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6/10] 주한미군 감축이 한반도 냉전 부른다[시사저널]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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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감축이 한반도 냉전 부른다?
유사시 북한 공격 능력 극대화 위해 지상군 재배치 호전적인 ‘작계-5027’에 김정일 제거 작전 추가
노무현 정부가 또 시험대 위에 섰다. 주한미군 지상군 대규모 감축이 현실로 다가옴에 따라 ‘군비 경쟁의 수렁이냐, 아니면 탈냉전의 본격화냐’(연세대 박명림 교수) 갈림길에 선 것이다. 이 기로에서 필요한 것은 미군 전력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이냐 하는 ‘빈칸 메우기’ 식의 단순 대응이 아니다. 미국의 군사전략가들이 냉전 직후인 1993년 시행했던 것과 같은 ‘군사 전략 전면 재검토(Bottom up review)’가 절실한 단계다.
그러나 정부가 최근 대책으로 제시하는 ‘협력적 자주 국방’ 계획은 발상의 전환이라기보다는 빈칸 메우기에 가깝다는 지적이 많다. 내용적으로는 미국측이 그동안 ‘한국군 현대화’ 명분으로 요구해온 미국제 첨단 무기 구매 압력을 수용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재래식 전쟁 터질 가능성 현저히 줄어
현재 한반도의 군사 정세는 서로 다른 여러 차원의 논리들이 얽혀 있어 복잡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 가지씩 풀어헤쳐 보면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우선 주한미군 지상군의 감축 배경부터 들여다보자. 일부 언론은 ‘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계획’(GPR)이니 하면서 어렵게 설명하고 있지만 그 출발은 단순 명쾌한 것이었다. 바로 한반도에서 남북 간에 재래식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현저하게 줄어들었기 때문에 미군의 이같은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군사전략가들이 미군 지상군 감축 및 철수를 재론하기 시작한 것이 2000년 6월의 남북 정상회담 직후부터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미 그 해 7월부터 미국 국방부는 한국에서 지상군을 감축하기 위한 계획 작성에 착수했고, 그런 계획의 일단들이 그 해 10월부터 미국 내의 각종 군사 관련 저널을 장식했다. 커트 캠벨 전 국방부 차관보나 군사 전문 기자인 리처드 할로란 등이 당시 발표한 글들을 보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을 연상케 하는 논의들이 이미 다 들어 있다.
당시 미국의 군사전략가들을 사로잡은 화두가 바로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새로운 정세에서 주한미군 지상군을 어디에 배치하는 것이 효율적이냐 하는 것이었다. 한반도에서 재래식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감소했다는 대전제 아래 이루어진 이같은 발상이 최근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2월17일자 미국 디펜스 뉴스는 ‘주한미군 재배치는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이 낡아 재래식 공격 위협이 감소했기 때문이라는 미국 국방부의 믿음을 반영한 것’이라고 밝혔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남침 위협이 현저히 줄었다는 것은 한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 같은 대량살상무기? 아니다. 그 이전의 문제가 있다. 한국 국방부의 군사 전략이 그동안 진전되어 온 남북 화해 협력 분위기와는 무관하게, 오히려 정반대 방향으로 치달아 왔다는 사실이다. 한국군은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더 정확하게는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인 ‘작계-5027’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1994년부터 시작되었다는 작계-5027은 2년마다 내용이 수정되어 왔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국민의정부가 출범한 1998년부터 작계가 공격적으로 바뀌었다. 그 이전만 해도 북한이 공격해올 경우 이를 격퇴하고 휴전선 이북으로 몰아내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작계 5027-1998’부터는 적을 끝까지 추격해 북한 전역을 점령하고 군정을 실시한다는 내용으로 확대된 것이다. 유사시 주한미군 3만7천명에 최대 69만명의 미군을 증원한다는 군 증강 계획 역시 이때부터 마련되었다.
일단 공격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작전계획은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더욱 호전적인 방향으로 바뀌어 왔다. 코넬 대학 서재정 교수(현재 연세대 교환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부시 행정부의 군사 정책은 ‘신 롤백 전략’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신 롤백은 기존 롤백 전략의 핵심인 점령정책에다 선제 공격을 추가한 것이다. 신 롤백 전략은 ‘작계 5027-2002’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 제거 작전을 추가’하는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또한 지난해 7월22일 미국 군사 전문 웹 사이트인 ‘글로벌 시큐어리티’가 공개한 바에 따르면, 부시 행정부는 기존 전면전 시나리오인 작계-5027 외에도 △평상시 저강도 군사 전략인 작계-5030 △북한의 핵 시설이나 지휘부에 대한 정밀 타격 전략인 작계-5026 △대량 난민 유도를 통한 정권 붕괴 계획인 작계-5029 등을 세워 운용해 왔다. 이대로라면 한반도에서 평시와 전시를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항상적인 준전시 상태가 유지되어 온 것이다.
작계-5027 완성 돕는 ‘협력적 자주 국방’
그렇다면 최근의 주한미군 지상군 감축 또는 재배치는 이같은 일련의 작계 시리즈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계-5027이 가지고 있는 공격적이고 호전적인 성격이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인 래리 닉시는 디펜스 뉴스에서 ‘(미군 병력 재배치로) 유사시 작계-5027에 따른 미국의 침공 능력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한미군 지상군 재배치의 근거가 되는 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을 들여다보자. 지난 2월 제7차 ‘한·미 미래동맹정책 구상회의’에서 미국측은 앞으로 해외 주둔 미군 기지를 △ 대규모 전력 투사 근거지(PPH) △ 주요 작전 기지(MOB) △전진 작전 거점(FOS) △안보협력 대상 지역(CSL) 등으로 나눌 계획이며, 한국은 전력 투사 근거지와 주요 작전 기지 사이, 또는 주요 작전 기지에 해당한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앤디 헌 미국 국방부 전략담당 부차관보가 전력 투사 근거지 후보 지역이 미국 본토와 괌·영국·일본·호주 등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같은 미군 재배치 계획의 배후가 지난 3월 말 LA 타임스가 보도한 ‘1-4-2-1 전략’이다. 이 신문에 따르면, 부시 행정부는 2002년 5월 마련한 ‘방어계획지침(DPG)’이라는 군사 전략 계획을 수립하면서 이 전략을 채택했다.
여기서 1은 미국 본토에 대한 완전 방어를 뜻한다. 4는 전세계를 동북아·동남아·중동·유럽 4개 권역으로 나눈다는 것이다. 이들 지역에 미군을 전진 배치해 가상 적의 침략 및 위협을 사전 억제한다. 2는 네 지역 중 두 지역에서 전쟁이 발생할 경우 전진 배치된 미군을 두 곳에 집중해 단기간에 승리를 거둔다는 전략이다. 마지막의 1은 이 두 전쟁 중에서도 또다시 미국이 선택하는 한 곳에 군사력을 총집중해 정권 교체와 점령을 수행함으로써 결정적 승리를 거둔다는 계획이다.’(서재정 교수 ‘미국의 1-4-2-1 군사전략’ 참고)
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에서 언급된 전력 투사 근거지 주요 작전 기지의 의미가 이 1-4-2-1 전략에 잘 나타나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한반도는 ‘1-4-2-1’ 중 실제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마지막의 2 또는 1에 해당하고, 따라서 북한은 ‘미국의 군사력을 총집중해 정권 교체나 점령을 할 대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4월6일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1-4-2-1 전략’이 북한·중국을 겨냥한 핵 및 상용 무기에 의한 선제 타격 계획이라며 ‘과거 이라크·북한을 두 개의 지역 전장으로 설정하던 데에서 이라크 붕괴 후에는 이란·북한이 대상이 되고 있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다시 말해 주한미군 지상군 감축과 재배치는 ‘1-4-2-1 전략’과 그 하위 체계인 작계-5027에 따라 유사시 북한으로 군사력 집중을 쉽게 하기 위해 미군 지상군을 기존 비무장지대 방어 임무로부터 해방시킨 것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대신 비무장지대는 한국군이 미국으로부터 첨단 무기를 구입해 담당하라는 얘기다. 앞의 디펜스 뉴스에는 미국이 한국군에 이양할 열 가지 임무에 따라 한국군이 구입해야 할 무기의 윤곽까지 제시되어 있다.
정부가 제시하는 ‘협력적 자주 국방’ 계획 역시 미국이 제시하는 한국군 현대화 계획을 수용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은 호전적이고 공격적인 작계-5027에 대한 보완과 완성을 지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작계-5027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것이 6·15 정상회담 이후 남북 화해 협력이라는 한국의 국가 전략과 배치한다는 점이다. 작계-5027은 미국의 세계 전략 및 동북아 전략에 충실한 것이기 때문에 미국의 국가 이익과 전략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남북 화해 시대에 맞게 수정되지 않으면 안된다. 새로운 방위예산 책정 역시 그에 준해야 한다.
군사전문가들에 따르면, 냉전 시대 소련에 대한 미국의 군사 전략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당시 미국은 소련이 공격할 경우 이를 방어 격퇴하고 소련의 주요 군사 시설에 대해 대량 보복할 정도의 능력을 추구했지, 모스크바를 점령해 군정을 실시할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작계-5027이 1998년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발상을 바꾼다면 군사 예산이 늘어나는 폭도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발상의 전환은 한국 정부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무엇보다도 북한이 협조해야 한다. 우선 미국의 공격적 ‘작계 시리즈’의 명분이 되고 있는 핵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 물론 미국은 핵 문제를 질질 끌 것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북한은 국제 사회를 상대로 핵 포기 의지를 계속해서 천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머지 않아 열릴 남북 장성급회담과 같은 군사회담을 정례화해야 한다.
한국, 작계-5027 내용 수정 교섭해야
북한은 그동안 군사 문제는 미국과 해결할 문제라고 주장해왔지만 유감스럽게도 미국은 그럴 의사가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는 ‘질러가면 70리, 돌아가면 30리’라는 옛말처럼 돌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즉 남한과 군사 대화를 정례화함으로써 사실상의 긴장 완화와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한 조처를 취해 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최근 한성렬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차석 대사가 남북한과 미국 3자가 참여하는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한 것은 이런 점에서 고무적이다.
1998년부터 시작된 금강산 관광은 비군사적 교류 협력이 군사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좋은 사례가 되었다. 한반도 서부 지역에서도 개성 관광의 문호를 활짝 열어 비무장지대가 점차 평화지대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전세계에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처럼 남북간 긴장 완화와 평화 분위기가 고양되는 것을 바탕으로 한국 정부 역시 미국과 교섭해 작계-5027을 1998년 이전 수준으로 되돌려야 한다. 북한이 남침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진 마당에, 평양 점령 계획이라는 무모한 전략에 예산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안보에서의 최소충분성의 원칙’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press.com
[ 2004/06/03 762 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