진입은 실패했고, 일정 상 금속노조 결의마당이 개최되었다. 참가자들의 모습을 보니 모두가 유성기업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금속노조 결의마당에 이어 밤새도록 문화제와 영화 상영, 특강, 사진전과 설치미술작업 등이 진행되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해방세상, 대동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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