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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31-1/1] 평택지킴이 활동 보고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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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1일(토), 오늘은 대추리 주민총회와 노인회 총회가 있는 날이다.

오전 9시. 총회가 열리는 대추리 노인정으로 가보니 주민들 몇 분이 와 계시다.
낯익은 분들이 계셔서 인사를 드리고 부엌으로 들어가니 부녀회원들이 자욱한 김 속에서 음식 준비를 하고 있다. 몇 차례 수인사를 한 적은 있지만 아직은 서먹하다. 부엌일을 돕겠다고 하는는데도 자꾸 안으로 들어가란다. 계속 고집을 피울 수도 없어서 일단 부엌과 연결된 방으로 들어가니 할머님들이 여러 분 와 계시다.
지난 여름 김처장 집들이 때 뵈었던 분들이 알아보시고 반갑게 맞아주신다. 손을 잡아주시며 "이렇게 고생들을 해서 어떡해. 우리야 우리 일이라 그렇다지만 자기들 일도 아닌데 집 떠나 여기 와서 살기까지 하니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하시는 할머님들. "아녜요, 이건 우리 모두의 일이에요."라고 답하고 싶은데, 괜시리 코끝이 찡해 말문이 막힌다.
안씨라고 자신을 소개하신 할머님이 "내가 지금 팔순이야. 우리 할아버지랑 둘이 사는데 우리보고 여기서 나가라면 어디를 가? 여기 있으면 이렇게 노인정에 와서 친구들이랑 이야기도 하고 놀며 살다 편하게 갈 수 있지만 여기서 쫓겨나면 우리 두 내외 길거리에서 죽을 수밖에 없어."라고 하신다. 자주 듣던 이야기지만 들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다.

방에 조금 앉았다가 다시 부엌으로 나가본다. 대추리 여성 3인방이라 불리는 김지태, 김택균, 신종원 세 분 부인이 다 와있다. 마침 병원에서 허리 치료를 하고 온 김처장이 인사를 시켜주어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눈치껏 이런 저런 잡일을 도왔더니 "아줌마, 물 좀 떠줘요"라고 자연스럽게 나온다.
마을총회가 어떤가 궁금하여 2층 강당으로 올라가봤다.
100분이 될까. 주민총회가 한참 진행 중이다. 새해 동네 일을 맡을 이장 선출을 막 마쳤다고 한다. 김지태 이장이 재선되었고, 3일부터 시작되는 트랙터 순례 이야기를 하고 계시다.
"한 열 대 가려고 했는데 잘 안됐슈. 대여섯대 갈 건디 돈이 한 천 오백만 원 정도 들어가유. 그래서 경비 문제를 상의드릴려구 그러유. 마을 돈 남은 거 중에서 한 오백만 원을 당장 필요한 데 쓸 행정비로 내놓고 나머지를 다 경비로 했으믄 하는데 어떤가요?"
어디나 돈이 제일 큰 관심사다.
"아, 뭔 돈이 그리 많이 든댜?"
주민들의 즉각적인 반응이 나온다.
김지태 위원장이 인원, 장비, 시기, 경로, 방법, 순례하는 지역의 지원 현황 등을 알기쉽게 설명한다. 그러자 주민들은,
"여럿이 오래 여러군데 다녀서 그러누만. 그럼 그렇게 해야지 뭐."
하고 이해를 하신다.
농사일에 대한 행정적인 논의가 이어진 후 김지태 위원장이 이의신청 이후에 이제 각 집으로 그에 대한 행정적 절차가 진행될 것이라는 점과 그와 상관없이 전 주민의 이름으로 행정소송을 할 거란 말을 꺼내자 한 아주머니가 손을 든다.
"나는 요즘 잠을 못자유. 우리 부부는 이자 이혼하게 생겼슈. 나는 끝꺼정 가자고 허구, 애 아빠는 돈 받고 끝내자는 거유. 그래 우리가 많이 싸웠슈. 근디 이혼을 헐 수는 없쟎유. 그래 어쩔 수 없이 나도 나가게 생겼는디, 어쩔라문유?"
너무도 솔직하고 당당한 질문이다.
"상관없슈. 아줌니는 어떻든 법적으로는 끝꺼정 싸운 거유. 우리가 이의신청 한 거는, 법적으로 끝까지 한 거를 말하는 거니까. 돈 받든 안 받든 행정소송은 할 꺼구, 아무 상관 없슈."
그 말에 그제서야 아주머니가 안심이 되는 듯 고개를 주억거린다.
이런 걸까, 대중의 힘, 대중의 품이라는 게. 최선을 다하고 솔직한 이웃과 그에 대해 이해하고 품어주는 마음을 한꺼번에 본다. 이 싸움은 이미 이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마을 총회가 끝나자 노인들은 노인회 총회를 위해 아래층 온돌방으로 내려오시고 젊은(?) 남자들은 마당에서 고기를 굽기 시작한다. 드럼통에 화덕을 얹고 숯불에 굽는 고기다. 10시 30분밖에 되지 않았는데 남자들은 고기를 안주로 술을 시작한다.
주민대책위 분들이 부엌으로 들어간 나를 끄집어내어 술을 권한다. 처음 보는 주민분들과 인사을 나누며 아침술(!)을 시작했다.
부엌에 들어가니 부녀회원들이 부산하다.
"야, 밥을 안했잖아."
어디나 큰 일을 치르려면 결정적(!)인 실수가 있나보다.
"콩나물 삶은 게 이상해. 비린내가 나잖아."
이런, 실수가 하나가 아니네.
"이 며느리들이 왜 이래?"
노인회 할머님들이 걱정이시다.
"예. 저희가 시집온 지 며칠 안 돼서 그래유."
김지태 위원장 부인이 넉살을 잡으며 넘어간다.

부엌일을 돕다가 노인회 총회에도 들어가 보았다. 안방, 마루, 건넌방으로 꾸며진 1층에 30-40 분 정도 되는 노인분들이 앉아계신다. 안방에는 주로 남자노인들이, 건넌방에는 주로 여자노인들이 나누어 앉으셨는데, 안방에서 하는 말이 건넌방에서는 도통 들리지 않는데도 할머니들은 옆 방에서 박수를 치면 함께 치고 옆 방에서 '예'하면 따라서 '예' 하신다. 20와트 짜리 앰프라도 사다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회장님이, 조카가 협의매수에 응한 이상, 부끄러워 더 이상 노인회장을 맡을 수 없다는 말에 노인들은 모두 무슨 소리냐며 만류한다. 노인들은 "조카가 그러한데도 회장님이 얼마나 열심히 했냐, 그게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며 노인회장을 전폭 지지해나섰다. 동지(!)들의 뜻에 따라 재선된 노인회장님이 그럼 미군기지 싸움에 끝까지 함께 가자고 하시고, 노인분들은 모두 우렁찬 박수...
총회자료를 들여다보니 한 해동안 노인회에서 쓴 경비 내역서다. 누가 얼마를 내서 어디에 썼다는 내용이 꼼꼼하게 빼곡이 써있다. 그 내용 중에 눈에 "미군기지 반대 지원금"이라는 항목이 있다. 지출 200만 원. 보고서를 봐서는 한 해 총 얼마를 썼는지 알 수는 없었는데, 약 400만 원 정도 되는 것으로 보였다. 그 중에 반을 투쟁기금으로 내놓으신 거다.

노인총회까지 끝나자 본격적으로 점심이다. 소머리국밥에 약간 비린내 나는 콩나물 무침, 여러 집에서 모아온 대추리 김치, 인절미 떡과 돼지고기 보쌈으로 상을 본다. 마당에서는 숯불 돼지고기도 구워낸다. 소주가 불티나게 나가고, 한참을 정신없이 일하다보니 어느새 나는 대추리 주민이 된다. 한 아주머니가 나더러 "여기 4반에 이사온 분이슈?"한다.....
점심상들을 치우니 오후 2시. 문정현 신부님과 함께 고 전용철 열사 장례식에 나간 사람들을 기다리며 부녀회원들이 부엌 큰 솥 주변에 모여앉아 소주잔을 기울인다. 어제 밤 술먹고 늦게 들어온 남편 이야기, 몸 아픈 이야기, 서로 건강을 챙겨주는 이야기들....그 이야기들 중에 미국에 대한 분노, 남편들에 대한 걱정이 문득문득 뭍어난다......

잠시 짬을 내어 몸이 편찮으시다는 도두2리 이상렬 이장님댁에 갔다. 이장님 댁은 도두리가 훤히 보이는 2층으로, 옥상에 오르면 마을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낱낱이 볼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지난 봄 지장물조사 때 국방부 놈들에 대한 분노로 밤새 한 잠도 주무시지 못했다시는 이상렬 이장님은 듣던 대로 꼿꼿하시기가 대쪽같으신 분이다.
"내가 여기 이 집을 지었는데, 국방부 놈들이 나를 이 집과 함께 쓸어서 여기 묻기 전까지는 절대로 못나가."
말씀 마디마디마다 국방부와 정부에 대한 분노가 활활 타오른다. 그 타오르는 분노가 당신의 육신까지 태워 병을 얻으신 게다.
요즘엔 병원에서 주는 약을 드시고 많이 좋아지고 잠도 좀 주무신다고 하시면서도 도두리는 아직 주민총회를 못했다며 걱정이시다. 평택 투쟁에서 이미 얻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시고 평택 투쟁을 포함해서 이 땅 전체의 미군문제 해결에 나서시기 위해서라도 건강을 챙기시라고 말씀드리자 "그렇지않아도 우리 저 양반, 이제 이 싸움 이기고나면 그 길로 나설 거라 하세요."라며 부인이 옆에서 거드신다.
집에서 지으셨다는 쌀과 찹쌀을, 여러차례 마다하는데도 굳이 실어주시는 두 분을 뒤로 하고 대추리로 돌아오는데, 길 옆으로 펼쳐진 너른 겨울 논이 "나는 계속 쌀을 낳을 거야"라고 가만히 말하는 것 같았다.

대추 초등학교에 마련된 주민대책위 사무실에도 들러보았다. 김택균 사무국장을 선두로 트랙터 순례 준비로 분주하다. 장도정 부장은 평택에 물건을 사러 나가고 없었다. 이 투쟁을 놓고 주민들 사이에 분분한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어떻든 주민들의 지혜가 모아져 만들어낸, 귀중한 투쟁이다. 김택균 사무국장은 "한겨레, 중부, 경기일보 등 기자들이 전화를 많이 해와요. 평택대행진때보다 언론의 관심이 많군요." 한다.
트랙터가 낼 수 있는 최고속력은 시속 25킬로. 운전이 어렵지는 않지만 그 정도 속도에서, 높은 곳에 앉아 장시간 운전하는 일은 위험하다고 한다. 운전석 옆 좌석이 없어 졸 수도 있고, 잘못하면 전복되기도 한다고. 그래서 하루에 80킬로 정도를 갈 생각이라고 한다. 여기에 맞추어 경로와 일정을 짜는 일이 만만치 않았으리라. 장 부장 책상 위에 펼쳐진 준비서류에 적힌 경로 중 군산, 광주, 대전이 눈에 들어온다. 주민을 포함해서 참가인원이 30명이 넘는다고 한다. 전북, 광주, 대전 평통사를 발동시키고 중앙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안동에 가까운 곳은 어디지? 어떤 걸,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이 뜨거워진다.

평통사에게 준다는, 월요일이면 빈다는, 꽤 괜찮은 집을 둘러보고 부엌에 돌아오니 오후 5시. 문정현 신부님 일행이 도착하면서 다시 부엌은 분주해진다. 변대표님도 그 일행과 함께 오셨다. 그냥 그대로 저녁식사가 된다. 점심 때보다 호흡이 더 잘 맞고 내 손도 더 빨라졌다. 대추리 여성 3인방은 참으로 일꾼들이다. 눈짓으로 손짓으로, 헌신적으로 호흡을 척척 맞춰 일하는 그녀들의 기세에 나도 신명이 나서 한 몫을 했다. 오늘 하루 치른 손님이 200명이 넘는 것 같다.
저녁식사 정리를 다 하고, 대책위 식구들, 외지에서 오는 사람들 몫을 챙기고, 노인정에도 남겨둘 음식까지 깔끔하게 정리하여 챙겨놓고 나니 오후 7시 30분이다. 맨 뒤까지 남은 사람들을 보니 역시 3인방이다. 대책위 식구들 챙겨줄 음식을 들통에 챙겨들고 대추분교 바로 뒤에 있는 김택균 사무국장 집으로 갔다.
내가 "이제 촛불집회 가야죠?"라고 하자 "이제 금방 끝날텐데 너무 늦었다"면서 차나 한 잔 하자고 잡는다. 일을 잘 하는 사람들이라고는 해도 30대 후반, 40대 초반의, 시부모님들 모시고, 서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큰 살림하느라 힘든 여성들이다. 게다가 요즘엔 외지에서 오는 사람들도 부쩍 늘어 그 챙기는 일도 만만치 않은 터다.
"아유, 나는 오늘처럼 매해 총회를 이렇게 한 날에 하면 소원이 없겠어."
김지태 위원장 부인의 말은 더 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차 한 잔 하며 쉬고 싶은 마음은 나도 마찬가지여서 부엌바닥에 주저앉으니 몸이 천근 만근이다.
차나 한 잔 하자고 시작한 상차림은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술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옆집 아줌마같이 편해서 너무 좋다"는 여성 3인방의 평가에 나 역시 너무 고무되어 술이 술술 넘어가니, 분위기 좋은 술상에는 손님이 꼬이는 걸까? 송년 촛불집회를 마친 사람들이 찾아들어 4인으로 시작한 술상에는 대추리 풍물패 사부님과 평화바람 식구, 김재복 수사님, 그리고 손주 목욕시키다가 양주병 들고 등장한 주민, 변대표님까지 모두 11명이 둘어앉았다. 우리는 자정이 다 되도록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11시 55분, 촛불집회를 마친 다른 분들이 모여 송년회를 하고 있다는 노인정으로 가보니, 노인정 송년회는 끝이 났고, 미군기지가 보이는 낮은 언덕 위에서 문정현 신부님과 박순희 천정연 대표, 천주교 여성공동체분, 한신대 학생들, 이덕우 변호사 부부, 송태경 부장 등이 고기숯판에 둘러서서 송년을 하고 있다. 문신부님은 기지를 바라보며 "우린 결코 질 수 없어. 이 땅을 어떻게 빼앗아. 못 빼앗아."라고 확언하신다.
평통사 식구들이 좀 더 많이 같이 왔으면 하는 아쉬움을 누르며 변대표님과 나, 김재복 수사까지 꼭 12명이 미군기지를 바라보며 함성을 질러 새해를 맞았다.

1월 1일(일) 새해, 오전 7시, 문무인상 앞에서 평택범대위가 주최하는 새해맞이 행사가 열렸다.
풍물패를 앞세운 행사에는 김용한 위원장 등 40여 명이 참가했다. 마치 우리의 투쟁으로 미군기지 위 흐린 하늘을 걷어내는 것이 새해 우리의 과제라는 것을 상징하듯, 해가 떠올라야 하는 동쪽 하늘은 날이 흐려 해는 보이지 않고 뿌연데, 미군기지 가로등만 반짝거렸다. 변대표님과 김종일 처장, 장도장 부장과 나는 해가 보이지 않는 검뿌연 하늘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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