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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8] "강정아, 미안해. 그리고 너무 늦지 않아 다행이야." / 박명아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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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강정초등학교 박명아 선생이 9월 8일 촛불행사에서 자신의 소회를 밝힌 글입니다.>


강정아, 미안해. 그리고 너무 늦지 않아 다행이야.

박명아
(강정초등학교 교사)


글 잘 쓰는 재주도 없고 어디에 글을 기고한 경험도 없는 처지에 강정마을 문제에 대한 글을 써 달라는 말에 일 초도 망설임 없이 단박에 하겠다고 했다. 솔직히 마흔 조금 넘는 내 생애 이렇게 빠른 의사 결정은 처음이다. 강정에 대한 왜곡된 시선들에 대해 부글부글 속 끓이던 내 마음을 어디든 드러내고 싶었고 강정마을에 대한 교육 희망 기사라면 아이들에 대한 내용이어야겠기에 강정 아이들과 지내는 나보다 더한 적임자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지나갔기 때문이다.
2002년 월드컵의 열기가 여름 내내 전국을 뒤덮었던 그 해, 서울 생활을 접고 제주도로 내려왔다. 그렇게 해서 첫 인연을 맺게 된 학교가 서귀포 강정초등학교. 평상시에는 건천으로 있다가 비 올 때만 물이 흐르는 제주의 일반 하천에 비해 사시사철 맑은 물이 콸콸 흘러내리는 강정천과 악근천이 있는 바닷가 강정마을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땅이 비옥하여 농사짓기 좋고 마을 사람들이 고루 잘 살아 ‘일강정’으로 부르는 자부심 넘치는 마을이었다. 그러나 서울 큰 학교에서만 근무하다 겁 없이 덤벼든 제주도 6학급 규모의 작은 학교 근무는 조금의 낭만도 허용하지 않는 생활이었고 치열한 싸움의 연속이었다. 아이들은 점점 멀어지고 업무에 치이는 시간들은 지옥 같았다. 일 년 만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2년을 휴직한 후 복직한 다음에는 한 해만 더 다니다 2006년, 결국 큰 학교로 도망치듯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 기간 동안 내게 강정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괴상한 사고방식의 관리자들을 의미했고 독특한 문화를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주도 그 자체였다. 2007년 여름부터 들려온 해군기지와 강정 주민들의 투쟁 소식도 안타깝지만 먼 나라 이야기 듣듯 흘려버리고는 했다. 마을 문제를 제주도 전체에 알리려는 그분들의 노력들이 삼보일배, 제주도 순례, 도청 앞 농성 등의 형태로 언론에 오르내릴 때도 마음은 아팠지만 그냥 그 때뿐이었다.
그러던 작년 11월 이제는 제주도 사람이 다 되어 버린 가슴과 이런 저런 학교 일들에 조금 단단해진 마음이 떠날 때 다시는 근처에도 가지 말자 다짐했던 강정으로 나를 이끌었고 덜컥 내신을 내고 말았다. 5년 만에 다시 찾아온 강정마을은 떠나올 때의 평온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영토 분쟁 중인 국경 마을과 같은 인상을 풍겼다.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마을 사람들의 몸부림처럼 곳곳에서 펄럭이는 깃발과 현수막들이 ‘왜 이제야 왔냐고, 그 때는 왜 좀 더 강하게 우리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했냐고?’ 라고 꾸짖는 것 같았다. 전쟁터와 같은 이런 분위기에서 아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지 빨리 만나보고 싶었다.
3월, 4학년 24명 아이들과의 첫 만남. 부모들의 의견에 따라 해군기지 찬, 반으로 나뉘어져 갈기갈기 찢기고 상처받았을 것 같은 아이들은 뜻밖에도 천진난만했고 마을이 처한 상황을 너무나 잘 이해했으며 우리 마을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을 지니고 있었다. 몽돌처럼 단단하고 순박한 아이들은 나의 기쁨이었다. 그리고 그 긴 투쟁의 시간 속에서도 아이들의 순수함이 다치지 않게 지켜준 마을 분들이 고마웠다. 우리는 학교, 강정천, 중덕바닷가, 구럼비, 강정포구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만 학교 밖 마을 풍경은 늘 살얼음판이었다. 해군이 공사를 강행할 때마다 수업 시간에도 시시때때로 울리는 마을회관의 사이렌 소리는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뿔 나팔 소리처럼 들렸다. 아이들은 비상사태에 숨죽였고 급하게 주민들을 부르는 그 소리가 애처러워 나는 눈을 질끈 감아야 했다.
강정 아이들은 여름 내내 강정천에 산다. 현장학습을 가도 마음 내키는 그대로 뛰어들어 첨벙거리다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차림새로 학교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런데 맑은 물이 철철 흘러넘치며 바다를 적시는 강정천과 사잇길 하나를 두고 불과 몇 미터 옆으로 해군기지가 세워지고 있다. 엄청난 규모의 공사 구간 안에는 붉은발말똥게, 맹꽁이와 같은 멸종위기생물종들의 서식지가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고 1km에 달하는 한 덩어리 바위인 구럼비(용암단괴)가 있다. 제주도 전체가 절대보존지역은 아니다. 그러나 강정 앞바다는 돌고래가 뛰놀고 연산호가 춤추고 은어가 올라오고 희귀생물종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절대보존지역이었다. 해군기지 건설은 서귀포 다른 지역들에서 치열한 반대에 부딪혀 표류하다 강정마을 일부 사람들에 의해 채택된 후 적절한 정보없이 마구잡이로 추진되고 있는 사업이다. 어쩌다 딱 걸린 강정마을이 해군과 도의 먹이가 되어 버린 격이다. 제주도는 해군기지가 절대 들어설 수 없는 지역인 강정 앞바다를 절대보존지역에서 제외시켜 버렸다. 해군기지를 조성할 수 있도록. 언론에서 마을 일부 해군기지 반대론자가 외부 세력에게 조종당하는 것처럼 보도하는 것은 거짓이다. 마을 주민들이 보상금을 높이기 위해 반대하는 것처럼 보도하는 것도 다 거짓이다. 지금 마을 공동체는 엄청난 힘을 지닌 공권력의 구속, 소환, 벌금에 맞서가며 마을을 지킨다는 목표 하나로 똘똘 뭉쳐 있다. 이 세상 누구보다 용감하고 드높은 기상을 지닌 분들이다.
언론에서는 늘 찬성측과 반대측 운운하지만 실제로는 반대 비율이 80%를 넘고 우리 반 아이들도 대부분 우리 집은 반대라고 자랑스럽게 목소리를 높인다. 그럴 때 부모님이 해군기지를 찬성하거나 보상을 받고 동참한 가정의 아이들 몇 명이 상처받지 않도록 살피는 것도 담임인 나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님이 찬성하시건 아니건 그 아이들도 사랑하는 내 아이들이다. 학교는 해군기지 자체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해군이나. 마을공동체 모두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중립을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교사로서 나는 반대측보다 찬성측 아이들의 상처가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들이 사랑하는 자연과 평화가 시멘트에 묻혀 버린다는 것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 한 시간 동안 아이들의 감성은 본능적으로 구럼비를 좋아하고 붉은발말똥게에게 애정을 퍼부었다. 스스럼없이 구럼비에서 맨발로 뛰어다니고 뒹구는 아이들의 모습은 더할 수 없이 행복해 보이고 자연스럽다. 해군기지가 세워지면 중덕바닷가와 그 속에서 함께 뛰놀았던 자연 속의 친구들은 모두 추억 속으로 완벽하게 숨어 버릴 것이다. 마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사진으로 추억을 남기는 동안에도 아이들의 사진기 속에는 해군기지로 인해 사라져가는 우리 마을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
지난 6개월은 세상을 뒤덮을 것 같은 암울함과 한 가닥 희망을 사이에 두고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견디기 힘들고 버거웠다. 아이들에게 미안했고 종북좌파 또는 외부세력이라고 주요 언론에 왜곡 보도되고 있음에도 끊임없이 찾아와 주고 오래도록 머물러주는 평화 운동가들이 고마웠다. ‘해군기지 건설되면 경제는 발전하겠지, 아님 말고’ 라며 좋아라 하거나 무관심한 제주도나 서귀포 사람들이 야속했고 자세한 내막은 알지도 못 하고 알려고도 안 하면서 마을 사람들을 국책 사업을 거부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나 폭력 집단, 종북 세력으로 몰아가는 멍청한 국민들이 미웠다.
나는 평화운동가도 아니고 생태 환경을 보존하려고 지독하게 노력하는 사람도 아니다. 해군기지를 우리나라 어디에도 세우지 말자는 생각도 아니고 우리 마을에만 세우지 말자도 아니다. 다만 납득할만한 장소에 적법한 절차를 거쳐서 만들자는 것이다. 부적절한 절차를 거쳐서 추진하고 법의 잣대로 주민들을 가혹하게 대하는 모습을 더 이상은 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이 평화로웠으면 좋겠고 인위적인 환경보다는 그래도 좀 더 자연스러운 그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하나를 지켜서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는 것이 우리의 책무임을 여러분들도 느끼고 강정을 지키는 일에 동참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얼마 전 해군기지 건설 현장을 둘러보고 그 참담함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여성을 보았다. 여러분도 더 늦기 전에 와 보시라. 왜 세계 평화는 강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지를 깨달으시리라. 지난 여름은 강정 주민들이 정말 치열하게 싸운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그 분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더 엄청난 일들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마을 분들이 다치지 않기를,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며 두 손을 모아 본다. 이틀 후 개학날, 아이들이 까맣게 탄 얼굴로 하얀 이를 드러내며 교실로 들어왔을 때 그 예쁜 아이들이 방학 동안 강정천과 구럼비에서 무엇을 하며 놀았는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겠다.
(201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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