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8/01] [한겨레 기고] 확산탄금지협약에 불참한 한국/박석진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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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확산탄금지협약에 불참한 한국 / 박석진
한겨레 | 기사입력 2010-08-01 22:35
[한겨레] 8월1일을 기해 확산탄(집속탄)금지협약이 발효됐다. 큰 폭탄 안에 수십~수백개의 작은 폭탄이 들어 있다가 공중에서 흩뿌려져 전투병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살상해 버리는 이 무시무시한 무기는 지난 수십년 동안 세계인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더욱이 최대 40%에 이르는 불발탄은 곧 지뢰화해 민간인, 특히 어린이들을 지속적으로 희생시켜 왔다.
그런 점에서 확산탄금지협약의 발효는 미래에 무고하게 희생될 수 있었던 수많은 생명을 구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실제로 1997년에 체결된 대인지뢰금지협약의 경우 협약 체결 이전까지 매년 2만5000여명의 사상사를 냈으나 10여년이 지난 현재에는 5000여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확산탄 문제가 국내에는 주로 외국의 피해사례를 중심으로 소개되었으나 우리나라 역시 확산불발탄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지역이다. 2000년 2월 공군 사격훈련이 진행되고 있는 직도 인근에서 새우잡이를 하던 한 어민이 그물에 걸려 나온 확산불발탄이 폭발해 숨진 사건은 확산탄의 문제가 남의 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울러 한반도는 세계 그 어느 지역보다 확산탄으로 인한 대량피해의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1990년대 후반 북한의 장사정포에 대응한다는 이유로 대표적 확산탄 무기인 다연장로켓포(MLRS)를 미국으로부터 대량 도입했다. 2003년부터는 국내 생산을 시작하여 국방부는 총 1조원 가까운 국민의 혈세를 들여 이 무기를 사들이고 있다. 이외에도 주로는 공격용헬기 등에서 발사되는 다목적 로켓탄(MPSM), 자주포 등에서 발사되는 이중목적 개량고폭탄(DP-ICM) 등 여러 종류의 수많은 확산탄이 이 땅에는 지속적으로 쌓여가고 있다. 실제 전국 곳곳의 군사훈련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확산탄 문제와 관련한 국제적 움직임을 의식한 듯 국방부는 2008년 불발률 1% 이상의 확산탄은 구매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국방부의 태도는 구형 확산탄의 문제를 인정한 것이므로 구형 확산탄의 폐기가 수반되어야 함에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계획이 없다고 못박았다. 이는 결국 확산탄 비축량을 늘리겠다는 것으로, 확산탄의 금지를 요구하는 세계인의 요구를 외면하는 것이다.
확산탄금지협약에는 현재 106개 나라가 가입했으나 이 협약의 효력이 단지 이 나라들에만 미치는 것은 아니다. 국제인도법의 관습은 하나의 불법한 현상의 규정은 비가입 당사국의 행위에도 규정력을 갖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한국이 확산탄금지협약에 가입하지 않았다 해서 마음대로 확산탄을 생산하고 수출할 수는 없으며, 만약 그럴 경우 국제사회의 중대한 비난과 제재에 직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방부를 비롯한 한국 정부는 특수한 안보상황이라는 이유를 들어 확산탄금지협약 가입을 거부하고 있다. 바꿔 생각하면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확산탄을 폐기하고 금지협약에 가입해야 한다. 반세기가 넘는 남북한 대립과 갈등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얻은 경험은 일방의 적대행위의 수위만큼 또 위협적인 군사행동의 수위만큼 또다른 일방의 대응을 불러와 위기의 심화를 초래해왔다.
남북한이 경쟁적으로 확산탄 보유량을 늘리고 유사시 무차별적으로 사용한다면 과거 라오스·레바논 등 확산탄의 대표적 피해국들이 겪은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고통은 바로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국가 안보라는 것이 단지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무기를 많이 보유한다 해서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평화는 총칼로써가 아니라 대화와 타협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국방부와 한국 정부가 상기해야 한다. 확산탄금지협약의 발효에 즈음하여 남북한 상호 군축의 시작으로 확산탄 폐기와 금지협약 가입이 좋은 출발이 될 수 있음을 권하는 바이다.
박석진 평통사 미군문제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