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협정

[2000. 12. 12] [퍼옴] 북한 미사일 기지의 실체(미국과학자연합 분석결과)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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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미사일 기지의 실체(미국과학자연합 분석결과)




아래의 글은 미국과학자연합(FAS)에서 민간 위성사인 스페이스 이메이징사로부터 북한미사일 발사 기지 위성 사진을 구입하여 정밀 분석한 결과를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북한 미사일 위협의 실체를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입니다.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더라도 끝까지 읽어보실 것을 권유합니다. 원문은 http://www.fas.org 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위성사진 보기 : 이곳을 누르시면 원문하단에서 위성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 http://www.fas.org/nuke/guide/dprk/facility/nodong.htm



북한 미사일 위협은 1990년대 미국의 안보 계획을 홀리게 하고 있다. 노동 미사일 기지는 미국이 전역미사일방어(TMD)와 국가미사일방어(NMD)를 추진하게된 중요한 원인인 것이다. 그러나 (분석결과) 이러한 원시적인 미사일 위협을 근거로 수백억 달러의 비용을 투입하면 미사일 정책을 재조정한다는 것은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최근에 공개된 상업위성사의 촬영결과는 노동 미사일 기지가 거의 주목할 만한 가치도 없는 가장 원시적인 시설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설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신뢰할 만한 미사일 프로그램을 뒷받침할 수 없고, 또 그런 목적으로 건설된 시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에서는 대륙간탄도미사일 배치를 위해서는 적어도 20번의 실험이 필요하고, 단거리 미사일의 경우에는 더 많은 실험이 요구된다. 북한의 노동 미사일 기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수송로, 포장도로, 연료탱크, 직원숙소 등 광범위한 실험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시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 프로그램은 항상 조심스럽고 지연된 실험과 미국의 과민반응이라는 극도의 불일치라는 특징을 보여왔다. 북한의 미사일 야욕이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은 이번에 공개된 노동 미사일 기지의 규모와 성격으로 확실히 드러났다. 이것은 게이프 캐나이얼(Cape Canayeral : 미국 플로리다에 있는 공군 로켓기지 이름 : 번역자)의 반명제에 해당하는 것이다. 노동 미사일 발사 시설은 상주(常主)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가끔씩 발사 시설을 관리하는 직원들이 그들의 수공업 수준에 있는 발사 시설을 수리하기 위한 주둔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곳에는 산업적인 뒷받침이나 다른 실험 시설이 완벽하게 부재한, 앙상한 뼈만 남은 실험 인프라가 단지 비포장 도로와 거미줄처럼 연결된 시설에 불과한 것이다.

노동 발사 시설은 수송 거점인 김책 항구나 길즐리 남쪽에 있는 고속 활주로와 떨어져 있는 채, 외부의 발사 시설과 연결시키는 포장 도로조차 없는 시설인 것이다. 이러한 고립된 시설에서는 몇 년에 한번씩 발사 실험을 하기도 어렵다. 이 시설은 확실히 미국, 중국, 러시아에 의해 수행되는 수개월마다 실험되는 발사 프로그램이 요구하는 수송 체계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발사시설과 연결된 비포장 도로는 아마도 몇 년을 주기로 실험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데 반해, 비포장 도로의 흙과 자갈이 무너져내려 진흙으로 범벅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실험은 포장도로를 필요로 하는 수송체계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다. 가끔 하는 실험은 즉시 실험에 사용할 수 있는 많은 연료를 정확하게 수송함으로써 뒷받침될 수 있으나, 정상적으로 미사일 발사 시설은 많은 실험발사를 유지하게 위해서 충분한 액체연료탱크를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일회적인 발사 실험은 야영지에서 할 수 있으나, 광범위한 실험은 수백명의 상주 인력이 필요하고 이들이 묵을 수 있는 숙소가 필요하다.

북한의 탄도미사일은 노동에서 멀지 않고, 대포동시에서 10km 떨어진 동해안 시설에서 실험되었다. 함경북도 무수단리의 미사일 기지는1988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이후에 이 시설에서 모두 2번의 발사 실험이 있었다. 1990년 5월에 발사대에 올려진 노동미사일 1호는 1993년 5월에 가서야 첫 실험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1998년 8월에 소형위성 발사 시도라고 알려진 대포동 1호가 발사되었다.

1999년 일년 내내 대포동 2호 발사 준비가 탐지되었다. 1999년 5월 이후 미국의 정찰위성은 대포동 2호 발사 준비를 감시하였다. 새로운 발사대는 99년 6월말에 거의 완성되었고, 이 발사대는 대포동 2호 발사 실험을 위한 것이 분명했다. 대포동 1호 발사대의 높이가 22m인데 비해 2호 발사대는 약 1.5배에 달하는 33m이다. 99년 8월 무렵에는 대포동 2호 운반체가 거의 완성되고, 발사대 인근에 보관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운반체는 결코 발사대로 수송되지 않았다. 통상적으로 미사일을 발사대에 올려놓고 연료를 주입하는데 이틀이 걸린다고 한다. 따라서 발사 준비는 미국 정찰위성에 의해 사전에 탐지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은 연말이 되도록 어떠한 발사 실험 결과도 없이 중단되었다.

발사 시설은 대개 하나의 발사대와 이곳에서 서북쪽으로 850m 떨어진 거리 및 방향 통제소, 그리고 발사대 서쪽으로 500m 가량 떨어진 미사일 조립소(Missile Assembly Building)으로 구성된다. 북한 노동 미사일 기지의 경우에는 MAB가 발사대의 북쪽에 있고, 나머지 시설은 북위 35도에 있다. 이들 발사 기지의 세 개 중요 시설은 비포장 도로와 오솔길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들 중 일부는 아주 괴상한 발사 시설이고 나머지는 농업활동과 연관되어 있다.

탈북자인 임영선씨에 따르면, 안보상의 이유로 이 지역에 있는 모든 거주자들이 미사일 기지 반경 80km 밖으로 쫓겨났다고 주장하였으나, 이것은 명백한 거짓이다. 왜냐하면 발사시설 인근에 많은 소규모의 농촌 거주지가 있기 때문이다. 1999년 스페이스 이메이징사의 사진과 1971년 코로나 사진를 비교하면, 이 거주지에 오히려 거주자의 수와 이와 관련되 시설이 늘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미사일 발사 기지는 농촌 마을과 간격을 두고, 발사 시설과 주위의 농촌 마을 사이에 어떠한 안보 경계선도 두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발사 기지 주위에 다양한 건축물들은 발사 실험과 어떠한 기능적인 연관성이 없다. 거기에는 산업적이고 작전상의 지원을 제공하는 시설은 물론이고 발사 실험 직원들의 숙박시설조차 없다. 농민 거주지나 다른 시설이 미사일 기지 직원들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겠지만, 주위에 시설들이 그러한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용도 변경를 증명할 수 있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 이글은 평화네트워크에서 퍼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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