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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3] 구럼비 평화 순례선언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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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럼비 평화 순례선언
파도 소리가 들리시나요? 수천수만 년을 살아온 생명들의 자맥질 소리가 들리시나요?
수십 년을 바당에서, 곶에서 살아온 강정주민들의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평화롭게 어우러져 살던 구럼비의 모든 생명과 주민들의 외침이 날마다날마다 들렸습니다. 우리를 이대로 살게 해달라는 절규가 우리를 이곳 제주에, 법환 포구에, 일강정 바당올레에, 구럼비에 불러들였습니다. 무력으로 누군가를, 무언가를 정복하겠다는 탐욕은 전쟁을 불러오고, 평화를 깨는 일임을 우리는 알기에 구럼비 평화순례길에 올랐습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강정주민과 생명들이 살아온 일상의 소박한 삶조차 쉽게 깨지는 살얼음판이 될 것임을 알기에, 한반도와 동북아시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될 것을 알기에 그동안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해왔습니다. 해군기지건설은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제대로 참여하지도 않은 채 날치기로 의견수렴절차를 밟았고, 강정은 제주도절대보전지역에서 정당한 이유도 없이 해제되었고, 환경영향평가도 순 엉터리였습니다. 그리고 마을공동체를 깨뜨렸습니다. 그래서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원점에서 검토하자고 사회 각계각층에서 얘기하고 있지만 국방부는, 해군은, 경찰은,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4년 3개월, 참으로 긴 시간입니다. 이제야 달려와 미안한 마음으로 우리는 연산호와 붉은발 말똥게를 품은 구럼비를 껴안고, 경찰폭력에 다친 주민들의 손을 잡고 이 길을 걸으려 합니다. 파도가 구럼비로 달려와서 부서지고 사라지는 것처럼 보여도 이내 다시 자취를 드러내는 것처럼, 우리들의 평화순례도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구럼비를 지키는 것, 강정을 지키는 것이 평화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번 순례에서 우리는 구럼비를 정말 껴안고 싶었습니다. 햇살에 달구어진 뜨거운 몸이라도, 흐린 날씨에 차가워진 모습이라도 안기도 하고 앉고도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박한 우리의 순례조차도 경찰은 무참히 짓밟았습니다. 9월2일 새벽 육지경찰을 동원해 펜스를 치고 이를 막으려는 주민들을 연행했습니다. 얼마나 아팠을까요? 얼마나 눈물이 났을까요? 말로 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마음으로 느낍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구럼비를 보며 순례를 하지 못하더라도 꽉 막힌 펜스를 보며 순례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들의 순례가 이어지고 이어져 펜스가 사라지고 구럼비와 쪽빛 바다를 볼 때까지 말입니다.
우리의 발걸음은 자신과 이웃과 평화와 생명에 다가서는 순례이며, 이 순례가 평화를 부를 것을 압니다. 밝은 태양아래서 보이지 않는 낮은 빛깔 생명의 목소리를 지키는 것이 평화이며, 누구도 함부로 평화롭게 살 권리를 빼앗지 않도록 함께 굳건히 어깨를 매는 연대가 평화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폭력과 전쟁과 탐욕이, 이곳 제주에서 나갈 때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2011년 9월 3일
구럼비 평화 순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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