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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2. 27] 미국의 동북아 전략과 북핵 다자회담(4)-서보혁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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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동북아 전략과 북핵 다자회담 (4)

미국의 대북 인식과 핵정책


서보혁


그렇다면 북핵문제는 미국의 세계 및 동북아전략에서 어떤 위상을 갖고 있는가? 부시정부에게 북핵문제는 반확산전략을 동북아에서 구체화하고 중국의 군사적 팽창을 견제하는 좋은 소재로 볼 수 있다. 여기에 북한과의 적대관계가 추가되어 미국은 북미 직접 협상을 회피하고 중국이 포함된 북핵 다자회담을 추진하고 있다.

1. 근본적 불신과 다자적 압력

부시정부의 외교안보정책 담당자들의 북한체제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인식은 하나같이 부정적이다. 예를 들어, 대북 핵정책을 둘러싸고 온건파로 분류되고 있는 파월 국무장관은 2001년 1월 17일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독재자’라고 부르고 그가 통치하는 북한정부의 정책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또 강경파의 대표적 인물로 평가되는 럼스펠드 국방장관도 2001년 1월 11일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북한을 미사일 및 그 기술을 전세계에 판매하는 “세계 수준급의 활동적인 확산국가”라고 밝혔다. 그리고 부시대통령도 북한체제와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에 나서기도 하였다. 이는 부시정부의 대북인식이 통일되어 있으며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행정부내의 이견은 전략적 입장 차이가 정책 수단의 우선순위 설정에서 나타나는 극히 제한적인 현상에 불과함을 말해준다.

이와 같은 대북 인식에 바탕을 둔 부시정부의 대북정책이 강경기조를 띄고 있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부시대통령은 2001년 6월 6일 대북정책 방향을 ‘포괄적 대북 접근’으로 밝히면서 제네바 합의의 개선, 북한의 미사일 개발에 대한 검증가능한 제한과 수출 중단, 그리고 재래식 군사 태도의 위협 축소 등을 거론하였다(Bush, George W. “Statement by the President." White House. 2001b). 북한의 입장에서 부시정부의 강경하고 폭넓은 대북정책은 제네바합의 등 클린턴정부때 북미관계의 진전을 사실상 무시하고 북한의 先양보를 요구하는 압박으로 이해되고 있다.

부시대통령의 대북정책 요강이 발표된 이후 북한은 미국의 입장을 비난하면서도 뉴욕의 유엔 채널을 통하여 양국간 비공식 접촉을 통해 대화의 가능성을 탐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9.11테러의 발생과 미국의 대테러전의 전개 그리고 2002년 10월 켈리 차관보의 방북 이후 북한의 소위 ‘핵개발 시인’ 파문으로 양국은 대화국면을 조성하지 못하고 외교적 공방을 계속하였다.

부시정부는 켈리 방북 이후 북한 핵문제에 대하여 두 가지 입장을 제시하고 지금까지 이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첫째, 미국은 북한에 모든 핵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비가역적인(irreversible) 방법으로 포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만약 북한이 이 요구에 행동으로 답할 경우 양국관계의 정상화를 향한 ‘과감하고 새로운 접근’을 모색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힌 바 있다(Armitage, Richard L. “Weapons of Mass Destruction Developments on the Korean Peninsula.” Testimony before the Senate Foreign Relations Committee. February 4, 2003).

둘째, 미국은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 등 북한의 대미 직접 협상 요구를 일축하고 북핵문제의 해결을 일단 외교적으로 모색하지만 그것을 다자적으로 접근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부시정부는 북핵문제를 다자적 틀로 접근하는 이유로 먼저, 북핵문제를 영변의 플루토늄 핵시설에 제한해서 타협을 모색해온 클린턴정부의 대북정책에 한계가 있으며 둘째, 북핵문제 자체는 NPT의 적용과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는 국제적 문제이며 셋째, 북한의 핵개발은 동북아의 안정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기 때문에 주변국들이 북한의 핵개발 저지에 참여해야 하고 넷째, 북미간 핵협상은 북한의 배신과 다른 핵개발 희망 국가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줄 가능성 등을 들고 있다(Kelly, James A. “Regional Implications of the Changing Nuclear Equ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Testimony before the Senate Foreign Relations Committee. March 12, 2003b).

부시정부의 이와 같은 대북 핵정책에 유의할 점은 북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외교적 접근이 반드시 평화적 해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부시행정부는 북한과 ‘대화’할 수 있지만 ‘협상’은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과 비정부기구의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미국의 대북 핵외교가 북한의 핵포기를 위한 압박수단의 하나일 뿐만 아니라 군사행동으로 가는 정당화 과정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이런 의혹은 미국의 이라크 공격으로 증폭되었으며, 실제 미국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다자회담 외에도 북핵문제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구상(PSI: 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을 통한 대북 봉쇄 훈련 등을 병행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대북 핵정책에서 유의할 또다른 점은 미국은 북한 핵문제를 대북정책의 일차적 관심사안으로 삼고 있지만 그것이 유일한 대북 관심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부시정부는 북한 핵문제가 현재 가장 심각한 문제이지만 북한은 이밖에도 미사일의 생산 및 수출, 화학무기, 인권, 주민의 기아 등의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어렵고 복잡한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곧 양국관계 개선의 출발점로 삼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암시해주고 있다. 요컨대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위협론은 핵문제로 국한되지 않으며 아래와 같은 목적을 위해 다른 이슈들을 통해 재생산될 가능성이 높다.

2. 중국 견제와 반확산체제 확립의 명분

그렇다면 미국의 동북아전략에서 북한 핵문제, 나아가 대북정책은 어떤 전략적 의미를 갖는가? 물론 미국의 대북 핵정책은 부시 행정부가 말하는 대로 그 자체로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 정착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그런 공식적 입장 이면에 있을 수 있는 정책 의도를 살펴보는 것이 미국의 대북 핵정책을 보다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앞에서 논의를 미뤄둔 미국의 아태정책에서 북한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잠시 생각해보도록 하자. 부시 대통령이 서명한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의 5장에는 ‘불량국가’의 속성을 규정한 후 구체적으로 북한을 이라크와 함께 거론하고 있다. 보고서는 “북한이 지난 10년 동안 세계 최고의 탄도미사일 확산국이었으며, 미사일 개발시험을 끊임없이 전개해오면서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해왔다”고 평가하고 있다.

여기서는 부시대통령이 ‘악의 축’으로 낙인찍은 이란이 빠져있는데, 이는 미국이 상정하는 두 개의 분쟁 우려 지역인 중동과 동북아에서 미국이 어떤 국가를 중심으로 양대전쟁 전략을 준비하고 있는지를 웅변해주고 있다. 미국은 또 NPR에서도 북한과 이라크를 지목하면서, 북한의 남한 공격시 대북 핵선제공격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 미국은 북한의 공격이 선제공격인지 보복 대응공격인지, 그리고 그때 북한이 사용하는 무기가 대량살상무기인지 아니면 재래식 무기인지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대북 핵정책과 관련하여 이 두 보고서에서 유추할 수 있는 점은 첫째, 북한 핵문제가 미국의 반확산전략의 핵심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고 그 성격은 동북아지역의 지전략적(geo-strategic) 맥락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북한 핵문제는 미국의 동북아전략의 일차 목표인 중국 견제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으며 미국이 동북아에서 추진하는 반확산체제 확립의 주요 고리이자 명분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미국이 북한 핵문제를 중국 견제의 일환으로 삼고 있다는 점은 미국의 동북아전략이 중국의 군사적 역할 확대에 의한 지역 세력균형의 타파 가능성을 차단하는데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실제 미국은 대테러전쟁을 벌이면서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관계 증진, 일본 및 한국과의 동맹관계 강화, 동남아국가들과의 관계 강화, 서남 및 중앙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 등을 통해 중국을 전방위적으로 포위하는 외교적․군사적 망을 형성하고 있다. 물론 미중 양국은 대테러전쟁을 통해 건설적 관계로의 발전을 천명한 바 있지만 이는 말 그대로 테러문제에 한정된 것이다. QDR과 NPR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부시정부는 중국을 동아태지역에서 핵선제공격이 필요할지도 모를 잠재적 위협국가로 간주하고 있으며, 대만에 대한 안보공약을 재확인하며 대만에 적극적인 무기공여를 전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 핵문제가 어떻게 미국의 중국 견제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미국은 북핵문제에 대하여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명분으로, 핵선제공격 독트린을 힘으로 하여 중국의 핵확산 가능성과 북중간 군사협력을 방지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NPT와 핵실험금지조약에 가입하였지만 추가적인 핵 보유나 핵기술의 수출 등 비확산규범을 위반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Roberts, Brad, Robert A. Manning and Ronald N. Montaperto. 2000. "China: The Forgotten Nuclear Power." Foreign Affairs. Vol. 79, No. 4. 2000, 53-63).

미국은 그동안 중국이 파키스탄과 북한 등에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 기술을 유포한 혐의를 포착하여 여러 차례 중국에 항의하거나 관련 제재를 단행한 바 있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에 북한의 핵포기 압력을 촉구하면서 중국이 더이상 핵 확산을 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효과를 도모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은 중국과 북한간의 군사협력에도 높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실제 북한과 중국은 핵선제공격 독트린, 포괄적 MD 수립 계획, 그리고 북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압력 등 부시정부의 일방주의적 외교안보정책이 가시화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장쩌민 총서기의 상호방문, 군 고위인사의 상호협의 등을 통해 군사협력을 증대해왔다. 말하자면 미국에게 북핵문제는 중국의 핵무기 통제를 통하여 중국의 군사적 역할 확대에 따른 지역 세력균형의 붕괴를 방지하는데 적절한 고리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른 한편, 북핵문제는 미국의 반확산체제의 확립을 촉진하는 이유로 활용되고 있다. 즉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의 핵 위협은 동북아에서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위협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 지역 국가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공동 대응에 협력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미국은 2002년 10월 북핵문제의 재현 이후 현상적으로는 다자회담을 통한 외교적 해결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주목받지 못한 것이 미국이 본토와 동북아를 포괄하는 MD 구축 계획을 본격화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부시정부 들어 적극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MD계획은 매년 예산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계획 달성 시한인 2008년을 목표로 단계적인 사업에 돌입한 상태이다. 현재 계획상으로는 상승 및 중간단계의 요격체계는 2008년 이전에 배치될 것으로 예상된다(한국전략문제연구소. 2002.『동북아 전략균형』. 서울: 한국전략문제연구소.78-80).

부시정부는 북한의 핵개발 위협을 명분으로 동북아 동맹․우방국들에게 MD계획에 적극 참여할 것으로 요구해왔다. 미국의 군사기술적 지원으로 ‘독자적’ 미사일방어 체계를 개발해온 대만은 미국과 MD 연대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다(서보혁. 2001. “위협과 방어 사이의 국가이익: 미국의 미사일방어망 계획과 동북아 국제정치.” 김신 엮음.『동아시아의 군비경쟁과 안보』. 서울: 성공회대학교 아시아NGO정보센터. 81-82).

또 김대중정부로부터 MD계획 참여를 거부당한 바 있는 미국은 노무현정부에 MD계획 참여를 다시 요구할 것으로 보이고, 실제 한국 해군과 주한미군은 MD와 관련된 일부 무기를 도입하고 있다. 한편, 미국과 전역미사일방어망 계획을 공동 연구해온 일본은 2003년 들어 북핵문제, 납치문제 등을 계기로 조성된 반북여론을 바탕으로 MD개발을 공식 천명하고 미국과 더욱 구체적인 협력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이 모두 미국과 MD 구축을 본격화한다면 동북아지역에서 미국 주도의 반확산체제는 빠르고 강력하게 확립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북핵문제는 부시정부가 비확산문제에서 북한정권의 태도 변화는 물론 북한정권의 교체 혹은 붕괴를 도모하는 직접적인 수단인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만약 북핵문제가 다자회담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부시대통령이 재선될 경우 미국은 대북 군사행동을 도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부시행정부 안팎의 강경인사들은 벌써 이런 선택치를 제기하고 있다. 결국, 부시정부는 북핵문제를 활용하여 이상과 같은 세 가지 효과를 기대하면서 이 지역에서의 압도적인 영향력과 지위를 확보함으로써 안정적이고 전반적인 국가이익 달성을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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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대 국제관계학과에서 “탈냉전기 북-미관계에 관한 구성주의적 접근”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평화네트워크 운영위원이다.
전공분야는 북한정치, 남북관계, 국제정치이론이다.
주요 저작으로는『한반도의 선택: 부시의 MD구상, 무엇을 노리나』(2001, 공저),『전쟁과 평화』(2001, 공저), “부시행정부의 대북정책 결정구조”(2002), “탈냉전기 북한의 대미 정체성 정치”(2003), “벼랑끝외교의 작동방식과 효과”(200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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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03년 11월 21일 한신대에서 개최된 민주사회정책연구원 개원 3주년 기념 학술회의 ‘미국의 패권, 기로에 선 한미관계’에서 발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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