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2003. 12. 7] 미국의 동북아전략과 북핵 다자회담 (1)-서보혁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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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만들기 108 호
발행일 : 2003-12-05

미국의 동북아전략과 북핵 다자회담 (1)
부시행정부의 반확산전략을 중심으로

서보혁

Ⅰ. 문제제기

2003년 8월 27-29일 베이징에서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모색하기 위한 6자회담이 열렸다. 이 회담은 지난 4월 3자회담 이후 4개월만에 북핵문제에 관련된 주변 당사국이 모두 참가함으로써 평화적 해결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참가국들은 구체적인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비핵화 원칙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회담은 구체적인 결실을 거두지 못한 채 2차회담의 일정도 잡지 못하고 끝났다. 특히, 회담의 주 당사국인 북한과 미국은 상호 현격한 입장 차이를 재확인하면서 향후 회담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북한과 미국 등 6자회담에 참여하는 모든 국가들은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데 원칙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북미 양국은 북핵문제의 해결을 6자회담에만 기대하고 있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체제의 안전을 미국과의 불가침조약 체결로 보장받기를 바라고 있고,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핵 억제력’을 갖출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반면에 미국은 외교적 압력, 경제제재, 봉쇄 나아가 선제공격 등 다양한 정책수단을 사용할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북한에 先핵포기를 요구하고 있다. 또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의 경우에도 북한은 미국과의 직접 협상을 바라고 있는 반면 미국은 다자적 해결을 추구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대목은 국가의 생존 차원에서 접근하는 북한의 입장보다는 세계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이 북핵문제를 접근하는 전략적 의미이다. 미국은 북핵문제를 단지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해서만 접근하는 것이 아니며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본 논문이 북핵문제를 미국의 세계 및 동북아 전략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글은 미국의 북핵문제에 대한 인식과 대응을 미국의 세계 및 동북아전략의 맥락에서 살펴보고, 그 속에서 한국의 역할을 모색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따라서 아래의 논의에서는 주로 미국의 입장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북핵문제가 미국의 의도대로 전개될 것임을 선험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북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다자적 접근의 일환으로 시작된 6자회담이 반드시 미국의 의도를 일방적으로 관철하지 않을 개연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미국의 전략과 대북 핵정책을 단순히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비판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핵문제를 미국 전략의 시각에서 이해하는 것은 국제협력, 북한 설득 등 한국의 역할을 모색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작업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연구 목적에 따라 2장에서는 미국의 세계전략을 살펴본 뒤, 3장에서는 그 연장선상에서 미국의 동북아전략을 검토한 후 거기서 북핵문제가 갖는 전략적 의미를 살펴볼 것이다. 4장에서는 북핵문제의 본질을 검토하고 첫 6자회담의 의미와 그 결과를 분석할 것이다. 5장에서는 이상의 분석을 바탕으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한국의 역할과 로드맵을 결론을 대신하여 제시해 보고자 한다. 이상의 논의는 미국의 경우 공식 정책보고서와 주요 정책결정자의 발언, 북한의 경우는 관영언론의 보도를 분석하면서 이루어질 것이다.

Ⅱ. 미국의 세계전략과 동북아

1. ‘힘에 기초한 외교’

현 부시 행정부가 전개하고 있는 미국의 동북아전략은 세계전략의 일부이므로 그 맥락에서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냉전 붕괴 이후 세계 유일 초강대국인 된 미국의 특정 지역전략은 ‘세계 경영’이라는 관점에서 설정되고 추진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부시정부의 외교안보정책 기조와 방향을 2000년 대선 유세과정과 당선 이후 부시대통령 및 외교안보 정책결정자들의 발언을 종합하여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주1)

먼저, 외교안보정책 기조는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현실주의적 국제주의 노선이다. 클린턴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을 비판해온 공화당은 부시정부 등장을 전후로 미국의 이익이 게재돼 있는 지역과 문제에 선별적 개입하되 필요한 경우 강력한 물리력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명백히 하고 있다. 둘째, 일방주의 노선이다. 따라서 부시정부는 미국의 이익 달성을 위해 이해가 교차하는 상대국과의 대등한 협의나 국제기구를 통한 관여보다는 미국이 세운 기준과 접근방식을 강조하고 있다. 셋째, 동맹관계의 중시이다. 한편, 부시정부는 세계 주요지역에서 미국의 정책을 집행해 나가는데 동맹국을 활용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부시정부가 전개하고 있는 구체적인 외교안보정책 방향은 미사일방어망(MD: Missile Defense) 구축, 반확산(counter-proliferation)정책, 쌍무관계 강화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먼저, 부시 대통령은 클린턴정부의 제한적인 국가미사일방어망 계획이 미국과 동맹국의 안보를 담보하지 못한다고 비판하고, 육상 및 해상은 물론 대기권 안팎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MD 구상을 공식 천명하였다.(주2)

둘째, 부시정부는 러시아와 핵무기 감축을 추진하는 한편,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에 대해서는 강력한 대처 방침을 천명하고 있다. 부시정부는 러시아와 핵무기 감축을 이끌어내는 한편,(주3) 대량살상무기 확산 우려 국가에 대한 핵선제공격 독트린과 그에 적합한 소형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전통적인 동맹국 혹은 우방국과의 쌍무관계를 강화하는 대신 국제 규범의 제약을 회피하고 있다.(주4) 일방주의 노선을 기본으로 한 부시정부의 차별적인 쌍무주의적 접근은 그 가운데 상대적으로 이익 손상을 우려하는 국가(가령 중국)와 의도하지 않은 갈등을 수반할 가능성이 있고, 국력의 차이가 큰 한미관계의 경우 한국의 이해가 위협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 반(反)확산전략

부시행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은 한마디로 일방주의 노선과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유일 초강대국의 지위를 영구화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부시정부 초기 안보정책결정집단 내에서 양대전쟁 태세 준비와 국방혁신의 우선순위를 놓고 논란이 있었지만 9.11테러는 이 둘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하였다.(주5)

부시정부는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방지를 위해서 외교적 압력과 군사적 봉쇄에 의존하는 비확산전략에 그치고 않고, 확산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국가나 집단에 대한 선제공격을 불사하는 반확산전략을 추가하고 후자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실제 부시정부의 반확산전략은 아프카니스탄, 이라크 침공과 같이 ‘테러지원국가’나 ‘불량국가’의 위협을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미 국방부는 2001년 9월 30일, 4개 년 국방전략검토(QDR: Quadrennial Defense Riview)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의회의 결정으로 1997년에 처음 발표된 QDR은 향후 세계가 다양성과 복합성의 시대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미국의 안보당국은 대량살상무기, 테러, 마약, 인종갈등, 실패한 국가(failed states) 등에서 오는 위협에 ‘대비’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Cohen 1997). 미 국방당국은 이런 과제에 대처하기 위해서 전력 및 전략 개편, 인프라 개선 등을 시도하였으나 그 구체적인 실행은 부시정부 들어서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2000년 6월 미 합동참모본부가 발표한 조인트 비전(Joint Vision) 2020은 어떤 상황에서도 작전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소위 ‘총체적인 범위에서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군사혁신 과제를 제시하고, 소위 비대칭 위협을 방지하거나 제압할 수 있도록 정보력을 강조하는 ‘결정에서의 우위’를 강조하고 있다(The Joint Chief of Staff 2000).

이어 발표된 2001 QDR은 테러 사태를 계기로 미국의 국가이익에 대한 위협에 행동으로 대처한다는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함으로써 1997 QDR을 한층 진전시키고 있다. 이는 QDR이 국방정책상의 패러다임 전환을 강조하고 있는데서 알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① 본토 방어, ② 전진 억지, ③ 단호한 전투태세, ④ 소규모 비상 작전 등이 그것이다. 이 보고서는 서문에서 미국의 국방정책이 9.11 테러 사태가 아니었으면 주로 해외에서 효과적일 거라는 예상 속에서 수립했던 불확실성과 기습에 대응하는 전략에 수정이 가해졌다고 밝히고 있다. 그것은 바로 미 본토의 방어가 국방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올라야 한다는 것이다.(주6)

특히 2001 QDR이 강조하는 ‘능력에 기반한 전략’(a capabilities-based strategy)은 적이 어디서 전쟁을 일으키는지에 초점을 둔 기존의 ‘위협에 기반한 전략’과 달리 적이 어떻게 싸워올 것인지에 중점을 두는 전략이다(The US Department of Defense 2001). 이러한 전략수립 관점의 변화는 탈냉전시대의 안보위협은 정체가 뚜렷하지 않거나 다양한 형태의 행위자들로부터 나온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말하자면 부시정부는 9.11테러를 그 동기보다는 결과에 주목하여 평가함으로써 힘에 기초한 일방주의적 외교안보정책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2002년 초 미 언론과 민간단체에 의해 공개된 핵태세검토(NPR) 보고서는 러시아, 중국 등 핵보유국가는 물론, 북한 등 비핵국가에 대해서도 핵무기 사용 계획을 적용하고 있다. 이 보고서도 QDR과 같이 의회의 결정으로 국방부가 작성한 것인데,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이율배반적인 방침을 공식화한 것이다. 보고서는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을 5가지로 설정하고,(주7) 특히 북한, 이라크, 이란, 시리아, 리비아 등을 “즉각적이고 잠재적이며 예기치 않은 돌발상황을 초래할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그 중에서 북한과 이라크는 “고질적인 군사적 우려의 대상국”으로 명시하고 있다(The U.S. Department of Defense 2002, 16). 이런 판단을 근거로 부시대통령은 2002년 1월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이라크, 이란과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하였다.

부시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은 비핵국가에 대한 핵 선제공격 옵션을 열어놓은 국방당국의 핵전략을 행정부 전체의 안보전략으로 격상시키는 가교 역할을 하였다. 2002년 9월 17일 부시대통령이 서명한 ‘국가안보전략’은 ‘불량국가들’에게 대량살상무기는 침략과 위협을 위한 ‘선택의 무기’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억지정책은 소용이 없으며, 따라서 ‘선제행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때 선제행동은 불량국가의 공격 시점과 장소가 불확실하더라도 침략을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시 감행될 수 있다고 정당화되고 있다.

또 같은 해 12월 10일 백악관이 발표한 ‘대량살상무기 퇴치 국가전략’은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저지를 위해 반확산, 비확산, 사후 관리능력 등 다각적인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반확산정책에는 나포, 억류, 포격 등 군사력을 사용하는 화물선 통행 저지(interdiction)가 주요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는데(The White House 2002a), 이 보고서가 발표된 날 미국은 예멘을 향하는 미사일 수출 선박을 스페인 군함의 협조로 정선(停船)시켜 조사한 바 있다. 이같은 사실은 미국이 “대량살상무기가 목적지에 이동하는 동안 이를 방해․무용화․파괴한다”는 소위 능동적 방어를 채택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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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주1) 2001년 5월 1일 미국의 외교안보정책 요강을 밝힌 부시대통령의 국방대학 연설(2001a).
(주2) 부시 대통령은 이 연설에서 미국이 MD를 추진하는 근거로 ①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등 국제정세의 불확실성, ② 기존의 일부 군축 협정(탄도미사일제한조약, 포괄핵실험금지조약 등)의 비효율성, ③ 새로운 무기체계를 통한 외부위협 방어 필요성 등을 들고 있다.
(주3) 부시정부의 일방적 핵무기 감축 방침은 ① 포화상태에 들어선 핵무기의 전략적 유용성 약화, ② 후발 핵무기 보유국이나 잠재 보유국가들의 핵 확산 및 개발 억제, ③ 미사일방어망 추진의 명분 및 재정 확보 등을 겨냥한 다목적 포석으로 분석할 수 있다(서보혁 2002, 121). 미국과 러시아는 2002년 들어 향후 10년간 각각 6천 기가 넘는 핵 탄두를 3분의 2가량 감축하기로 합의하고 5월 정상회담에서 이에 서명하였다.
(주4) 부시정부의 외교안보정책 결정권자들은 다자주의를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간주하고 “다자주의에 대한 커미트먼트가 우리의 선택을 제약할 필요는 없다”고 인식하고 있다(Haas 2001, 46).
(주5) 서재정. 2003. “이라크전쟁 이후 미국의 세계전략- 봉쇄에서 신 롤백으로.”『한반도의 평화를 위하여- 대안담론과 대안정책』. 한국인권재단 주최 2003 평화회의(8. 22-25 서귀포) 자료집.
서재정은 부시정부의 세계전략을 양대전쟁전략과 대량살상무기 반확산 전략으로 구성돼 있다고 하면서 선제공격, 적국 점령 및 정권교체 등을 내용을 하고 있는 호전적인 신롤백정책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주6) 2001 QDR에는 본토방어에 이어 ① 동맹국 보호, ② 적대세력의 위협에 대한 포기 설득, ③ 일선에서 단호한 억지, ④억지 실패시 결정적인 격퇴 등의 전략목표도 제시되고 있다.
(주7) 5가지 경우는 ① 비핵 공격에 견딜 수 있는 지하 시설, ② 핵무기는 물론 생화학 무기를 이용한 공격시, ③ 예상치 못한 군사적 상황으로 북한의 남한 공격, ④ 중국의 대만 공격, ⑤ 이라크의 이스라엘 및 주변국 공격 등이다. “Nuclear Posture Review(Excerpts)," Submitted to Congress on 31 December 2001, 8 January 2002. http://www.globalsecurity.org/wmd/library/policy/dod/npr.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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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대 국제관계학과에서 “탈냉전기 북-미관계에 관한 구성주의적 접근”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평화네트워크 운영위원이다.
전공분야는 북한정치, 남북관계, 국제정치이론이다.
주요 저작으로는『한반도의 선택: 부시의 MD구상, 무엇을 노리나』(2001, 공저),『전쟁과 평화』(2001, 공저), “부시행정부의 대북정책 결정구조”(2002), “탈냉전기 북한의 대미 정체성 정치”(2003), “벼랑끝외교의 작동방식과 효과”(200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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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03년 11월 21일 한신대에서 개최된 민주사회정책연구원 개원 3주년 기념 학술회의 ‘미국의 패권, 기로에 선 한미관계’에서 발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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