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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30] 평화마을 대추리, 2007년 4월 이후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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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마을 대추리, 2007년 4월 이후

△ 대추리 마을 입구
2007년 4월, 평택 미군기지가 확장되면서, 꼬박 4년간의 저항의 끝에 고향과 삶의 터에서 쫓겨난(!!) 대추리 주민들이 새 보금자리 입주식을 가졌습니다.
행정지명상은 '노와리'. 이곳에 오기까지, 또는 완전히 정착하기까지, 그리고  '대추리'라는 마을명을 지키기 위해서 정말 말로 다 못할 이야기들을 일단 묻어두고, 투쟁과정에서 인연이 닿았던 이들을 초대해 마을잔치를 하였습니다.
겉으로는 멋지고 아담한 마을이었습니다. 중앙에 아이들 놀이터와 마을회관이 자리잡고, 마을 입구에는 넓다란 공원도 있었습니다. 공원의 화장실과 샤워시설을 보면서는 "주민들이 외부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일부러 만들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잊지 않고 찾아와 주니 고맙소" 말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한분 한분이 익숙한 얼굴들입니다. 싸움에 이기지 못해 죄송스런 마음 뿐인데, 주민분들은 반가이 맞아주십니다.
밤에는 마을공원에서 다시 촛불도 켰습니다. 저항의 수단, 촛불은 다시 주민들의 손에 들렸고, 천 일을 다 채우지 못했던 주민촛불 935차의 기억도 떠올렸습니다.
오늘 잔치는 마을사람들과 박래군(인권재단) 씨가 엮은 "아 대추리"라는 제목의 백서발간도 겸해 열렸습니다. 백서 표지가 평통사가 만들어 들었던 현수막 사진이더군요 "황새울마저 잃을 순 없다!" 2006년 6월 18일, 직파했던 보리가 누르스름 익어가던 그 황새울, 대추리에서 도두리로 난 길에서 전경들과 맞닥뜨려져 들었던 현수막입니다.
신종원 이장은 "함께 살자"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쏟았던 마을 주민들의 희생과 마음고생을 전하며 눈물을 담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을 주민들을 지키주고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설치물 '파랑새를 든 소녀'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전후 사정을 듣고 나니, 비릿한 씁쓸함이 느껴졌습니다. 한때 평택 주민들의 투쟁에, 그 너른 들판에 영감을 얻었던 참 많은 사람들은 오늘 많이들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또 올께요" "평통사만이라도 자주 와~" "에이~평통사가 자주 올 일이 생기면 안되지요~(농담 ㅋㅋ)" "그래도 자주 와" 신종원 이장이 당부합니다. 대추리에서 평통사 수련회 하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회관도 있고, 족구장도 있고, 잔디밭도 있으니까....

 △ 아직도 곳곳에서 공사가 마무리 중이었습니다. 함께 마을에 입주한 가구는 44가구.

△ 전시한 예전 투쟁 사진을 보고 있는 문정현 신부님과 주민 들

△ 고기와 오징어를 굽고, 찌게와 나물과 떡과 밥을 나눴습니다.

△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많이 뛰어 놉니다.

△ 놀이터에서 풍물 공연과 고사를 지냈습니다.

△ 많이 뵙던 어르신들.

△ 고사상에 초를 킵니다.

△ 경기남부 이종필 대표님이 잔을 올립니다.

△ 사무처와 인천 부천 회원들도 절을 헀습니다.

△ 공원으로 이동해서 촛불문화제를 하였습니다. 사회는 김택균 아저씨

△ 마을 주민들과 박래군 씨가 엮은 투쟁 백서 "아 대추리"

△ 촛를 나눠 나눠 불을 붙입니다.

△ 무건리 주민들도 함께 했습니다.

△ 주민들이 서로 사진도 찍고 합니다.

△ 소주잔과 촛불을 같이 들고 웃습니다.

△ 신종원 이장의 인사말을 들으며 진지해지기도 합니다.

△ 예전 평택 지킴이들이 노래공연을 하였습니다.

△ 문정현 신부님이 오랜만에 '팽성은 우리땅'을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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