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1. 30] 테러방지법 제정 중단 촉구 기자회견문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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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법인가? 국회는 테러방지법 제정을 중단하라 기자회견문
테러방지법, 사이버테러방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5가지 이유
우리는 테러방지법, 사이버테러방지법 제정에 반대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테러방지법은 ‘테러위협’을 해소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이미 국제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2001년 9.11사건 전후, 미국이 주도하여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그런데 테러와의 전쟁은 9.11 사건 피해자 수와 비교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채 완전히 실패했다. 그리고 전 세계에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극단주의 무장집단이 등장했다. IS라는 극단주의는 잘못된 테러와의 전쟁이 나은 사생아이다. ‘테러 근절’을 주장하기 전에 왜 평범한 사람들이 극단주의자가 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테러와의 전쟁’과 더불어 전 세계 여러 나라에 유행처럼 도입된 '테러방지'제도는 민간인에 대한 무장공격을 예방하고 통제하는데 이용되기 보다는 주로 시민의 기본권을 제약하고 이주민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며, 국가권력의 남용과 민주적 통제로부터의 예외를 구조화하는 방편으로 악용되어왔다. 아시아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은 물론이고 미국과 유럽 등 이른바 민주주의 선진국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결과 대다수의 나라에서 차별과 불평등이 심화되었고, 극단주의에 협력하는 내부세력들이 성장하는 악순환을 낳았다.
‘파리테러’의 충격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파리테러’를 계기로 파리 뿐만 아니라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민간인에 대한 무장공격의 악순환의 원인에 대해 보다 넓은 시야로 분석하고 그 대책을 모색해야한다. 더불어 우리 정부가 취해온 대외정책, 특히 테러와의 전쟁 지원 정책 등은 성공했는지 재평가하는 것은 물론, 우리 내부에서 극단주의에 자양분을 제공할 불평등과 차별은 없는지 성찰해야 한다.
둘째, 우리는 이미 국가안보과 공중안전을 이유로 수많은 법과 제도를 제정 시행하고 있다.
정전 상태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는 이미 ‘테러와의 전쟁’ 이전부터 외부로부터의 무장공격을 예방하고 내부로부터의 위협을 추적할 무수히 많은 제도와 기구를 운영해 오고 있다. 또한 9.11 이후 국제기구의 권고에 따라 무수히 많은 ‘테러방지’제도를 추가로 도입했다. 우리나라는 국제조약이 요구하는 모든 종류의 ‘테러방지’제도를 도입하고 시행하고 있고 이미 과도한 수준이다.
형법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기타 형사범죄에 대한 각종 특별법을 통해 내란이나 외환, 각종 조직폭력범죄를 추적하는 제도를 촘촘히 유지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반인권악법으로 악명높은 국가보안법도 별도로 시행하고 있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강력한 주민등록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그 밖에 우리나라는 국내적 필요 혹은 유엔 등 국제사회의 요구에 따라 항공보안법, 선박위해처벌법, 철도안전법, 원자력안전법, 방사능방재법, 화학물질관리법, 총검단속법, 범죄인인도법, 출입국관리법 등 공중안전을 위해 다양한 법제들을 제정 시행하고 있다. 정부 차원의 테러대책상임위원회와 국정원 산하 테러정보통합센터를 운영한 지도 오래되었다. 그 결과 실제 항공기납치, 민간항공에 대한 불법적 행위, 국제적 보호인물에 대한 범죄, 인질, 핵물질, 항해 및 해상플랫폼의 안전, 폭탄공격행위 등 국제적으로 공조가 요구되는 범죄행위들은 모두 국내법으로 단속하고 처벌할 수 있다.
또한 ‘적의 침투·도발이나 그 위협에 대응’하기 위하여 각종 국가방위요소를 통합하는 통합방위법를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다. 비상대비자원관리법도 유사한 취지의 제도다. 각종 인질사태 폭발물 위협 등에 대비해서는 경찰특공대를 두고 있다. 테러자금조달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는 특정범죄수익은닉규제법, 특정금융거래보고법, 공중협박목적등자금금지법, 외환관리법 등이 촘촘히 제정, 시행되고 있다. 게다가 통신기반 보호와 사이버 범죄 예방을 명분으로 정부는 정보통신기반보호법, 전기통신사업법, 통신비밀보호법의 예외조항 등을 법제화하여 시행하고 있는데 국민 사이버 사찰에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셋째, 국가권력 남용 방지제도 마련과 불투명한 공안기구의 개혁이 우선이다.
한편, 국가안보와 공중안전을 명분으로 도입한 제도들의 남용으로 인한 인권침해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고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엄격히 적용되어야 할 형법상 내란죄/내란음모죄는 ‘내란음모는 없었으나 선동은 있었다’는 기묘한 논리로 특정정당을 해산하는데 남용되어 국제사회의 지탄과 우려의 대상이 되었다. 국가보안법은 유엔의 인권개선 권고 때마다 단골메뉴로 등장한 지 오래다. 경찰특공대는 노동자 파업진압에 투입되었고, 국정원과 군의 심리전단은 선거에 개입하기 위한 불법 정치활동에 투입되었다. 최근에는 국정원이 국민의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불법으로 해킹해왔음이 폭로되기도 했다. 검경은 SNS를 임의로 감청하는가 하면, 자국 시위대를 추적할 목적으로 통신사업자의 기지국 통신자료를 통째로 가져가는 것을 비롯해 통신사실확인자료, 가입자 정보, 위치정보 등을 영장없이 수집하고 있다. 출입국관리제도는 반정부인사의 입국불허나 추방에 남용되어 왔는데, 특히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지역의 이주노동자나 인권운동가들에게 차별적으로 악용되어 왔다.
넷째, 테러방지법안과 사이버테러방지법안은 불투명하기 짝이 없는 국정원과 검경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불필요하게 이양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테러방지법과 사이버테러방지법은 ‘테러’에 대한 정의가 불투명하고 자의적일뿐더러 국정원에게 과도한 권한을 주면서도 이를 민주적으로 통제할 방안은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다.
국회에 제출된 일부 테러방지법안은 단순히 ‘테러행위’를 “사람을 살해하거나 사람의 신체를 상해”하는 행위, 혹은 “국가안보 또는 공공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행위” 등으로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규정하여 공권력의 자의적 해석을 가능케 하고 있다. 한편 ‘테러행위’에 대해 비교적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자 한 법안의 경우에는 이미 국내법으로 규율하고 있는 각종 개인적/조직적 국내외 범죄행위들을 단순히 나열하는데 그쳐 ‘테러’행위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는데 실패하고 있다.
또한 국회에 제출된 테러방지법안들은 법률적으로 모호한 ‘테러’행위를 예방한다는 명분아래 국정원 등 국가기관에게 과도하고 포괄적인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각종 입법안들은 국정원에게 테러 및 사이버 테러 정보를 수집분석할 뿐만 아니라, 정부부처의 행동계획을 수립하고, 나아가 대응을 직접 지휘하고 군경을 동원하는 등의 집행기능까지 수행할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또한 국정원 또는 정부기관에게 테러단체를 지정할 권한, 테러단체 구성원으로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출입국관리기록·금융거래정보 및 통신사실 확인자료 등을 영장없이 요구할 권한도 부여하고 있다. 반면, 하지만 국정원이 지닌 과도한 권력에 비해 그 인력, 예산, 활동내역에 대해서는 정부 내부와 국회를 막론하고 어떤 견제와 감시도 미치지 못해, 불투명한 반민주적 기구의 대명사로 국내외에 오명을 떨치고 있는 실정이다.
다섯째, 지금 시급한 것은 공안기구들의 권한을 강화하는 일이 아니라, 각종 사회적 자연적 재난으로부터 시민의 안전을 지킬 수단과 정책을 개발하는 일이다.
우리가 IS 등의 공격 가능성과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다. 국정원이나 군경이 정권안보를 위해 국민을 사찰하고 국민을 상대로 정치공작을 벌이는데 불필요한 인력과 예산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 어떠한 테러방지법을 동원하더라도 ‘자살테러’는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본다. 테러의 공포를 과장하고, 절대로 보장할 수 없는 절대적 안전을 달성하겠다고 강변하면서 비민주적 공권력의 권한확대를 시도한다면 이는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자 국민과 인권에 대한 위협이 될 것이다.
이미 ‘국가안보위협’에 대한 추적 장치는 무수히 많다. 다만 민주적 통제가 미치지 않는 밀실에서 부패와 부실로 얼룩져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반면, 사람이나 자연재해에 의한 재난과 참사를 예방하고 국민을 안전하게 구조하기 위한 수단과 제도는 턱없이 부족하다. 예컨대, 세월호 참사 당시 해경은 실제로 투입할 수 있는 특수구조인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해군이 보유하고 있다는 최신 음파탐지기는 작동하지 않았다. 정부는 초기대응에 완전히 실패했고, 박 대통령은 인명구조와 관련없는 테러전담부대인 해경특공대의 파견을 지시하는 해프닝도 연출했다. 그 결과 ‘파리테러’에서 희생된 인원수 두 배 이상의 무고한 인명이 ‘세월호 참사’로 희생되었다. 그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국민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율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 국가안보에서 시민의 안전으로 우선순위를 바꿔야 한다.
지금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구에게 더 많은 백지위임장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정보기구들에 대한 민주적인 통제수단을 마련하여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일하게 하는 일, 시민의 안전과 복지를 위해 투자하는 일, 우리나라를 내적으로는 보다 민주적이고 인간적인 사회로, 대외적으로는 보다 정의로운 나라로 만드는 일이다.
2015. 11. 30.
테러방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긴급 기자회견 참가단체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