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하반기 평화발자국] 전주, 인천, 대구, 부산, 대전충청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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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평화발자국]
동학농민혁명 130주년, 동학에서 평화의 길을 찾다!
·일시: 2024년 11월 9일(토) ·장소: 정읍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전주 평화발자국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함께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11월 9일(토), 정읍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을 돌아보는 평화발자국을 "동학농민혁명 130주년, 동학에서 평화의 길을 찾다!"라는 주제로 진행했습니다. 이날 평화발자국에는 전주, 군산, 익산, 보령 회원들과 청년, 청소년을 포함해 총 23명이 참여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정읍 동학농민혁명기념관 강의실에 모여 사전에 동학혁명의 의의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참가자들은 평화발자국을 통해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을 기념하여 반봉건·반외세를 외쳤던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외세를 끌어들여 민중들을 학살하고, 이를 계기로 청일전쟁과 일제강점기의 치욕을 맞보아야 했던 당시 동북아 상황과 현재 북한을 빌미로 일본까지 끌어들여 흡수통일을 하겠다는 현 정권을 비교하며 자주, 반외세를 위해 목숨걸고 싸웠던 130년전 동학농민혁명군의 고귀한 희생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전주 최용기 대표의 강의와 추모관에서 김영호 대표의 인도하에 한남호 회원님의 ‘새야새야 파랑새야’ 시 낭송이 이어졌고 묵념으로 희생자분들의 넋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동학혁명군 동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 참가자들
참여해 주셨던 회원분들은 ‘잊고 있던 역사의 현장을 찾을 수 있어서 감동적이었다.’, ‘좀 더 많은 회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방안을 모색하면 좋겠다.’, ‘전주평통사 회원들끼리 자주 만날 수 있었으면 한다.’ 등의 소감을 남겨주셨습니다.
끝으로 동학농민혁명군 동상 앞에서 ‘자주’를 외치고 ‘자주~보자~’는 구호와 함께 평화발자국을 마무리 했습니다.
[인천 평화발자국]
"효순아 미선아~ 잊지 않을께, 기록관 꼭 건립할께!"
효순미선평화공원에서 만나는 평화이야기
·일시: 2024년 10월 26일(토) ·장소: 효순미선평화공원, 임진각
효순미선추모비 앞에서 기념촬영하는 참가자들
인천평통사 가톨릭 소모임 '지상의 평화' 주관으로 '김일회 신부님과 함께하는 평화발자국'으로 효순미선평화공원을 방문하였습니다. 30명이 참석했는데 20명 이상이 효순미선평화공원을 처음 방문하는 분들이라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효순이 미선이가 미군장갑차에 압사당한 사고현장에서 당시 상황을 듣는 참가자들
해설을 맡은 김일회 신부(인천평통사 공동대표)는 사고현장과 평화공원에서 효순미선이가 미군장갑차에 억울하게 희생된 사건의 경과와 오만한 미군의 행태, 불평등한 한미관계에 대해 생생하게 설명했습니다. 김강연 사무국장은 가해자 미군의 어떤 사죄도 없는 미군추모비 내용을 소개했고 참가자들은 위선적인 미국의 행태에 씁쓸해 했습니다.
참가자들은 효순미선평화공원 책자를 꼼꼼히 읽어보며 처음 듣는 내용에 집중하였습니다. 단순 교통사고로 묻힐뻔한 이 사건의 진상을 알리고 전국민적 투쟁으로 이끌어내고 평화공원을 조성하기까지 20년 간 헌신해온 평통사의 활동과 미선효순 기록관 건립 상황을 소개하며 동참을 호소했습니다. 5분이 평통사 회원가입을, 6분이 미선효순기록관 건립에 동참해 주셨습니다.
효순미선평화공원에서 사건의 진상과 의미에 대해 설명 듣는 참가자들
평화공원을 둘러 본 후 김일회 신부 집전으로 효순미선을 기억하며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미사를 드렸고, 인사와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평화미사를 드리는 참가자들
평화공원을 처음 방문한 참가자 중 20대 청년은 '초등학교 2학년 수업시간에 효순미선 관련 얘기를 들었는데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었다. 당시에는 사건이 어떤것인지 몰랐지만 오늘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되어 매우 뜻깊다. 앞으로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겠다'했습니다. 이외에도 '자신의 딸이 효순미선이와 동갑이다. 당시 뉴스를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 오늘 이 현장에 와서 설명 듣고 돌아보니 당시 생각이 떠오른다. 이 두 소녀를 기억하고 잊지 않아야 한다', '평통사에서 진실을 밝히고 평화공원을 만들고 너무 애를 쓰셨다. 감사드리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에 동참하겠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평화공원을 자주 방문하고 널리 알리고 함께 가꾸어가자’는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효순미선 평화공원과 기록관 건립에 대해 알릴 수 있는 영상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평화공원에서 가까운 한식부페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식당 주인분이 효순이 아버님 친구분이라며 많은 분들이 효순미선이를 잊지 않고 찾아주셔서 고맙다고 인사를 전했습니다.
임진각 남북철도잇기 한반도 평화대행진 조형물 앞에서 기념촬영
오후에는 분단과 전쟁의 아픔이 서린 임진각을 둘러보고 남북철도잇기 한반도 조형물을 둘러보았습니다. 지금의 남북 대결이 심각해 지는 상황에 모두 안타까워하며 하루 속히 남북관계가 회복되길 기원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내 딛은 평화의 발자국이 자주 평화 통일을 여는 길임을 다짐하며 인천으로 돌아왔습니다.
[대구 평화발자국]
"사드철거를 목적하고 평화통일을 희망함"
항일독립지사의 고향 안동 평화 발자국
·일시: 2024년 10월 5일(토), 오전 10시 30분~ ·장소: 경북 안동
오미마을 김재봉선생 어록비 앞에서 평화발자국에 참여한 대구/안동회원들이 사진을 찍었다
2024년 두번째 대구평통사 평화발자국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목숨조차 기꺼이 바친 항일독립지사의 고향 안동을 향했다.
첫번째로 찾은 곳은 "나라를 찾기 전에는 내 유골을 고국으로 가져가지 마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1932년 만주 땅에서 돌아가신 석주 이상룡선생의 임청각을 찾았다. 임청각 앞 주차장 앞에는 벌써 안동회원인 이천우목사님과 배용한선생님, 그리고 한철희 회원이 마중 나와 계셨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박영아 회원의 해설을 따라 임청각에 꼿꼿이 서린 저항과 독립의 염원을 둘러봤다. 박영아회원은 "망명지 만주에서 이분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을까? 바로 학교이다. 학교를 세워 후학을 양성하고 무장투쟁의 근거지를 마련한 것이다"라며 항일독립운동가들이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어떻게 했는지를, 역사 수업시간에 수업을 하듯이 들려주었다.
안동 임청각에서 항일의 역사를 듣다
안동 간고등을 곁들인 맛있는 점심을 먹고 두번째로 드른 곳은 오미마을과 가일마을이다. 풍산읍 오미마을에는 의열단에서 활동한 김지섭 선생을 비롯하여 극동 인민 대표대회에 참가하여 "조선독립을 목적하고 공산주의를 희망함"이라는 어록을 남긴 김재봉 선생들을 키워낸 마을이다. 풍산들이 한 눈에 바라보이는 가일마을에서는 6ㆍ10만세 운동을 준비하다가 체포되어 1930년 4월 17일 33살에 돌아가신 권오설 선생의 족적을 따라갔다. 이렇듯 태어난 연월도 다르고 자라난 마을도 다르지만 항일독립의 뜻을 하나로, 조선반도에서 만주에서 러시아에서 만나 의기투합하며 싸우다 먼저 죽고 먼저 가신 이의 뜻을 이어 또 싸우고, 지난 7년이 사드철거 자주평화통일의 한 뜻으로 모여 뚜벅뚜벅 싸우는 우리들의 모습이 여기에 잇닿아 있음을 문득 생각해 본 시간이었다.
가일마을 권오설선생 수곡고택에서
평화발자국 2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병산서원을 들러 부용대에 올라 하회마을 선유줄불놀이를 즐기는 여정이었다. 흙길을 밟고 옥연정사를 지나 부용대 아래 하회마을을 돌아온 강가 모래밭에 서서 손톱 조각인냥 서쪽하늘 끝에 하얗게 걸린 달을 바라보며 라면도 끓이고 어묵도 먹으며 선유줄불놀이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다가도 저 줄불에 바쳐진 먼 옛날 노비들의 고단했을 삶을 이야기하며 9시가 다 되어서야 귀가를 서둘렀다.
평발 참가자들은 하회마을 강가에서 아름다운 선유줄 불놀이를 감상했다
마침 10월 5일이 길일인지, 안동에서 활동하는 많은 회원들이 결혼식이나 타지역 방문 등으로 참석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전해왔지만, 세 분의 안동회원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무엇보다 뜻깊은 평화발자국이었고, 항일독립운동가들이 목숨을 기꺼이 바쳐 되찾고자 했던 자주독립된 나라, 자주독립된 온전한 나라의 뜻을 되짚어 본 귀한 시간이었다.
[부산 평화발자국]
갑오농민전쟁 소설 <횃불> 김천 평화 발자국
·일시: 2024년 9월 29일(일), 오후 4시~ ·장소: 김천 동학 유적지
김천 <횃불> 평화발자국에 참여한 부산, 대구 평통사 회원들
부산평통사는 지난 봄부터 운영위원들을 중심으로 소설읽기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1894년 갑오년에 척양척왜 보국안민의 기치를 올리고 이씨 봉건왕조와 일본의 제국주의 야욕에 맞선 농민들의 투쟁 이야기를 담은 소설 <횃불>부터 읽었습니다. 8월에 그 소설을 다 읽은 후 김천에 있는 동학 유적지를 돌아보는 평화발자국을 진행한 것입니다.
부산평통사와 대구평통사 회원들, 그리고 소성리 지킴이 등 20명이 참가한 가운데 김천 <횃불> 평화발자국은 김천 나들목에서 20분 정도 차를 타고 이동하여 구성면이라는 곳에 있는, 온돌이 깔린, 한국에 몇 안되는 정자 방초정에서 오후 4시 경부터 시작했습니다. 오늘 해설은 대구평통사 구자숙, 박병주, 함수연 회원이 맡아주었습니다.
참가자 소개와 일정안내를 마친 후 찾아간 첫 장소는 1890년 12월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이 탄압을 피해 숨어있으면서 내수도문(가정수칙)을 발표한 구성면 용호리였습니다. 작은 폭포가 흐르고 주변 경관이 좋은, 자연이 엄호해주는 느낌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하인을 내 자식과 같이 아끼며"... 이 수칙의 핵심은 계급차별, 신분차별 철폐입니다.
다음 장소로 가는 길에 한국전쟁 당시 국민보도연맹 사건 및 김천형무소 관련자 집단학살지를 둘러보았습니다. 최근 이곳 한 곳에서만 유해 30구가 발굴되었는데 인근 지역에 얼마나 묻혀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정부는 더 이상 발굴하지 않고 철수했습니다.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진골에서는 1천명 이상의 민간인이 학살되었다고 합니다. 참가자들은 숙연한 마음으로 참배를 하고 이동했습니다.
다음 장소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었던 감호 여대로 선생의 후손들이 지금도 살고 있는, 전주화약 이후 2차 전쟁을 위해 이 지역 농민들이 집결한 곳에 갔습니다. 이곳 접주였던 김정문은 여씨 집안의 고지기(관리인)였다고 합니다. 참가자들은 당시 보국안민 척양척왜의 깃발을 들고 행진했던 농민들이 걸었던 길을 걸으며 사드철거 투쟁의 의지를 다졌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국민보도연맹 사건 및 김천형무소 관련자 집단학살지에서 학살 희생자들을 기리며 묵념을 진행했다
마지막 코스는 김천 황금동 철길 부근, 동학농민들이 처형당한 곳이었습니다. 장터이기도 하고, 동학 집강소가 있던 이곳에서 일본은 농민들을 공개처형하기도 했습니다. 이 부근 산자락에서도 집단 처형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무차별 공습을 한 곳이기도 합니다. 행정시설이 집중되어 가장 인구가 많은 이곳에 대한 무차별 폭격은 전투원과 민간인 구별의 원칙을 규정한 국제인도법 위반입니다. 당시 폭격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미군이 했다는 기록은 의도적으로 생략되어 있습니다. 김찬수 대구평통사 대표가 김천의 근현대역사를 간략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오늘 평발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오늘 평화발자국은 소설 <횃불>에서 만났던 갑오농민전쟁 장면을 직접 체험하는 데는 제한적인 장소들이었지만 김천 민중들의 강고한 투쟁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여정이었습니다.
갑오년 농민들의 전쟁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 후 한반도는 일제의 발톱 아래에서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일제 강점은 분단으로 이어졌고 동족 상잔의 비극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중들은 이에 굴함이 없이 자주권을 회복하고 분단된 나라를 하나로 잇기 위해 줄기차게 투쟁해왔습니다. 결코 주저앉지 않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때로 너무 지치고 힘들지만 그래도 다시 무릎을 펴서 일어섰습니다. 자주권을 되찾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온전한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갑오년 농민들의 투쟁이 결코 실패가 아닌 것은 바로 자주권을 되찾을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는,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결의가 지금까지 이어져오기 때문입니다.
소성리 사드 투쟁은 바로 갑오농민전쟁 이후 끊임없이 벌어진 자주권 회복을 위한 민중 투쟁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오늘 참가자들은 평화발자국 일정을 마치고 957차 김천 사드 반대 평화촛불 집회에 참가했습니다.
부산평통사의 다음 소설읽기는 일제 하 민중들의 이야기를 담은 <아리랑>입니다. 그리고 <아리랑>의 무대인 군산으로 평화발자국을 갈 계획입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가를 바랍니다.
[대전충청 평화발자국]
일제 수탈의 전초기지에서 자주·평화의 길을 찾다
·일시: 2024년 9월 28일(토), 오전 10시 ·장소: 논산 강경
대전충청 지역(논산/대전/보령) 평통사가 공동주최한 논산 강경 평화발자국을 시작하며 참가자들이 단체사진을 찍었다
9월 28일, 대전충청 평화발자국이 논산(강경, 연무대)에서 열렸습니다. 아직도 한낮에는 햇살이 따가웠지만 오랜만에 논산/대전/보령 평통사 회원과 지인들이 함께 모여 가볍고 편안한 마음으로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강경은 평양, 대구와 함께 구한말 조선의 3대 시장 중 하나였고, 원산과 함께 2대 포구로 번성했던 지역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제가 쌀 등의 농수산물을 수탈해가는 중심지 중 하나였고, 일제의 억압과 착취에 저항한 민중의 투쟁이 3.1운동으로, 신사참배 반대운동으로, 노동조합운동 등으로 분출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강경에서는 강경제일감리교회가 세운 수준 높게 꾸며진 근대역사전시관 - 강경 노동운동의 산실이었던 옛 강경노동조합 - 일제의 자본 수탈의 중심기관이었던 옛 조선식산은행 강경지점 - 신사참배 반대운동의 진원지였던 옛 강경성결교회 - 일제의 침탈과 항일 저항의 정신이 살아있고 강경의 역사와 문화 등 수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옥녀봉(3.1운동 만세시위지, 신사 터, 봉수대, 작가 박범신의 소금집, 옛 강경침례교회 예배처) - 번성했던 강경의 상징이자 일제수탈의 관문이었던 강경갑문을 둘러보았습니다. 강경이 왜 ‘근대문화유산의 보고’로 불리우는 지를 알 수 있었고, 곳곳에서 일제의 수탈과 민중의 저항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추어탕과 칼국수로 점심식사를 한 뒤에는 연무대에 있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인 ‘션샤인 스튜디오’를 둘러보았습니다. ‘미스터 션샤인’은 일제의 침탈이 가속화하던 1900년부터 1907년까지 대한제국 시대 의병(義兵)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조선의 노비 출신 미군 장교(유진초이)와 명문 양반가 ‘애기씨’(고애신)의 사랑이야기를 바탕으로 나라의 자주독립, 신분과 남녀 차별의 문제까지 다루는 감동적인 작품입니다.
“나도 꽃으로 살고 있소.
다만 나는 불꽃이오.
그렇게 환하게 뜨거웠다가 지려하오.
불꽃으로.
죽는 것은 두려우나 난 그리 선택했소.”
- 고애신이 유진초이에게 -
소감 나눔 시간에 한국전쟁 때 미군 폭격으로 아버지를 여의고 자신도 큰 부상을 당하신 보령에서 오신 어르신의 ‘전쟁 없는 평화 세상’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귓가에 맴돕니다. 참가자들은 일제에 항거했던 의병의 정신으로 자주와 평화, 통일을 이루자고 다짐했습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촬영지인 션샤인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대전충청 3개 지역 평통사가 공동 주최하고 충청남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후원하여 진행된 대전충청평화발자국에는 모두 42명의 평통사 회원과 지인들이 참가했습니다. 특히 평통사 회원이 아닌 주위의 여러분들이 행사에 적극 참여해서 의미를 높여주었습니다. 평화발자국과 같은 대중적인 행사를 가능하면 활발히 벌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행사는 논산/대전/보령 평통사의 대표와 운영위원들이 정성을 다해 준비하고 진행했습니다.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