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 16~19]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향한 사세보~이와쿠니 평화발자국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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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한 사세보-이와쿠니 평화발자국
2017년 2월 16일(목)~19일(일)
사세보 미군기지 평화발자국-미군기지 앞 행진을 마치고
부산평통사가 지난해 처음 시작한 일본 평화발자국이 올해 두번째 진행되었습니다. 올해는 평통사 주최, 부산평통사 주관 형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전국 각지에서 25명이 참가했습니다. 청년학생들이 많이 참가하여 좋았습니다. 일본의 평화활동가들도 동참하여 한일연대의 기운을 높여냈습니다.
이번 일본 평화발자국은 사세보와 이와쿠니 기지를 방문하여 미국과 일본에 의한 동북아 지역동맹 강화의 생생한 현장을 돌아보고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향한 우리의 과제를 생각해 보자는 취지에서 진행하였습니다. 이와 더불어 조선인 피폭의 참담한 역사가 담겨있는 나카사키와 히로시마도 방문했습니다.
일본 평화발자국 참가자들은 16일 오전 10시 국회에서 열린 '사드배치의 문제점과 해결방안-국회의 역할' 토론회에 참석한 후 오후 3시 50분 인천공항에서 후쿠오카행 비행기를 타고 출발하였습니다. 후쿠오카 공항에는 지난 해에 이어 일본 평화발자국 일정을 도와주신 기무라 선생이 마중을 나오셨습니다. 버스를 타고 나가사키로 이동하여 숙소인 카톨릭센터에서 참가자들은 소개와 인사시간을 가졌습니다.
2월 17일 나가사키 피폭지와 사세보 미군기지 평화발자국 - 미군기지 바라보며 ''NO! US BASES!'
인류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원자폭탄(핵무기)이 투하된 나가사키 피폭지를 둘러보았습니다. 제일 먼저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우라카미 성당을 방문했는데, 이곳은 나가사키 폭심지에서 5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으로, 12,000명의 신도 중 8,500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원폭 투하로 파괴된 종탑과 목이 잘린 성모상이 당시의 참상을 고스란히 보여주었습니다.
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목이 잘린 성모상과 부서진 종탑
다음으로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을 방문했습니다. 자료관에는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팻맨) 모형을 비롯하여 원폭 투하 순간부터의 피해 자료, 피폭 참상을 담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지난 1년 사이 자료관은 새롭게 단장되었고, 특히 원폭 사망자에 대한 자료를 검색할 수 있도록 자료실이 마련되었습니다. 또한 일본에 징용되어 원폭 피해까지 입은 한국인도 언급되어 있었습니다. (히로시마 평화자료관에는 한국인에 관한 언급이 단 한 줄도 없습니다!)
한국 정부는 어떤가요! 한국인 원폭 피해자에 관한 변변한 자료관 하나 없이 72년을 맞고 있는 현실은 피폭을 당했다는 사실만큼이나 분통터지는 일입니다. 그나마 한국인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에서 올해 합천에 자료관을 개관한다니 더 늦지 않아 다행이긴 하지만 정부의 무책임함은 그 어떤 이유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 입구. 원폭 투하 모습의 전시물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에 전시된 자료 중에서 - 조선인 피폭자가 22,198명이라고 적혀 있다.
자료관에서 원폭 낙하 중심지 비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 한쪽 어귀에 한국인 원폭 피해자를 기리는 작은 추모비가 있습니다. 이 추모비는 양심적인 일본인들이 돈을 모아 1979년 8월 9일 '나가카시 조선인 인권을지키는 회'에서 세운 비라고 합니다. 참가자들은 고향을 그리워하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며 한국에서 가져간 곶감과 술을 올렸습니다.
나가사키에서 억울하게 돌아가신 조선인 원폭 희생자 추모비에 술을 올렸다.
참가자들은 나가사키 폭심지 공원으로 이동했습니다.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미군 폭격기 B29에 의해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지점-그라운드 제로-에 검은색의 비석이 세워져 있었고, 그 우측에는 폭심지로부터 500미터 떨어진 우라카미 성당의 피폭 잔해물이 옯겨져 있었습니다. 원자폭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땅에 떨어트린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 500미터 상공에서 원자폭탄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폭심지는 엄청난 고열로 순식간에 사람과 건물이 재로 변해버려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며 폭심지 주변은 폭풍과 열선과 방사선으로 시가지는 폐허가 되었다고 합니다. 폭심지 공원의 황량함이 그날의 참상을 말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나가사키 폭심지 공원에서 기무라 선생의 설명을 듣는 참가자들.
검은 비석이 세워진 지점(그라운드 제로) 상공 500미터에서 원자폭탄이 터졌다.
참가자들은 평화공원으로 이동했습니다. 입구에는 원자폭탄에 의해 화상을 당해 물을 달라고 외치다 죽어간 피폭자들의 명복을 빌고, 세계평화와 핵무기 폐기의 소망을 담은 비둘기 날개 모양의 분수가 춤추는 평화의 샘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나가사키 형무소가 있던 곳으로, 1933년에는 항일운동을 했던 백정기 선생이 수감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힘(핵억지력)으로 평화를 지키자는 역설적인 의미의 '평화기념상'
평화공원의 가운데는 평화의 기념상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하늘을 향한 오른손은 원폭의 무서움을, 옆으로 뻗은 왼손은 평화 향한 염원을, 감은 두눈은 피폭자들을 추모하는 의미를 담은 이 동상은 세울 때부터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 동상이 의미하는 것이 힘으로 평화를 지키려는, 즉 핵억지력으로 평화를 지켜려는 역설적인 의미의 동상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핵 피해국이라 하면서도 침략적 행보를 하나씩 준비하는 일본의 이중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상징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가자들은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미쓰비시 회사의 병기제작소 스미요시 터널공장을 둘러보았습니다. 1944년 8월부터 나가사키도 미군의 공중폭격에 노출되기 시작했고, 이에 일본은 안전한 장소에서 무기생산을 하기 위해 '터널공장'을 계획하였습니다. 스미요시 터널공장에서는 주로 어뢰를 생산했고, 강제징용 당한 조선인 노동자들과 근로정신대가 이곳에 동원되었다고 합니다. 원폭이 투하되자 이곳의 조선인 노동자들은, 군함도에 끌려갔던 노동자들처럼 나가사키 시내로 동원되어 원폭 투하로 인한 폐허를 복구하고 사상자를 원호하는 활동에 동원되었고, 이 과정에서 입시피폭되었습니다.
나가사키 일정을 마친 참가자들은 사세보로 이동하여 미군기지를 둘러보고 미군기지 앞까지 행진했으며 사세보 시내에서 거리집회도 진행했습니다. 미군기지 감시 활동을 담은 '림피스' 사이트 운영진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노자키 선생이 사세보에서의 일정을 도와주셨습니다.
우선 참가자들은 사세보 기지가 한눈에 보이는 유미하리 정상에서 기지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유미하리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사세보 미군기지
사세보 항에는 일본 군국주의 상징인 욱일기를 단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들과 작년 한미연합 상륙훈련때 포항 앞바다에 왔던 미군 상륙함 '본험 리처드'가 정박해 있었습니다. 올해 3월에 열리는 한미연합 키리졸브 훈련에도 참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시노자키 선생은 일본 해상자위대의 소해정은 작년 인천상륙작전 재현 행사때 참가를 했고, 한미연합 키리졸브/독수리연습 때도 참여해서 어뢰 기뢰제거 훈련을 했다고 소개했습니다.
사세보항은 일본 해상자위대와 주일미 해군기지(7함대 기지)가 함께 사용하고 있는데, 면적은 123만평 규모이고 항구의 82%를 미군이 관리하고 있어 항만기능이 제한되고 있다고 합니다. 사세보 기지는 한국전쟁 시 탄약, 탱크 등 보급하는 역할을 했으며 서 태평양 보급 중계 거점으로 미 7함대가 전진 배치되어 있는 곳입니다. 사세보항에는 4개의 연료탱크가 있고 84만 kl가 저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사세보 기지에는 핵잠수함도 기항하고 일주일 정도 머무를때도 있다고 합니다. 2일 이상 머물때는 공격훈련을 하고, 키리졸브/독수리 연습에도 참여한다고, 시노자키 선생이 설명했습니다. 작년보다 미 해군 전력이 확실히 강화되고 있으며 훈련 또한 강화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세보 미군기지 건너편에서 미군기지를 향해 ''NO! US BASES!'
유미하리산에서 내려온 참가자들은 일본 평화활동가들과 함께 사세보 미군기지 정문까지 약 2km 정도를 걸었습니다.(이것을 일본에서는 산보행진이라고 한답니다.) 참가자들은 직접 만들어온 '한미일 군사연습 반대' '미군기지 반대'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행진했습니다. 성주 주민들이 만들어준 사드 반대 현수막도 들었습니다. 행진을 마친 참가자들은 사세보 시내 중심가에서 거리 교류회(집회)를 진행했습니다. 다음은 이 집회에서 평통사 청년이 한 발언입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입니다.
저희가 일본에 오게 된 이유는 한국, 미국, 일본의 동맹 구축을 반대하고, 이를 막아내기 위해서입니다.
한국 정부는 지금 사드를 배치하려고 합니다. 사드를 배치하면 미국의 MD에 편입되고 미국의 안보를 지키게 됩니다. 한국의 이익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일본에도 이미 사드 레이다가 배치되어있는데, 사드 배치는 바로 한미일 삼각 MD구축의 신호탄입니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은 몇달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맺었습니다. 이는 한국이 일본과 함께 북한을 선제공격하려는 의도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결국 한미일이 삼각동맹을 맺어 북한, 중국 등과 대결하겠다는 것이니 동북아 평화에 위기가 오고 있습니다.
저희가 일본에 오게 된 이유는 한국, 미국, 일본의 동맹 구축을 반대하고, 이를 막아내기 위해서입니다.
한국 정부는 지금 사드를 배치하려고 합니다. 사드를 배치하면 미국의 MD에 편입되고 미국의 안보를 지키게 됩니다. 한국의 이익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일본에도 이미 사드 레이다가 배치되어있는데, 사드 배치는 바로 한미일 삼각 MD구축의 신호탄입니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은 몇달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맺었습니다. 이는 한국이 일본과 함께 북한을 선제공격하려는 의도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결국 한미일이 삼각동맹을 맺어 북한, 중국 등과 대결하겠다는 것이니 동북아 평화에 위기가 오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재작년 전쟁법안을 통과시켰고 이제 헌법마저 개헌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이곳 사세보 미군기지와 해상자위대의 전력이 강화되는 것은 일본이 한반도의 전쟁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뜻입니다. 사세보는 한반도 유사시 주일미군과 일본군대가 군수물자를 대는 전략적 요충지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같은 역할은 한국전쟁 때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원치 않습니다. 전쟁연습은 평화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전쟁 위협을 높이는 일입니다. 이곳 사세보에서 평화를 지켜낸다면, 이는 일본과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일입니다. 나아가 동북아의 평화도 지켜내는 것입니다. 한일연대로 우리 모두의 평화을 지켜냅시다. 여기 모이신 일본과 한국의 평화활동가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막아냅시다!"
사세보 노조 지구협의회 사무실에서 열린 교류회
저녁식사 후 열린 한일교류회에는 평화발자국 참가자들과 사세보지구협의회 부회장과 조합원들, 나카사키 평화센터 회장을 비롯하여 후쿠오카와 교토, 심지어 멀리 도쿄에서 온 평화활동가들도 참여했습니다. 평통사는 안병순 구로금천 평통사 대표가 참가단을 대표하여 참가단 소개와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준비해간 한미연합연습과 한미일 동맹 구축 저지에 관한 영상을 상영한 후 주제 발표를 했습니다. (주제발표 내용은 추후 보완합니다.)
이어 사세보 지구협의회 사무국장이 사세보 지역의 활동을 소개했습니다. 사세보는 1968년 베트남전에 참전하기 위해 핵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가 사세보에 기항하자 시민들이 대규모 입항 반대시위를 벌였는데 이날을 기념해 시민들이 매월 19일에 시내에서 미군기지 문제에 대응하는 정기집회를 연답니다. 미군 항공모함이 입항하면 항의시위를 벌이고 조합원들의 배를 활용해서 해상시위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위대 기지에 근무하는 시민들도 다수 있어 집회에 반대하는 움짐임도 종종 있다네요. 평통사 활동 영상을 보면서 우리가 사세보 문제만 보고 있지 않나 하는 반성적 생각도 든다며 키리졸브 군사연습이 남의 일이라 생각하면 안되고 우리 지구노조도 노력해야겠다며, 한일 민중간 교류하면서 평화를 위해 함께 나가자고 했습니다.
2월 18일 이와쿠니 평화발자국
이와쿠니는 작년에 오바마 미 대통령이 '일미동맹의 모델'이라고 발언했던 곳으로, 참가자들은 아침일찍 일어나 버스에 몸을 싣고, 5시간을 달려 이와쿠니에 도착했습니다.
화창한 날씨와 투명한 바다가 휴양지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거대한 활주로와 철조망은 엄연히 미군기지임을 깨닫게 했습니다.
아름다운 바다와 어울리지 않는 이와쿠니 미군지. 바닷가쪽으로 활주로가 확장된 모습
이와쿠니는 미국 해병대 항공기지이자 일본 자위대 해군 항공대가 함께 쓰는 기지입니다. 기지 정문에는 미일 양국의 국기가 나란히 휘날리고 있습니다. 미군과 가족은 5000명인데 조만간 9000명까지 늘어난다고 합니다. 해상자위대는 약 1600명이 있다고 합니다.
이미 F-18 호넷 전투기 36대, 헬리콥터, 해리어기, 헬리콥터 등 약 54대의 항공기가 배치되어있는데 여기에 동경 부근의 아쓰기 기지에 있는 함재기 59대 등이 이곳으로 올 예정입니다. 오키나와의 가데나 기지에서도 공중급유기가 이전해 왔고, 스텔스 전투기 F-35가 해외기지 중 처음으로 배치되며 중국과 러시아의 스텔기 전투기를 탐지할 수 있는 최신예 조기경보기 E-2D가 배치되고 있습니다.
기존의 항공기지 외에 새로 매립된 곳에 군항도 만들어 상륙함도 정박시킨다고 하니, 미군의 동북아 전력의 최대 중추기지이자, 한반도 유사시 발진기지라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참가자들은 이와쿠니 기지의 강화, 확대가 주민들의 안전과 평화로운 삶을 파괴하고 일본의 한반도 재침략을 밑받침하며 동북아 평화를 짓밟는다는 사실을 온 몸으로 느끼며 이를 막기 위한 한일연대의 결의를 다지기 위해 실내집회장소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이와쿠니 기지 답사 후 이와쿠니 기지 반대 지역 활동가, AWC 회원들과 평통사 참가단이 함께
'이와쿠니 기지 강화 반대' '한미일 군사연습 반대' 실내 집회를 열고 한일 공동선언을 발표하였다.
'이와쿠니 기지 강화 반대' '한미일 군사연습 반대' 실내 집회를 열고 한일 공동선언을 발표하였다.
실내집회를 마치고 이와쿠니 미군기지 앞까지 행진. 일본경찰과 미군들이 긴장한 모습으로 나와 있었다.
실내집회에서 평화활동가 아사다씨는 "애초에 주민들은 소음피해 때문에 활주로를 더 먼 바다쪽으로 내는 방안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 이후에 아쓰기 기지 함재기 부대가 이전해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국 기지 확장을 도와준 꼴이 된 것이다. 주민들이 속은 것이다. 기지 확장에 대해서 주민들은 주민투표를 통해 명백히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중앙정부는 돈으로 지역 사회를 갈라놓았다. 아이들의 급식비나 교육비를 방위성에서 대는 방식으로 회유한다. 올해는 이와쿠니 기지 재편(확장)이 끝나는 해라 더 많은 함재기와 항공기가 오고, 더 많은 훈련들이 진행되면서 소음은 더욱 심해졌다"고 했습니다.
평화발자국 참가자들을 대표하여 평통사의 한 청년이 다음과 같이 연대 연설에 나섰습니다.
"안녕하세요. 일본의 평화활동가 여러분과 만나게 돼서 진심으로 반갑습니다.
이곳 이와쿠니 미군기지는 한국전쟁당시 미공군의 발진기지로 사용되었습니다. 현재는 북한과 중국을 선제공격하기 위한 최전선에 있습니다. 이를 위해 군사전력을 확대재배치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한국 성주에도 사드기지를 들어놓으려고 하고있습니다. 사드는 한국방어에는 백해무익하고 미국과 일본을 방어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작년 11월 17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이는 위안부문제를 강제합의하게 한 것에 이어 미국이 한일관계를 군사동맹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다음 달에는 세계최대규모의 전쟁연습인 한미연합군사연습이 진행됩니다. 이제는 일본 자위대의 참여도 확실시 됩니다.
이 모든 것은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동맹은 친구가 아닌 잠재적 전쟁공동체입니다. 우리는 군사동맹 강화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만든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과 일본 청년들의 미래는 어둡기만 합니다.
전쟁의 아픔을 교훈삼아 평화로운 세상에서 꿈을 펼쳐가야하는 청년들은 또다시 평화를 위협받고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되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물론 동북아의 평화도 위협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전쟁의 아픔을 교훈삼아 평화로운 세상에서 꿈을 펼쳐가야하는 청년들은 또다시 평화를 위협받고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되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물론 동북아의 평화도 위협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쿠니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일본 평화활동가들이 전쟁연습 반대 활동을 하고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과 일본이 미국이 벌이는 전쟁에 끌려들어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한국과 일본의 평화운동가들이 한미일동맹을 막아내는 투쟁을 함께해나갑시다. 그 길에 한국의 청년들도 함께 나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120미터 높이의 산이 깎여 현재는 60미터로 낮아진 아타고산(좌),
아타고 마을 집집마다 기지반대 깃발이 꽂혀 있다(우)
실내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미군기지 앞까지 행진했습니다. 약 60여 명의 참가자들은 구호가 적힌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목탁과 작은 북을 치며 힘차게 구호를 외치면서 행진했습니다. 구호는 일본말과 한국말을 번갈아가며 외쳤는데, 한일연대의 기운을 북돋아주었습니다.
저녁에는 다시 주민회관에 모여 평통사가 준비한 영상 상영과 발제를 진행했으며 시 의원을 비롯한 주민들도 보다 자세히 주민들의 투쟁 상황을 소개하는 교류회를 가졌습니다.
평통사는 지금 동북아 정세가 중대한 전환기에 서 있다고 전제하고 한일, 한미일 군사동맹 구축과 동맹에 의한 집단방위(불법적 무력행사)를 막는 것은 한국의 자주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일 뿐 아니라 다시는 침략전쟁을 용닙하지 않으려는 일본평화운동과 일본 민중들에게도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는 과제라고 강조했습니다.
평통사는 사세보와 이와쿠니가 미국이 대북, 대중국 군사행동을 전개할 때 전략적인 전초기지로서 그 성격과 기능이 대폭 강화되고 있는데, 이는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전쟁의 위기로 다가온다고 규정하고 한일 민중들의 연대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새로운 전쟁을 막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 연대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교류회에 참가한 일본분들은 이번 평통사 평화발자국 참가단의 이와쿠니 방문을 계기로 전국 각지의 평화활동가들과 주민들이 다시 힘과 의지를 모으게 되었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아타고야마를 지키는 주민모임' 대표는 "지역에 택지개발을 한다고 해서 주민들이 땅을 내놓았는데, 그 땅을 정부가 사들여 산을 깎아 생긴 흙으로는 활주로 건설을 위해 매립을 하고, 평평해진 땅에다가는 미군 주택을 건설하고 있다. 주민들은 두 번 속았다. 우리는 10년째 싸우고 있다. 나라가 시키는 대로 하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는 또한 "기지재편이 완료되고 나면 더 큰 피해들이 발생할 것이고 더 많은 주민들이 다시 싸움을 시작할 것이라고 본다. 결코 포기하지 않고 더 큰 싸움을 준비한다는 마음으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매월 2일, 12일, 22일에는 이와쿠니 기지 반대 주민 집회가 열린다고 합니다. 참가자들은 주민들의 줄기찬 투쟁에 경의를 표하고 힘닿는 대로 연대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이 날 이와쿠니에서의 집회와 시위행진, 주민들과의 교류회로 진행된 평화발자국은 끈질긴 주민들의 투쟁만이 희망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하게 된 평화의 여정이었습니다.
2월 19일 히로시마 평화발자국
마지막 날 아침, 참가자들은 새벽부터 일어나 식사를 하고 히로시마 평화공원으로 출발했습니다.
작년 5월,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방문하여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하였습니다. 하지만 원폭 투하에 대한 사죄는 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는 그냥 지나쳤습니다.
한국인 원폭피해자 위령비 앞에서 추모제를 진행
참가자들은 오전 8시에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추모행사부터 진행했습니다.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도 처음에는 히로시마 공원 밖에 있던 것을 많은 사람들의 요청으로 공원 안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아무런 죄도 없이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로 인한 강제징용과 피폭이라는 이중, 삼중의 고통 속에서 억울하게 돌아가신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을 생각하니 슬픔과 함께 분노가 일었습니다.
참가자들은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힘차게 부르고 한국에서 준비해간 음식과 술을 올렸습니다. 히로시마 일정을 도와주신 이승훈 선생은 지난 15년 간 수없이 많은 추모식을 돕고 진행했지만 임을위한행진곡을 부른 것은 처음이라며 감개무량하다는 소감을 밝혔습니다.
전주평통사 국산 대표가 추모사를 낭독하였습니다. 국산 대표는 "후손으로서 저희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도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국가, 평화와 통일을 이루는 것"이라며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실현을 위해 열정과 헌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헌화를 마친 참가자들은 추모비를 둘러싸고 동그랗게 서서 고향의 봄을 부르며 영령들을 위로해드렸습니다.
원폭투하로 폐허가 된 땅 위에 1미터 이상 복토를 해서 복구한 도시 히로시마는 그야말로 거대한 무덤위에 세워진 도시다.
설명하는 이승훈 선생이 서 있는 아래쪽 땅이 원폭 투하 당시 땅이고 참가자들이 서 있는 곳은
복토를 해서 1미터 이상 높아진 현재의 히로시마 땅.
추모행사를 마친 후 히로시마 평화공원과 원폭 기념관을 둘러보았습니다. 일본에 사는 이승훈 선생이 동행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원폭이 투하된 후 히로시마는 거대한 무덤위에 세워진 도시라고 합니다. 최근 원폭 기념관 리모델링 공사 중 땅아래에서 유골과 집터 등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기념관 가는길 공사장 펜스에 발굴 사진들이 붙어 있었습니다.
원폭 피해의 참상을 보여주고 있는 밀랍인형은 조만간 철시된다고 한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안에는 원폭 피해를 참상을 보여주는 살이 녹아 내리는 밀랍 인형이 전시되어 있는데, 너무 끔찍하다는 이유로 이 밀랍인형을 철시한다고 합니다. 끔찍했던 참상을 보존하고 기억해야 더 이상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다짐도 굳어질 것인데 답답하고 한심한 노릇입니다. 침략의 날개를 달려는 아베 정권이 미일동맹 강화를 위해 원폭 투하의 참상을 지우려는 것입니다. 기념관 한쪽에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 사진과 직접 접은 종이학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한편, 히로시마 기념관에는 일본인의 원폭피해에 대해서는 자세히 소개 되어 있었지만, 한국인 원폭 희생자에 대환 언급은 단 한줄도 없었습니다. 평통사 참가단들은 방명록에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배로 강제로 끌려간 한국인 원폭 희생자를 기억합니다.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와 배상! 반인륜적 핵무기 투하에 대한 미국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글을 남겼습니다.
참가자들은 히로시마 평화공원의 상징인 원폭 돔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며 '핵 없는 세상'을 위해 실천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임을 다졌습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후쿠오카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서 참가자들은 서로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전쟁과 핵무기의 참상, 일제 식민지배의 아픈 역사를 실감했고, 미군기지를 보며 과거가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자각했으니 평화를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하고 실천하자는 내용이었죠. 청년학생들에게는 어렵고 힘든 여정이었을텐데 보람있는 시간이었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히로시마 공원 내 한국인 원폭피해자 위령비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