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4/11] [군축][퍼옴] 한반도 군축의 장애요인과 촉진요인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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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철기(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의 논문 [한반도 평화군축의 과제와 방향]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1. 군축을 가로막는 4대 도그머
군축을 논의하고 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우선 대북 인식 및 군축문제와 관련해 우리 사회와 국민들사이에서 이미 고정 관념화 되어 버린 일종의 도그머들을 극복하는데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음 4개의 도그머들은 합리적인 인식과 객관적인 판단을 가로막는 역할을 해왔다. "북한붕괴론 도그머" "북한의 군사적 우위론 도그머" "대남무력적화통일론 도그머" "주한미군 도그머" 등이 그것이다. 이같은 4개의 도그머는 결국 우리 사회에 군축유해론의 도그머를 만들어 놓았다. 군축이 북한의 군사적 우위를 고착화시켜 한국안보를 저해한다는 인식은 군축에 대한 소극적이고 기피적인 태도로 이어져 왔다.
1) 북한붕괴론 도그머
북한에 대한 봉쇄를 지속하면 북한체제가 붕괴되고 이는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로 이어진다는 단순논리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북한체제의 붕괴와 이에 따른 흡수통일론에 대한 환상은 과거 김영삼정권하에서 대북정책의 경직성을 가져오게 하고, 대북강경론으로 일관하게 한 주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북한이 겪고 있는 식량난을 비롯한 경제적 어려움은 북한 붕괴의 환상을 부추기는데 일조를 했다. 설사 북한체제가 붕괴하더라도 이것이 남한으로의 흡수통일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현실성이 없는 단순논리에 불과하다. 북한체제가 붕괴하는 경우에도, 흡수통일로 이어지기 보다는 내전이나 주변강대국들이 개입하는 국제전 형태로 발전하거나 또는 분단고착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점쳐 지고 있다.
김대중정부가 대북정책의 원칙의 하나로 흡수통일의 배제를 밝히고는 있으나,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북한붕괴론과 흡수통일론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가능한 시간을 끌면서 북한의 목을 죄면서 대북 압박을 강화하면 북한이 곧 붕괴 할 것이라 북한붕괴론의 도그머에 빠져 있는 한, 미래지향적인 대북정책과 남북한 군축을 위한 사고가 설 자리는 없다. 남북한 군축을 위한 협상과 이의 실행은 북한을 대등한 협상 상대로 인정하고 상대방 체제의 유지에 대한 보장을 전제할 때만이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2) 북한의 군사적 우위론 도그머
북한의 군사력이 남한에 비해 월등히 우위에 있다는 것이 우리 사회에 뿌리 내리고 있는 일반적인 인식이다. 북한의 군사적 우위론 도그머는 남한이 계속에서 군사력 증강을 해야하는 중요한 논리를 제공해 왔다. 남북한 군사력에 대한 상대적 평가는 단순한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북한의 군사적 우위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북한의 군사적 우위에 대한 의문은 80년대말부터 국내 민간 학자들에 의해 제기돼 온 문제이다. 총체적인 전쟁수행능력을 무시한 단순한 수적인 비교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북한의 군사적 우위에 대한 근거로 제시되고 있는 것은 두가지이다. 가장 중요한 근거로 제시해온 논리는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병력 및 무기의 수적인 우위이다. 다른 하나는 현재 남한의 국방비가 북한의 국방비에 비해 월등한 많은 것은 사실이나, 북한이 군비 증강을 남한 보다 일찍 시작했기 때문에 투자비 누계액에서는 북한이 앞선다는 것이다.
우선 단순히 병력과 무기의 보유 수를 비교하는 '단순개수비교'나 '등가치비교'는 그 성질과 질을 달리하는 남북한의 인적 물적 역량의 차이를 무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국방부가 발행한 {국방백서} 1997-1998년호는 병력수에서 북한이 114만7천명으로써 남한의 69만명을 압도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으며, 해군 수상전투함의 경우는 남북한이 각각 180척:430척, 공군 전투기는 550대:850대를 보유한 것으로 단순 비교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단순 논리는 전력의 질적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채 군사력 평가의 기본적인 상식 조차 무시하고 있다. 해군력의 경우 동서해로 분리되어 있는 북한 해군력이 지닌 지리적 취약점을 굳이 거론할 필요도 없다. 북한이 보유한 1천톤급 이상의 함정이라야 구형인 로메오급 잠수함 21척을 비롯해, 수상전투함으로는 소호급 1척과 나진급 2척의 호위함(frigate)이 고작이다. 나머지는 대부분 200-400톤 사이의 미사일정과 경비정, 그리고 100톤 미만의 쾌속정들로써, 전쟁시 항구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에 비해 남한은 최근에 취항시킨 4척 이상의 장보고급 잠수함과 1천톤 이상의 주력수상전투함만 40여척을 보유하고 있다. 공군력의 경우도, 북한 전투기의 절반 가까이는 한국전쟁과 50년대에 도입된 미그 17과 미그 19기가 차지하고 있다. 또한 남한 공군조종사들의 기술적 우월성과 비행훈련시간에 있어서 압도적 우위는 우리 군당국도 인정하고 있는 바이다. 게다가 북한의 경우 유류난등으로 인해 최근에는 비행훈련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의 무기체계는 4대군사노선이 시작된 60년대에 형성된 구형으로서, 무기 현대화에 오히려 짐이 되고 있다. 함택영교수는 최근의 한 연구에서 1980년대초부터 남한의 군사력이 북한이 앞서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그런가 하면, 작년말 영국정부 산하의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는 군사력의 대외행사 능력을 중심으로 각 국의 군사력을 평가한 결과, 남북한을 각각 세계 6위와 7위로 평가함으로써, 남한이 북한 보다 우위에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다음으로 군사비의 투자비 누계액에서는 여전히 북한이 앞선다는 주장과 관련해서는, 한국의 경우 투자비 누계 계산에 감가상각이 고려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군사원조도 계상하지 않았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함택영교수는 미국의 군사원조와 감가상각 등을 포함한 보다 객관적인 추정에 의거하면, 국방비 누계에 있어서도 1977-1981년부터 남한이 북한을 앞서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군사비 지출면에서 비교할 때, 국방부가 인정하듯이 1976년부터 남한의 군사비가 북한을 능가하기 시작한다. 1976년의 경우 남한의 군사비가 38.4억달러 인데 비해, 북한의 군사비는 33.2억 달러에 머물었다. 그 이후 남북한의 군사비 지출 격차는 더욱 벌어져 왔다.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International Institution for Strategic studies)의 통계에 의하면, 90년 이후 북한의 군사비는 남한의 절반에도 못미치고 있다. 그 결과 1995년의 경우 남북한의 군사비는 미국 달러로 환산하여 각각 143억 6천만달러와 52억 3천만달러로, 그 격차가 2.74: 1로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북한의 군사비 지출 격차가 실제로는 이 보다 더 크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90년대 이후 경제난으로 인해 마이너스 성장을 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북한이 1997년 6월 UN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GNP가 1988년에 161억달러에서 1995년에 52억달러로 격감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는 IISS가 추정하고 있는 1995년도 북한의 군사비 총액과 비슷한 수치이다.
통계수치에 있어서 가장 보수적인 입장을 지니고 있는 IISS와 한국 국방부의 통계에 의하더라도, 북한의 군사비는 85년도 수준에서 계속 정체 현상을 보이고 있다. 군사비 지출에서 한계에 부딪친 북한은 80년대 이후 고육지책으로 전력의 질적 개선 보다는 병력 수를 늘리는데 만족해 온 반면, 한국은 첨단 장비의 도입 등을 통해 군사력의 질적 향상을 꾀해 왔다. 이는 한국이 군비의 질적 향상을 추구한데 비해, 북한은 오히려 인적 역량 위주로 후퇴한 것을 의미한다. 한국은 군사력 열세의 근거로 제시해 온 군비의 수적 열세를 충분히 만회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 보다는 질을 추구해 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3) 대남무력적화통일론 도그머
남한내에서 군비증강을 합리화시키는 중요한 명분 역할을 해 온 또 하나는 북한의 대남무력적화통일 위협론이다. 북한 군사정책의 1차적인 목표가 여전히 대남무력적화통일에 있다는 것이다. 60-70년대 {김일성 저작선}의 문구를 인용하여 현재 북한의 군사정책 및 군사전략의 대남적화성과 침략성을 제시한다면 그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백배천배보복"과 같은 선전적 언동과 문구를 실제 정책과 구분하지 못한다면 이것 또한 넌센스이다. 북한이 여전히 대남무력적화통일을 기도하고 있다는 근거로 선제기습공격을 전제로 한 북한 군사력의 전진배치를 지적한다. 북한 전력의 67%가 평양-원산 이남에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북한 군사력의 전진배치는 남한의 군사전략에 대한 대응적인 측면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한국 군사전략의 기조가 [공지전 교리](AirLand Battle Doctrine)에 기초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공지전 교리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전방전투와 종심전투를 동시에 수행한다는 것이며, 적 후속군에 대한 종심공격을 중시한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긴 종심을 지니고 있고 제공권 장악에서 불리한 북한의 입장에서, 전력을 가능한 한 전진배치해 놓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인지도 모른다. 남한의 경우도 전력의 90%를 대전 이북에 배치시켜 놓고 있다. 북한의 군사정책 및 전략은 탈냉전후 그 목표와 성격이 자기생존과 체제유지라는 매우 수세적인 입장으로 바뀌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4) 주한미군 도그머
주한미군이 있어야 한국안보가 가능하고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곧 한국이 망한다는 인식은 한국안보정책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가로막고 정책적인 선택의 폭을 좁게 만들어 왔다. 주한미군철수나 감축은 남북협상이나 군축협상과정에서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탈냉전후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와 북한의 주한미군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주목해야 한다. 앞에서 지적 했듯이, 북한 당국은 비공식적이긴 하나 이미 여러차례에 걸쳐 주한미군의 존재를 묵인한다는 의사를 밝혀 왔다. 이것은 주한미군의 역할에 대한 북한의 인식 변화에 기인한다. 남북간 군비경쟁에서 이미 뒤처지기 시작한 북한의 입장에서는, 역설적으로 주한미군이 북한의 안보를 보장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따라서 주한미군문제는 북한을 크게 위협하지 않는 수준, 즉 주한미군 전력의 일부 감축과 후방으로 철수 선에서 북한과 미국간에 상호 양해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미국의 주한미군 일부개편계획과도 일치한다. 북한의 대미정책 목표는 "자신에 적대적이지 않은 미국, 자신에 위협적이지 않은 미군"을 만드는 것이다. 북한이 4자회담에서 주한미군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협상카드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조치의 완화와 관계개선에 소극적인 상황에서, 주한미군문제는 북한이 지니고 있는 몇 개 남지 않은 카드이다.
이같은 주한미군에 대한 북한의 인식 변화는 주한미군이 대북억지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으며, 이제 한반도 및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력 유지의 수단으로서 역할을 지니게 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남북회담과 군축협상에서 주한미군문제에 대해 보다 유연하고 자주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주한미군철수문제까지도 정책적인 검토의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의 폭을 넓혀야 한다. 2. 한반도 군축의 장애요인
1) 남북의 공세적 군사전략
남북한의 군사정책 및 군사전략이 지금처럼 '억지론'(deterrence theory)과 '공세적 전략'에 기초하고 있는 한, 남북한간에 의미있고 실질적인 군축은 어렵다. 남북한 군사정책의 이론적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은 상대방에게 효과적인 군사적인 위협을 제시함으로써 자신의 안보를 확보한다고 하는 억지론이다. '억지'와 '군비'는 한 쌍으로서, 억지론이 적용되는 한 군비경쟁과 대규모 군비의 보존이 불가피하다. 특히 재래식 군비에 의존하고 있는 한반도의 경우, 군사력이 순수한 억지수단이라기 보다는 '전쟁수행능력'(war-fighting capability)의 의미를 겸비하고 있기 때문에 대규모 군비의 보존이 필요한 실정이다. 한국의 경우 억지론에 기초하고 있는 한국 군사전략의 기조는 '공지전 교리'(Airland Battle doctrine)에 입각한 공세적 전략이다. 한국의 이같은 공세적 전략은 남북한 군축과 관련해 다음 몇가지의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방어 수준 이상의 대규모 군사력의 보존을 필요로 함에 따라 사실상 군축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 둘째, 군축의 주요대상이 되는 공격용 무기와 부대의 대량 보유 및 유지를 전제하고 있어서 군축협상을 어렵게 한다. 셋째, 한국 군사정책 및 군사전략을 미국의 정책 및 전략의 틀에 종속시킴으로써 군축과 통일에 대비한 새로운 정책 및 전략의 수립을 어렵게 할 것이다.
'전격전'(Blitzkrieg)에 기초하고 있는 북한의 군사전략 역시 공세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전쟁 지속능력의 열세를 반영한 전격전 전략은 전쟁 발발시 전방지대에 대한 대규모 집중적인 화력공격을 통해 전선을 돌파하고 기동력을 이용해 신속하게 군사적 목표물을 점령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이러한 공세적 전략은 남북한 군축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임에 틀림없다. 첫째, 전격전의 3대 주요장비인 야포 탱크 장갑차는 바로 군축의 1차적인 대상이다. 둘째, 앞의 3대 공격무기와 함께 북한이 전격전의 또 다른 중요 요소로 꼽고 있는 보병의 존재는 병력 감축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처럼 남북한 군축의 실행은 남북한 모두 현재와 같은 공세적 성격의 군사정책 및 군사전략하에서는 의미있는 진전이 불가능하다.
2) 남북의 군부 반발
남북한 모두 예상되는 군부의 반발은 군축 협상과 실행을 가로막는 중요한 장애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권교체기를 맞고 있는 남북한의 입장에서, 취약한 권력기반을 고려할 때 군부에 대한 대규모 개혁을 수반할 수 있는 군축을 단행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소수 여당의 취약한 권력 기반에 의존하고 있는 김대중정부의 입장에서, 대규모 군사비 삭감과 군비감축 그리고 장성과 고급장교들의 감축이 포함된 군의 구조조정을 과연 과감하게 단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김대중정부은 당분간 가능한 군부와 충돌을 회피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새정부는 금년도 추경예산안 조정과정에서 당초 재경원이 제출한 국방예산 삭감액 1조5천억에도 못미치는 6,200억원을 삭감하는데 그쳐, 다른 부문의 예산에 비해 거의 삭감되지 않았다.
북한의 경우도 김정일의 권력계승과 심각한 경제난에 따른 국가의 위기상황에서, 김정일정권은 자신의 권력기반을 군부에 의존할 수 밖에 없으며 군부를 중심으로 한 위기관리체제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조선인민군 창건일을 국가적 휴일로 격상시켰으며, 김정일은 대부분의 현지지도를 군부대 방문에 할애하는 등 군부의 영향력 확대가 목격되고 있기 때문이다.
3) 미국의 정책 및 전략
미국이 한반도 및 동북아에 대해 취하고 있는 정책과 전략은 남북한 군축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정책 및 전략은 결코 군축지향적이지 않다. 한국이 미국의 정책 및 군사전략의 틀속에 편입되어 있는 한, 남북간 재래식 군축의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것은 향후 미국이 추진할 동북아정책의 기조와 방향을 담고 있는 1995년에 발표된 [동아시아전략보고서](EASR: United States Security Strategy for the East Asia-Pacific Region)를 살펴보면 분명해진다. EASR은 한국의 지상군 위주 개편과 해공군력의 미군 의존을 명문화하면서, 한국이 지상전력 강화를 위한 전차 중거리 자주포 항공기 및 헬기 포병용 레이다 등의 구매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미국의 이같은 정책적 입장은 금년 1월 한국을 방문한 월리엄 코언 미국 국방장관의 태도에서도 극명히 나타난다. 코언은 "대북 억지력을 일정 수준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국방비 삭감은 곤란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미국의 정책과 입장은 남북한 군축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점을 시사한다. 첫째, 미래지향적인 군구조 개편과 자주적인 안보정책의 수립을 방해할 것이다. 둘째, 남북 군축의 직접적인 대상인 지상군비 및 공격용 무기의 감축을 어렵게 할 것이다. 셋째, 군사비 삭감을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지상군비 위주의 미국 무기 구매를 강요당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 지난 1991년 노태우정권 당시 추진해 온 소수정예과학군의 육성과 대주변국을 대비하는 [신군사전략]이 미국의 압력으로 보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국방백서}에 다시 북한이 주적으로 등장한 바 있다. 따라서 한국이 지금처럼 미국의 군사전략체제에 종속되어 있는 한, 한반도에서 재래식 군비감축의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4) 남한의 군비경쟁 우위 확보
군비경쟁에서 이미 우위를 확보하기 시작한 남한의 입장에서 군축에 임하는 것이 쉽지 않다. 앞에서 지적 했듯이, 남한은 우세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76년 이후 군사비 지출면에서 북한을 앞서기 시작했으며, 1980년대초부터 북한의 군사력을 능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현 시점에서 남북간의 군사비 지출 수준은 3:1 이상의 격차로 벌어져 있으며, 남북간의 이같은 격차는 앞으로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한국은 가능한 한 군비경쟁을 지속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으며, 시간이 자신의 편이라는 입장을 보일 것이다.
남한은 "율곡사업"으로 불리는 군비증강사업을 1974년부터 추진해 왔으며, 1975년부터 "방위세"라는 목적세가 신설된 바 있다. '제1차 율곡사업'(1974-1981) 과 '제2차 율곡사업'(1982-1986) 그리고 87년부터 추진된 '방위력개선사업'을 통해 1997년까지 총 29조 9,899억원을 군비 증강에 투자하였다. 1998년도 경우에도 공중조기경보기(AWACS)와 개량형 잠수함(SSU)사업 등 일부 신규 사업이 99년 이후로 연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무기 구매등 전력 증강비가 전년도 보다 2.5% 증가한 4조 802억원이 책정된 바 있다. 그런가 하면 한국정부는 보류되었던 신규 사업의 재개를 비롯해 군비증강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방부가 예산청에 제출한 99년도 예산 편성안에 따르면, 사업 추진이 보류되었던 개량형 잠수함(SSU)사업과 차기 대공유도탄 도입 등의 재개에 필요한 예산을 포함해서 군비증강예산을 올해 보다 10% 증가한 4조 4,882억으로 책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5) 남한 국민의 냉전의식과 보수수구세력의 존재
우리 사회에 아직도 팽배해 있는 국민들의 냉전의식과 군축에 호의적이지 못한 국내 여론, 보수언론 그리고 사회적 냉전기류에 기생하는 보수수구세력들의 존재는 군축 논의에 큰 장애요인이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우리 사회와 국민들은 과거 냉전체제에서 고착화된 의식과 안보관 그리고 북한에 대한 맹목적인 적대감과 불신감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으며, 이러한 것들은 군축을 가로막는 도그머들로 작용하고 있다. 국민들은 군축에 대해 막연히 두려움을 지니고 있고, 보수언론들은 군축에 비우호적이며, 보수수구세력들은 군축에 저항적이다. 따라서 이같은 도그머에서 벗어나고 군축에 호의적인 여론을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냐가 큰 과제로 남는다.
6) 북한의 대남 불신감과 군사적 위협감
북한이 느끼는 남한으로부터의 군사적 위협감과 남한에 대한 불신감은 군축을 가로막는 또 다른 요인이다. 북한은 탈냉전후 자기생존과 체제유지라는 매우 수세적인 입장에 처해 있다. 후견자였던 소련의 해체와 중국의 개혁, 그리고 북한이 직면한 경제적 어려움과 군사적 우위의 상실은 북한에게 그 어느 때 보다도 안보에 대한 위협을 느끼게 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체제에 대한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 한, 군축을 위한 협상테이블에 나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군축은 체제의 안보를 담보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군축을 통해 체제의 안전이 보장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는 한 응할 수 없는 문제이다. 북한을 군축 협상테이블로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군축이 북한체제에 위협을 주지 않으며 오히려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 주어야 한다. 북한의 남한에 대한 불신감과 군사적 위협감을 줄여주기 위한 몇가지 조치들이 필요하다. 첫째, 남한 정부가 군축문제를 진지하게 다룰 자세와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상호군축에 앞서 군사비 삭감등 남쪽에서 일방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몇가지 조치들을 취할 필요가 있다. 둘째, 주한미군으로부터 제기되는 군사적 위협을 감소시켜 주는 조치가 필요하다. 주한미군의 부분적 단계적 감축에 동의해 주어야 한다. 셋째, 북한이 받아 들일 수 있는 상호 호혜적이고 객관적인 군축방안을 마련하여 제안하여야 한다.
현 시점에서 군축은 북한이 더 절실한 문제이다. 남한에 비해 경제 규모가 훨씬 작고 경제난의 정도가 더 심각한 북한의 경우, 경제난으로 인해 군사비 지출로부터 받는 압박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북한의 군사비 지출은 현재의 경제난을 감안하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써, 거의 모든 경제적 여력을 군사력 유지에 쏟아 부어야 할 형편이다. 따라서 남한에서 계기와 기회만 제공한다면 북한이 의외로 협상테이블에 쉽게 응할 가능성에 있다.
3. 한반도 군축의 촉진요인
1) 남북의 경제난
남북이 처해 있는 경제난은 남북한을 군축을 위한 협상테이블로 가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유인이다. 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국난이라는 남한의 IMF한파와 북한의 경제난은 남북한 모두에게 지금까지 토부시 해왔던 군축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남북한이 직면한 경제난의 원인 가운데 상당부분은 - 특히, 북한의 경우 - 과도한 군사비 지출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남한의 경우 IMF한파 속에서도 국방예산은 여전히 무풍지대로 남아 있다. IMF의 긴축재정과 예산 삭감 요구에 따라 축소조정된 금년도 추경예산에서도, 다른 부문의 축소조정에도 불구하고 국방예산만은 지난해에 비해 오히려 0.1% 증가했다. 인건비의 자연감소분을 제외하면 일부 신규사업을 보류하여 내년도로 연기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경제난에 따른 재정적인 압박, 그리고 점증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평화군축운동과 여론의 압력은 군축을 정책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 것이다. 북한 역시 현재의 경제난을 감안할 때, 더 이상 지금의 군사비 지출을 감당할 수 있는 형편으로써 결국 북한이 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군축 밖에 다른 방도가 없어 보인다. 이처럼 내부적인 압박과 압력은 일정 수준의 일방적인 국방예산 삭감과 아울러 상호군축을 통한 군사비의 감축을 유도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2) 남한의 정권교체
남한의 경우 정권교체와 이에 따른 김대중정권의 등장은 군축에 유리한 조건을 만즐어 주고 있다. 개혁적인 성향과 대북문제에 있어서 전향적인 자세를 지닌 것으로 평가되는 김대중정권의 등장은 과거 정권들 보다는 군축문제를 정책적 고려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고 있다. 실제로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방문중 [로스앤젤레스타임즈]와 기자회견에서, "지금은 당장 통일을 실현할 시기가 아니며, 전쟁억제와 군비축소를 통해 민생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단계가 돼야 할 것"이라고 밝혀, 군축을 정책적으로 고려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또한 국민회의는 대선공약을 통해, "21세기를 대비한 소수정예의 강병 과학군을 육성하는 신국방정책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새정부가 추진하겠다는 '소수정예과학군'을 위해서는 병력의 감축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병력감축문제에 보다 유연한 자세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소수정예과학군'의 육성을 위해서는 많은 첨단장비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오히려 군사비 감축을 방해할 소지도 아울러 안고 있다.
3) 북한의 군비경쟁 열세
북한의 입장에서는, 직면한 군사비 지출의 한계와 이에 따른 군비경쟁에서의 열세가 군축을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으로써는 더 이상 남한과 군비경쟁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더욱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남한과 군비경쟁에서 더욱 뒤처질 수 밖에 없는 형편이어서, 군사력의 열세가 확대되기 전에 가능한 군비경쟁을 끝내야할 입장이다. 재래식 군비경쟁에서 한계에 직면한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과 장거리 방사포와 같은 전략무기들의 개발을 그 대안으로 모색하고 있으나, 이 역시 개발의 어려움과 미국의 압력 등으로 쉽지 않은 실정이다.
4) 북한의 대미관계 개선 필요성
북한의 미국과 관계개선 필요성은 주한미군문제를 비롯한 군사문제에 대한 협상과 타협의 여지를 만들어 주고 있다. 현 시점에서 북한의 당면과제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미국으로부터 북한체제의 생존을 보장받는 것이다. 북한이 우여곡절 끝에 4자회담에 응하고 있는 근본 이유는 미국과의 직접협상 채널을 유지하고, 미국과 관계개선을 통해 자신의 생존을 보장 받기 위한 것이다. 주한미군문제는 북한의 군축제안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던 단골메뉴로서, 그동안 군축문제를 비롯해 각종 남북한간 협상의 진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어 왔다. 따라서 북한이 주한미군문제에 대해 보다 유연한 자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큰 장애물이 하나 제거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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