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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제61호] <현장>들은 울어도 생명은 질기다---김현숙

평통사

view : 1988

|현장|

 

들은 울어도 생명은 질기다

부천평통사 김현숙

 

▲ 철조망 안쪽에는 어머니의 고추가 자라고 있다. 잘 자라고 있는지 너무나 궁금한 어머니. 하지만 무정한 군인들은 어머니를 가로막기에 급급하다.

 

5월 22일

 

 

위 _ 오래전부터 점심은 마을주민 모두가 노인정에 모여 식사를 해왔다. 기지확장 저지투쟁으로 마을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항시 노인정 앞에서 식사준비를 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같이 밥 먹는 사이를 '식구'라고 하지 않던가? 외부세력이니 뭐니 다 쓸데없는 소리다.
아래 _ 희망을 안겨준다는 파랑새가 평화예술공원에서 황새울을 바라보고 서 있다.

아예 평택으로 내려가기로 결정을 한 후 짐을 싸기 시작했다. 옷, 신발, 약, 세면도구 또 뭘 넣어야 할까? 앗! 카메라가 빠졌다. 짐을 넣다 보니 등산 가방이 한 가득이다. 평택으로 향하는 길, 난데없이 비가 쏟아진다. 여름 장대비도 아닌 것이 무진장 쏟아진다. 목적지가 가까워 올수록 가방 무게만큼이나 어깨가 무거워진다. 비 탓인지, 일에 대한 부담감인지,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인지…. 일단 부딪혀 보자! 아자! 아자!

버스를 타고 대추리로 접어드는 길가에 파릇파릇한 모들이 심어져 있다. 순간, 핑하고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연행된 주민들 면회가던 길에 가지런히 심어져 있던 모를 보며 숨죽여 우시던 도두리 부녀회장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남들 다하는 모내기인데…’하며 남의 논에 모내기한 것만 봐도 그것이 이제 부럽고 서럽기만 한 그분들의 마음이 이제 조금씩 내 것이 되고 있나 보다.

 

애써 고기며 과일이며 야채를 사서 양손에 낑낑대며 들고 간 평통사 숙소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모두 일을 나갔나보다. 에구 에구 내 존재의 가벼움이여… 하하하~ 웃음으로 서운한 마음을 날려 보내고, 먼저 도두리로 갔다.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냐며 내 손을 꼭 잡은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을 느끼며 ‘이 손 절대 놓지 않을게요’다짐하며 평택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

 

5월 28일

 

 

위 _ 모내기 하는 것을 구경나온 주민들. "내 땅에 농사지으며 이렇게 신나보기는 또 처음이네"
아래 _ 며칠 있으면 감자를 수확한다. 하얗게 핀 감자꽃. 보라색 꽃은 보라색 감자가 열린다는데...

미군기지 확장으로 고향에서 떠나기를 강요당하는 주민들, 철조망 속에 갇혀 팔자에도 없는 감옥생활을 하시게 된 주민들, 이 분들의 모습을 뵐 때마다 죄송스럽기도 하고 마음 아프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더 속상한 일은 주민들 사이의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황새하고도 먹을 걸 나눠 먹을 줄 알았던 순박한 사람들이 어느 날 미군기지 확장을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으로 나눠져서 서로에게 손가락질 하게 되더니, 이젠 협의매수를 한 사람과 협의매수를 하지 않은 사람으로 갈리고, 정부에서 강제토지수용을 해놓고 일방적으로 법원에 공탁한 공탁금을 찾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이제 농사를 못 짓게 하려고 정부가 주는 실농보상비를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으로 갈려, 어떤 것이 잘한 일이고 못한 일인지를 따지며 우격다짐하시는 모습을 가끔 볼 때가 있다. 본심과는 상관없이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게 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미군기지 확장으로 인해 주민들이 받는 또 하나의 고통이다.

비록 철조망처럼, 경찰처럼, 군대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누가 보상해 줄 수 있을까? 이젠 또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사람과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사람으로 갈리고 있다.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하시는 분들도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걸 알고 계시지만 공권력이 가져다 준 절망감을 이기지 못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판도라의 상자’처럼 절망감을 이겨 낼 ‘희망’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공황상태… 너무도 지치고 힘들 때, 그래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때, 그리고 밥을 먹어도 밥을 먹고 있는지 모를 때, 요즘 주민들의 맘이 그렇다. 바로 집 앞에 쳐진 철조망을 차마 볼 수 없어서 커튼조차 못 여는 그 마음이, 마을에 있을 수가 없어서 낮엔 다른 동네로 일하러 가는 그 마음이,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밭을 군부대 포크레인이 짓밟아 놓은 것을 봐야 하는 그 마음이, 철조망 안에 심어 놓은 못자리와 고추, 마늘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너무 궁금하여 발만 동동 구르시는 그 마음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어떻게 희망을 드릴 수 있을까?

 

그런데 오늘 농활 온 학생들과 함께 노~란 장화를 신고 논으로 첨벙첨벙 들어가 일을 하게 되었다. 모판을 뜯어 이양기로 모내기를 하는 것. 동네 아저씨들 모두 나와 구경하시고 어머니는 밭에서 상추 따서 밥 차려 주시고 오랜만에 동네가 시끄럽다. 씽씽 달려 나가는 이양기를 보며 흡족해 하시는 주민들이 한마디씩 하신다. “내 땅에 농사지으며 이렇게 신나보기는 또 처음이네.” “미치지 않은 다음에야 농사꾼이 모내기 하는 일이 이렇게 신기할 수가 있을까?” 비록 철조망 바깥쪽이지만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좋으신가보다. 점심밥도 얼마나 꿀맛이던지 두 그릇이나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비어있는 논이 없도록 빨리 빨리 농사를 지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주민들의 쳐진 어깨를 다시 고추 세울 수 있을 텐데…

 

6월 7일

김지태 위원장님이 경찰서에 출두 한 지 사흘째가 되는 날. 구속방침이라는 소식에 주민들이 어제부터 경찰서 앞에서 농성중이고 문정현 신부님은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시며 무기한 단식에 돌입하셨다. 주민들은 집회 내내 경찰을 향해 소리치신다.

 

▲ 폴리스라인과 경찰을 부여잡고 애타게 "지태 내 놔!"

“내 아들 내놔”, “너 보다 똑똑한 내 아들 내놔”, “속에서 천불이 나서 못살겠다, 이 놈들이 정신 나간 놈들이여”, “도둑질을 했어? 뭘 했어? 지태를 내 놓으란 말이야”, “죄는 지들이 다 짓고 살면서 죄 없는 우리만 괴롭히냔 말이여”, “미국놈 똥이나 먹을 놈들아”, “잡아 가려면 국방부 놈들이나 잡아 갈 것이지. 왜 우리네들을 잡아가는 것이야?”, “죄는 잔뜩 걸머지고 있는 놈들이…”, “열통이 나서 못살아, 이 정신 나간 놈들아!”, “무신 놈의 경찰이 국민들은 죽이고, 미국 놈들만 살리는 것이여. 그게 우리나라 경찰이여?”, “너들은 죄 짓고 사는 거여.”

그 동안 속상하시고 마음 아파서 하시지 못하던 말들을 다 쏟아내신다. 저러다 쓰러지시면 어쩌시려고, 저러다 다치시면 어쩌시려고… 하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경찰 방패를 부여잡고, 폴리스라인을 부여잡고 울부짖는다. 황새울도 따라 울부짓는다…

문정현 신부님이 단식장소를 청와대 앞으로 옮겼다. 구속된 활동가들도 단식에 들어갔다고 한다. 대추리 어느 집 벽에 “들은 울어도 생명의 봄은 온다”는 시가 쓰여 있다. 나는 거기에 한마디 더 붙이고 싶다. “그리고 생명은 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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