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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12. 12] 평화와 평화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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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를 벗어나
그 모든 악몽을 벗어나
어느 날인가 그들은
평화로운 나라에 가고 싶었네.

- 베르톨트 브레히트 <소년 십자군> 중에서



1. 서

우리는 오랫동안 전쟁과 평화에 대해 얘기해 왔다. 전쟁과 평화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생각되어졌다. 그러나 이제는 평화와 평화를 말해야 할 때이다. 전쟁과 평화는 명확히 분리되는 동전의 양면이 아니라, 경계가 모호하고 더구나 여러 색을 지닌 무지개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부분은 유독 강한 색을 띄지만, 두 색이 오버랩되어 정체가 불분명한 곳도 있다. 이렇듯 전쟁과 평화는 분리되어 있기도 하고, 혼재되어 있기도 하다. 전쟁 속에서도 평화는 존재하며, 평화 속에서도 전쟁은 상존하고 있다.
여기서 양자를 연결하는 스펙트럼 안에는 적극적 평화/구조적 폭력이라는 개념이 있다. 그렇다면 전쟁과 평화, 평화와 평화를 논하기 위해서 소극적 평화, 적극적 평화, 구조적 폭력에 대해 알아보겠다. 그리고 적극적 평화를 실현키 위한 시민단체의 역할을 살펴보고,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 구축을 위한 방법으로 군축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2. 소극적 평화 (Negative Peace)


소극적 평화는 전통적으로 인식되어 왔던 평화론으로서, 단순히 전쟁이 부재한 상태를 의미한다. 즉, 전쟁의 반대가 곧 평화라는 인식 하에, 분쟁이나 전쟁에 대한 연구가 평화에 대한 연구와 동일하다는 상식을 낳는다. 소극적 평화는 주로 힘의 정치를 연구하는 현실주의 전통에서 그 맥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전쟁 방지를 위해서도 힘을 통한 평화를 추구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평화에 도달하기에는 근본적인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힘을 통한 평화 유지의 대표적인 방법인 세력균형이론을 보자. 여기에서 세력균형의 시비를 가리는 문제는 차치하고, 즉 세력전이이론과의 관계는 논의에서 배제할 것이다. 왜냐하면 중요한 것은 둘 다 힘을 통해 전쟁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는 공통점을 갖기 때문이다. 세력 균형은 주요 행위자 간 균등한 세력 분포를 통해서 평화와 안정을 얻을 수 있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이 것은 절대적인 일반 법칙이 아니라 오랜 동안 역사 속에서 보여졌었던 실제 사실에 대한 서술에 불과하다. 세력균형은 종종 깨어졌고, 결국 전쟁이 발생했다. 세력균형이 전쟁부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력 사용을 자재하는 정치지도자의 판단, 의지에 달려 있었다. 이러한 판단에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바로 국력을 정확히 측정하기 어렵다는 데에 있다. 어떤 상태가 세력균형이 이뤄진 때인지를 알 수 없기에, 국가는 자국의 힘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군비증강이라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어찌보면, 세력균형은 군비경쟁을 촉진시켜서 전쟁의 가능성을 증대시키는 역할마저 하고 있다.,br> 그리고 소극적 평화관의 결정적 문제는 전쟁이 없는 상태라고 해서 인간의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 다는 데에 있다. 전쟁이 아니라도 우리가 사는 현실에는 분쟁, 폭력, 억압 등등의 물리적 또는 비물리적 형태의 폭력이 존재하고 있다. 국가 권력에 의한 인권탄압의 문제는 어찌할 것인가? 그 고통에 처해있는 개인은 전쟁상태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소극적 평화관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홉스가 지적하듯이 현실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이다. 일상 속에서의 투쟁, 그 투쟁에 의한 고통을 제거하는 문제도 이제는 평화를 실현시키기 위한 중요한 주제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3. 적극적 평화 (Positive Pesce)


적극적 평화관은 평화를 전쟁의 부재 상태만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 욕구충족, 경제적 복지와 평등, 정의 그리고 인간의 자연의 가치가 구현되고 보전되는 진정한 발전으로 보고 있다. 이의 실현을 위해서는 정의로운 국제사회질서의 수립이 필수적이다. 적극적 평화관은 보다 규범적이고 가치지향적인 성격을 지닌다. 전쟁에 대해서도 소극적 평화론자들은 필수불가결한 하나의 현상으로 보는 반면, 이들은 역사 속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하나의 사건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전쟁은 종결될 수 있는 그 무엇이 된다.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의지이다. 이들은 자유의지(voluntarism)에 대해 신뢰하며, 평화를 선호하고 유지하고자 하는 의지에 따라 평화가 실현될 수 있음을 믿는다. 따라서 전쟁이나 폭력 등 힘을 통한 방법보다는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인 방법을 통해 평화를 구현하는 것을 선호한다.
적극적 평화에서 관심을 갖는 주요 분야는 크게 6가지로 다음과 같다. 1) 기능주의 2) 발전-복지-평등 3) 신 국제정보질서 4) 페미니즘 5) 비폭력적 대안적 안보 6) 초국가주의와 시민운동. 즉, 군사 안보보다는 사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적극적 평화를 구현하고자 하며, 국가보다는 비정부단체 및 시민단체의 활동에 기대를 건다. 그리고 근대 국가 체제보다는 전지구적인 통합적 세계질서에 대해 낙관적인 경향을 보인다.

4. 구조적 폭력


적극적 평화를 제한하는 요인이 바로 구조적 폭력이다. 구조적 폭력은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은 아니지만, 무형적으로 인간의 권리를 제한하는 폭력을 의미한다. 이는 사회적 불공평으로 인한 온갖 종류의 박탈과 고통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갈퉁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 대한 피할 수 있는 모독"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그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로 1) 생존에 대한 욕구 2) 복지에 대한 욕구 3) 정체성에 대한 욕구 4) 자유에 대한 욕구 구분하고 있다. 그의 또 다른 정의는 "인간이 지금과 다른 상태로 될 수 있었던 잠재력과 현재 처해있는 상태와의 차이를 제공하는 요인"을 구조적 폭력이라 한다. 이에 대한 구조적 폭력의 형태는 1) 자원의 불평등한 분배를 비롯한 "착취" 2) 피지배층의 자율성이나 자치권 확보를 저지하는 "침투" 3) 피지배층을 서로 격리시키는 "분열" 그리고 4) 피지배층에 대한 틸사회화를 포함한 "소외화" 등이 있다.
이러한 구조적 평화관에 입각해서 볼 때, 평화란 '전쟁'의 부재가 아니라 '폭력'의 부재 상태인 것이다. 폭력을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교육 및 경제적 풍요의 보장으로 사회적 불공평을 해소해야 한다. 군사 안보적으로도 군비경쟁이 아닌, 군축 또는 민수 전환 등 평화지향적 정책을 실현해야 한다.

4. 시민단체의 역할


적극적 평화는 인간의 복지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다방면에서의 활동을 요구한다. 즉, 핵문제, 기아, 빈곤, 인권탄압, 여권(faminism), 환경, 인종차별, 군축, 민수전환 등 다양한 평화운동이 이 범주에 들어간다. 소극적 평화의 주체가 국가였다면, 반면에 적극적 평화의 주체는 시민단체가 되어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위의 안건들은 직접적으로 국익과는 배치되기도 한다. 가령 국가는 급속한 경제발전을 위해서 환경파괴를 감수되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할 것이다. 그러나 환경파괴는 심각하게 인간의 행복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므로 마땅히 저지해야만 한다. 국가와는 다르게 행동하는 개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시민단체만이 그들의 욕구를 해소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국가는 위의 다양한 욕구를 해결할 의지가 미약하다. 개인의 수준에서 발생하는 미시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노력은 물론 이에 대한 관심조차도 아직은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여기서 야기되는 인권의 여백 상태를 채울 수 있는 주체가 바로 시민단체이다. 이들은 다양한 사회 각층의 의견을 수렴,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하고 활발한 시민단체의 활동이 이뤄질 때 적극적 평화의 실현은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서 이들의 역동적인 활약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5. 군축


우리나라는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다.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는 것은 건국이래 중요한 우리들의 소망이었다. 그동안 통일을 위한 노력이 있어왔던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오랜세월동안 역대 정권들은 분단 상황을 해결하기보다는 정권의 안정을 위해서 역이용해 왔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리고 통일 방식이라는 것도 남한 중심의 비대칭적인 것이거나, 힘을 통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같은 적대적인 통일방식은 통일을 실현시키기보다 분단을 공고화하기만 할 뿐이다.
통일을 위한 첫걸음으로 군축은 필수적이다. 남북 간 군비경쟁은 한반도의 평화는 물론 역으로 통일의 실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더구나 과도한 군사력은 통일 후에도 우리에게 커다란 짐으로 남게 될 것이다. 군비경쟁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군사비 부담은 통일 후 군사력 감축의 비용을 동시에 상승시키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남북의 군비경쟁으로 야기되는 동북아의 긴장은 지역안정을 크게 위협할 것이고, 주변국의 협조를 유도하는 데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전술한 바와 같이, 힘을 통한 평화 유지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군축이 실현되면, 불가피하게 무력충돌이 발생하더라도 그 피해 규모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을 것이다.
> 군축은 힘의 조정, 통제에 의한 현실주의적인 군축이 아닌 근본적으로 우리의 의식과 문화를 군사주의, 군비문화에서 탈피케하는 군축문화 조성에서 시작해야 한다. 우리사회에 팽배해 있던 북한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의 응어리를 씻어 내고, 공존할 수 있는 존재로서 객관적으로 그들을 인식하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이러한 노력에 대해 가해졌던 구조적 폭력을 제거하는 일이 병행되어야 한다. 즉,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군축은 적극적 평화를 위한 전제인 동시에 실현을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6. 결어


지금까지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 그리고 구조적 폭력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았다. 적극적 평화 개념의 등장은 인류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데 기여했음에 틀림없다. 그 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구조적 폭력에 대한 인식을 각성시키며, 참다운 인권의 실현을 위한 중요한 논의라 생각한다. 평화는 전쟁을 해결하는 것만으로 보장되지는 않는다. 긴 평화의 시대라 불리는 냉전기간 동안 우리는 1, 2 차 대전과 같이 생사의 기로에 선 치열한 전쟁을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그로 인한 수많은 보이지 않는 고통을 겪어 왔다. 가까운 예로 한국전쟁의 결과 분단이라는 상황에 따른 우리들의 사상에 대한, 이동에 대한, 표현에 대한 국가의 억압을 우리는 경험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구조적으로 존재하는 억압상황을 완전히 해결한 후에야 우리는 평화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적극적 평화와 구조적 폭력에 대한 강조가 소극적 평화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적극적 평화라는 것도 결국 소극적 평화가 보장된 상태에서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경 전방이 무너져서 적군이 침투한 상황에서 우리들의 인권을 논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것이며, 시대착오적이기까지 하다. 아니 그것은 비현실적인 환영에 불과한 것이 된다. 이에 본인은 소극적 평화는 1차적 평화로서 적극적 평화의 전제가 되는 필수적 상태라고 생각한다. 국경이 튼튼한 상태에서 내치(內治)를 잘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는 배타적이거나 또는 후자가 전자를 대치하는 개념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이뤄짐으로써 궁극적으로 진정한 평화를 실현하게 하는 기재인 것이다. 소극적 평화는 적극적 평화의 전제가 되며, 소극적 평화는 적극적 평화를 통해서 완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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