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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7] [한겨레21/2003. 6. 19 464호 기사] 우리는 지금 MD로 간다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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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MD로 간다


한·미 당국자 비공식 회의 보고서 긴급 입수… 한반도 MD체제 구축 정책 조율 벌써 끝났나

미국의 MD 체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현재로선 결정된 게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겨레21>이 긴급 입수한 한·미 당국자 비공식 회의 보고서는 한반도 MD 체제와 관련해 정책조율이 이뤄졌음을 보여준다.

“보지 않고도 볼 수 있으며, 먹지 않고도 먹을 수 있다…”는 불가의 가르침은 때로 음미할 가치가 있다. 어떤 일을 추진하면서 그 전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단계를 밟아나가면, 아무도 모르게 원하던 일을 이뤄낼 수 있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2월 말 미국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에 자리한 커틀랜드 공군기지에서 탄도미사일 요격용으로 개조된 C-135E 수송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이륙했다. 미 공군 제452비행실험단 요원들을 싣고 동쪽으로 기수를 튼 수송기의 출격 목적은 항공기에 탑재된 레이저를 이용해 발사 초기단계에 미사일을 요격하는 이른바 ‘에어본레이저’(ABL) 실험이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눈이 100개 달린 거인의 이름을 따 ‘아르고스’라고 명명된 이 수송기의 최종 행선지는 출격 목적과 긴밀히 관련돼 있었다. 출격 첫날 밤을 일본 요코타 미 공군기지에서 보낸 비행실험단 요원들은 이튿날 7시간여에 걸친 시뮬레이션을 마친 뒤 착륙한 곳이 바로 한국 오산 미 공군기지였기 때문이다.


한국의 MD 참여 여부 논란에 종지부

'에어본레이저’는 미사일 발사 직후 탄두가 추진체에서 분리되기 전에 일찌감치 이를 요격하는 시스템이다. 발사된 미사일에 레이저로 약 30cm 크기의 구멍을 내, 추진체 내부의 엔진에 압력이 심해지면서 미사일이 폭발하게 된다. 훈련에 참가한 미 공군 장교는 미 <공군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발사 직후 미사일이 아직 적진에 있을 때 파괴하는 능력을 가지면 함부로 미사일 발사를 하지 못하게 하는 억지력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 국방부가 2008년까지 실전 배치할 계획으로 추진 중인 최첨단 미사일방어(MD) 기술의 실험장이 다름 아닌 한반도라는 섬뜩한 현실을 극명히 보여준 사례다.

한국은 미국 주도의 MD 계획에 참여하고 있는가? 이미 3년여 전부터 이를 둘러싼 의혹이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그러나 정부의 공식 입장은 변한 게 없다. “미국쪽으로부터 제안받은 일도 없고, 현재로선 계획도 없다”는 대답만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마치 보지 않고도 볼 수 있듯이 우리 국방부는 MD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면서도, 조각조각 MD 무기체계를 짜맞춰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초 방한했던 폴 울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은 난데없이 주한미군 방위력증강계획을 발표했다. “오는 2006년까지 모두 110억달러를 투자하겠다”며, “한국도 이에 발맞춰 국방비를 증액해달라”고 요구했다. 우리 국방부도 덩달아 미뤄졌던 차기유도무기(SAM-X) 사업 등 대형 무기도입 계획을 잇따라 내놨다. 그런데 상황이 묘하다. 이 모든 일을 예견케 하는 비공식 회의가 지난해 말 열렸던 사실이 뒤늦게 확인된 탓이다. <한겨레21>이 최근 입수한 미국의 외교정책분석연구소(IFPA)가 내놓은 당시 회의에 대한 공식 보고서 내용을 보면, 최근 벌어진 일련의 상황이 철저한 계획 아래 이뤄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난해 10월8일 오전 서울 신촌 연세대에 국방·안보 관련 인사들이 일찍부터 대거 모습을 나타냈다. 미 국방부 산하 미사일방어청(MDA)의 후원으로 연세대 국제대학원과 미 외교정책분석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한 ‘한반도에서의 미사일 방어와 반확산 전략’이라는 주제의 비공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확인 결과 지난 1999년 6월에도 이와 비슷한 회의가 열린 바 있었다.

이날 회의가 단순한 토론모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은 참가자 면면만 훑어봐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한국쪽 참가자만 해도 △반기문 현 청와대 외교보좌관 △차영구 현 국방부 정책실장 등 현 정부에서 국방·안보의 실무를 책임진 인사와 △배형수 해군 차세대구축함(KDX-III) 사업 처장 등 군 인사를 포함해 국방부·외교부 실무자들과 국방연구원 등 국책연구기관 종사자 및 학계 인사 등 모두 33명이 참석했다. 미국쪽에서는 △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 대사 △리언 러포트 주한 미 사령관 등을 비롯해, 미사일방어청 실무자와 한-미 연합사 고위장교 등 모두 28명이 참석했다. 특히 이 가운데는 레이시온과 록히드마틴, TRW 등 MD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미 군수업체 고위 관계자도 포함됐다.


국방·안보 관계자 참가에 미국에 훈수도

이날 회의는 △미사일 위협·대량살상무기 확산 및 한반도의 안정 △한반도의 미사일 및 대량살상무기 위협 대응방안 △MD 배치 등이 한반도에 미칠 영향 △한-미 협력방안 등 크게 4부분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발언자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작성된 보고서를 보면, 당시 한국쪽 한 참가자는 우리 정부의 MD 계획 참여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한국 국방부는 실질적으로 미사일 방어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개별 무기획득 절차를 밟아가고 있다. 한국군의 국방중기계획에 따른 무기 현대화 과정만 봐도 이는 쉽게 알 수 있다. 이미 제3세대 구축함(KDX-III) 사업을 통해 이지스 체계를 획득했고, 공군의 차기유도무기 사업을 통해 획득할 무기도 패트리엇 미사일(PAC-3)이 가장 유력하며, 공중조기경보기(AWACS) 등도 확보할 계획이다.”

그는 이어 “비록 공공연히 논의되고 있진 않지만, 이들 무기를 확보하는 것은 미사일방어망 구축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들 무기 구입을 통해 갖춰진 능력은 한-미 연합방위체계 아래서 배치될 것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MD에 밀접히 통합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공식 회합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쉽게 넘기기 어려운 발언이다.

보고서는 이에 대해 “(한국쪽) 설명을 놓고 볼 때, 드러나지 않게 점진적으로 국방중기계획에 따라 (MD 관련) 무기체계 구매가 이뤄지면 공식적으로 드러내놓고 한-미 양국이 함께 MD체제 구축에 나서는 것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실질적으로는 똑같은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점이 많다. 북한과 긴장을 줄이고 화해·협력에 나서는 게 현 한국 정부의 입장이고 보면, 이런 식으로 MD 구축을 진행하는 것이 쓸데없는 정치적 논쟁에 휘말려들지 않는 방법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방부의 예산 증액 요구도 예정된 사안

다른 한국쪽 참석자의 발언을 보자. 그는 “비공식적이고 점진적인 방식으로 MD 능력을 갖추기 위해선 무엇보다 새 정부(노무현 정부)에서 국방예산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국방중기계획을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국방예산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3%는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울포위츠 부장관의 방한 뒤 쏟아져나온 국방부의 국방예산 증액 주장과 맞물려 묘한 느낌을 준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마치 미국쪽에 훈수라도 두는 듯한 또 다른 한국쪽 참석자의 발언이다. 그는 “이런 계획이 추진될 경우 (의정부 여중생 사망사건 뒤 불기 시작한) 반미 열풍이 재연될 우려가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MD 참여가 미국쪽의 압력에 의한 것이라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 또, 특정 무기체계를 구입하는 것이 미국의 경제적 이익에 부합하거나 미국의 (강경한) 대북정책에 보탬이 된다는 인상도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차기유도무기 사업이 미국의 패트리엇 미사일 구매 계획으로 비치지 않기 위해선, 미국이 이스라엘과 공동 개발한 애로 요격체계도 한국에 수출할 수 있다는 입장을 미국 정부가 발표하는 게 좋겠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이런 논의를 바탕으로 보고서는 “한국이 국방중기계획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이미 미사일방어망을 하나씩 하나씩 짜맞춰나가고 있지만, 이를 드러내놓고 선언하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해상배치 미사일방어망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이미 구매를 결정한 이지스 전투체계 외에도 스파이레이더와 전투지휘통제체제 등 탄도 미사일 요격에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통신체계와 요격용 최신예 스탠더드 미사일 확보가 필요하다. 앞으로 한국 정부는 이를 위한 막대한 추가 투자 결정도 머지않아 내릴 것으로 보인다”라고 내다봤다.

보고서의 결론은 당연하다는 듯 한반도에 MD를 성공적으로 배치하기 위한 한-미 두 나라의 정책과제를 담고 있다. 우선 북한 미사일 위협에 대해 한-미 양국이 인식을 함께 해야 한다는 점이 지적됐다.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한-미 양국 국방정책 담당자가 통합 MD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도 강조됐다.

그러나 두 나라 참석자들은 “한국 국민에게 미사일방어를 설명함에 있어, 현존하는 북한의 위협을 지나치게 강조하기보다는 통일 뒤 한반도가 직면할 안보환경을 위해 MD를 구축한다는 쪽에 강조점을 둬야 한다”는 데도 인식을 같이했다. 또, 미국과 함께 추진한다는 점이 부각되는 것보다 한국의 국방 현대화 계획에 따라 MD 구축에 나서는 것으로 보이는 게 ‘감정적으로 격앙된 시민단체와 일부 언론의 비판’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도 지적됐다. 흥미롭게도 이는 최근 김희상 청와대 국방보좌관과 차영구 국방부 정책실장이 잇따라 방송에 출연해 밝힌 것과 맥을 같이한다.


안보전략 없는 MD 참여로 불안 심화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뒤, 미국은 매년 70억~80억달러를 MD 개발에 쏟아붓고 있다. 내년에도 이미 90억달러를 MD용 예산으로 의회에 요청한 상태다. 지난해 12월 부시 대통령이 초기 실험단계에 불과한 MD를 2004년까지 배치하겠다고 밝히자,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붓고도 원하는 결론을 얻어낼 수 없는 MD를 대통령 선거를 겨냥해 무모하게 추진한다”는 비판이 비등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조차 끊임없이 비판의 대상이 되는 MD에 우리는 모르는 사이 이미 너무 깊숙이 빠져든 건 아닐까?

박순성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소장은 말한다. “정부는 자주국방을 강조하지만, 이른바 ‘한국형 MD’는 미국이 주도하는 동북아 MD의 하부구조일 뿐이다. 대북 억지력 차원에서 선제공격을 포함한 호전적인 반확산 전략과 맞물려 있고, 한-미 연합방위체제 아래서 미국에 대한 군사적 종속성을 심화시킬 뿐이다. 게다가 단기적으로 북한과의 군비경쟁을 유도하고, 장기적으로 중국과도 맞서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우리의 안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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