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5/10]軍 인사, 납품 비리…시스템이 문제다[중앙일보]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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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은…] 軍 인사, 납품 비리…시스템이 문제다
비리는 시스템의 산물이다. 법관은 증거만을 가지고 비리를 다루지만 시스템 전문가는 시스템부터 분석한다. 시스템만 보면 있을 수 있는 부정의 종류와 규모를 예측할 수 있고, 예방도 할 수 있다. 군의 무기구매.인사 등에 대한 시스템을 훑어보면 극히 원시적이어서 부정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가장 유혹받기 쉬운 사람이 지휘부 인사들이다. 그래서 수많은 역대 국방장관과 4성 장군들이 능동적으로 비리를 저질러 명예를 실추당한 적이 있었다. 시스템을 개선하는 일은 군 지휘부의 소관이다. 그런데 지휘부 자체가 비리에 유혹을 받고 있기 때문에 시스템의 개선이 이뤄지기 어렵다. 그래서 수없이 개혁한다고 했지만 결과는 언제나 제자리 걸음이었다.
군의 가장 큰 고질병인 무기구매 시스템을 보자. 무기를 팔기 위해 존재하는 오퍼상들은 400여개가 넘으며 이들은 모두 조달본부에 군납 사업자로, 기무사에는 보안업체로 등록돼 있다. 이 두 곳에 등록되기 위해서도 로비가 필요하다. 국민은 군이 내놓는 무기구매계획서가 율곡 간부들이 무기시장에서 찾아내 모은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사실은 오퍼상들이 시장에서 찾아내 군의 쇼핑 리스트에 올려놓은 것들이다. 그래서 리스트의 품목 하나하나에는 임자가 있다. 현대 무기는 전자무기이고, 전자무기는 소프트웨어 무기이고, 소프트웨어를 이해하려면 수학적 로직과 전자기술을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기술을 장교들에게 통역해줄 수 있는 사람이 오퍼상들이다.
오퍼상이 세계시장에서 그럴 듯한 신장비를 찾아내면 맨 먼저 만나는 사람이 각군 본부에 있는 준위 또는 소령급 행정장교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순환보직 원칙에 따라 보직이 자주 바뀌고, 전자 지식에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술 정보에 어두울 수밖에 없다. 오퍼상의 첫 관문은 이들 행정장교를 그들의 편으로 만들고, 더 나아가 그 무기를 대변해 줄 수 있는 세일즈맨으로 교육시키는 일이다. 이 행정장교가 열심히 뛰어다녀야 무기에 대한 여론이 좋아진다. 오퍼상이 통과해야 할 관문은 그 행정장교들 말고도 23개 단계나 더 있다. 실무자와 과장을 거치고 나면 장군급으로 올라간다. 장군을 만나려면 오퍼상에 예비역 장군 출신이 필요하다. 업자는 이러한 식으로 구성된 24개 과정을 일일이 관리해야 한다. 막힌 곳을 뚫는 것이다. 시스템적으로 보면 장교들은 앉아서 도장을 찍어주고 오퍼상들이 문서를 들고 뛰는 사업주체다. 5개 년 계획이라는 쇼핑리스트는 바로 이러한 절차를 거쳐 오퍼상들이 올려놓은 상품들이다.
이러한 극히 원시적인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비리의 규모는 천문학적이며 이는 '시스템 비리'다. 그러나 요사이 불거진 대장급 장군이 지목받고 있는 비리는 공금 등의 유용이라 한다. 액수도 작고 해석도 모호한 '개인비리'다. 군의 거의 모든 비리는 시스템적 조사에 의해 발각되는 게 아니라 내부자 제보에 의해 드러난다. 최근 인사비리가 무기비리보다 더 많이 제보되는 이유는 지금이 인사철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사비리는 기무사의 동향조사에 의해 쉽게 조사될 수 있지만, 무기구매-수리부속구매 등에 관련된 시스템 비리는 전문가가 아니면 적발하기 매우 어렵다. 역시 그래서 지금도 묻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리가 발생했을 때 한국인들은 누가 처벌 대상이냐를 조사하고, 선진국 사람들은 무엇이 잘못돼 비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느냐를 조사한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처벌이 두려워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이 진실을 은닉하고, 그래서 교훈이 남겨지지 않는다. 한국 사회는 비리의 인물들만 도마에 올릴 줄 알았지, 사회발전과 직결된 '시스템 비리'에 대해서는 그 존재마저 인식하지 못하면서 항상 개혁을 말하고 있다.
지만원 군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