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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0 방미투쟁단 소식] SCM 한국 대표단 숙소 앞 시위, 팬타곤에서의 '짧고 험난한' 피켓팅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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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일(목) 방미투쟁단 소식 - SCM 한국 대표단 숙소 앞 시위, 팬타곤에서의 '짧고 험난한' 피켓팅

10월 20일(목) 방미투쟁 4일째, 방미투쟁단은 오전 7시, 예정대로 팬타곤 시위에 나섰습니다. 
투쟁단은 숙소 부근 비엔나 역에서 전철로 팬타곤 역까지 갔습니다. 
팬타곤 역에 도착하니 듣던대로 수많은 정, 사복의 직원들이 팬타곤을 향해 바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기념으로 팬타곤 역을 촬영하자 곧바로 역무원들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카메라를 달라며 다가왔습니다. 그들은 "사진을 찍어서는 안된다"고 했으며 "그런 규칙이 있는지 잘 몰랐다"고 대답하자, 벽 한 쪽에 붙어있는 촬영금지 표시를 가리키며 다시 한 번 사진을 찍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다른 역들과는 다른 촬영금지 규칙이 이곳이 팬타곤 지역임을 실감케 해주었습니다. 
표를 내고, 바로 앞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오니, 놀랍게도 그 곳은 팬타곤 문 입구 바로 앞이었습니다. 
팬타곤 문은 모두 5개인데, 이곳만 지하철, 버스와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너무도 쉽게(?) 팬타곤 문 코 앞에 당도하니 한편 반갑기도 하고 오히려 당황스럽기까지 했습니다. 
팬타곤 역 앞 버스정류장과 맞닿아 있는 아주 작은 규모의 자전거 주차장을 찾아냈는데 정작 '프로테스트 존'은 어디인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가용 주차장과 연결된 곳에 위치한 초소에 다가가 경찰에게 '프로테스트 존'이 어디인지 물었는데, 놀랍게도 그 곳은 팬타곤 문으로 가는 도로변에 있는 초록지대로 팬타곤 입구와 불과 10여 미터 떨어진, 직원들이 다니는 도로와 접해있었습니다.

프로테스트 존이 팬타곤 앞에 있다고는 하나, 거리가 상당히 될 것으로 예상한 방미투쟁단에게는 이것도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었습니다. 

시위 장소를 확인한 방미투쟁단은 어제 전달하지 못한 서한을 한국 대표단에게 전달하기 위해 다시 전철을 타고 한 정거장 옆에 있는 '팬타곤 시티' 역으로 갔습니다.
한국대표단의 숙소인 리치칼튼 호텔은 '팬타곤 시티' 전철역 바로 앞에 위치해 있습니다. 
호텔 앞에는 숙소로 전화를 해도 연결되지 않던 정태용 보좌관이 다른 동료와 밖에 나와 있었습니다. 
그는 방미대표단을 보자 저으기 당황하며 웬일인지 대표단이 내미는 서한을 선선히 받았습니다. 투쟁단은 PSI 등 미국의 대북 제재 동참 압력에 당당히 맞설 것을 당부했습니다.이에 정 보좌관은 압력을 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투쟁단은 압력을 압력으로 느끼지 않는 것이 바로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방미투쟁단은 또 어제의 일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고 변연식 대표 등 투쟁단에 대해 담배를 피워문 채 거만한 태도로 예의를 갖추지 않는 것에 대해 항의했습니다. 이에 정 보좌관은 "제가 미숙해서 그렇습니다"고 사과했습니다.

[투쟁단 앞에서 담배를 피워문 채 이야기 하고 있는 정태용 보좌관]

방미투쟁단은 한국대표단이 팬타곤으로 출발하는 시간에 맞추어 호텔 앞에서 시위를 전개하기 위해 호텔 앞에서 대기했습니다. 
9시 30분, 윤 장관이 타고 갈 것으로 보이는 리무진이 도착하자, 방미투쟁단은 피켓을 들고 차 앞에 섰습니다. 그러자 호텔 부근에서 경호를 하던 미국 경호원들이 긴장을 하며 어딘가로 연락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호텔 앞에서 방미대표단이 피켓 시위를 시작했다.]


[방미대표단의 피켓 시위를 노려보는 미국 경호원. 
그 뒤에 정태용 보좌관 등 우리 국방관계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조금 후, 리무진에 합참 장교로 추정되는 몇 사람이 대기하고 있던 리무진을 타고 떠났으며 호텔 앞에 있던 몇 대의 고급 승용차도 미국인과 한국인 몇 명을 태우고 출발했습니다. 
방미투쟁단은 "PSI`경제제재 동참 강요 단호히 거부하라", "한미동맹의 침략동맹화 반대",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매향리 대신 직도 폭격장 사용 반대" 등의 피켓 내용을 윤장관이 볼 수 있도록 윤장관의 출발을 기다리며 계속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그러자 호텔 측 관리자가 다가오더니 "이 곳은 호텔의 사유지이므로 호텔 영역 밖으로 나가라"고 요구했습니다.
방미투쟁단이 근거가 무엇인가고 항의했지만 이들은 막무가내로 똑같은 말만 되풀이 하면서 투쟁단을 밀어냈습니다.
그 사이에 몇 대의 차량이 또 이동했으며 방미투쟁단은 호텔 건너편 지하철 역 앞에서 다시 피켓 시위를 진행했습니다. 
경찰 호위 오토바이와 차량이 대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 윤장관이 떠나지는 않았다고 보고 피켓시위를 계속 진행하고 있는데, 마침내 9시 50분 경, 호텔 직원들을 내세워 방미투쟁단의 시위를 멀찌기 밀어낸 윤 장관 일행이 차를 타고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9시 35분, 윤장관이 아닌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던 리무진을 타고 있다.] 

[호텔 정문에서 밀려나고 있는 방미대표단. 
호텔 직원들은 "당신들은 손님이 아니다"며 무례하고 강압적인 태도로 나왔다.] 

[방미대표단이 직원들과 실강이를 하고 있는 사이, 또 몇 대의 차량이 출발했다.] 

방미투쟁단이 호텔 밖으로 밀려나고 있는 와중에
정태용 보좌관 등 국방부 관료들은 미국인들과 기념사진을 찍으며 희희덕대고 있었다.]

[9시 50분, 방미대표단을 피해 윤장관이 뒤늦게 팬타곤으로 출발했다. 
방미투쟁단의 호텔 앞 피켓 시위로 윤장관은 예정보다 20분 늦게 회의장소로 출발했다.]


윤장관 일행이 떠난 것을 확인한 방미투쟁단은 팬타곤 시위를 위해 호텔을 떠났습니다. 

호텔부근에서 간단히 요기를 한 후 다시 팬타곤에 도착한 방미투쟁단은 프로테스트 존으로 가서 경찰에게 이곳에서 평화적으로 시위를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시위를 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거부했습니다. 방미투쟁단은 곧 귀국해야 하는 형편이어서 허가를 받을 여유가 없으니 한미간 회의가 열리는 동안만이라도 시위를 보장해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으나 경찰은 전혀 이를 수용하지 않은 채 허가를 받으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사전 준비과정에서 허가를 받지 않아도 4-5명의 소규모 시위는 가능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접하고 시위계획을 짠 방미투쟁단은, 경찰의 강경한 태도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한 끝에 허가가 없더라도 시위를 시도하고, 연행이 될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 이 날 시위에 동참하기로 한 뉴욕 IAC 회원에게 연행상황 이후의 지원을 요청하기로 하고 이 분이 도착한 후 시위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바람이 거세게 불었지만 햇살은 따스했습니다. 방미투쟁단은 버스 정류장의 대기 의자와 바닥에 앉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뉴욕 IAC 회원은 약속시간에 오지 않았고, 자전거를 탄 경찰이 상당한 시간 동안 정류장에 지체하고 있는 방미투쟁단을 주시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방미투쟁단에 다가와 왜 이곳에 있느냐고 묻는 등 방미투쟁단의 동태를 감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오후 2시, 방미투쟁단은 자전거를 탄 경찰에게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를 말하고 "허가가 없이도 4-5인의 소규모 시위는 가능한 것으로 알고 왔으니 평화적인 시위를 보장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에 그 경찰은 "이곳에서 그렇게 시위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알고있다"며 자신의 상관과 의논해보겠다며 "당신들이 이곳에 너무 오랫동안 지체하고 있어서 이미 집중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니 장소를 옮겨서 기다리라"고 말했습니다.
방미대표단은 그의 말대로 버스정류장을 나와 지하철 옆으로 자리를 옮겨 그 경찰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잠시라도 시위가 가능할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는 무너졌습니다. 다시 돌아온 그는 "상관에게 의논했지만 안된다는 답을 들었다. 요즘 상황이 좋지 않아 더 어렵게 되었으니 이곳을 이제 떠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순식간에 권총 등으로 무장한, 여경을 포함한 경찰 십 수명이 방미투쟁단의 주변에 늘어섰습니다. 
방미투쟁단은 침통한 심정으로 하는 수 없이 지하철 역으로 다시 내려왔고, 오후 3시 30분이 되어서야 도착한 뉴욕 IAC 회원을 만났습니다. 뛰어오느라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그는 "오늘따라 뉴욕에서부터 교통체증에 시달렸다"며 늦은 이유를 말하고 여러차례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팬타곤 시위를 돕기 위해 허겁지겁 달려온 그가 너무도 고맙고 반가왔습니다. 

그동안의 상황을 전해들은 뉴욕 IAC 회원은 "팬타곤 지역은 연방정부 재산이다. 그러나 그 영역을 벗어난 곳은 엘링턴 시의 소유이므로, 그곳에서는 시위가 가능할 것 같다"고 조언했습니다.
방미투쟁단은 그의 조언에 따라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나와 팬타곤 주차장 안의 인도를 따라 걸어 팬타곤 지역을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뉴욕 IAC 회원은, 팬타곤이 멀리 보이는 어느 지점에 와서, "이곳은 팬타곤 땅이 아닌 것 같다. 시도해보자"고 했습니다.
이에 방미투쟁단은 준비한 피켓을 꺼내들고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팬타곤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 장 찍은 직후, 어느새 경찰 차량이 들이닥쳤습니다.
그들은 여기는 팬타곤 지역이고,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르냐며 사진기를 압수하여 돌아가며 사진기를 검색한 끝에 팬타곤 사진을 확인하고는 더 기세 등등하게 구속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 과정에서도 "평택미군기지확장 반대", "대북 제재 반대,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 피켓을 들고 있던 투쟁단에게 경찰은 위압적 태도로 피켓을 들지 말라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또 마치 거부하면 바로 총을 쏠 것 같은 태도로 주머니에서 손을 뺄 것을 요구하기도 하고, 설명을 위해 경찰에 접근하면 다가오지 말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변역식 대표와 뉴욕 IAC 회원은 우리들이 왜 왔고, 이곳에서 왜 시위를 하게 되었는지 침착하게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자기들끼리 뭔가 이야기를 주고받은 경찰들은 사진기를 다시 내어주며 이곳은 물론, 앨링턴 지역에서도 사진을 찍지 말라고 경고하고 앨링턴 지역에서 다시 사진을 찍으면 앨링턴 경찰에 알려 연행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또 "당신들은 두 번이나 경고를 무시하고 팬타곤 지역에 들어왔다. 다시 들어오면 즉시 연행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사진기 안에 저장되어있는 팬타곤 지하철역 사진 등 팬타곤이 찍힌 사진 등 사진 몇 장을 삭제하고는 돌려주었습니다.

팬타곤 지키기에 목숨을 건 것처럼 보이는 경찰들을 뒤로 하고 방미투쟁단 일행은 앨링턴 지역으로 나왔습니다. 뉴욕 IAC 회원은 이 현상을 '파라노이드(paranoid;피해망상)'이라고 비웃었습니다. 
그는 "우리도 팬타곤에서 시위를 하기 위해 허가요청을 여러번 했지만 매번 거부당했다. 내가 연행되는 것은 상관없지만 당신들은 연행될 경우 다시는 미국에 올 수 없다. 전략적 판단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오늘의 경험은 팬타곤 시위를 성사시키려면 더 많은 정보와 준비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남겨주었습니다.

오후 6시. 방미투쟁단은 뉴욕 IAC 회원과 작별하고 7시에 예정된 NAKA 회원들과의 간담회를 위해 출발했습니다. 

NAKA에 도착한 방미투쟁단은 NAKA 회원들과 반갑게 만나 신필영 선생이 준비하신 저녁식사를 들며 오늘 투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우의를 다졌습니다. 

38차 SCM은 북 핵실험 정국을 악용한 한미 양국에 의해 평통사를 비롯한 시민사회의 요구가 전혀 수용되지 않은 채 마감되었습니다.좀 더 철저히 준비하지 못해 팬타곤 시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점이 크게 아쉽습니다.
방미투쟁단은 북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38차 SCM 대응을 위해 전개한 현지투쟁을 오늘로 마감하고, 21일 하루를 휴식한 후 22일 오전에 뉴욕에서 서울로 출발합니다.
이번 방미투쟁을 지지하고 격려하며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서울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이 게시물은 평통사님에 의해 2012-08-28 17:29:30 방위비 분담금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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