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보고서

[피해증언] TPNW 3차 당사국회의 부대행사 - 민중법정 원고 한정순 선생 증언

관리자

view : 449

지난 3월 3일~7일, 핵무기금지조약(TPNW) 제3차 당사국회의가 진행되었습니다. 회의 기간에는 당사국 정부 대표단이 참가하는 회의 외에도 각국의 반핵평화 단체가 주최하는 많은 부대행사가 개최됩니다.

 

지난 4일(화), 평통사가 공동 코디네이터로 참여하는 원폭국제민중법정 국제조직위원회도 유엔본부 인근에서 민중법정을 주제로 부대행사를 개최했습니다. 60여 명이 참가한 이날 행사에서는 민중법정 원고로 참여하는 피해자분들의 증언을 듣고, 2026년 민중법정에 대한 홍보와 참가자 조직 방안 등을 중점적으로 논의했습니다.

 

아래는 민중법정 원고 중 한 명인 한정순 선생의 증언입니다.

 

저는 한국원폭피해자 2세 환우회 회장인 한정순입니다. 저의 부모님은 일제의 가혹한 수탈에 못 이겨 일본으로 건너가 히로시마에서 14식구가 함께 살았습니다. 원폭 투하로 인해 할머니와 삼촌들은 화상을 입었고, 어머니는 임신 중에 피폭을 당했습니다.

 

피폭 이듬해에 부모님은 고향인 한국 합천으로 돌아왔으나 태내 피폭자였던 오빠는 피폭 후유증으로 1년 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모두 6남매입니다. 나의 형제 모두가 원폭 후유증으로 인한 질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뇌경색, 심근경색 협심증 등 온갖 질병을 겪고 있으며 막내는 젊은 나이에 치아가 다 빠지기도 했습니다. 

 

육남매 중 다섯째인 저는 어릴 때부터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고, 20대에 들어서니 제대로 걷지도 서지도 못하게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결혼 후 낳은 첫 아이는 뇌성마비를 갖고 태어났습니다. 아이를 낳은 후 다리의 통증은 더욱 심해졌고 진단 결과 ‘대퇴부 무혈성괴사증’으로 고관절이 괴사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잘 서지를 못하니 땅바닥을 손으로 밀며 다녀야 했습니다. 방바닥은 까진 손에서 난 피로 흥건했습니다.

 

간신히 도움을 받아 인공관절 수술을 했지만 영구적이지 않았습니다. 이후 6번의 재수술과 자궁근종 수술, 담낭제거 수술 등 12차례의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핵무기의 피해는 잔인하게 대물림됩니다. 한국인 원폭피해자 2세들은 부모님이 원폭 피해자라는 이유로 평생을 피폭의 유전으로 인한 고통을 당하면서도 원폭 피해자로 인정조차 받지 못한 채 고통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원폭 2세 환우회 회장으로써 저의 아픔만이 아니라 2세 환우들을 돌보며 그들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끌어안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세상을 금방 떠난 환우들을 보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러나 전쟁을 일으킨 일본과 핵무기를 투하한 미국은 원폭 투하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피폭 후유증에 대한 인정과 피해자에 대한 사과 한마디가 없습니다. 이 억울함을 어디에서라도 호소하고 싶습니다. 핵투하에 대한 미국의 책임 인정과 사죄, 배상을 받아내 더 이상 나와 같은 핵 피해자가 없는 핵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전 미국의 원폭투하 책임을 묻는 원폭국제민중법정이 그동안 억눌려 왔던 한국원폭피해자들에게 숨을 트일 수 있는 공간이 되리라 생각해 원고로 함께 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평생을 핵 피해자로 살아간다는 건 너무나도 잔인합니다. 이러한 잔인한 일을 인류가 또다시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먼저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주세요.

창닫기확인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