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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국제민중법정 2차토론회] 6/7 히로시마 한국원폭희생자 위령제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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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 79년, 한국 원폭희생자 위령제

- 2024년 6월 7일, 오후 4시 30분. 히로시마 평화공원 한국원폭희생자위령비 앞 -

 

6/6 해외게스트 환영행사

6/7 히로시마 평화발자국

6/7 원폭국제민중법정 조직위원회 구성 좌담회

6/7 한국원폭희생자 위령제

6/8 토론회 오프닝과 인사말

6/8 토론회 1주제

6/8 토론회 2주제

6/8 토론회 3주제

6/8 마무리 상징의식

 

 

 

원폭 79년, 히로시마 평화공원 내 한국원폭희생자위령비 앞에서 한국원폭희생자 위령제가 진행됐습니다. 

 

2016년 사상 최초로 미국 대통령이 히로시마 평화공원까지 와놓고도 외면한 곳, 2023년 사상 최초로 한국 대통령과 일본 총리가 참배하면서도 한국에서 건너온 한국원폭피해자들은 접근하지 못하게 했던 곳이 바로 히로시마 평화공원 내 한국원폭희생자위령비입니다. 



 

평통사 이기은 활동가의 사회로 진행된 위령제는 심진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과 이태재 원폭후손회 회장, 강우일 주교와 고영대 공동대표를 비롯한 평통사 회원들, 원폭국제민중법정 제2차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 온 미국과 유럽, 호주, 일본 등의 법학자 등 전문가들과 평화활동가, 일본 히로시마 세계평화 기념 주교좌 성당 시라하마 주교 등 약 150여 명이 참여하여 일제 침략과 식민지배, 강제동원의 민족 수난사의 상징인 한국원폭희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핵대결과 핵위협이 없는 한반도, 핵없는 세계를 위해 다짐하는 순서로 진행됐습니다. 
 

매년 재일민단 히로시마지방본부가 주최하는 위령제 외에 한국에서 건너간 한국원폭피해자들과 시민단체에서 150여 명이 참여하는 위령제를 개최하는 것은 드문 경우입니다. 

 

높은 취재열기 속에 마이니치 신문, 히로시마 TV 등 일본 언론들은 원폭피해자와 2세 후손들이 얼마나 참여했는지 궁금해했습니다.

 

 

일본 식민지배와 미국의 핵 투하, 한국 정부의 냉대 등 3중의 고통을 겪어 온 한국원폭피해자들은 '핵시대의 십자가’를 짊어진 채 80년 가까이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원폭 1세 심진태 어르신(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은 "삼천리 화려한 금수강산, 대를 이어 가꾸어 온 우리의 역사. 한밤중의 모진 찬바람과 역사의 강풍에 휘말려 타국에서 미국의 원자 폭탄에 산화하신 영령들이여, 79년의 세월 동안 어찌 한순간이라도 편히 영면하셨겠습니까"라며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 투하국으로서 미국은 하루빨리 이를 폐기하고 세계 평화의 길을 선도해야 함을 영령들 앞에서 선언해야 한다."라고 촉구했습니다. 

 

심진태 어르신은 일본에 대해서는 "전쟁에 광분하여 대한민국을 침략하고 인적 물적 강제 수탈을 자행하여 많은 한국인들을 전쟁터에서 희생시키거나 군수품 공장에서 노역시켜놓고 평화를 위한 사죄 한번 없다."라고 규탄하고 우리정부에 대해서는 "해방이후 80년이 지나도록 전쟁 피해자로 소외된 국민을 보호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로 "일본에서 원자폭탄에 의해 희생된 5만 영령들께서 영혼이라도 그리던 고국 땅에 안치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라고 촉구했습니다. 

 

 

한국원폭피해자 후손회 회장 원폭 2세 이태재 선생은 "79년 전 원자폭탄의 희생자 중 10% 이상이 한국인"이며 "무고하게 희생된 한국 원폭희생자들의 원혼을 모국인 대한민국으로 모실 수 있을지, 언제쯤이면 아직도 말 한마디 없는 가해자의 사과와 배상이 있을지"라고 한탄하며 원폭으로 희생된 원혼을 위로하는 '고향의 봄' 노래를 대금으로 연주했습니다. 

 

 

이어 일제시대 민족 저항 시인인 이상화의 시에 곡을 붙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노래를 평통사 유정섭 팀장이 불렀습니다. 

피압박 민족의 비애와 일제에 대한 강력한 저항 의식을 담고 있는 시와 민족적 선율이 담긴 노래는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배로 고통받은 민족 수난의 역사, 그리고 그 정점에 있는 한국원폭피해자의 삶을 표현했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리라"는 마지막 노래말로 한국원폭피해자 문제 해결의 의지를 표현했습니다.

 

 

오랜 시간 일본 피폭자들에 대한 법률 지원과 핵무기 철폐 운동에 앞장서며 한국원폭피해자를 원고로 하는 원폭국제민중법정의 성사를 위해 협력하는 일본반핵법률가협회 오쿠보 겐이치 변호사의 추모사가 있었습니다. 오쿠보 변호사는 "한반도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죽음의 파괴자인 핵무기와 그 핵무기에 의존하는 핵억제력이야말로 핵전쟁의 위험성을 초래한다."라며 핵전쟁을 막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핵무기 철폐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오쿠보 변호사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을 치른 일본인 후예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원죄을 잊지 않도록 하면서, 한국의 여러분과 연대하여 핵무기도 전쟁도 없는 세계의 실현을 위해 미력을 다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미국에서 재미 교포의 인권 실현에 힘써온 미주평화연대 김갑송 국장은 추모사를 통해 2026년 뉴욕 원폭국민중법정 개최를 계기로 미국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통일 운동의 활성화에 앞장서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특히 김갑송 국장은 "미국의 핵탄두가 5,044개, 전 세계적으로 12,000개의 핵탄두가 있다."라며 이를 폐기하는 것은 살아있는 우리들의 책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평통사 청년 회원이 민족의 노래 '아리랑'을 가야금으로 연주하며 한국원폭희생자들의 혼을 위로했습니다. 아리랑은 강제징용된 한국인들이 모진 세월을 버티며 마음을 달랬던 노래이기도 합니다.

현지에서 가야금을 대여하기 어려워 위령제 공연을 위해 한국에서부터 직접 가야금을 가지고 갔습니다. 강우일 주교님도 특히 청년이 연주한 가야금 곡에 대해 인상깊었다고 소감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학교에서 한국원폭피해자 문제를 알리는 활동과 피해자들의 구술채록 활동에 참여해 온 청년 회원들은 원폭 문제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원폭이 해방을 시켜줬다는 잘못된 인식이 많다며 핵무기의 참상과 역사적 진실을 알리기 위한 활동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청년 회원들은 100여명의 학우가 참여하여 한국원폭피해를 기리는 마음을 담아 쓴 글과 종이학을 모아 위령비에 올리며 "미약하지만 저희의 마음이 이렇게나마 전해져 조금의 위로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라고 했습니다. 

 

이어 평통사 회원이자 전국교직원노조 대구경북 대표를 역임하며 평화통일운동과 참교육에 힘써오신 배용한 선생 추모사를 들었습니다. 배용한 선생은 원폭 피해 2세라는 개인사와 경험을 담담히 소개하면서도 한반도 비핵화와 전세계 핵무기 폐기를 위한 단단한 각오를 밝혔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1945년 그 때 가족과 함께 이곳 히로시마에 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열두 살 어린 나이에 히로시마의 참상을 직접 목도하였습니다. 저는 1952년 합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제가 어릴 때도, 제가 성인이 된 후에도 히로시마의 참상에 대하여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른 채 평생을 살았습니다. 어머니께서 원폭피해자로 인정받고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 드나들 때도 저는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았습니다. 

 

저는 ‘고마운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터뜨려서 일본이 항복하도록 하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 우리나라가 일제치하에서 해방되었다.’고 그렇게 알고 긴 세월 살았습니다. 제가 일본 땅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졌던 핵폭탄의 진상에 관심을 가진 것이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진실을 명백히 알고 있지 못합니다. 저는 어머니가 가슴속에만 간직하고 계셨던 그 아픔을 이제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뿐입니다.

 

79년이나 되는 긴 세월이 지났습니다만, 저는 제 어머니로부터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피해가 아직도 현재진행형임을 확인합니다.

 

나라 잃고 침략자의 땅에서 설움받으시다가 타국에서 황망히 이 세상을 떠나신 영령들이시여! 오늘 우리는 영령 앞에서 우리의 각오를 다짐하는 것으로 영령들의 명복을 빌어드리고자 합니다.

 

나라 잃은 설움 속에 사시다가 억울하게 이 세상을 떠나신 후에도 영령들께서는 오랜 세월 차별받아야 했습니다. 그 때 피해를 입었던 동포들과, 영령들의 후손들과, 그 외 일본에 사는 동포들이 아직도 차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제 인간의 역사에서 피해자가 숨죽여 살아야 하는 비극은 결코 일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비극을 인류역사의 한 장으로 넘기려면 영령들께서 편히 눈감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영령들께서는 당신께서 당하신 아픔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영령들께서는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있었던 핵폭탄 투하로 일어났던 참상이 다시는 지구 어디에서라도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하실 것입니다.

 

핵폭탄으로 무고한 인명을 살상한 미국의 잘못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밝히고, 미국의 책임을 분명하게 물어야 하겠습니다. 핵폭탄 투하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분명히 하는 국제민중법정을 열 것입니다. 이를 준비하는 과정으로 우리는 내일 이곳 히로시마에서 제2차 국제토론회를 열 것입니다.

 

지구상에서 핵위험이 가장 높은 한반도에서부터 우선 비핵화를 실현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자주평화통일을 앞당길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는 미국의 책임을 묻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모든 인류의 후손이 핵무기의 공포로 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 것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평화롭게 살 수 있게 하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가 앞장서고 온 세상 민중이 하나 되어 핵무기 없는 세상, 전쟁 없는 세상, 모든 생명이 평화를 누리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영령들이시여 편히 잠드소서"

 

 

이어 해남 회원이자 한국무용가인 김영자 선생은 진혼무가 있었습니다. 김영자 선생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희생자들이 합사된 '공양탑'에서부터 춤을 시작했는데, 이 공양탑엔 한국인희생자들도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이름도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희생자들, 특히 한국원폭희생자들의 원혼이 절규하고 흐느끼는 원폭의 참상과 고통, 회한, 그리고 해방의지를 온 몸으로 표현하고 마지막 몸짓에서 원폭희생자들의 영혼을 어머니의 품으로 안아 위로한 김영자 선생의 춤은 모든 참가자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참가자 전원이 헌화하고 "한국원폭피해자 한을 풀자. 미국은 원폭투하 사죄하라 일본은 식민지배 사죄하라. 한국원폭 피해자 염원이다. 한반도 비핵화 실현하자 핵 없는 세상 실현하자."라고 다같이 외치며 추모제를 마무리했습니다.

 

일본 언론들은 심진태 어르신의 인터뷰를 진행했고, 히로시마 TV 등은 곧바로 저녁 뉴스에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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