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11. 13] [한겨레,왜냐면] 김판태 기지협정팀 국장 글 / 럼스펠드에게 '노' 라고 말하라!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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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스펠드에게 ‘노’라고 말하라
김판태/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미군기지협정팀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11월16일부터 사흘 동안 한국을 방문한다. 제35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번 회의에서는 그동안 ‘한-미 동맹의 재조정’이란 이름으로 다섯 차례의 ‘미래 한-미 동맹 정책구상’ 회의에서 논의된 의제들, 즉 주한미군의 동북아지역으로의 역할 확대와 이에 따른 용산 미군기지 이전 등 주한미군 재배치, 한-미 연합전력 증강 등이 최종 합의될 예정이며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문제도 논의된다. 의제 하나하나가 우리 국익과 미래 한-미 관계, 한반도 평화 문제가 걸린 중대한 문제다. 그런데 이제까지 이런 중대한 문제들이 미국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방식으로 협상이 진행돼 왔다. 이대로 회의가 결말 지어진다면 막대한 국익 침해가 예상된다.
이번 회의의 핵심의제 중 하나인 용산 미군기지 이전 문제의 경우, 1990년에 체결된 용산 미군기지 이전 합의각서와 양해각서에 근거하여 이전 비용과 대체 터를 전적으로 한국 쪽이 부담하도록 두 나라가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 쪽이 이전을 요구했기 때문에 이전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용산 미군기지 이전은 주한미군을 동북아의 신속대응군으로 전환시키려는 미국의 동북아 군사전략에 따라 추진되는 것이다. 이는 ‘미래 한-미 동맹 정책 구상’ 5차회의에서 미국 쪽이 주한미군의 동북아 지역으로의 역할 확대를 요구하고, 이를 우리 정부가 수용함으로써 이번 용산 미군기지 이전을 비롯한 일련의 주한미군 재배치가 미국의 군사전략에 따라 추진되는 것임이 명확히 드러났다. 따라서 90년의 합의에 근거해 최소 수조원대로 추산되는 천문학적인 용산 미군기지 이전 비용을 우리 정부가 전적으로 부담하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하다.
더욱이 90년의 용산 미군기지 이전협정은 내용의 불평등성뿐만 아니라 적법한 체결권자의 서명이 없는 불법 협정으로서 당시 정부 일각에서조차 위헌 시비가 일었고, 이에 로널드 포글먼 주한 미 부사령관이 반기문 미주국장을 압박하여 이 문서들이 합법이라는 각서를 91년에 받아냈다는 안기부 문서가 최근 폭로되기도 했다. 또한 현재 감사원과 국회에서 이 문제와 관련한 감사를 추진 중이다. 따라서 용산 미군기지 이전협상은 전면 중단돼야 한다.
그리고 이번 회의에서 논의될 주한미군의 동아시아 지역군으로의 역할 전환은 한반도가 공식적인 미군의 동아시아 전초기지가 되고 한국군이 그 하위동맹으로 위치 지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한반도와 역내 군사적 긴장과 갈등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다. 또한 한-미 연합전력의 대폭적인 증강 계획 역시 그동안 남북 간에 어렵게 쌓아올린 신뢰와 협력관계를 훼손하고 한반도의 군비경쟁과 전쟁위기를 고조시키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따라서 이 계획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또한 이번 회의에서는 미국의 한국군 이라크 파병 압박이 거셀 것이다. 이라크에서 미군 희생자가 날로 늘어나면서 부시 미 행정부의 지지도는 급락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을 주도한 럼스펠드 국방장관에게 그 비난이 집중되고 있으며, 미 의회에서는 럼스펠드 해임 결의안까지 입안된 상태다. 곤경에 처해 있는 럼스펠드가 방한하여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을 얼마나 강요할지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벌써 한국 국방부는 럼스펠드의 방한을 앞두고 대규모의 전투병 파병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은 미국이 일으킨 추악하고 반인륜적인 침략전쟁의 공범이 되는 것이자 궁지에 몰리고 있는 미군을 대신할 총알받이로 우리 젊은이들을 내모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번 회의에서 미국과 파병 협상을 중단해야 한다.
이번 35차 회의에서 호혜평등한 한-미 관계와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는 국민여론을 등한시한 채 미국의 요구가 일방적으로 관철된다면 막대한 국익의 훼손은 물론 미래의 한-미 관계는 더욱 종속적인 관계로 심화될 것이며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번 회의에서 우리 정부가 이제까지의 용산 미군기지 이전협상을 중단하고, 미국의 이라크 파병 압력을 단호히 거부하며,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고조시키는 주한미군의 역할 전환과 한-미 연합전력 증강을 반대하여 국가 주권과 국민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