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4. 12] [1인시위 소감-임보라목사]1인 시위를 마치고
평통사
view : 1432
임보라 향린교회 목사님
교회 게시판에 자주 오르는 일인시위 사진을 볼 때마다 '나도 참여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생각에서부터 실천에 이르기까지는 몇 달씩이나 걸렸다.
일단은 출근하지 않는 날인 월요일로 날짜를 국한하다보니 꾀가 났다.
월요일엔 밀어두었던 집안 일도 해야했고, 아이들과도 놀아줘야 했기에....
결국 이렇게 꾀만 부리다가는 생각만으로 그치겠다 싶어서 일단 운을 띄기 시작했다.
"어느 월요일이고 하루 제게 기회를 주세요" 이렇게 말을 해놓고 1인 시위 날짜를 기다렸는데,
바로 다음 주 목회자 회의에서는 목회자 전원이 참여하기로 결의를 하게 되었다.
내게 주어진 시간과 장소는, 4월 12일(월) 낮 12-1시, 국방부 앞.
가능한 여러 집회에 참석하려고 노력해 왔지만 나 한사람이 집회의 주체가 되고
집회의 유일한 참석자가 되기는 이번이 처음.
"구호를 외칠까? 아니면 노래를 불러볼까?" 여러 생각들도 오고갔다.
한미관계, 용산기지, 주한 미군 등을 떠올리면, 여러 가지 일들이 떠오른다.
일단,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결혼할 때까지 살던 용산구 동부이촌동은
용산기지 중 골프장 바로 맞은 편이었다.
복도에서 내다보면 푸르른 초장이 펼쳐져 있던 곳,
울창한 나무들과 작은 호수들이 어울어져 있던 곳.
저렇게 아름다운 곳에 왜 아무 때나 못 들어가는 것인지 이해를 할 수 없던 곳.
그곳은 '누구네 아빠를 따라 들어가면 들어갈 수 있다' 라는 얘기도 있었고,
10월의 할로윈 데이에는 주한 미군 장교들이 살고 있던 외인 아파트촌에 들어가
주점부리 사탕을 큰 봉지에 담아와 다음 날이면 학교에서 뿌리고 다니던 아이들도 있었다.
여름에는 그 아파트 촌 한가운데에 있던 야외 수영장에 가기 위해 인원제한에 걸릴까봐
일찍부터 준비하고 입장을 위해 길게 줄을 섰던 기억도 난다.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일이긴 하지만, 그게 그 동네의 문화였다.
아주 옛날부터 있었던 쇼핑센터 안 지하에는 PX에서 나왔다는 미제 물건들이 즐비했었고
값이 싸지는 않았을 텐데 그 물건들을 쓰는 것이 세련되고
뭔가 남다른 생활 수준을 보여준다는 한참 잘못된 허영심들이 판치던 곳.
어디 그것 뿐이랴... 예민한 사춘기 때 난 라디오를 끼고 살았는데
주로 AFKN 방송을 많이 들어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음악을 듣기 위해서였는데 한국에서는 금지되어 있는 곡들이
AFKN 방송에서는 버젓이 나오곤 했었다.
그런 것들이 신기해서 그리고 가장 최신곡들을 들을 수 있다는 생각 하나로 열심히 들었다.
채널이 4개-7번, 9번, 11번 그리고 2번이었다-였던 당시에 공중파의 채널 하나가 AFKN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방송에서는 남녀 키스신도 나오기 힘들었던 때로 기억되는데
"AFKN에 나오는 드라마 뭐를 보면 굉장히 야한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더라" 하는 얘기도
학교에서는 심심치않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런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가졌던 생각은 자연스레
미국은 좋은 나라이고, 가보고 싶은 나라이고, 또 왠지 세련미가 철철 넘치는 나라였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다행히 미국에 대한 막연한 환상은 깨져갔다.
한국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미명아래
매우 불합리적이고 불평등한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현실.
그런의미로 주한 미군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용산기지가 이전되는 것은 마땅히 옳은 일이다.
그러나 그 이전이 한반도의 평화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 아닌
철저히 그들의 이익을 위한 동북아 패권 전략 속의 일부분이고,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확장 이전을 하기 위해서는 평택의 현부지도 모자르니,
충분한 토지가 공여되도록 해야 하며,
이전에 드는 모든 비용을 우리가 부담해야 한다는 미국의 오만불손한 태도와
이런 미국에게 제대로 된 목소리 한번 내지 못하는 한국정부의 굴욕적인 태도를
그저 앉아서만 보고 있어야 하나?
이전 비용이라고 된 테두리 안에는 사령 본부나 행정국 등의 시설만이 아닌
내가 보아왔던 그 모든 편의시설, 수영장, 골프장,
그리고 주한 미군들을 위한 아파트, 거기에 최신식 병원,
미군 가정들이 이사하는 개별 이사비용에, 오락시설에
그것도 모자라, PX가 이사하느라 장사하지 못한 손익금까지도 우리가 지불해야 한다고??
이 땅 곳곳에는 편의시설은 커녕, 기본적인 삶의 질을 논한다는 것 조차도
사치스럽게 여기는 이웃들이 지천인 이 나라에,
국민들의 혈세를 정말 써야할 곳에 쓰지는 못할망정
처치곤란의 오래된 무기를 울며 겨자먹기로 사들여야 하는 나라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호텔지어라, 최신식 아파트 지어라,
스트레스 풀게 오락실 지어라, 여가생활 즐기게 골프장 지어라....
한사람이 길거리에 1시간 정도 서있는 것으로
무엇이 바뀌겠냐고 물으실 분이 계실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1시간이라도 다리품 팔아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언제나 그곳에는 그 시간만 되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한 목소리로 꾸준히 몸으로 말하고 있는 그 누군가가 있다라는 사실만으로도
온 몸이 쭈삣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사실, 처음하는 1인 시위라 긴장하기도 했지만, 막상 참여하고 나니,
첫 발을 내딛는데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자연스럽게 그리고 큰 부담을 갖지 않고
시작할 수 있는 일종의 생활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이 1인 시위는 꼭 한사람이 한시간을 꽉 채워야 하는 것도
그리고 꼭 정해진 시간이 아니더라도
참여가 가능한 분의 일정에 맞게 얼마든지 조정될 수 있다고 하니
시간이 허락되는 분들은 2인 1조가 되어 하루 30분이라도
서있기가 불편하시거나 두 사람만 있기도 좀 쑥쓰럽다고 느껴진다면
4인 1조가 되어 하루 15분씩이라도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일단, 용산기지 이전 비용 전액 부담 반대 1인 시위는
8차 미래한미동맹회의가 개최될 예정인 5월 7일까지 계속 된다고 한다.
여건만 허락된다면 많은 분들이 참여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와 더불어 사회부가 주관할 예정인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1인시위>도
국보법이 철폐되는 그날까지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