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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8.15~16] 부산평통사 평화발자국 기행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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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자세한 내용은 부산 평통사 카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효순미선 추모 18주기에 떠나는 평화발자국

운동화 속에서 촛불로 피어난 평화

2020.8.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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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평통사가 지난 815~16일 진행한 2020년도 첫 평화발자국 "운동화 속에서 피어난 평화" (효순미선 평화공원과 파주 등 접경지역 돌아보기)를 진행했습니다. 이번 평화 발자국은 광주평통사 정동석 사무국장이 해설에 나서주었습니다. 부산평통사 해설사인 권정미 회원의 기행문을 소개합니다.

 

2020년 8월 15~16일, 부산평통사 평화발자국에 참여한 참가자들

 

 

●815() : 무건리 훈련장~효순미선평화공원~조소앙기념공원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난지 75주년이 되는 2020815일 광복절 아침코로나19로 인해 미루었던 2020년 첫 평화발자국 걸음을 떼는 날이다. 계속되던 긴 장마는 다행히 끝을 보이는 듯 하늘이 개고 불볕같은 더위도 이번 일정을 축원하듯 잠시 멈추어주었다부산교대 앞 감리교회관 주차장에서 대표님의 배웅을 받으며 출발, 목적지인 경기도 양주로 향했다.

2002년 발생한 미군장갑차에 희생된 두 여중생 효순미선 압사사건의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사고현장이 훼손됨을 우려하여 조성된 효순미선평화공원 준공일에 맞추어 계획했던 평화발자국이 드디어 어렵게 출발하게 되니 그 어느 때보다 설레임과 기대가 높았다.

이번 평화발자국은 2002613일 경기도 파주 무건리 훈련장에서 훈련을 마치고 경기도 양주 덕도리 훈련장으로 이동하던 중 양주 효촌리에 살던 미선, 효순 두 여중생의 목숨을 앗아간 미군장갑차의 이동경로를 따라 첫 일정을 정리했다.

 

부산에서 양주로 이동아는 버스 안에서 자료집에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경기도 파주와 미군훈련장, 평화공원에 관련된 설명을 들으며 사전공부를 했다. 먼 거리만큼 긴 이동 시간동안 앞으로 보게 될 휴전선 접경지역의 실상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오후 330분경 드디어 우리의 첫 목적지인 무건리 훈련장에 도착했다이번 평화발자국 해설을 맡아주기로 한 광주평통사 정동석 사무국장이 자세한 설명과 위치를 안내해주었다무건리 훈련장은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오현리~직천리~무건리 일대에 위치해있다. 80년대 초 전두환 정권시절 350만평으로 만들어져 20061100만평 규모의 종합훈련장으로 확장되었으며 실탄 훈련을 진행하는 곳이다.이곳에서 농사짓고 젖소를 키우며 평범하게 살던 주민들은 강주 이주당하다시피 자신의 집과 농토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천연기념물인 물푸레나무가 서식하고 백로 서식지였던 이곳에 여기저기 땅이 패인 흔적과 이름 모를 풀과 나무만이 자리한 휑한 공간들은 평화적 통일과 침략적 전쟁을 부인하는 헌법에 반하는 현장이다. 한반도 평화정착과 남북관계 개선에도 걸림돌이 되는 현장이다.

무건리 훈련장에서 미군장갑차가 이동한 길을 따라가다보니 효순미선평화공원이 나온다. 지금은 두어명이 나란히 걸을 수 있을만한 안전가이드가 세워진 인도가 있지만 사고 당시에는 인도가 없는 갓길이었다고 한다. 이 변화도 효순미선의 너무나도 큰 희생 덕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려온다. 신호등과 주차공간도 이번 공사 기간 중에 양주시가 제공했다고 한다.

길 건너편에서 공원을 바라보면 두 소녀의 형상을 한 입간판이 눈에 띄게 잘 보여서 지나가는 이들이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공원을 둘러싼 운동화 모형의 벽에는 공원이 만들어진 기록들이 새겨져있고 중앙 전면에는 시민추모비 소녀의 꿈이 세워져 있다. 공원준비과정에 참여해서 컴퓨터로 가상의 공원을 이미 만들어 보았던 나로써는 컴퓨터 가상공간에 들어와 있는 듯 익숙하면서도 정말 현실공간인가 싶은 남다른 감격스러움이 느껴졌다. 현장에서 많은 땀을 흘렸을 분들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이다. 작으나마 보탬이 되고자 참가자들과 공원 안 잔디 잡초를 뽑고 정리를 했다. 어렵게 조성된 이 공간이 많은 이들이 편히 찾는 명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계획된 일정에는 없었지만 숙소로 가는 길목에 있는 조소앙 선생의 기념관을 방문했다조소앙 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으며, 김구 등과 한국독립당을 창당했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사상가이다. 마침 광복절이어서 잠시지만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숙소에 도착해서 각자 방을 배정하고 광주평통사 정동석 사무국장님이 준비하신 둘째 날 일정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을 듣고 저녁식사 겸 바비큐 시간을 마련하여 첫날 평화발자국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효순미선 평화공원을 방문한 평화 발자국 참가자들
 

 

● 816() : 파주 장파리마을~리비교(스토리사격장입구)~인민군묘~낙검자 수용소

숲속의 숙소에서 새소리와 함께 아침을 시작해서 파주 장파리 마을로 출발했다.

파주는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곳으로 민간인통제구역을 인근에 두고 있는 최북단 지역이다.

 

장파리는 임진강을 건너는 대표적인 포구였다. DMZ 인근 JSA(공동경비구역)에 주둔하던 미군들이 전쟁 직후 파괴된 교량, 건물 등을 복구하기 위해 리비교를 통해 임진강을 건너 마을로 들어왔다. 미군들에 의해 마을 모습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딸라를 찾아 많은 사람들이 장파리로 들어왔다. 상주인구 5천여명, 유동인구도 3만여명이 넘었다고 한다. 2도 되지 않는 장파리 중앙통에는 미장원, 사진관, 주점, 여관이 난립했다. 진흙투성이 장파리 거리 위로 개들도 딸라를 물고 다녔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1977년 미군이 장파리에서 철수하자 장파리는 몰락한다. 현재 인구는 4천여 명에 불과하다. 기지촌이 되었던 장파리는 발전이 정체되었고 낙후된 구역의 형태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장파리는 비무장지대 인접 지역으로 바로 옆에 임진강이 흐르고 있다. 그 임진강을 건너는 다리가 리비교혹은 북진교로 불린다. 파주시는 이 다리를 철거하고 새로운 다리를 건설하여 관광명소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미군이 주둔했을 때는 주말이면 리비교를 통해 걸어 나오는 미군들과 이를 맞이하는 상인들로 장사진을 이뤘다고 한다.

 

리비교를 건너면 스토리 사격장이란다. 스토리 사격장은 주한미군의 핵심 실사격 훈련장으로 주한미군 뿐 아니라 오키나와 등 해외주둔 미군도 사용하는 종합훈련장이다. 민간인 통제 구역 내에 있는 가장 넓은 규모의 훈련장으로, 직접적인 대북 선제 공격 훈련을 전개한다는 점에서 다른 훈련장과는 판이하게 다른 성격을 갖는 곳이다. 20189.19 남북 군사합의에 의해 사격이 중지된 구역 안에 위치해있어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고 악화되면 다시 사용하게 될 터이다.

3일만 나가 있으라는 말만 믿고 맨손으로 나온 뒤 주민들은 60년이 넘도록 자기 땅에서 농사를 지으려면 부대로부터 영농출입증을 받아야 한다. 참가자들은 사격장 앞을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을 바라보며 분단의 아픔과 끝나지 않은 전쟁의 고통을 온 몸으로 느끼며 잠시 상념에 잠겼다장파리에는 아직도 미군이 주둔하던 당시의 건물들이 남아있었다. 미군들이 만든 재건학교, 기지촌 여성들의 성병을 진료하던 적성의원, 미군을 상대로 영업하던 클럽 라스트 찬스, 천주교 장파공소 등...

폐허처럼 되어버린 이 건물들을 잘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곳을 역사의 공간으로 남겨 후대가 미군주둔의 폐해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좁은 거리를 바닥을 쿵쿵 울리며 위협적으로 오고갔을 미군장갑차도 기억해야 한다. 이 길에 새겨진 주민들의 크고작은 고통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인민군묘(북한군묘)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공식 명칭은 북한군/중국군 묘지이다1996년 묘역이 구성되었고 한국전쟁 이후 남한 격전지에서 발굴한 조선인민군 및 중국인민지원군의 유해를 모두 여기로 가져와 묻었다. 이중 중국군 유해는 박근혜 시절 한중정상회담 때 유해 송환을 제안, 2015년 중국에 반환되었다고 한다1묘역에는 한국전쟁 때 전사한 북한군 전사자, 2묘역에는 중국군과 1.21사태, 대한항공 858파사건, 여수해안 간첩선 격파사전 때의 무장공비들의 유해가 묻혀있다. 2018년 판문점 선언 이후 강원도 철원 화살고지에서 시범적으로 유해발굴을 진행 중인데 북한군 유골로 확인되면 이곳에 가져온다고 한다.

대체로 묘는 일반적으로 남향으로 쓰지만 북한군묘의 경우엔 무명인들의 고향이 북녘임을 감안해 북쪽을 바라보도록 조성했다고 한다. 그것만이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우일지도 모르겠다.

푸른 잔디 위 작은 묘비에 새겨진 무명인이라는 글귀를 보니 이들의 죽음이 왜? 누구에 의해? 무엇 때문에 시작됐고 끝이 나지 않는 것인지 갑자기 답답함이 밀려옴을 느꼈다. 누군가에게 이름이 불리었을 그 사람이 왜 지금은 무명인으로 불리어 낯선 땅에 묻혀있는지... 묘비 옆에 다소곳이 피어 바람에 흔들리는 이름 모를 꽃들만이 그들을 위로하고 있는 것 같다참가자들은 술을 올리며 큰절을 하고 명복을 빌었다. 

분단과 전쟁으로 인한 선량한 주민들의 고통과 설움. 그 앞에서 아무런 죄의식 없이 주민들의 삶을 짓밟은 미군과 기득권 세력들. 이들의 오만과 불법을 허용해온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이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12일의 기행이었다.
 



평화발자국 이튿날, 인미군 묘 표지판 앞에서 참가자들의 단체사진

 

이런 부당하고 억울한 현실 속에서 희망을 잃지 말자고 효순미선평화공원이 소롯이, 마치 연꽃처럼 피어오른 것 같다효순미선평화공원이 부디 학생들에겐 교육의 장으로, 지역주민들에게는 쉼터이자 문화공간으로 알차게 사용되길 바란다.

 

이번 평화발자국은 기억해야 하고 청산해야 할 과거의 아픔을 돌아보지 못하고 현재의 유흥과 일상 속에서 무디게 살아가고 있는 나의 현재를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적은 인원이었지만 알찬 기행! 다음에는 더 많은 이들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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