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광주> 효순미선평화공원조성기금 마련을 위한 순회 콘서트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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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9년 11월 19일(화) 오후 7시 -장소: 5.18기념문화센타 2층 대동홀
효순미선 평화공원 조성은
효순 미선의 억울한 죽음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확실한 증표
진상규명을 위해 끝까지 노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극복하고 주권 실현
평화를 꽃피우겠다는 굳센 다짐의 상징
올해 안에 효순 미선 평화공원을 완공하기로 뜻을 모으고, 미군추모비를 이동하고 시민추모비를 그 자리에 세웠습니다. 사과와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등 한국민의 요구를 거부한 미국이 사고 현장에 ‘불의의 사고’라고 적시된 추모비를 세운 것은 위선이며 한국민을 두 번 우롱하는 처사였습니다. 시민들은 이에 맞서 우리의 손으로 추모비를 세우자고 뜻을 모았고 시민추모비 건립 제안 후 11년 만에 미군 추모비를 이동하고 평화공원 착공의 첫 삽을 뜬 것입니다.
2019 <광주> 효순미선평화공원조성기금 마련을 위한 순회 콘서트에 참가한 참가자들
그러나 아직 공사를 시작할 수 있는 규모의 평화공원 조성비용이 마련되지 못하여 올해 안에 완공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어렵게 된 상황입니다. (총 공사비용 1억 5000만원 중 9월 말 현재 기금 3200만원). 이에 평통사는 내년 18주기 추모제까지는 완공할 수 있도록 대중적 모금에 나서기로 하고 전국 순회 모금 콘서트를 기획,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2019 전국 순회 콘서트 네 번째 일정은 광주에서 진행되었습니다.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항쟁은 반독재민주주의의 뜨거운 불꽃이었고, 이 땅에 반미자주화 투쟁을 점화시켰습니다. 그런 만큼 광주 콘서트를 준비하는 광주평통사 분들의 마음은 많이 긴장되었습니다. 특히 방위비분담금 증액을 요구하는 미국의 강도적인 강압과 지소미아 연장에 대한 무도한 압박이 자행되는 상황에서 열린 행사이기에 참가자들도 이번 콘서트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이날 콘서트는 백금열 광주평통사 회원이 사회를 맡아 능숙하고 편안하게 진행해주었습니다. 콘서트는 1부 공연과 시낭송, 2부 토크로 진행되었습니다.
1부에서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2017년 15주기에 제작한 영상인 "살아보지못한, 15년"을 상영했습니다. 바로 이어 이지상 가수의 효순미선을 추모하는 자작곡 "겨우 열다섯" 등 노래 공연이 진행되었습니다. 광주에서는 이에 더하여 송경동 시인이 평화공원 조성을 위해 지은 시 "56번 국도"를 낭송해주었습니다. 아래에 시의 전문을 소개합니다.
"살아보지못한, 15년"영상보기
송경동 시인이 효순미선 평화공원 조성을 위해 지은 "56번 국도" 자작시를 낭송하고 있다.
56번 국도
- 효순미선 평화공원 건립을 위하여
송경동
누구나 살아가며
잊지 못할 길이 있지요
56번 국도가 그렇지요
2002년 6월 13일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있어 쉬던 날. 한국과 포르투칼이 월드컵 16강전을 앞두고 있었던 날. 휴전선 가까운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에 살던 열다섯 살 효순과 미선은 56번 국도를 따라 들꽃처럼 환하게 걸어가고 있었지요. 언덕 너머 300m 미진이네집에서 친구들과 모여 의정부로 놀러가 생일파티를 하기로 했지요. 노래방에도 가서 종달새들처럼 놀 계획이었죠.
쭉 뻗은 언덕길 뒤에서는 전투훈련을 마친 주한 미보병 2사단 44공병대대 장갑차 부대가 법원리 쪽에서 언덕으로 올라오고 있었고, 맞은편에서는 교대하러 가는 M2/M3 브래들리 기갑 전투차량 다섯 대가 덕도리 쪽에서 언덕을 넘어 오고 있었죠.
그들은 멈추지 않았죠
육중한 탱크 바퀴가 지나 간 도로 위에
두 소녀가 납작 쓰러져 있었죠
뼈도 없는 토마토 파편처럼 짓이겨져 있었죠
오, 필승 코리아!
월드컵 16강 진출의 환호소리에 묻혀
두 소녀의 비명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죠
오, 필승 코리아는 종전 체결권도
전시작전지휘권도 주한미군에 대한 재판권도 없었죠
그들은 그들에 의해 무죄로 풀려난 직후
급히 본국인 미국으로 보내졌죠
다행히 두 소녀가 흘린
뻘건 피 속의 적혈구 하나하나가 살아나
그해 겨울 처음으로 이 땅에 촛불이 타오르기 시작했죠
눈감을 틈도 없었던 두 소녀의 영혼처럼
촛불은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올랐죠
평택미군기지 이전확장반대 촛불
한미FTA반대 촛불
광우병 수입 반대 촛불
용산철거민참사 책임자처벌 촛불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촛불
민중총궐기 총파업 노동법개악저지 촛불
그 모든 촛불이 모여
박근혜퇴진 촛불로 거듭 타오르기도 했지만
여전히 열네 살 두 소녀를 기억하는
영혼의 촛불은 꺼지지 않고 있죠
누구나 살아가며
잊지 못할 길이 있듯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길도 있죠
덕도리로 넘어가는 56번 국도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길이죠
오, 필승 코리아!
이 땅의 점령군과 휴전선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이 세상 모든 곳에서 전쟁과 무기와
군대와 살상이 사라지는 그 날까지
우리가 진정으로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길이죠
효순미선 사건의 초기 대응과 촛불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이야기 손님들
2부 토크는 두 파트로 나누어 진행했습니다. 첫 파트에서는 평통사의 사건 초기 대응과 촛불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야기 손님으로는 박석분, 권정호, 그리고 정달성 세 분이 초대되었습니다. 사건 초기 대응에 관해 평통사로 실무자로 활동해온 박석분 평화공원 조성위 집행위원장은 "지자체 선거가 있는 날이라 실무자들이 오랜만에 수련회를 간 날이었다. 연락을 받고 달려가 초동대응을 했다. 이 대응이 아니었다면 효순미선의 죽음은 다른 많은 미군에 의한 한국인 피해의 한 사건 중 하나로 묻혀버렸을 것이다. 게다가 당시는 월드컵 경기가 진행중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용기를 내어 붉은악마들의 응원전이 펼쳐진 광화문에 피켓을 들고 나섰고, 이에 호응한 수많은 네티즌들이 이 소식을 전국적으로 전파하면서 본 사건이 국민적 사안으로 떠오르게 되었다"고 당시 상황을 소개했습니다. 이에 백금열 사회자는 "이런 초동대응을 통해 현장 파악과 조사를 철저히 한 것이 이후 투쟁의 사실적 기초가 되었군요"라고 평통사 활동의 의미를 짚어주었습니다.
이후 두 살인미군에 대한 무죄편결이 국민적 분노를 일으킨 또 하나의 계기로 작동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당시 유일하게 재판을 방청한 권정호 변호사가 설명했습니다. "한미소파 상 공무중 미군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미군이 재판권을 갖지만 한국 정부가 재판권을 요청하면 "호의적 고려"를 하게 되어있다. 당시 살인미군들을 우리 법정에 세우자는 국민적 요구에 밀려 우리 사법부가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에 재판권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리고 미군검찰, 미군변호사, 미군재판부, 미군배심원에 의해 진행된 재판에서 두 미군은 무죄판결을 받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이에 전 국민들이 분노해서 일어났고, 촛불을 들었고, 이것이 지금 우리들이 들고있는 촛불의 처음이다"고 소개한 후 여전히 이런 문제가 개선되고 있지않은 한미소파의 불평등성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사회자는 광주에서도 켜진 촛불에 대한 이야기를 정달성 님에게 요청했습니다. 생활정치발전소 소장을 맡고 있는 정달성 선생은 당시 학생운동을 하고 있었고, 학생들이 이 일을 알리려고 애를 썼지만 광주에서도 처음에는 월드컵 응원전에 묻혀 제대로 확산되지 못하다가 무죄판결이 알려지면서 촛불이 거세게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사회자는 "이 자리에 당시 직접 시를 지어 발표하신 선생님이 계시다"고 소개하고, 그 분을 앞으로 모셨습니다. 2002년 당시 월곡 초등학교 교감이셨던 김선호 선생은 "뭐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학교 정문에 플랭카드를 달고 촛불에 참가하여 외쳤던 일을 소개하고 12월 24일 충장로우체국 앞에서 열린 촛불행사에서 발표한 자작시를 소개했습니다. 김선호 선생은 "그 때 우리 학교에 걸었던 현수막을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도 걸기를 바랬는데 실패했다. 그러나 전국의 각 학교 정문에 미국의 부당한 횡포에 맞서는 현수막이 걸리는 그 날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하여 참가자들이 뜨거운 박수로 화답하였습니다.
2002년 당시 지은 효순미선 추모시를 낭송하는 김선호 선생님
박석분 위원장은 이처럼 촛불의 시작이 된 효순미선 투쟁은 반미자주투쟁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킨 투쟁이라고 그 의미를 부여하고 "2002년 12월 14일 광화문에 집결한 30만의 촛불이 역사상 처음으로 미 대사관을 에워쌌고, 전국적으로는 100만의 촛불이 켜졌다. 촛불은 미국, 영국, 프랑스, 스웨덴 등 전 세계로 확산되기도 했다. 반미자주 촛불이 확산되자 미국은 노무현 당선자에게 작전통제권 환수 의지를 밝힐 정도로 당황했다. 이 경험은 우리가 자주평화의 요구를 들고 촛불을 들고나선다면 미국의 불법부당한 강요에 얼마든지 맞설 수 있고, 또 지금이야말로 그런 대응을 할 때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이 발언에 힘찬 박수로 호응하였습니다.
하지림 재즈 피아니스트와 전사무엘 베이시스트가 공연을 하고 있다.
두번 째 토크 파트로 넘어가기 전에 부산에서 온 하지림 재즈피아니스트가 촛불의 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자주평화의 과업을 성취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작곡한 "더 문" 연주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흔들림없이 나아가자는 취지에서 곡을 붙인 "강인한 채송화" 노래공연을 해주었습니다. 하지림 선생 공연에는 광주에서 활동하는 베이스 전사무엘 연주자가 함께 해주었습니다.
평화공원 조성의 의미와 과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이야기 손님들
평화공원 조성의 의미와 과제를 주제로 진행된 두 번째 토크에는 효순미선 시민추모비 '소녀의 꿈' 제작자 김운성 작가와 효순미선 추모웹툰 <틈>을 그린 작가 최정민 선생, 그리고 광주평통사 지희준 회원도 이야기 손님으로 참가했습니다.
박석분 위원장은 미군들이 무죄판결을 받고 돌아간 후에도 평통사는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을 계속하여, 2005년에 검찰로부터 수사기록을 넘겨받아 검토한 결과 무죄판결의 근거가 된 내용이 허위임을 밝혀냈다고 소개했습니다. 즉, 운전병은 두 소녀를 볼 수 있었고, 관제병과의 통신도 장애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기초하여 결정적인 자료, 즉 현장검증 테잎과 재판기록 일체를 넘겨받아 재심을 청구하여 진상을 규명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는 것을 언급했습니다. 박 위원장은 "평화공원을 조성하는 것은 바로, 진상규명을 위해 현장을 보존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이어 김운성 작가는 올해 6월에 열린 추모제에서 미군이 세운 추모비를 치우고 평화공원 착공식을 했다는 사실을 소개했습니다. "2008년 미군 추모비가 훼손된 것을 보고 시작한 시민추모비 건립사업은 11년만인 올해 사고현장 부근에 땅을 사고, 미군추모비를 치운 후 그 자리에 우리 추모비를 세우고 착공식을 하는 것으로 1단계를 마무리했다"고 말했습니다. 김작가는 이어 시민추모비는 쇠로 되어있으며 촛불 하나하나를 표현했고, 그 촛불들이 모여 두 소녀의 꿈을 상징하는 꽃을 표현했다고 소개했습니다. 김작가는 "시민추모비를 제작했지만 둘 곳이 없어 트럭에 실려 거리 추모제에 놓여지거나 심지어 경찰에 의해 탈취되기까지 했던 시민추모비-소녀의 꿈을 평화공원을 어서 조성해서 제 자리에 놓을 수 있도록 평화공원 조성에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미군추모비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미군 측의 무책임과 오만함에 대한 소개도 이어졌는데, 참가자들은 미군들이 자신들의 추모비를 "문화재"라고 주장했다는 대목이 나오자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최정민 작가는 로멘스 코메디를 그리려다가 "선배들을 잘못만나" 사고 당시 상황을 묘사한 "틈"을 그리게 되었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된 일이 운명같다면서 평화공원이 잘 조성되는 데 작은 보탬이 되고싶어 인세 등 재능기부를 하게 되었다고 인사하자 참가자들이 따뜻한 격려의 박수로 응원했습니다.
권정호 변호사는 평화공원은 사고 직후 벗겨져 나뒹굴고 있던 운동화 한짝의 모양을 모티브로 하여 설계되었다고 소개하고 이 평화공원이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극복하고 주권을 회복하자는 우리 국민들의 염원을 담게 될 것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이어 권 변호사는 최근 방위비분담금에 대한 미국의 강압을 소개하면서 "한국민 96% 이상이 반대하는 방위비분담금 문제는 미국이 세계패권전략 수행비용을 우리 국민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미국의 이 강도적인 요구는 남한 방어를 임무로 하는 주한미군에 대한 지원을 뛰어넘는다는 점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미소파를 위배하는 것이며 주한미군에 대한 비인적지원 일부를 부담하기로 한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조차 어기는 것"이라고 규탄했습니다.
참가자들은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에 한국군을 첨병으로, 한국을 전초기지로 전락시키는 요구에 맞서야 함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권 변호사는 "이 같은 일은 최근 한미동맹 위기관리 각서 개정에서 위기관리 범위를 한반도에서 미국 유사시로 확대하자는 강요와 맞닿아있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습니다.
사회자는 17년이 넘도록 시민추모비를 여전히 제자리에 갖다놓지 못하고 있는 이 현실이 바로 한미관계와 우리 국민들의 자주평화의식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언급했습니다.
광주평통사 지희준 목사는 "광주에서 많은 분들이 십시일반 모아서 소녀상을 세우고, 지금 그 자리는 역사바로세우기를 위한 장으로 활용" 있다며, "(이는) 단순히 기억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그 아프고 아리고 슬픈 기억을 디딤돌 삼아 다시는 그 슬픔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함께 연대하고, 함께 행동하고자 하는데 더 큰 뜻"이다, "효순미선추모공원 건립은 그래서 단순히 기림의 장소가 아니라 다시 자주평화통일의 시작점"이며, "효순미선추모평화공원건립으로부터 우리는, 이 땅의 진정한 자주와 평화와 통일의 세상을 맞아오기 위한 연대와 가열찬 실천을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이 땅 한반도에 자주의 물결이 넘실대고, 평화의 꽃 만발한 통일조국이 이뤄지는 날, 우리가 건립하고자 하는 효순미선 추모평화공원은 기억의 저장소에서 축제의 장으로 바뀔 것이며, 효순미선 추모비는 더이상 슬픈 역사와 아픈 눈물에 대한 기림비가 아니라 우리 전 민족의 승리의 기념비가 될 것"이라며 결의의 발언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박석분 위원장은 "사고가 난 지역은 동양최대의 미군훈련장이 있는 곳이다. 더 이상 전쟁연습은 하지 말아야한다. 작전권을 환수하고 판문점, 싱가폴 합의를 이행하여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평화공원 조성이 두 소녀의 사건을 기억하겠다는 약속이며 진상규명을 기어이 해내겠다는 의지이자 한미동맹을 극복하고 자주적이고 호혜평등한 한미관계 실현을 바라는 우리 모두의 염원을 담아내는 상징의 장소를 만드는 일"이라고 그 의미를 정리하였습니다.
가수 국도 1호선이 효순미선 콘서트의 마지막 공연을 하고 있다.
끝 순서로 국도1호선이 공연을 해주었습니다. 참가자들은 국도1호선과 함께 남누리 북누리를 부르며 행사를 마친 후 기념촬영에 나섰습니다. 참가자들은 모금에 적극 동참하여 내년 6월에는 완공된 평화공원에서 추모행사를 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참가자들이 한미동맹 현안에 대한 요구를 담은 피켓을 들고 인증샷을 하는 것으로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호혜평등한 한미관계를 염원하며 광주 콘서트 참가자들은 제 51차 SCM 대응 인증샷을 찍고있다.
제 51차 한미안보연례협의회의(SCM) 결과에 대한 논평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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