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1. 24] 박근혜 대통령의 남중국해 발언 규탄 기자회견문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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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은 남중국해 갈등에서 국익을 해치는
일방적인 미국 편들기 중단하라!
11월 22일 박근혜 대통령이 동아시아정상회의에서 “남중국해에서 항행과 상공 비행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 같은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10월 16일 한미정상회담에서 “중국이 국제규범을 준수하는데 실패하면 한국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오바마 미 대통령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지난 11월 4일에도 한민구 국방장관이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담에서 같은 발언을 한 바 있어, 박근혜 정권이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는 미중 간 갈등 구도에서 확실히 미국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 편향의 박근혜 정권의 입장은 미중 간 갈등이 점차 심화되어 가고 있는 현 정세에서 한국 정부가 취해 나가야 할 균형외교에서 크게 일탈한 것으로 한국의 대 중국 관계와 국제사회에서의 입지를 어렵게 할 것이다. 더욱이 미국이 센카쿠(댜오위다오)를 미일안보조약 적용대상으로 천명하고 일본, 호주, 필리핀 등 자신의 (준)동맹국과 함께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중국의 해양 진출을 견제하는 이때에 우리가 미일동맹의 하위체계로 편제되어 미국의 대중국 봉쇄전략에 가담한다면 한중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아 국익을 해치고 평화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자충수가 될 것이다. 이에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이 ‘남중국해 관련 발언’을 즉각 취소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남중국해 문제는 본질적으로 인접국간 영토 및 영해 문제일지언정 항행이나 비행 자유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인접국이 아닌 미국은 애초부터 남중국해 영토 분쟁의 당사자가 아닐 뿐만 아니라 유엔 해양법 협약을 비준하지 않아 남중국해 분쟁에 개입할 자격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그 넓은 바다를 놔두고 중국이 영해라고 주장하는 수비섬 12해리 안을 비집고 들어가면서 항행의 자유 운운하는 것은 남중국해의 해양패권을 잃지 않겠다는 의도를 여지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중국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 내 8개 암도(암석) 또는 간출지에 인공섬을 조성한 것은 유엔 해양법 협약 상 합법이다. 스프래틀리 군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대만, 베트남, 필리핀 등도 중국에 앞서 이미 오래전부터 실효 지배하고 있는 수역에서 섬을 확장하거나 인공섬을 조성한 바 있다. 이런 사실로부터 중국이 암도를 연장해 인공섬을 조성했다면 이 수역은 유엔 해양법 협약 상 12해리 영해가 인정되어야 하며, 간출지에서 인공섬을 조성했다면 이 수역은 12해리 영해가 인정되지 않고 공해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수비 인공섬이 암도인지 간출지인지는 논쟁거리지만 1995년 발간된 자료(「Maritime Briefing」, Volume 1 Number 6, "A Geographical Description of the Spratly Islands and an Account of Hydrographic Surveys Amongst Those Islands")에는 물 위로 드러나 건조된 부분이 남동쪽 최대폭 370m, 남서쪽 최대폭 1,800m에 이르는 암도로 나와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지난 10월 27일, 미국이 스프래틀리 군도 내 수비 인공섬에 군함(라센호)을 보내 12해리 안으로 항행한 것은 미국이 중국의 영해를 침범한 것으로 된다. 또한, 당시 라센호가 수비 인공섬 12해리 안을 통과하면서 헬기를 띄우지 않거나 사격통제 레이더를 작동시키지 않은 채 항행함으로써 ‘무해통항’의 외양을 갖춘 것은 미국도 이 수역을 유엔 해양법 협약 상 중국의 영해로 인정할 만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설령 수비 인공섬이 유엔 해양법 협약상 영해가 인정되지 않는 간출지를 확장하여 조성된 인공섬이라 하더라도 라센호가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 지역을 항행했다는 것은 중국 함정과의 군사적 충돌을 피하기 위해 일시적으로나마 미국이 중국의 영해 주장을 인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라센호를 수비 인공섬 12해리 안으로 항행시킴으로써 무력시위 방식으로 이 수역에 대한 중국의 영해 주장을 배척하고 국제사회가 이 수역을 공해로 간주하게 하려했던 미국의 당초 정치군사적 의도가 전면 부정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번 라센호의 무력시위로부터 미국이 얻어야 할 교훈은 스프래틀리 군도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에 미국이 끼어들어서는 안 되며, 유엔 해양법 협약 등 국제법과 중국 등 4개국이 이 수역을 실효 지배하고 있다는 현실에 토대해 오로지 당사자들이 외교적, 평화적으로 분쟁을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미국과 중국도 2014년 11월 ‘(함정과 군용기가) 바다와 하늘에서 조우 시 안전을 위한 행동규칙에 관한 양해각서(MOU)’와 ‘주요 군사활동 통지 및 신뢰구축 조치 기구 설립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한데 이어, 지난 9월 18일에는 이들 양해각서의 세칙인 '공중 충돌 행동 준칙'과 '군사위기 통보 준칙'을 체결함으로써 상호간의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권은 이러한 상황을 외면한 채 일방적인 미국 편들기에 나섬으로써 남중국해에서의 미국의 부당한 분쟁 조장을 거들고 군사적 갈등이 확대 재생산되는데 일조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11월 18일 미 오바마 대통령은 스프래틀리 군도 영유권 분쟁의 한 당사국인 필리핀과 정상회담을 열어 “미국은 필리핀 방위 의지가 확고하다”며 “양국 방위협력확대협정(EDCA)의 실질적인 이행이 가능하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미군은 지난 1992년 필리핀에서 철수한 후 수십 년 만에 다시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을 명분삼아 필리핀의 군사기지와 시설을 사용하려는 것이다.
또한 일본 아베 총리는 11월 20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남중국해에서의 자위대 활동은 정세가 일본의 안전보장에 미치는 영향을 예의 주시하면서 검토”하겠다며 남중국해에서 집단자위권 행사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실제 일본은 지난 4월 미일 신가이드라인을 개정한 직후 필리핀, 베트남과의 연합 해상훈련을 벌였고 필리핀 등에 방위장비와 기술을 이전하기로 하는 등 동남아지역의 군사적 개입을 확대하고 있다. ‘무기 등 방어’ 규정을 재검토해 타국군 무기까지 방어 범위를 확대한 개정 자위대법을 근거로 아베 정권이 동중국해나 남중국해에서 ‘일본의 방위에 기여하는 활동’을 하는 타국군(미군, 필리핀군, 또는 호주군 등)의 방어를 명분으로 중국과의 우발적 충돌에 끼어들 경우 상황은 훨씬 복잡해지고 본격적인 무력 충돌로까지 비화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에 박근혜 정부는 한민구 국방장관과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취소하고 당사자들이 양자 간, 다자 간 협상을 통해 평화적, 외교적인 방법으로 남중국해 갈등 해소에 나서도록 촉구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앞으로도 무력시위 등을 통해 중국의 영해 주장을 무력화하려는 미국의 불법적, 군사 대결적 방식의 주장과 행위를 한국이 계속 옹호하게 된다면 일본이 자위대 군함을 ‘항행의 자유’라는 이름하에 독도 12해리 안으로 진입시켜 독도에 대한 한국의 실효 지배와 12해리 영해 주장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더라도 이를 용납해야 하는 자가당착에 빠지지 않겠는가?
더욱이 한국 국방부가 한 발 더 나아가 미군과 자위대의 뒤를 따라 남중국해에 해군 함정까지 파견하게 된다면 한국은 중국과 적대관계를 피할 수 없게 될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명분을 잃고 더 큰 비난과 고립만 자초하게 될 것이다.
현 시기 미일은 사드 한국 배치, 한일 군사협정 체결, 한국 TPP 가입 등을 통해 한국을 미일동맹의 하위 동맹자로 끌어들여 영구히 동맹에서 빠져 나갈 수 없도록 족쇄를 채우려는 전 방위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시기 군사동맹에 매달려서는 민족과 국가의 미래를 열어나갈 수가 없다. 이에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추종의 ‘남중국해 발언’을 즉각 취소하고 냉전시대의 산물인 군사동맹의 덫에서 벗어나 균형외교의 길을 갈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박근혜 정부는 강대국의 다툼에 한 쪽 편을 들다가 치명적 후과를 입었던 역사적 교훈을 엄중히 되새겨야 할 때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15년 11월 24일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상임대표 : 문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