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청년평화아카데미] 9강 – 11/25 월미도의 아물지않는 상처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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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청년평화아카데미] 9강
[인천 월미도 평화발자국] 휴전 70년 끝나지않은 한국전쟁, 월미도의 아물지않는 상처
•일시 : 2023년 11월 25일(금), 오후 1시 •장소 : 인천 월미도
인천 월미도 평화발자국에 참여한 참가자들
2023 청년평화아카데미 9강은 “휴전 70년 끝나지않은 한국전쟁, 월미도의 아물지않는 상처”라는 제목으로 현장탐방을 진행했습니다.
이번 탐방은 휴전 70년을 맞아 한국 전쟁의 아픈 상처가 있는 인천상륙작전이 실제 벌어졌던 월미도에서 진행했습니다. 전쟁에 대해 알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민간인이 희생된 역사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오늘 탐방할 월미도는 인천상륙작전으로 희생되신 원주민분들이 많이 있고 우리 한반도에 외세의 침탈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이기도 합니다. 전쟁의 아픈 역사의 현장을 탐방하며 휴전 70년을 맞아 평화와 통일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평화발자국을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인천역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는 인천평통사 청년회원
첫번째 순서로 월미도를 탐방하기에 앞서 참가자들이 모인 인천역에 대한 설명을 진행했습니다. 인천역은 1899년에 지어져 경인선으로 한국 철도가 시작된 곳입니다. 철도가 처음 개설된 이유는 일본이 우리나라의 물자를 반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 만국평화회의에 고종황제가 이준 열사를 특사로 파견해 일제가 강제로 체결한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폭로하고 조선의 국권회복을 위한 외교활동 펼치는데도 철도가 이용되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분단과 한국전쟁으로 철도가 끊어졌고 유럽을 가려면 비행기를 타야하지만 당시 이준 열사가 그러했듯이 한반도가 평화통일이 되면 청년들이 인천역에서 열차를 타고 러시아 시베리아를 건너서 유럽까지 가는 그런 날을 생각해봤습니다.
월미도 원주민 농성장 앞에서 설명을 듣고 있는 참가자들
참가자들은 두번째로 월미공원 앞에 있는 월미도 원주민 농성장 앞을 방문했습니다. 이 농성장은 인천상륙작전 당시 미군 무차별 폭격으로 인해 희생당한 유가족분들과 주민들이 정부와 인천시를 상대로 진상규명과 사죄, 귀향 대책을 촉구하며 2,000일 넘게 농성했던 곳입니다. 미군 폭격에서 간신히 살아남으신 분들은 휴전협정 체결된 직후 53년부터 인천시에 고향땅인 월미도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다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월미도 폭격사건에 대해 최종적으로 미군이 국제인도법을 위반한 민간인 집단 학살 사건이라고 진실규명 결정이 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까지도 인천시나 정부차원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내린 권고들, 특히 가해자 미국과의 협상을 통한 공동조사 및 피해자에 대한 사죄나 책임, 월미도 원주민의 귀향대책은 전혀 이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월미공원 내 해군충혼탑 앞에서 설명을 듣고 있는 참가자들
다음으로 참가자들은 월미공원 내에 있는 해군충혼탑을 방문했습니다. 해군은 2002년 6월 남북 해군이 충돌한 ‘서해교전’의 전승비를 세우려다 시민들의 반발로 무산되고, 2011년 ‘해군첩보부대 충혼탑’을 소리소문 없이 세웠습니다. 여전히 이렇게 남북 대결의식에 사로잡혀 인천상륙작전을 승전의 기억으로만 강요하고 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 희생되신 월미도 원주민들에 대한 무자비한 미군폭격사건은 가려지고 있습니다.
월미도 원주민들이 살았던 터에서 미군 폭격상황을 듣고있는 참가자들
해군충혼탑에서 내려와 지금은 공원으로 조성되어있는 월미도 주민들이 살았던 마을터로 왔습니다. 월미도에 상륙하려는 미군은 사전에 인민군 방어시설을 무력화하기 위해 9월 10일~14일 사이에 월미도 마을에 무차별적 폭격을 가했습니다. 당시 폭격에 사용한 네이팜탄은 1300℃의 초고온에서 광범위한 지역을 불태워버리는 폭탄으로 비인도적인 무기입니다.
월미도 미군 폭격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인천평통사 청년회원
국제인도법에 따르면 전쟁 시 민간인/민간시설은 공격해서는 안되고, 이러한 군사작전을 펼칠려면 이 지역 거주 민간인의 희생을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나와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무시하고 월미도 전체를 집중폭격한 것은 국제인도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민간인 구별의 원칙, 불필요한 고통을 유발하는 무기 금지 등의 국제인도법을 위반한 엄연한 불법 행위이고 전쟁범죄입니다.
월미도 민간인 학살 위령비에서 설명을 듣고 있는 참가자들
다음으로 참가자들은 월미도 민간인 학살 위령비가 세워진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앞서보았던 해군충혼탑과 비교해보면 너무나 작고 초라합니다. 게다가 위령비 뒤에는 아무것도 적혀있지않아 너무 형식적으로 만들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또한 인천시는 위령비 건립 과정에서 위령비 비문에 가해자인 미군을 빼고 유엔군 소속 미군으로 적시했습니다. 유엔군사령부는 유엔의 군대가 아닌 미국 주도의 다국적 사령부였습니다. 그럼에도 "유엔군 소속"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미군의 가해 사실을 희석시키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참가자들은 미군폭격으로 억울하게 희생되신 월미도 원주민들을 추모하며 묵념을 올렸습니다.
월미돈대에서 월미도의 역사를 듣고 있는 참가자들
다음으로 참가자들은 월미산에 있는 월미돈대로 이동했습니다. 숙종때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월미산 정상에 돈대와 포대를 설치하여 인천과 강화도의 성을 지켰다고 합니다. 이처럼 월미도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던 섬이었습니다.
월미도의 역사를 설명하는 인천평통사 청년회원
일제강점기 시기에는 소위 ‘조선 제일의 유원지’라는 명목으로 월미산 중턱에 도로를 뚫고 북성지구에서 월미도에 이르는 2차선의 제방둑길을 축조합니다. 그리고 해수욕장, 수족관, 조탕, 호텔, 요정 등의 유흥시설이 구축됩니다. 월미도는 식민지 상층 지배층의 호화로운 인공낙원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월미산 정상에서 한반도의 정세와 앞으로 나아갈 평화로운 미래를 생각하는 참가자들
이번에 인천상륙작전 재연 기념행사를 빙자해서 굉장히 큰 미국과 캐나다 군함이 들어왔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서 굉장히 반발하고 이제 군사적 긴장까지 고조되고 있습니다. 한미당국은 훈련하는게 아니라 재연 행사라고 했지만 실제로 하루 전날 충청도 태안반도 앞에서 훈련을 했던 배가 인천으로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미중간의 패권 경쟁 속에서 또 한번 우리 한반도가 격량에 휩쓸릴 수 있는 그런 정세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세나 강대국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가 주체적으로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이 분단과 전쟁을 끝내고 남북이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고 또 통일로 나아갈 수 있는 그런 해법이 필요합니다.
미군 폭격에도 살아남은 '치유의 나무' 앞에서 설명을 듣는 참가자들
참가자들은 마지막 코스인 그린비치로 향했습니다. 1960년에 미군 7보병여단이 인천상륙작전 10주년 기념비를 세워두었습니다. 이 기념비 뒤에는 인천상륙작전의 화염 속에서 살아 남은 치유의 나무가 있습니다.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이 적대와 대결을 끝내고 평화로 갈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전쟁을 기념하고, 전승 재연행사를 하는 것일까요? 치유의 나무처럼 전쟁의 아픔을 치유하고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키워나가는 것일까요? 우리가 평화와 통일로 갈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를 고민해야 하고 계속해서 평화와 통일의 담론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치유의 나무'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고있는 참가자들
참가자들은 평화발자국을 마무리하며 소감을 나눴습니다. 참가자들은 "월미도 역사를 몰랐던 게 좀 너무 부끄러웠던 것 같고 지금부터라도 기억하고 또 배워서 주변에 역사를 알리겠다.", "인천 상륙 작전뒤에 숨겨진 아픔과 죽음들을 실제 두 눈으로 볼 수 있어서 더욱 더 마음에 와닿았던 시간이었다.", "전쟁에 대한 시각을 바꾸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원래는 전쟁하면 승자는 누구야 이런 식으로만 생각했는데 전쟁에는 패자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한국전쟁 이후 7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한반도 전쟁 끝나지 않았고 대결과 전쟁위기 높아지는 상황에서 또 다시 우리가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더욱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의 소감을 통해 월미도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전쟁의 참혹함을 새기며 평화를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을 다짐했습니다.
이 날 경기신문 기자가 행사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하며 월미도 평화발자국 행사를 취재하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경기신문]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음’…월미도 평화발자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