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2] 평화누리통일누리:::제71호::: <사람> 과거는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이어진다 - 정혜열 고문 인터뷰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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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
과거는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이어진다
‘만년 소녀’ 우리는 그녀를 그렇게 부른다. 화사한 모자와 어여쁜 자켓, 곱게 한 화장, 반가이 후배들을 맞아주는 경쾌한 웃음소리.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소녀’ 소리를 듣는 비결이다. 그 정혜열 선생을 이십대인 서울평통사 김슬기 부장이 만났다. 세대를 초월한 두 사람이지만, 평통사 활동에 열심인 것으로 ‘통’해 보인다. - 편집자 주 |
16일,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법적기한인 2010년에 폐지하겠다는 발표를 하였습니다. 새해 소망이 “정의구현사회를 위해 이명박 정권을 퇴출하는 것”이라며 힘주어 말씀하시던 정혜열 고문님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2007년 5월 15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는 정혜열 고문의 진실규명신청사건에 대해 ‘(정혜열 고문의 부친)정상윤 선생은 1928년 8월 합법단체인 신간회 평북 철산지회 설립을 통해 항일운동과 독립의식 고취를 위해 노력한 인사’라고 결정통지서를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진실화해위는 현재 정상윤 선생을 독립유공자로 선정하여 보훈처에 추천한 상태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 앞에서 열린 ‘침략적 한미동맹 강화하는 이명박 당선자 규탄 기자회견’에 마침 참석하셨던 정혜열 선생님을 사무실에서 만났습니다.
작년 5월에 진실화해위에서 아버님을 독립유공자로 선정, 보훈처에 추천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소회가 어떠신지요?
아버님은 일제 때 우리민족을 위해 독립운동을 하셨어요. 그런데, 좌익 활동을 하셨다는 이유로 해방 후 대전형무소에서 돌아가셨어요. 그 후 60여 년 동안 아버님이 좌익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가족들까지 이 사회의 적대세력으로 간주되어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민주화운동의 성과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이 제정되어 그나마 국가에서 인정을 한 거죠. 내가 살아있는 동안 아버님의 명예회복이 안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면 앞으로 보훈처에서 독립유공자로 선정하면 관련한 절차는 마무리 되는 건가요?
현재 진실화해위의 결정만 내려진 상태예요. 보훈처에서 독립유공자 유족으로 인정받고,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미지수예요. 보훈처에 있는 사람들이 워낙 보수적이어서 아버님의 좌익 활동을 인정할지 모르겠어요. 해방 후부터 이승만 단독정부 수립 전까지의 좌익활동은 인정하지만, 그 이후의 좌익 활동은 전혀 인정하지 않는 게 그동안 보여준 보훈처의 입장이었어요. 얼마 전 보훈처에서 단독정부 수립 이후 아버님의 행적을 적어내라고 요구 했어요. 이건 아버님의 행적을 인정하지 않고 말살시키려는 의도가 분명해 보이지 않나요? 이미 진실화해위에서 결정이 됐지만, 그걸 무시하려는 거 아니겠어요? 그렇게 된다면 정말로 난 내 생애 다 할 때까지 1인 시위를 하던 뭘 하던 대항을 할 거예요. 진실화해위 조사관이 결정통지서를 주며 내게 이야기했어요. “보훈처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해도 이미 아버님의 명예는 회복된 거니까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구요. 그런데 지금은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당선 되어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정상윤 선생님께서 해방 이후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말씀 해주세요.
아버님은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충남 공주군 조선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계시다가 이승만 단독정부 수립 후에 탄압이 심해져서 지하로 들어가 활동 하셨어요. 그러다가 1949년에 김구 선생 장례식에 참석하시고, 며칠 후에 체포되어 대전형무소로 이송이 되었어요. 그리고 1950년 7월, 한국전쟁 당시, 대전형무소에는 여순사건, 제주 4·3사건 관련자, 남로당원, 전쟁발발 직후 예비 검속된 보도연맹 등 정치범들이 있었는데 산내지역으로 끌고 가서 학살했어요. 대전형무소 자료에는 희생자가 1,800명쯤 된다고 하는데 영국에서 나온 자료에는 7,000명이라고 해요. 작년 7월에 유족회가 위령제 올리고 본격적으로 유골을 발굴하고 있어요.
‘대전산내학살유족회’와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진상규명범국민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신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대중 정권 들어서고 2000년 쯤, TV를 보는데 KBS에서 대전형무소 민간인학살 사건이 나왔어요. 학살지를 포크레인으로 파서 유골이 나오는 걸 봤어요. 그때 나왔던 유골을 임시방편으로 항아리에 넣고 그 옆에 조그만 비를 세우는 걸 보고 KBS방송국에 전화해서 물어봤어요. 관련해서 활동하는 분이 계시면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이름이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데, 그때 연락했던 목사님이 제주 4·3사건 규명을 위해 애쓰시는 분이었어요. 그래서 무슨 일 있으면 동참시켜달라고 주소와 연락처를 알려줬어요. 그런데 2년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는 거예요. 답답한 마음에 홍근수 목사님께 말씀드리니 강정구 교수님이 관련 활동을 한다고 알려주셨어요. 그래서 강정구 교수님을 통해 범국민위원회에 연결이 되어 2003년 3차 대전산내학살 희생자 위령제 때 참가를 했어요. 이때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 전에는 사실 민간인학살 같은 이야기는 입도 벙긋 못하고 무언가를 할 생각도 못했었는데. 유족들과 함께 학살희생자들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법을 제정하기 위해 여의도 국회 앞에서 투쟁을 했어요. 추운 겨울 칼바람 속에서 법이 통과될 때까지 천막농성을 했죠. 그렇게 투쟁하다보니 2005년 겨우 통과가 되었어요.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가 진실화해위의 폐지 이야기를 하던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걱정이 되어서 지난 금요일쯤 진실화해위 안병욱 위원장님과 서신을 통해서 면담을 했어요. 사실 우리 국민들이 너무 오랜 세월동안 반공 이데올로기에 젖어 의식이 별로 없어요. ‘현실이 중요하지, 지난 과거사 가지고 연연하냐.’고 생각해요. 이런 정서가 계속 있는 한 이명박 당선자가 취임하면 상황이 분명 달라질 거 같아요. 더 두고 봐야죠.
이 글을 정리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창문 밖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올 겨울 들어 가장 매서운 칼바람이 하늘을 가릅니다. 그러나 겨울은 반드시 봄을 부르지요. 우리는 모두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맞을 겁니다. <글: 김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