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4/11] [군축]'한반도 군축의 과제와 방향'-이철기 교수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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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군축의 과제와 방향
이 철 기(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Ⅰ. 머리말
분단과 동족상잔이라는 참을 수 없는 고통과 비극을 겪였던 우리 민족은 또 다시 큰 시련에 직면해 있다. 남쪽은 IMF한파로 온 나라가 큰 고통을 겪고 있고, 북쪽 또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식량난으로 인해 수많은 동포들이 굶주림에 죽어가는 참상이 계속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이끄는 새정부가 국민적 기대를 안고 출범했지만, 아직도 통일과 남북관계 면에서 당초 기대했던 성과들은 크게 나타나고 있지 않다. 남북관계는 여전히 단절되어 있고, 정부의 통일관련 부처는 여전히 냉전의식에 젖어 있는 보수우익적인 인물들로 채워져 있으며,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가로막아 온 제도와 법률들은 아직도 요지부동하다. 일부 언론들은 대북강경책을 부추기면서 여론을 호도하고 있고, 남북의 분단과 대립을 이용해 이득을 얻어온 수구세력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정부의 대북한 유화정책에 제동을 걸면서 남북관계의 개선을 방해하려 하고 있다.
새정부의 통일정책은 다음 몇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조기통일의 실현 보다는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더 큰 무게를 둔 '선평화 후통일' 정책이다. 둘째, 북한의 조기붕괴를 전제로 한 흡수통일정책의 포기이다. 셋째,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임하여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유도함으로써 북한의 변화를 꾀한다는 북한관리정책이다. 넷째, 다방면에 걸친 교류협력을 활성화하고, 정경분리원칙에 의해 남북경제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정책이다.
그러나 경제분야의 교류와 협력의 활성화만으로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충분조건을 만들어 갈 수 없다. 남북간에는 여전히 깊은 불신이 존재하며, 남북의 갈라진 동포들사이에는 적대감과 증오심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더구나 한반도의 군사안보상황은 냉전체제 아래에서 구조화된 첨예한 대립과 갈등구조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는 전세계에서 군비의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 되었다. 국토의 곳곳이 요새화되고, 도처에 살살용 무기가 깔려 있다. 이 땅에는 세계 최강인 미국이나 러시아의 군인보다도 더 많은 180만여명의 젊은이들이 군인이 되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탈냉전 이후 유럽에서의 군축을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군사비 삭감과 군축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한간의 군비경쟁은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고 군사적 대결을 해소하며 군비경쟁을 종식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남북간에 군축이 이제 당위의 문제로 다가 오고 있다. 남북의 군축은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데 구조적인 장치로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통일로 가는 길에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Ⅱ. 한반도 군축의 의미
1. 남북 화해와 통일의 지름길로서 평화군축
남북의 화해와 통일은 상대방을 침략하고 공격하기 위한 대규모 군비를 그대로 둔 채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동해안 잠수정사건은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과 갈등이 여전히 엄존하고 있음을 여실히 입증하였다. 한반도의 군사안보상황은 냉전체제하에서 구조화된 첨예한 대립과 갈등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북간에는 여전히 깊은 불신이 존재하며, 군사적 대결과 군비경쟁이 계속되고 있다. 단순히 경제협력을 비롯한 민간차원의 교류협력만으로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조건을 만들어 갈 수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고 군사적 대결을 완화하며 군비경쟁을 종식시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남북한 상호군축은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데 구조적인 장치로서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통일로 가는 길에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이다.
또한 군축을 통해 북한의 군사비를 줄여주는 것이야말로 북한동포를 돕고 아사 직전에 있는 그들을 살리는 진정한 민족화해의 길이다. 현재 북한은 체제생존을 위해 경제적인 여력의 거의 대부분을 군사력 유지와 남한과 군비경쟁에 쏟아 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와중에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은 어린이와 노약자를 비롯한 북한동포들이다. 군축은 옥수수나 의복 지원을 통한 북한동포돕기운동 보다도 더욱 근본적으로 북한동포를 살리는 길이다.
더욱이 지난 반세기동안 지속돼 온 군비경쟁은 남북한 사회를 왜곡시키고 불구로 만들었다. 군비경쟁은 사회복지와 교육 등 다른 부문의 희생을 초래해 사회의 균형적인 발전을 저해했다. 또한 남북간 긴장을 고조시키고 군사적 대치를 구조화하는 역할을 해왔으며, 군사독재와 권위주의 통치의 기반을 제공했다. 군비경쟁의 결과로 한반도는 전세계에서 군비의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 되었고, 국토의 곳곳이 요새화 되었으며, 도처에 살상용 무기가 깔려 있다. 이 땅에는 세계최강인 미국 및 러시아의 군인 보다도 더 많은 젊은이들이 군인이 되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이처럼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중요한 장애물은 남북이 보유하고 있는 대규모 군비이다. 따라서 남북간의 군사적 대결을 해소하고 군비경쟁을 종식시키며 상호군축을 이루지 않고는 민족의 진정한 화해와 통일을 달성할 수 없다.
2. 남북기본합의서의 실천적 과제로서 평화군축
[남북기본합의서]는 반목과 대결의 청산을 통해 민족 화해와 평화공존을 약속한 민족의 대장전이다. [남북기본합의서]는 [7 4남북공동성명]이 천명한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의 '조국통일 3대원칙'을 재확인하면서, 민족의 화해를 기하고 통일로 가기 위해 남북이 수행해야 할 실천적인 과제들을 규정하고 있다. 특히 [남북기본합의서] 제2장 '남북불가침' 부분은 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군축을 통한 평화공존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처럼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의 상호군축을 당면한 실천과제로 합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북기본합의서] 제12조 제13조는 '군사적신뢰구축조치'(CSBM: Confidence- and Security-Building Measures)와 실질적인 군축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12조 남과 북은 불가침의 이행과 보장을 위하여 이 합의서 발효 후 3개월 안에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구성 운영한다. 남북군사공동위원회는 대규모 부대이동과 군사연습의 통보 및 통제문제,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문제, 군인사교류 및 정보교환문제, 대량살상무기와 공격능력의 제거를 비롯한 단계적 군축 실현문제, 검증문제 등 군사적 신뢰조성과 군축을 실현하기 위한 문제를 협의 추진한다.
제13조 남과 북은 우발적인 무력충돌과 그 확대를 방지하기 위하여 쌍방 군사당국자 사이에 직통전화를 설치 운영한다.
남북간에 가장 민감한 문제이며 큰 의견 차이를 보여온 문제인 군축에 남북이 원칙적으로 합의하고 있다는 것은 자못 그 의미가 크다. 남북은 군축문제와 관련해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사항에는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첫째, 남북이 화해와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군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남북은 군축문제를 논의하고 실행한다는 원칙적인 문제에는 이미 합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남북은 그동안 수많은 군축 제안들을 해 왔지만 이것은 진심으로 군축을 원해서라기 보다는 대내외적인 선전용이었으며, 실제적으로는 군축을 기피해 왔다. 그런데 남북은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분단 이후 계속해 온 군비경쟁을 종식시키고 군축을 하기로 합의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남북이 그동안 의견 대립을 보여온 군축의 방법에 대해서도 대체적인 합의를 하고 있다. 군축의 접근 방식과 관련해, 남한은 3단계에 걸친 단계적 점진적 방식을 제시해 온 반면, 북한은 동시적 포괄적인 방식을 주장해 왔다. 남한의 접근 방식은 정치적 신뢰구축-군사적 신뢰구축-군비감축의 이른바 3단계에 걸친 [선신뢰구축, 후군비감축] 방식이다. 이처럼 남한은 군비의 실질적인 감축 보다는 군사적 투명성을 높이고 군사적 안정을 도모하는 '군사적 신뢰안보구축조치'(CSBM)를 강조하면서, 실질적인 군비 감축을 기피해온 것이 사실이다. 반면 북한은 그 제안의 진실성 여부를 떠나 군비의 실질적인 감축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동시적이고 포괄적인 군축방안들을 제안해 왔다. 그런데 [남북기본합의서]는 부대이동과 군사연습의 통보 및 통제문제, 군인사의 교류 및 정보교환문제와 같은 군사적 신뢰구축조치와 대량살상무기와 공격능력의 제거를 비롯한 군비감축을 함께 협의하고 추진하기로 합의하고 있다. 또한 군축을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데도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셋째, 남북은 군축의 내용에 대해서도 중요한 합의를 이루고 있다. 남북은 대량살상무기와 공격능력의 제거에 군축의 우선 순위를 둔다는데 의견 일치를 보이고 있다. 대량살상무기는 핵무기와 생물학무기 및 화학무기를 의미한다. 남북은 이미 [남북기본합의서]와 함께 발효된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을 통해 한반도의 비핵화에 합의한 바 있다. 또한 남북은 1975년 3월 26일 발효된 [생물학무기금지협약](BWC: Biological Weapons Convention)에 함께 가입해 있다. 남북 모두 1989년 1월 4일 비준을 마친 상태이다. 그러나 1997년 4월 29일 발효된 [화학무기금지협약](CWC: Chemical Weapons Convention)에는 남한만이 1993년 1월 14일에 서명하고 1997년 4월 28일에 비준하였다. 그런가 하면 재래식 군비감축과 관련해서는, 남북이 공격능력의 제거에 초점을 맞추기로 합의한 것은 바람직한 것이다. 공격능력의 제거는 군비의 공격적 성격을 방어적 성격으로 전환하여 기습공격능력과 대규모 선제공격능력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군사전략의 방어적 성격으로 전환, 군구조를 비롯한 군사태세의 방어지향적 재편, 공격형 부대와 무기의 감축을 필요로 한다.
넷째, 남북은 군축문제를 협의하고 추진하며 검증업무를 담당할 [남북군사공동위원회]의 설치에 합의하고 있다. [남북기본합의서]상에 [남북군사공동위원회] 설치를 규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구성 운영에 관한 합의서]도 채택한 바 있다. 이처럼 군축문제를 다룰 기구의 설치에 남북이 합의하고 있는 것은 남북이 평화군축을 이루기 위한 큰 진전을 이루었음을 의미한다. 결국 군축은 현재 기능이 정지되어 있는 [남북군사공동위원회]의 재가동을 통해 남북간에 다루어질 문제이다.
3. 경제난 타개책으로서 평화군축
6.25전쟁 이후 가장 큰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해 있는 남북한 모두에게 군축은 경제난을 타개하고 남북한이 함께 살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다. 남북한 직면한 경제난의 원인 가운데 상당부분은 군비경쟁에 따른 과도한 군사비 지출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남한은 매년 국방비를 10%를 넘게 증액해 왔으며, 추경예산을 통해 확정된 98년도 공식적인 국방예산의 경우 13조 8천억원으로 GDP대비 3.2%, 정부재정대비 21%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밝히고 있는 이같은 예산은 일반회계예산 가운데서도 국방부 소관예산에 불과하다. 이밖에도 병무청 소관예산인 병무행정비와 경찰청 예산으로 전 해경비가 별도로 편성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군인연금 가운데 국가부담금 및 국고보조금 등으로 지출되는 수천억원에 달하는 군인연금특별회계, 그리고 군부대 이전과 군용지 매입을 위한 국유재산관리특별예산이 특별회계예산으로 별도로 변성되어 있다. 또한 연구개발비도 상당부분 누락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이런 모든 것들을 포함하여 이른바 NATO방식으로 계산할 경우, 남한의 국방비는 그 규모는 실제로 훨씬 더 크다. 남한에 비해 경제규모가 작고 경제적인 형편이 더 어려운 북한의 경우, 과도한 군사비 지출로부터 받는 압박은 상상을 초월한다. GNP의 25%이상인 것으로 추산되는 북한의 군사비 지출은 현재의 경제난을 감하면 북한의 형편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남북한이 겪고 있는 경제난은 국방비 삭감과 군축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도록 만드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이제 군축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과도한 군사비 지출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경제회생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고 불필요한 재정 낭비를 막는 길이다. 상호 군축을 통해 군사비를 적정 수준으로 낮출 수만 있다면, 과도한 군사비 지출에 시달려 온 남북한의 입장에서 군축은 "경제살리기"를 위한 의미 있는 조치가 될 것이다.
남북한 군사비 지출 추세 비교
(단위: 미화 억달러, 95년 불변가격 기준)
출처: IISS, Military Balance 각년호
Ⅲ. 한반도 군축의 장애요인과 촉진요인
1. 군축을 가로막는 4대 도그머
군축을 논의하고 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우선 대북 인식 및 군축문제와 관련해 우리 사회와 국민들사이에서 이미 고정 관념화 되어 버린 일종의 도그머들을 극복하는데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음 4개의 도그머들은 합리적인 인식과 객관적인 판단을 가로막는 역할을 해왔다. "북한붕괴론 도그머" "북한의 군사적 우위론 도그머" "대남무력적화통일론 도그머" "주한미군 도그머" 등이 그것이다. 이같은 4개의 도그머는 결국 우리 사회에 군축유해론의 도그머를 만들어 놓았다. 군축이 북한의 군사적 우위를 고착화시켜 한국안보를 저해한다는 인식은 군축에 대한 소극적이고 기피적인 태도로 이어져 왔다.
1) 북한붕괴론 도그머
북한에 대한 봉쇄를 지속하면 북한체제가 붕괴되고 이는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로 이어진다는 단순논리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북한체제의 붕괴와 이에 따른 흡수통일론에 대한 환상은 과거 김영삼정권하에서 대북정책의 경직성을 가져오게 하고, 대북강경론으로 일관하게 한 주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북한이 겪고 있는 식량난을 비롯한 경제적 어려움은 북한 붕괴의 환상을 부추기는데 일조를 했다. 설사 북한체제가 붕괴하더라도 이것이 남한으로의 흡수통일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현실성이 없는 단순논리에 불과하다. 북한체제가 붕괴하는 경우에도, 흡수통일로 이어지기 보다는 내전이나 주변강대국들이 개입하는 국제전 형태로 발전하거나 또는 분단고착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점쳐 지고 있다.
김대중정부가 대북정책의 원칙의 하나로 흡수통일의 배제를 밝히고는 있으나,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북한붕괴론과 흡수통일론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가능한 시간을 끌면서 북한의 목을 죄면서 대북 압박을 강화하면 북한이 곧 붕괴 할 것이라 북한붕괴론의 도그머에 빠져 있는 한, 미래지향적인 대북정책과 남북한 군축을 위한 사고가 설 자리는 없다. 남북한 군축을 위한 협상과 이의 실행은 북한을 대등한 협상 상대로 인정하고 상대방 체제의 유지에 대한 보장을 전제할 때만이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2) 북한의 군사적 우위론 도그머
북한의 군사력이 남한에 비해 월등히 우위에 있다는 것이 우리 사회에 뿌리 내리고 있는 일반적인 인식이다. 북한의 군사적 우위론 도그머는 남한이 계속에서 군사력 증강을 해야하는 중요한 논리를 제공해 왔다. 남북한 군사력에 대한 상대적 평가는 단순한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북한의 군사적 우위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북한의 군사적 우위에 대한 의문은 80년대말부터 국내 민간 학자들에 의해 제기돼 온 문제이다. 총체적인 전쟁수행능력을 무시한 단순한 수적인 비교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북한의 군사적 우위에 대한 근거로 제시되고 있는 것은 두가지이다. 가장 중요한 근거로 제시해온 논리는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병력 및 무기의 수적인 우위이다. 다른 하나는 현재 남한의 국방비가 북한의 국방비에 비해 월등한 많은 것은 사실이나, 북한이 군비 증강을 남한 보다 일찍 시작했기 때문에 투자비 누계액에서는 북한이 앞선다는 것이다.
우선 단순히 병력과 무기의 보유 수를 비교하는 '단순개수비교'나 '등가치비교'는 그 성질과 질을 달리하는 남북한의 인적 물적 역량의 차이를 무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국방부가 발행한 {국방백서} 1998년호는 병력수에서 북한이 116만명으로써 남한의 69만명을 압도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으며, 해군 수상전투함의 경우는 남북한이 각각 170척:440척, 공군 전투기는 550대:850대를 보유한 것으로 단순 비교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단순 논리는 전력의 질적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채 군사력 평가의 기본적인 상식 조차 무시하고 있다. 해군력의 경우 동서해로 분리되어 있는 북한 해군력이 지닌 지리적 취약점을 굳이 거론할 필요도 없다. 북한이 보유한 1천톤급 이상의 함정이라야 구형인 로메오급 잠수함 21척을 비롯해, 수상전투함으로는 소호급 1척과 나진급 2척의 호위함(frigate)이 고작이다. 나머지는 대부분 200-400톤 사이의 미사일정과 경비정, 그리고 100톤 미만의 쾌속정들로써, 전쟁시 항구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에 비해 남한은 최근에 취항시킨 4척 이상의 장보고급 잠수함과 1천톤 이상의 주력수상전투함만 40여척을 보유하고 있다. 공군력의 경우도, 북한 전투기의 절반 가까이는 한국전쟁과 50년대에 도입된 미그 17과 미그 19기가 차지하고 있다. 또한 남한 공군조종사들의 기술적 우월성과 비행훈련시간에 있어서 압도적 우위는 우리 군당국도 인정하고 있는 바이다. 게다가 북한의 경우 유류난등으로 인해 최근에는 비행훈련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의 무기체계는 4대군사노선이 시작된 60년대에 형성된 구형으로서, 무기 현대화에 오히려 짐이 되고 있다. 함택영교수는 최근의 한 연구에서 1980년대초부터 남한의 군사력이 북한이 앞서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그런가 하면, 작년말 영국정부 산하의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는 군사력의 대외행사 능력을 중심으로 각 국의 군사력을 평가한 결과, 남북한을 각각 세계 6위와 7위로 평가함으로써, 남한이 북한 보다 우위에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다음으로 군사비의 투자비 누계액에서는 여전히 북한이 앞선다는 주장과 관련해서는, 한국의 경우 투자비 누계 계산에 감가상각이 고려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군사원조도 계상하지 않았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함택영교수는 미국의 군사원조와 감가상각 등을 포함한 보다 객관적인 추정에 의거하면, 국방비 누계에 있어서도 1977-1981년부터 남한이 북한을 앞서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군사비 지출면에서 비교할 때, 국방부가 인정하듯이 1976년부터 남한의 군사비가 북한을 능가하기 시작한다. 1976년의 경우 남한의 군사비가 38.4억달러 인데 비해, 북한의 군사비는 33.2억 달러에 머물었다. 그 이후 남북한의 군사비 지출 격차는 더욱 벌어져 왔다.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International Institution for Strategic studies)의 통계에 의하면, 90년 이후 북한의 군사비는 남한의 절반에도 못미치고 있다. 그 결과 1995년의 경우 남북한의 군사비는 미국 달러로 환산하여 각각 143억 6천만달러와 52억 3천만달러로, 그 격차가 2.74: 1로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북한의 군사비 지출 격차가 실제로는 이 보다 더 크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90년대 이후 경제난으로 인해 마이너스 성장을 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북한이 1997년 6월 UN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GNP가 1988년에 161억달러에서 1995년에 52억달러로 격감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는 IISS가 추정하고 있는 1995년도 북한의 군사비 총액과 비슷한 수치이다.
통계수치에 있어서 가장 보수적인 입장을 지니고 있는 IISS와 한국 국방부의 통계에 의하더라도, 북한의 군사비는 85년도 수준에서 계속 정체 현상을 보이고 있다. 군사비 지출에서 한계에 부딪친 북한은 80년대 이후 고육지책으로 전력의 질적 개선 보다는 병력 수를 늘리는데 만족해 온 반면, 한국은 첨단 장비의 도입 등을 통해 군사력의 질적 향상을 꾀해 왔다. 이는 한국이 군비의 질적 향상을 추구한데 비해, 북한은 오히려 인적 역량 위주로 후퇴한 것을 의미한다. 한국은 군사력 열세의 근거로 제시해 온 군비의 수적 열세를 충분히 만회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 보다는 질을 추구해 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3) 대남무력적화통일론 도그머
남한내에서 군비증강을 합리화시키는 중요한 명분 역할을 해 온 또 하나는 북한의 대남무력적화통일 위협론이다. 북한 군사정책의 1차적인 목표가 여전히 대남무력적화통일에 있다는 것이다. 60-70년대 {김일성 저작선}의 문구를 인용하여 현재 북한의 군사정책 및 군사전략의 대남적화성과 침략성을 제시한다면 그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백배천배보복"과 같은 선전적 언동과 문구를 실제 정책과 구분하지 못한다면 이것 또한 넌센스이다. 북한이 여전히 대남무력적화통일을 기도하고 있다는 근거로 선제기습공격을 전제로 한 북한 군사력의 전진배치를 지적한다. 북한 전력의 67%가 평양-원산 이남에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북한 군사력의 전진배치는 남한의 군사전략에 대한 대응적인 측면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한국 군사전략의 기조가 [공지전 교리](AirLand Battle Doctrine)에 기초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공지전 교리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전방전투와 종심전투를 동시에 수행한다는 것이며, 적 후속군에 대한 종심공격을 중시한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긴 종심을 지니고 있고 제공권 장악에서 불리한 북한의 입장에서, 전력을 가능한 한 전진배치해 놓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인지도 모른다. 남한의 경우도 전력의 90%를 대전 이북에 배치시켜 놓고 있다. 북한의 군사정책 및 전략은 탈냉전후 그 목표와 성격이 자기생존과 체제유지라는 매우 수세적인 입장으로 바뀌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4) 주한미군 도그머
주한미군이 있어야 한국안보가 가능하고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곧 한국이 망한다는 인식은 한국안보정책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가로막고 정책적인 선택의 폭을 좁게 만들어 왔다. 주한미군철수나 감축은 남북협상이나 군축협상과정에서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탈냉전후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와 북한의 주한미군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주목해야 한다. 앞에서 지적 했듯이, 북한 당국은 비공식적이긴 하나 이미 여러차례에 걸쳐 주한미군의 존재를 묵인한다는 의사를 밝혀 왔다. 이것은 주한미군의 역할에 대한 북한의 인식 변화에 기인한다. 남북간 군비경쟁에서 이미 뒤처지기 시작한 북한의 입장에서는, 역설적으로 주한미군이 북한의 안보를 보장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따라서 주한미군문제는 북한을 크게 위협하지 않는 수준, 즉 주한미군 전력의 일부 감축과 후방으로 철수 선에서 북한과 미국간에 상호 양해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미국의 주한미군 일부개편계획과도 일치한다. 북한의 대미정책 목표는 "자신에 적대적이지 않은 미국, 자신에 위협적이지 않은 미군"을 만드는 것이다. 북한이 4자회담에서 주한미군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협상카드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조치의 완화와 관계개선에 소극적인 상황에서, 주한미군문제는 북한이 지니고 있는 몇 개 남지 않은 카드이다.
이같은 주한미군에 대한 북한의 인식 변화는 주한미군이 대북억지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으며, 이제 한반도 및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력 유지의 수단으로서 역할을 지니게 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남북회담과 군축협상에서 주한미군문제에 대해 보다 유연하고 자주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주한미군철수문제까지도 정책적인 검토의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의 폭을 넓혀야 한다.
. 2. 한반도 군축의 장애요인
1) 남북의 공세적 군사전략
남북한의 군사정책 및 군사전략이 지금처럼 '억지론'(deterrence theory)과 '공세적 전략'에 기초하고 있는 한, 남북한간에 의미있고 실질적인 군축은 어렵다. 남북한 군사정책의 이론적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은 상대방에게 효과적인 군사적인 위협을 제시함으로써 자신의 안보를 확보한다고 하는 억지론이다. '억지'와 '군비'는 한 쌍으로서, 억지론이 적용되는 한 군비경쟁과 대규모 군비의 보존이 불가피하다. 특히 재래식 군비에 의존하고 있는 한반도의 경우, 군사력이 순수한 억지수단이라기 보다는 '전쟁수행능력'(war-fighting capability)의 의미를 겸비하고 있기 때문에 대규모 군비의 보존이 필요한 실정이다. 한국의 경우 억지론에 기초하고 있는 한국 군사전략의 기조는 '공지적 교리'(Airland Battle doctrine)에 입각한 공세적 전략이다. 한국의 이같은 공세적 전략은 남북한 군축과 관련해 다음 몇가지의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방어 수준 이상의 대규모 군사력의 보존을 필요로 함에 따라 사실상 군축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 둘째, 군축의 주요대상이 되는 공격용 무기와 부대의 대량 보유 및 유지를 전제하고 있어서 군축협상을 어렵게 한다. 셋째, 한국 군사정책 및 군사전략을 미국의 정책 및 전략의 틀에 종속시킴으로써 군축과 통일에 대비한 새로운 정책 및 전략의 수립을 어렵게 할 것이다.
'전격전'(Blitzkrieg)에 기초하고 있는 북한의 군사전략 역시 공세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전쟁 지속능력의 열세를 반영한 전격전 전략은 전쟁 발발시 전방지대에 대한 대규모 집중적인 화력공격을 통해 전선을 돌파하고 기동력을 이용해 신속하게 군사적 목표물을 점령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이러한 공세적 전략은 남북한 군축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임에 틀림없다. 첫째, 전격전의 3대 주요장비인 야포 탱크 장갑차는 바로 군축의 1차적인 대상이다. 둘째, 앞의 3대 공격무기와 함께 북한이 전격전의 또 다른 중요 요소로 꼽고 있는 보병의 존재는 병력 감축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처럼 남북한 군축의 실행은 남북한 모두 현재와 같은 공세적 성격의 군사정책 및 군사전략하에서는 의미있는 진전이 불가능하다.
2) 남북의 군부 반발
남북한 모두 예상되는 군부의 반발은 군축 협상과 실행을 가로막는 중요한 장애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권교체기를 맞고 있는 남북한의 입장에서, 취약한 권력기반을 고려할 때 군부에 대한 대규모 개혁을 수반할 수 있는 군축을 단행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소수 여당의 취약한 권력 기반에 의존하고 있는 김대중정부의 입장에서, 대규모 군사비 삭감과 군비감축 그리고 장성과 고급장교들의 감축이 포함된 군의 구조조정을 과연 과감하게 단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김대중정부은 당분간 가능한 군부와 충돌을 회피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새정부는 금년도 추경예산안 조정과정에서 당초 재경원이 제출한 국방예산 삭감액 1조5천억에도 못미치는 6,200억원을 삭감하는데 그쳐, 다른 부문의 예산에 비해 거의 삭감되지 않았다.
북한의 경우도 김정일의 권력계승과 심각한 경제난에 따른 국가의 위기상황에서, 김정일정권은 자신의 권력기반을 군부에 의존할 수 밖에 없으며 군부를 중심으로 한 위기관리체제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조선인민군 창건일을 국가적 휴일로 격상시켰으며, 김정일은 대부분의 현지지도를 군부대 방문에 할애하는 등 군부의 영향력 확대가 목격되고 있기 때문이다.
3) 미국의 정책 및 전략
미국이 한반도 및 동북아에 대해 취하고 있는 정책과 전략은 남북한 군축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정책 및 전략은 결코 군축지향적이지 않다. 한국이 미국의 정책 및 군사전략의 틀속에 편입되어 있는 한, 남북간 재래식 군축의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것은 향후 미국이 추진할 동북아정책의 기조와 방향을 담고 있는 1995년에 발표된 [동아시아전략보고서](EASR: United States Security Strategy for the East Asia-Pacific Region)를 살펴보면 분명해진다. EASR은 한국의 지상군 위주 개편과 해공군력의 미군 의존을 명문화하면서, 한국이 지상전력 강화를 위한 전차 중거리 자주포 항공기 및 헬기 포병용 레이다 등의 구매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미국의 이같은 정책적 입장은 금년 1월 한국을 방문한 월리엄 코언 미국 국방장관의 태도에서도 극명히 나타난다. 코언은 "대북 억지력을 일정 수준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국방비 삭감은 곤란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미국의 정책과 입장은 남북한 군축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점을 시사한다. 첫째, 미래지향적인 군구조 개편과 자주적인 안보정책의 수립을 방해할 것이다. 둘째, 남북 군축의 직접적인 대상인 지상군비 및 공격용 무기의 감축을 어렵게 할 것이다. 셋째, 군사비 삭감을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지상군비 위주의 미국 무기 구매를 강요당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 지난 1991년 노태우정권 당시 추진해 온 소수정예과학군의 육성과 대주변국을 대비하는 [신군사전략]이 미국의 압력으로 보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국방백서}에 다시 북한이 주적으로 등장한 바 있다. 따라서 한국이 지금처럼 미국의 군사전략체제에 종속되어 있는 한, 한반도에서 재래식 군비감축의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4) 남한의 군비경쟁 우위 확보
군비경쟁에서 이미 우위를 확보하기 시작한 남한의 입장에서 군축에 임하는 것이 쉽지 않다. 앞에서 지적 했듯이, 남한은 우세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76년 이후 군사비 지출면에서 북한을 앞서기 시작했으며, 1980년대초부터 북한의 군사력을 능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현 시점에서 남북간의 군사비 지출 수준은 3:1 이상의 격차로 벌어져 있으며, 남북간의 이같은 격차는 앞으로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한국은 가능한 한 군비경쟁을 지속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으며, 시간이 자신의 편이라는 입장을 보일 것이다.
남한은 "율곡사업"으로 불리는 군비증강사업을 1974년부터 추진해 왔으며, 1975년부터 "방위세"라는 목적세가 신설된 바 있다. '제1차 율곡사업'(1974-1981) 과 '제2차 율곡사업'(1982-1986) 그리고 87년부터 추진된 '방위력개선사업'을 통해 1997년까지 총 29조 9,899억원을 군비 증강에 투자하였다. 1998년도 경우에도 공중조기경보기(AWACS)와 개량형 잠수함(SSU)사업 등 일부 신규 사업이 99년 이후로 연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무기 구매등 전력 증강비가 전년도 보다 2.5% 증가한 4조 802억원이 책정된 바 있다. 그런가 하면 한국정부는 보류되었던 신규 사업의 재개를 비롯해 군비증강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방부가 예산청에 제출한 99년도 예산 편성안에 따르면, 사업 추진이 보류되었던 개량형 잠수함(SSU)사업과 차기 대공유도탄 도입 등의 재개에 필요한 예산을 포함해서 군비증강예산을 올해 보다 10% 증가한 4조 4,882억으로 책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5) 남한 국민의 냉전의식과 보수수구세력의 존재
우리 사회에 아직도 팽배해 있는 국민들의 냉전의식과 군축에 호의적이지 못한 국내 여론, 보수언론 그리고 사회적 냉전기류에 기생하는 보수수구세력들의 존재는 군축 논의에 큰 장애요인이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우리 사회와 국민들은 과거 냉전체제에서 고착화된 의식과 안보관 그리고 북한에 대한 맹목적인 적대감과 불신감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으며, 이러한 것들은 군축을 가로막는 도그머들로 작용하고 있다. 국민들은 군축에 대해 막연히 두려움을 지니고 있고, 보수언론들은 군축에 비우호적이며, 보수수구세력들은 군축에 저항적이다. 따라서 이같은 도그머에서 벗어나고 군축에 호의적인 여론을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냐가 큰 과제로 남는다.
6) 북한의 대남 불신감과 군사적 위협감
북한이 느끼는 남한으로부터의 군사적 위협감과 남한에 대한 불신감은 군축을 가로막는 또 다른 요인이다. 북한은 탈냉전후 자기생존과 체제유지라는 매우 수세적인 입장에 처해 있다. 후견자였던 소련의 해체와 중국의 개혁, 그리고 북한이 직면한 경제적 어려움과 군사적 우위의 상실은 북한에게 그 어느 때 보다도 안보에 대한 위협을 느끼게 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체제에 대한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 한, 군축을 위한 협상테이블에 나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군축은 체제의 안보를 담보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군축을 통해 체제의 안전이 보장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는 한 응할 수 없는 문제이다. 북한을 군축 협상테이블로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군축이 북한체제에 위협을 주지 않으며 오히려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 주어야 한다. 북한의 남한에 대한 불신감과 군사적 위협감을 줄여주기 위한 몇가지 조치들이 필요하다. 첫째, 남한 정부가 군축문제를 진지하게 다룰 자세와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상호군축에 앞서 군사비 삭감등 남쪽에서 일방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몇가지 조치들을 취할 필요가 있다. 둘째, 주한미군으로부터 제기되는 군사적 위협을 감소시켜 주는 조치가 필요하다. 주한미군의 부분적 단계적 감축에 동의해 주어야 한다. 셋째, 북한이 받아 들일 수 있는 상호 호혜적이고 객관적인 군축방안을 마련하여 제안하여야 한다.
현 시점에서 군축은 북한이 더 절실한 문제이다. 남한에 비해 경제 규모가 훨씬 작고 경제난의 정도가 더 심각한 북한의 경우, 경제난으로 인해 군사비 지출로부터 받는 압박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북한의 군사비 지출은 현재의 경제난을 감안하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써, 거의 모든 경제적 여력을 군사력 유지에 쏟아 부어야 할 형편이다. 따라서 남한에서 계기와 기회만 제공한다면 북한이 의외로 협상테이블에 쉽게 응할 가능성에 있다.
3. 한반도 군축의 촉진요인
1) 남북의 경제난
남북이 처해 있는 경제난은 남북한을 군축을 위한 협상테이블로 가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유인이다. 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국난이라는 남한의 IMF한파와 북한의 경제난은 남북한 모두에게 지금까지 토부시 해왔던 군축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남북한이 직면한 경제난의 원인 가운데 상당부분은 - 특히, 북한의 경우 - 과도한 군사비 지출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남한의 경우 IMF한파 속에서도 국방예산은 여전히 무풍지대로 남아 있다. IMF의 긴축재정과 예산 삭감 요구에 따라 축소조정된 금년도 추경예산에서도, 다른 부문의 축소조정에도 불구하고 국방예산만은 지난해에 비해 오히려 0.1% 증가했다. 인건비의 자연감소분을 제외하면 일부 신규사업을 보류하여 내년도로 연기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경제난에 따른 재정적인 압박, 그리고 점증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평화군축운동과 여론의 압력은 군축을 정책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 것이다. 북한 역시 재의 경제난을 감안할 때, 더 이상 지금의 군사비 지출을 감당할 수 있는 형편으로써 결국 북한이 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군축 밖에 다른 방도가 없어 보인다. 이처럼 내부적인 압박과 압력은 일정 수준의 일방적인 국방예산 삭감과 아울러 상호군축을 통한 군사비의 감축을 유도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2) 남한의 정권교체
남한의 경우 정권교체와 이에 따른 김대중정권의 등장은 군축에 유리한 조건을 만즐어 주고 있다. 개혁적인 성향과 대북문제에 있어서 전향적인 자세를 지닌 것으로 평가되는 김대중정권의 등장은 과거 정권들 보다는 군축문제를 정책적 고려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고 있다. 실제로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방문중 [로스앤젤레스타임즈]와 기자회견에서, "지금은 당장 통일을 실현할 시기가 아니며, 전쟁억제와 군비축소를 통해 민생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단계가 돼야 할 것"이라고 밝혀, 군축을 정책적으로 고려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또한 국민회의는 대선공약을 통해, "21세기를 대비한 소수정예의 강병 과학군을 육성하는 신국방정책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새정부가 추진하겠다는 '소수정예과학군'을 위해서는 병력의 감축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병력감축문제에 보다 유연한 자세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소수정예과학군'의 육성을 위해서는 많은 첨단장비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오히려 군사비 감축을 방해할 소지도 아울러 안고 있다.
3) 북한의 군비경쟁 열세
북한의 입장에서는, 직면한 군사비 지출의 한계와 이에 따른 군비경쟁에서의 열세가 군축을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으로써는 더 이상 남한과 군비경쟁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더욱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남한과 군비경쟁에서 더욱 뒤처질 수 밖에 없는 형편이어서, 군사력의 열세가 확대되기 전에 가능한 군비경쟁을 끝내야할 입장이다. 재래식 군비경쟁에서 한계에 직면한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과 장거리 방사포와 같은 전략무기들의 개발을 그 대안으로 모색하고 있으나, 이 역시 개발의 어려움과 미국의 압력 등으로 쉽지 않은 실정이다.
4) 북한의 대미관계 개선 필요성
북한의 미국과 관계개선 필요성은 주한미군문제를 비롯한 군사문제에 대한 협상과 타의 여지를 만들어 주고 있다. 현 시점에서 북한의 당면과제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미국으로부터 북한체제의 생존을 보장받는 것이다. 북한이 우여곡절 끝에 4자회담에 응하고 있는 근본 이유는 미국과의 직접협상 채널을 유지하고, 미국과 관계개선을 통해 자신의 생존을 보장 받기 위한 것이다. 주한미군문제는 북한의 군축제안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던 단골메뉴로서, 그동안 군축문제를 비롯해 각종 남북한간 협상의 진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어 왔다. 따라서 북한이 주한미군문제에 대해 보다 유연한 자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큰 장애물이 하나 제거된 셈이다.
Ⅳ. 한반도 군축의 가능조건
한반도에서 군축이 실제로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군축에 유리한 대내외적인 환경을 만들어 가고, 아울러 군축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들과 장애요인들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군축을 가능케 하기 위한 대내외적인 조건들을 만들어 가야 한다. 이러한 가능조건들은 크게 세가지 측면에서 고려될 수 있다. 하나는 주변정세와 주변국들과의 관계 그리고 국제적인 군축조약들과의 관계와 같은 대외적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남북한의 내부적인 변수들이며, 또 다른 하나는 남북관계 측면이다.
1. 대외적 측면
1) 대미 군사적 의존성의 극복
미국이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취하고 있는 정책 및 전략이 결코 군축지향적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국이 미국의 정책 및 전략의 틀 속에 편입되어 있는 한, 남북한 군축의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군축은 상당부분 한국이 미국에 대한 군사적 의존성을 얼마나 극복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미국은 1995년에 발표된 [동아시아전략보고서](EASR)를 통해, 한국의 지상군 위주 개편과 해공군력의 미국 의존을 명문화하고 있다. 이는 한국군 지상전력의 강화와 공격용 무기의 보강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같은 지상전력과 공격용 무기들은 남북 군축시 1차적 대상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정책은 한반도 군축을 어렵게하고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케 할 것이 분명하다.
결국 한반도에서 군축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정책 및 전략틀에서 벗어나고, 미국에 대한 군사적 의존성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한국의 안보정책과 관련해 두가지 과제를 제시한다. 하나는 미국에 대한 안보적 군사적 의존성 내지는 종속성을 극복하고 안보관계를 다변화 균형화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대미 안보관계를 재정립하고, 주변의 중국 러시아 일본 등과 안보관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동북아에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Organization for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와 같은 다자안보기구의 설치를 통해 동북아의 안보질서를 다자화 다변화하는 것이다.
2) 북한의 대미 군사적 위협감 해소
북한을 군축 협상테이블로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븍한으로 하여금 군축을 통해 군사적 위협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북한이 느끼고 있는 군사적 위협은 남한군사력으로부터 제기되는 위협과 함께 미국으로부터 제기되는 군사적 위협이다. 따라서 북한이 남한과 상호 군축협상에 임하게 하기 위해서는 미국으로 제기되는 군사적 위협을 해소 시켜 주어야 한다.
미국으로부터 제기되는 군사적 위협은 두가지 면에서 제기되어 왔다. 하나는 미국의 핵위협이며, 다른 하나는 주한미군으로부터 제기되는 위협이다. 그런데 미국으로부터의 핵위협은 남한내에 배치되었던 미국 전술핵무기의 철수와 1994년 10월 북미간에 체결된 [북미기본합의문]을 통해 "북한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 및 사용위협을 하지 않겠다"는 '소극적 안보보장'(NSA: negative security assurance)을 받아냄으로써 어느정도 해소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남한내에 주둔하고 있는 3만6천명가량의 주한미군으로 제기되는 위협이다. 이와 관련해 현 시점에서 북한의 정책 목표는 주한미군의 완전한 철수 보다는 "자신에 위협적이지 않은 주한미군"으로 주한미군의 성격을 변화시키는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북한은 세가지 점을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나는 주한미군전력의 일부 감축과 주한미군의 후방철수이며, 다른 하나는 UN사령부의 해체이며, 또 다른 하나는 미국과의 상설적인 군사채널 확보이다. 북한의 이같은 입장은 미국의 입장 및 정책 방향과 대체로 일치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북한과 미국간의 상호 타협과 묵인을 통해 실현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보다 전향적이고 유연한 입장을 보임으로써 군축문제를 풀어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주한미군의 부분적 단계적 감축에 동의하는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형식 뿐인 유엔사의 존속을 계속 고집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유엔사 해체를 과감히 수용하여 주한미군의 법적 성격과 역할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3) 대외적인 군사적 위협의 극복
주변국들로부터 제기되는 대외적인 군사적 위협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제기되며, 이에 대한 효과적인 대처가 전제될 때 남북의 상호군축은 보다 의미를 지닐 수 있다. 남북의 군축이 한반도의 안전을 저해하고 한민족 전체의 생존권 보장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북의 군축은 주변의 잠재적 적국로부터 제기되는 군사적 위협의 극복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과제들을 제기한다. 첫째, 주변국들로부터 제기되는 한반도에 대한 안보 위협을 감소시키는 한편,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주변강대국들의 보장과 지지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주변국들의 한반도에 대한 무력개입의 가능성을 방지하며, 특히 통일과정에서 주변국들의 방해나 무력개입을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통일후 "통일코리아"의 입장에서 적정 수준의 군사력을 유지하케 함으로써 안보 확보가 가능해야 한다. 넷째, 주변 핵보유국들로부터 한반도비핵화 상태에 대한 실질적인 존중과 보장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 한반도내의 군축이 동북아 전체의 군사적 균형을 해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결국 이같은 과제들은 동북아에도 유럽의 [유럽재래식군비감축조약](CFE Treaty: Treaty on Conventional Armed Forces in Europe)과 같은 지역차원의 군축이 행해져야 하며, 아울러 한반도비핵화를 지역 차원의 동북아비핵지대로 확대해야 하는 장기적인 과제들을 다시 제기하는 것이다.
2. 대내적 측면
1) 공세적 안보정책 및 군사전략의 방어적 성격으로 전환
한반도의 군축은 남북 모두 현재의 공세적인 안보정책 및 군사전략을 방어적 성격으로 전환하는 것을 가능조건으로 한다. 남북한이 지금과 같이 '억지론'과 '공세적 전략'을 기초하고 있는 한, 남북간의 첨예한 군사적 대립과 군비경쟁은 계속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대안적인 정책 및 전략으로서 [헬싱키선언] 이후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를 통한 유럽에서 다자안보협력의 이론적 배경이 된 '협력안보론'(cooperative security)과 [유럽재래식군축조약](CFE)의 전략적인 배경 역할을 한 '비공세적 방어'(non-offensive defense)전략에 대한 한반도 적용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억지론에 대한 대안으로서 모색되어 온 협력안보론은 어떤 국가도 더 이상 안보를 상대방의 희생을 통해 추구할 수 없으며 단지 협력을 통해서만이 달성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비제로섬'(non-zero-sum) 논리에 기초한 협력안보론은 군사력에 의한 억지에 의존하기 보다는, 상호간 군비에 대한 통제 및 감축을 통해 무력사용이나 사용위협에 직면하지 않도록 안보상 보장을 확보하는 '재보장'(reassurance)에 의존한다.
협력안보론은 한반도에서 군축을 가능케 하는 군사안보정책의 이론적 배경으로서 고려될 충분한 가치가 있다. 협력안보론에 입각한 남북한 군사안보정책의 재정립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한반도 군축의 조건과 환경을 조성하는데 이바지 할 것이다. 첫째, 보다 방어적인 군사전략과 군사태세로의 전환을 가능케해 한반도에서 군비의 안정화와 군축의 조건을 마련해 줄 수 있다. 즉, 대규모 군사력의 필요성과 지상군비에 대한 의존성을 약화시킬 것이다. 둘째, '안보의 상호의존성'과 '상호생존'에 대한 인식에 기초한 협력안보론은 남북한간의 극단적인 대결과 불신구조를 완화시켜 한반도에서 전쟁을 방지하고 통일 기반을 조성하는데 이바지 한다. 셋째, 예상되는 한미군사동맹관계의 약화 및 성격 변화에 따른 대북 억지력 약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또한 미국 군사전략체제에의 종속에서 탈피해 한국의 독자적인 안보정책 수립을 가능게 할 것이다. 넷째, 협력안보론은 대주변국 안보정책과 통일을 대비한 안보정책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해 준다. 이는 기존의 대북 위주 안보에서 대주변국 전방위 안보로의 전환을 통한 미래지향적 안보정책으로의 재정립과 통일에 대비한 남북한 적정군사력 유지의 정책적 토대를 마련해 줄 수 있다.
또한 남북 각기 '공지전 교리'와 '전격전'에 기초한 기존의 공세적 전략에 대한 대안적 전략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된다. 공세적 전략에 대안 대안으로 유럽에서 모색돼 온 것이 바로 '비공세적 방어'(non-offensive defense) 개념이다. 1950년대 독일의 통일과 재무장에 대한 논란 속에서 잉태된 '비공세적 방어' 개념은 1986년 고르바초프에 의해 '방어적 방어'(defensive defense)라는 용어로 구소련의 전략개념으로 채택되면서 공식적으로 현실화 되엇으며, 1989년 1월 10일 [유럽재래식군축감축](CFE) 협상을 위한 [기조합의서]에 등장하면서 유럽재래식군축의 이론적 배경이 된 바 있다.
'비공세적 방어'는 전체적으로 공격에는 충분치 않으나 방어에는 충분히 신뢰할만한 능력을 보유한 군사전략(military strategy) 및 군사태세(military posture)를 의미한다. 이것은 상호 방어적 우월성과 방어적 잇점의 논리에 기초하여 군사전략 및 군사태세의 방어지향적 재편을 추구한다. 즉, 공격적 능력을 제거하거나 최소화시키고 반면에 방어적 능력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한반도 군축의 실행이 현재의 공세적 전략과 군사태세의 방어적 성격으로의 전환을 조건으로 할 때, '비공세적 방어' 개념의 한반도 적용은 매우 큰 논리적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현 한반도 상황은 '비공세적 방어' 개념의 탄생을 가져왔던 1989년 이전의 유럽상황과 매우 유사함이 지적되고 있다. 즉, 양측이 어느정도 균형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명확한 전선이 존재하며, 상호 기습공격과 대규모공격에 대한 공포감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2) 군부반발 억제
군축은 군장성 및 고급장교들의 대규모 감축을 포함한 군에 대한 대폭적인 구조조정과 이에 따른 군부의 영향력 감소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남북한 모두 군부의 반발과 저항이 예상된다. 따라서 남북한 정권이 군부의 반발을 어떻게 잘 무마하고 억제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군축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 군부의 반발을 억제하면서 군축을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다음 두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남북 양 정권의 안정화이다. 남북의 김대중정권과 김정일정권의 안정화는 군부에 대한 장악력과 통제력을 높임으로써 군부의 반발을 억제하고 군축을 가능케하는 조건을 만들 수 있다. 소수 여당의 취약한 권력 기반에 의존하고 있는 김대중정권의 입장에서, 대규모 군사비 삭감과 과감한 군의 구조조정이 쉽지 않은 형편이다. 또한 북한에서 김정일정권의 약화와 혼란은 오히려 군부의 입지와 영향력 강화로 이어져 군축을 어렵게 할 수 있다. 김일성주석 사망 이후 김정일 만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군부를 장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물이 앞으로 북한에 등장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따라서 남북한의 군축 협상과 실행을 위해서는, 남쪽에서는 김대중정권의 안정화와 더불어 북쪽에서 김정일정권의 안정화를 조건으로 한다. 또한 김정일정권하에서 북한과 군축협상을 서들러야 한다. 김정일 이후에 북한의 정권은 집단지도체제화할 가능성이 높으며, 그렇게 될 경우 군부는 권력의 중요한 한 축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어 군축은 사실상 어렵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남북 모두 온건파의 입지를 강화하고 발언권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남한내에서 군축에 부정적인 입장을 지니고 있는 군부와 수구세력들의 반발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개혁세력을 육성하고 참신한 인물들을 등용해야 한다. 또한 북한내에서 강경파를 대표하는 군부의 영향력을 감소 시키고 온건파의 입지를 강화시키기 위한 정책적 고려들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 보다 유연하고 광범위한 대북포용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3) 반대여론 극복
군축에 호의적이지 못한 국민 여론과 언론을 설득하고, 또한 사회적 냉전기류에 기생하는 수구세력들의 반발 극복하는 것 역시 군축을 위한 조건이다. 국민여론의 지지와 언론의 지원 없이 군축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여전히 냉전의식과 냉전적인 안보관에 사로잡혀 있어 냉전에 비우호적인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군축에 호의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민간차원의 대대적인 평화군축운동이 필요하다. 최근 시민사회단체들을 중심으로 평화군축운동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나, 좀더 조직화되고 이론적인 무장화를 통해 국민들에 대한 설득력을 높여야 한다. 국민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인 어려움은 어느 때 보다도 국민들을 설득하고 군축에 호의적인 여론을 만들 수 있는 좋은 여건을 조성하고 있다.
3. 남북관계 측면
1) 남북간 상호 신뢰감 조성
군축협상을 위한 출발점은 무엇 보다도 상호 신뢰감의 조성이다. 특히 지금처럼 남북간에 깊은 불신과 적대감이 상존하는 상황에서는 신뢰감 회복이 급선무이다. 이같은 신뢰감 조성을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 세가지 조치들이 필요하다.
첫째, 가능한 조속한 시일내에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할 필요가 있다. 남북의 정상이 분단이래 최초로 서로 만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김영삼정부이래 남북간에 깊어진 불신의 골을 매우고 남북간의 신뢰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남북정상간의 빅딜(Big deal)을 통해 남북관계의 새로운 기본틀을 마련하고, 현안문제들에 대한 대체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간 다방면에 걸친 교류협력의 확대와 활성화는 상호 신뢰감 조성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남북간에 돌발적인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흔들림 없이 확고하게 정경분리원칙을 적용하고, 또 다방면에 걸친 민간차원의 교류협력을 활성화하겠다는 남북 당국의 의지가 필요하다.
셋째, 한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실행할 수 잇는 몇가지 군축조치들을 시행한다면, 대북 신뢰감 조성과 남북 상호군축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방적인 군축조치로는 국방비의 삭감, 공격용 무기의 도입 중단, 10만명의 병력 감축 단행, 주한미군의 부분적 단계 감축 동의 등이 고려될 수 있다.
2) 상호체제 보장
군축은 상호 체제유지의 보장이 전제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문제이다. 특히 현실적으로 북한 체제의 안전이 보장되야만 북한을 군축 협상 테이블에 나오게 할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의미 있는 진전을 기대할 수 있다.
현 시점에서 북한의 최대 목표는 체제의 생존이며, 그 길은 바로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북한체제의 생존을 보장 받는 것이다. 즉, 북한의 대미정책 목표는 "자신에 적대적이지 않은 미국"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미관계에서 두가지를 달성해야 한다. 하나는 미국과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법적인 측면에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북한의 안전을 보장 받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미국과 수교 등 관계개선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실질적으로 북한체제의 생존을 보장받는 것이다.
따라서 이 두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한다. 우선 평화체제로의 전환문제는 평화협정의 당사자가 누구인가를 둘러싸고 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 한국은 남북한 당사자론을 주장해 온데 비해, 북한은 북한과 미국이 평화협정의 당사자임을 고집해 왔다. 그러나 북한이 이같은 주장의 이면에는 미국과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북한체제의 안전을 보장 받고자 하는 것이 주목적이 다. 결국 이 문제를 푸는 길은 남북한간 협정과 북미간의 협정, 즉 두개의 협정을 동시에 체결하는 것이다. 남북간의 협정은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의 성격을 지니며 남북한이 서명 당사자가 되고 미국과 중국이 보장하는 형태이다. 이와는 별도로 북한과 미국간에 협정을 체결하며, 이 협정은 북미관계의 기본틀을 규정하는 성격을 지니며 미국의 북한에 대한 체제 보장을 내용에 포함시키면 될 것이다.
한편 북미간의 관계개선은 제네바에서 1994년에 체결된 [묵미기본합의문]상의 합의사항이기도 하다. 미국과 북한은 아무리 늦어도 경수로가 완공되는 2003년까지는 대사금 수교를 하기로 합의 한 바 있다. 그동안 남한 정부는 남북관계와의 이른바 '조화와 병행의 원칙'을 내세워, 사실상 북미관계 개선을 방해해 왔으며, 이것은 북한이 남한과 대화를 거부해 온 이유이기도 하다. 북미관계를 풀어 주는 것이야말로 남북관계를 푸는 열쇠이자 실마리이다.
3) 남북기본합의서 체제로의 복귀
[남북기본합의서] 제2장 '남북불가침' 부분, 그 가운데서도 특히 제12조는 남북간의 군축을 실천적 과제로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북기본합의서] 체제로의 복귀는 바로 남북간에 군축을 위한 협상과 실행의 출발점을 의미한다.
남북은 이미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군축문제를 논의하고 실행한다는데 합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군축의 방법과 내용에 대해서도 대체적인 합의를 이루어 놓고 있다. 더욱이 군축문제를 협의하고 추진하며 검증업무를 담당할 [남북군사공동위원회]까지 설치된 상태이다.
역으로, 남북간 군축의 제안은 사문화돼 있는 [남북기본합의서]를 복원시키고, 한반도문제 협상구도의 중심축을 현재의 북미 축에서 남북 축으로 바뀌어 놓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한반도문제의 해결을 위한 협상은 한국이 배제된 채 [북미기본합의문]의 틀과 내용에 따라 북미간의 축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나, [남북기본합의서] 체제를 복원시키고 중심축을 남북관계로 옮겨가기 위한 뚜렷한 대책이 없는 형편이다. 한국이 한반도문제 협상구도에서 주도권을 잡고 남북관계를 중심축으로 복원하고, [남북기본합의서] 체제로 복원하기 위한 방책은 군축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이다. 군축문제를 다루기 위해 [남북군사공동위원회]가 재가동될 수 있다면 이는 [남북기본합의서] 체제 복원을 위한 시발점이 될 것이다.
Ⅴ. 맺는 말
남북이 처해 있는 경제적 어려움은 그 동안 금기시 돼 왔던 군축문제를 현실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남북이 상호군축을 통해 군사비를 줄일 수만 있다면, 군축은 경제난을 타개하고 남북이 함께 살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또한 군축은 사문화되어 있는 [남북기본합의서] 체제로 복원하는 계기도 마련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더욱이 남북의 상호군축은 갈라진 민족이 화해를 이루고 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조건이다. 그것은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데 구조적인 장치로서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통일로 가는 길에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이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평화를 이루면서 동시에 현상변경을 의미하는 통일을 함께 달성해야 하는 이중적 과제를 안고 있다. 이것은 외세를 통해 단순히 현상유지적인 평화를 달성하는 것만으로 그 임무가 끝나는 것이 아님을 뜻한다. 김대중정부는 주한미군의 계속적인 주둔과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의 주둔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주한미군을 보는 시각은, 주한미군을 한국 및 동북아 안보 및 평화를 위해 적절히 이용하자는 일종의 "용미론"(用美論)의 입장이다. 북한 역시 최근 들어 주한미군을 보는 시각이 "한반도전체에 대한 안보보장자"라는 입장으로 바뀌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미국의 전쟁억지력에 의존하겠다는 생각은 통일에 유익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한반도에서 평화는 외세에 의존해서가 아니라, 남북의 군축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 더욱이 미국의 정책과 전략의 틀 속에 편입되어 있는 한, 군축을 이룩하고 통일을 달성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미국의 존재는 한반도에서 일시적인 "평화의 조건"을 만들어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통일의 조건"을 만들어 줄 수는 없다. 그 평화의 조건 조차도 통일의 조건을 희생한 것에 불과하다. 결국 평화와 통일을 동시에 달성하는 길은 바로 남북간의 군축 밖에 없다.
남북은 적대와 갈등의 관계를 청산하고 군축을 통해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군축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하고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시키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남북의 동포들이 경제난과 굶주림에 고통 받고 있는 현실에서 군비경쟁을 계속한다면 이것은 민족에 대한 범죄행위이다. 이제 군축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나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