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0. 22/ 부산] 14차 평화발자국, 1단계 (2014~2017) 평화발자국 갈무리 행사 보고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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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마중물 부산사람들"
14차 부산 평화발자국
미완의 민주혁명-6월항쟁
2017년 10월 22일(일) 오전 10시~오후 2시
올해로 2014년부터 시작한 부산 평화발자국이 1단계 일정을 마무리합니다.
2014년에는 '임진왜란에 맞선 부산사람들', 2015년에는 '일제에 맞선 부산사람들', 2016년에는 '전쟁에 맞서 평화를 이뤄낸 부산사람들'을 주제로 진행했으며 올해 주제는 '민주주의의 마중물 부산사람들'입니다.
87년 6월항쟁은 부산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에 지난 4월 13차 평화발자국은 항쟁의 기폭지가 되었던 부산대를 시작으로 구미에 있는 박정희 생가 등을 탐방한 후 소성리를 방문하는 일정으로 진행했습니다. 사드가 배치된 소성리는 이 나라 민주주의가 아직도 먼 길을 가야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지요.
1단계 부산 평화발자국의 마지막 일정인 14차 평화발자국은 '미완의 민주혁명 - 6월항쟁’이란 부제를 달고 진행되었습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새 정부가 6월항쟁으로 시작한 민주주의를 완성시키기를 바라며 당시 현장을 찾아가 그 정신과 의미를 되새기는 일정으로 진행했습니다.
자갈치역 7번 출구-->PIFF 광장-->(구)미화당 백화점-->대각사-->근대역사관-->가톨릭센터-->중부교회의 일정이었습니다.
해설과 진행은 도라지, 최종태, 윤해정, 양화니 해설사와 박희동 운영위원이 담당했습니다.
10대 청소년부터 70대 어르신까지. 다양한 계층에서 30명이 참가했습니다.
오전 10시, 자갈치역 7번 출구에 모인 참가자들은 윤해정 해설사의 인솔하에 6월항쟁의 함성이 남아있는 곳으로 걸어갔습니다. 최종태 해설사가 생생한 현장 강의를 해주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생긴 크고 작은 도로들, 매립지역, 해방과 6.25를 거치며 우리 역사만큼이나 격동의 세월을 이겨낸 부산의 지형을 돌아보았죠. 특히 자갈치역 앞 도로와 자갈치 시장 주변은 80년대 이후 더 넓어지고 단장을 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자갈치역을 중심으로 옛 부산시청터와 영도다리, 부산진역과 대청동, 광복동과 신창동, 자갈치시장과 부평시장까지 아우르며 일제강점기의 부산, 동래, 초량 일대와 여러 지명의 유래에 대한 재미있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산실인 부산극장 앞 PIFF 광장도 둘러보았습니다. 오늘날 스무 살 넘는 청년 BIFF로 크기까지 부산을 거쳐간 영화인들의 손바닥이 눈길을 끌더군요. 옛 미화당백화점 앞에서 신창동과 광복로의 유래에 대한 설명을 듣고, 대각사에서 잠시 멈췄습니다.
"87년 부산 ‘6·10대회’는 대각사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찰이 집회를 원천봉쇄하자 시위대는 광복동, 충무동, 대청동... 중심가 곳곳으로 흩어졌다 뭉치며 시위를 이어갔고, 최루탄 난사와 과잉 진압으로 부상자가 속출했지요. 충무동 로터리 시위대열 선두에서 부산국본 상임집행위원장 노무현 변호사는 시민들과 함께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쳤습니다."
참가자들은 광복동 길을 따라 부산근대역사관 앞에 섰습니다. 일제강점기 동양척식회사 부산지점으로 부산 지역 수탈의 중심지였던 아픈 역사의 현장이죠.
해방 이후 오랫동안 부산시민들에게는 ‘미문화원’으로 알려졌습니다. 정확히는 ‘미공보처 부산문화원’이었다가 1999년 대한민국 정부로 반환되고 다시 부산시에 인수되어 오늘의 ‘부산근대역사관’이 문을 열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참가자들은 일제강점기 전후 시대상도 사진과 문서로 가늠해보고, 일본인들의 지휘아래 조선사람들이 모래며 돌이며 지게 져 나르고 못질했을 근대역사관을 둘러보며 만감이 교체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미워할 수만은 없는, 우리 민족의 유산이긴 하지요. 그 건축사적 가치도 알겠고, 르네상스식이니 무슨 양식이니 하는 부산 곳곳의 서양식 건물들도 확인해보는데... 오늘날 도시철도와 노선이 거의 일치하는 부산 전차 모형에도 앉아봤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가슴 한 켠이 서늘하던지요. 남의 땅에 와서 주인 행세하던 일인들이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며 제 고향을 재현하거나 서양식 흉내낸 거리며 풍속을 보면서 속이 불편해지기 시작하더군요. 서양식으로 치장하여 잔뜩 멋을 부린 젊은 조선 여인네도 서글프고... 시대가 자신들을 어디로 끌고 가는지, 어떻게 자신들의 운명을 일본인들이 난도질하는지, 그것조차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얼굴들, 그 무표정한 구한말 흰 옷 입은 부산 사람들...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남루한 가난을 걸친 우리 할배 할매들의 고단한 삶이 못내 서글프고 가슴 아팠습니다.
근대역사관은, 부산사람들이 자신의 것들을 어떻게 뺏기고 어떻게 발가벗기고 어떻게 이용당하고 내팽개쳐졌는지 듬성듬성 남겨진 사료들만으로도 확인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사드 배치로 추구되는 한미일 동맹을 향한 당국의 위험스러운 행보는 이것이 과거만이 아니라 지금도, 앞으로도 그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점을 각인해야 합니다.
"이곳은 미문화원방화사건과 고신대생들. 김현장, 문부식, 김은숙 같은 이름으로 더 기억되는 곳입니다. 80년 신군부 군사독재를 미국이 용인하고 지원한 데 대한 항거와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상을 알리고자 했던 청년들의 시도는 방화와 사망사건으로 이어지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등에서 항의성명 발표로 전국적인 파장을 일으켰던 사건입니다.
문부식과 김은숙은 중부교회 주일학교 교사, 부산양서조합회원이었으며 그들의 영적 지도자 최성묵 목사, 핵심 인물 김광일 변호사는 ‘부림사건’으로 학생들이 고초를 당하자 노무현 변호사와 함께 무료변론을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모두 중부교회와 인연이 깊습니다."
참가자들은 모처럼 좋은 쌀로 밥을 하는 식당에서 푸짐하게 점심을 한 후 가톨릭센터와 중부교회 방문길에 나섰습니다.
당시 가톨릭센터 점거 농성 때 300여 명 시위대 중심에 있었던 동아대 총여학생회장이었던 임정숙님(현재 마을기업 ‘금빛물고기’ 운영)이 특별 해설사로 나서 당시의 긴박감 넘치는 현장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해주셨습니다. 부산가톨릭센터에서의 광주민중항쟁 사진전시회로 많은 부산시민들은 충격을 받았고 전두환 정권의 실체를 깨닫게 되었다는 것, 군부독재의 군홧발에 짓밟혔던 시민들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에 참가자들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참가자들은 당시 봉쇄당해 농성을 하게 된 시민들이 현수막을 내려뜨렸던 회관 옥상이 보이는 곳에 올라 기념 촬영을 하고 구호도 외쳐보았습니다.
최종태 해설사는 문재인 정부가 민주주의를 완성하여 6월항쟁이 남긴 과제를 해결하려면 평화와 통일의 길을 올곧게 가야 하며, 사드 배치와 같이 한미동맹에 매달려서는 성공하는 정부가 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6·10 국민대회를 앞둔 87년 6월 9일, 각 대학에서 열린 출정식에서 경찰 최루탄에 쓰러진 연세대생 이한열은 6월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부산 6·10대회가 원천봉쇄되자 시내 곳곳에서 동시다발로 벌어진 시위는 자정 넘어까지 계속됐고, 일부 대학생과 시민들은 박종철 열사 가족이 농성 중인 보수동 중부교회로 들어갔습니다. 최루탄, 사과탄, 백골단이 난무하는 가운데 8시간 노동으로 생활임금 쟁취하자! 노동자 단결하여 살인정부 전두환 군부독재 끝장내자!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목이 터져라 외쳤지요.
87년 1월, 부산의 아들이자 서울대생이었던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2·7 추도대회, 3·3 대행진, 4·13 호헌 발표- 5·17 국민운동본부 결성. 6월 전국 최대 항쟁 시위를 이끌어낸 부산시민의 힘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이승만, 박정희 정권까지 이어져 온 저항의 정신이었던 것입니다. ‘79 부마민주항쟁 이후 민주역량을 키워온 부산의 힘! 부산지역 최초의 통일 민주단체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중심으로 노동자, 학생, 종교계, 민주당 등이 모여 ‘호헌반대 민주헌법쟁취 범국민운동 부산본부’를 결성하고 부산가톨릭센터에서 농성과 연좌시위, 시국토론회를 갖고 평화적으로 끝냈습니다.
87년 6월을 부산의 거리에서 보낸 노무현 변호사는 ‘부산 6월민주항쟁의 야전사령관’이란 별칭을 얻었습니다. 대학생, 시민들과 어깨 겯고 불렀던 민중가요 <어머니>는 노무현의 가슴을 울렸고, 노랫말 구절 ‘사람 사는 세상’은 그의 평생 꿈이 되었습니다.
전두환 정권의 ‘4·13 호헌’ 집권연장기도에 항의하며 6월 10일부터 29일까지 20여 일 동안 전국적으로 5백만 명이상, 부산에서만 30만 명 이상 참가한 전 민중적인 투쟁이었던 6월항쟁. 80년 봄의 대학생 시위와는 달리 전국적으로 시민,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나 끝내 6·29선언으로 독재정권의 항복을 받아내고야 만, 87년 6월의 뜨거운 함성들. 그러나 6월 항쟁의 중심 역할을 했던 민주세력의 통합이 불발되었고, 12월 16일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었습니다."
독재와 불의에 맞서 민주화의 열망으로 화산처럼 폭발했던 부산 시민의 분노와 절규! 뜨거웠던 87년 6월 민중의 함성은 오늘의 부산 거리, 길모퉁이마다 돌아부는 바람으로 우리 가슴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6월항쟁은 학생 항쟁에서 시민 항쟁으로 변화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6월항쟁은 과연 끝난 걸까요? 민주화의 거대한 흐름에 작은 동심원 역할을 한 셈이지만, 고생한 소수는 아직까지 고통의 삶을 살고 있고, 극복해야 할 대상은 소멸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의 분노는 갈수록 식어가고... 정신의 빈곤에 몸부림치는 인간은 점점 줄어가고 있는 안타까운 오늘입니다.
6월항쟁은 통일 운동을 고양시키고 남북 관계 개선의 길을 열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질식시키고 남북화해와 한반도 평화를 가로막고자 한다면, 6월항쟁의 정신은 더 큰 분노, 더 큰 함성으로 다시 6월의 거리마다 살아날 것입니다. 87년 그해 6월의 뜨거웠던 함성을 기억하는 한, 6월항쟁의 정신은 영원히 민주와 자주, 통일, 평화 수호의 정신으로 이땅에 살아 있을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마중물, 부산사람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참가자들은 보수동 책방 골목 안쪽에 자리잡은 중부교회로 이동했습니다. 서울에 명동성당이 있다면 부산에는 중부교회가 있지요. 70~80년대 이후 부산민주화 역사의 중심지가 된 교회입니다.
참가자들은 중부교회를 둘러본 후 하얀색과 풀잎색 손수건에 평화를 상징하는 그림 그리기와 소감 발표로 오늘 하루 활동을 마무리하였습니다.
2014~2017 1단계
부산 평화발자국 갈무리 행사
2017년 10월 22일(일) 오후 2시~3시
14차 평화발자국을 마치자마자 오후 2시부터 중부교회 2층 예배당에서 2014~2017 평화발자국 갈무리 행사를 갖고 평화발자국의 발전을 함께 그려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의직 회원의 감동적인 시 낭송에 이은 합창홀씨들의 노래는 참가자들의 마음을 뜨겁게 채워주었습니다.
도라지 해설사는 그간 평화발자국 경과와 향후 계획을 소개했습니다. (이하 첨부)
참가자들은 전쟁과 분단의 현장을 찾아 평화와 통일의 희망을 심는 평화올레, 평화발자국이 앞으로도 더욱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한 데 모았습니다.
<2014~2017 부산평통사 1단계 평화발자국 경과보고와 향후 계획>
평화발자국은 전쟁과 분단의 상흔이 있는 곳을 찾아 그 곳의 역사와 교훈을 새기고 평화와 통일의 염원으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평화올레입니다.
2014년에는 '임진왜란에 맞선 부산사람들'을 주제로 당시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다해 왜구와 싸웠던 부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가는 것으로 첫 발걸음을 떼었습니다.
2015년에는 ‘일제에 맞선 부산사람들’을 주제로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수탈의 중심으로 삼았던 곳들을 찾았으며.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부산 인물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이 기간의 평화발자국은 일본이 안보법제를 제,개정하여 한반도에 대한 재침략의도를 구체화하는 현실을 일깨워주는 취지를 담아 진행하였습니다.
2016년에는 '전쟁에 맞서 평화를 일군 부산사람들'을 주제로 6.25 전쟁의 와중에도 정전을 외치고 전쟁의 상처를 서로 싸매주며 평화를 만들어간 부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 나섰습니다. 한반도의 전쟁위기가 해소되지 않고 사드 한국배치와 한일군사협정 체결을 고리로 한미일 대 북중러의 진영간 대결이 구조화될 수 있는 엄혹한 정세 속에서 평화에 대한 절박한 염원을 담아 진행했습니다.
한편 평화아카데미에 참가한 청년들과 함께 8부두, 백운포 해작사 등 부산의 군사기지를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부산이 여전히 전쟁의 도시임을 확인하였고, 평화의 도시로 거듭나야한다는 비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2016년에는 또한 한미일 삼각동맹구축에 반대하는 취지를 담아 일본으로의 평화발자국을 시작하였습니다.
2017년 올해에는 민주주의의 마중물 부산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시작했습니다.
지난 4월 30일, 소성리에 사드가 배치된 직후에 ‘부마의 함성, 소성리까지’라는 제목을 달고 부산민주항쟁이 시작된 부산대에서 출발하여 유신의 적폐를 실감하는 박정희 생가를 거쳐 소성리를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6월항쟁의 마중물이 된 부산 민중항쟁의 현장을 돌아보는 일정을 진행했습니다. 우리가 오늘 확인한 것처럼, 민주주의의 완성은 자주와 평화없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려면 미국 앞에 보다 당당해야 하며, 민중의 힘을 굳게 믿어야 할 것입니다.
올해도 작년처럼 청년들과 함께하는 일정도 진행하게 됩니다. 또 세 번째 일본평화발자국도 추진할 것입니다.
평화발자국은 단순한 평화기행이 아니라 평통사의 또 하나의 실천영역입니다. 사드철회와 한반도 비핵화, 평화협정 실현의 길에 평화발자국도 함께 할 것입니다.
내년부터는 "부산을 평화의 도시로!"라는 주제 아래 일제때부터 군사도시의 기능과 역할을 한 부산의 면모를 다시 꼼꼼하게 살펴보는 내용으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아울러 평택과 제주, 소성리 등 미군의 군사기지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는 이웃 도시들도 방문하고 일본 평발도 발전시켜내고자 합니다.
그 동안 함께 하신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더 적극적인 성원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정리 : 김기래 회원/ 사진 : 차성호 회원)
부산평통사 까페에서 사진/다시보기 : http://cafe.daum.net/bsspark/k2ar/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