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북한 무인기 영공 침범과 윤석열 정부의 ‘위협 부풀리기’
관리자
view : 2222
*본 기고문은 평화누리 통일누리 221호(2023.1월호)에 게시 되었습니다.
북한 무인기 영공 침범과 윤석열 정부의 ‘위협 부풀리기’
지난해 12월 26일, 북한의 무인기 5대가 남한 영공을 침범한 이후 이를 둘러싼 정부·여당과 야당 간의 공방과 언론상의 논쟁이 해를 넘겨 계속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을 필두로 한 정부·여당이 ‘위협 부풀리기’를 주도하고 있으며, 야당도 이에 동조한 채 정략적 이해에 따른 ‘안보 포퓰리즘’으로 국민들의 불안감만 증폭시키고 있다. 반면, 언론과 전문가를 포함해 이번 사안의 성격과 무게, 대응의 적절성을 기준으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대응을 요구하는 입장은 찾아보기 어렵다.
무인기 영공 침범에 확전도 각오한다는 윤석열 정부
북한 무인기의 영공 침범에 대해 윤석열 정부는 무인 정찰기 ‘송골매’(RQ-101) 2대를 북한 영공인 군사분계선 이북 5km 지점까지 진출시키는 방식으로 맞대응했다. 정부는 당시 작전을 수행하며 “원점 타격도 준비하면서 확전 위험을 각오”했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은 남북의 무인기가 영공을 상호 침범한 직후 “압도적으로 우월한 전쟁 준비를 해야 한다”(2022.12.29)거나 “일전을 불사한다는 결기로 적의 어떠한 도발에도 확실하게 응징해야 한다”(2023.1.1)고 강변했다.
통합방위법을 기준으로 볼 때 북한 무인기의 영공 침범은 ‘도발’이나 ‘위협’으로 규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수준은 지극히 낮으며, 정부의 주장처럼 ‘확전 각오’, ‘전쟁 준비’, ‘일전 불사’의 사안은 전혀 아니다.
이번에 남한 영공을 침범한 북한 무인기는 2m급 소형 무인기로 2014년과 2017년 파주, 백령도, 강원도 등지에서 발견된 북한 무인기와 크기가 비슷하다. 그러나 이들 무인기들은 상업용 카메라를 장착하고 있어 정찰기로서의 효용성이 없었다. 이번 무인기의 정찰능력도 매우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며, 설령 이전보다 향상된 정찰능력을 보유하고 이를 이용해 용산 대통령집무실과 국방부·합참 청사를 촬영했다 하더라도 전쟁을 불사해야할 위협은 되지 못한다.
2014년 북한 무인기가 남한에서 발견되었을 때 당시 박근혜 정부는 북한으로 무인기를 보내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실제 실행하지는 않았다. 맞대응 방식으로 위협을 확대할 사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968년 이른바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의 경우를 보더라도 이번 사안보다 훨씬 강도 높은 ‘도발’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시 박정희 정권은 이듬해 대규모 한미연합연습을 실시하기는 했어도 윤석열 정부처럼 ‘비례성’을 내세워 북한에 무장병력을 침투시키지는 않았다.
경우는 다르지만 미 인도·태평양사령부는 북한이 단거리미사일은 물론 미 본토를 사정권으로 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동해상으로 시험 발사했을 때도 “미군과 영토, 동맹에 즉각적인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2022.11.3)고 평가했다. 위협 수준에 대한 정확한 판단 하에서 나온 이성적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는 위협을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같은 방식의 ‘도발’과 ‘위협’을 통해 위기를 조장, 확대하고 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선택지가 될 수 없다
윤석열 정부가 이번 무인기 사안과 관련해 위기를 조장, 확대하는 목적은 어디까지나 수구보수 세력을 결집시켜 정국 주도권을 잡으려는 데 있다. 윤석열 정부가 이번 사안의 원인마저 이전 정부에 돌리려 하는 것도 그 목적이 수구보수 세력 결집을 통한 정국 주도권 장악에 있음을 보여준다. 국민의 생명과 자산을 담보로 정권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순전히 정권의 이익을 위해 ‘전쟁 준비’, ‘일전 불사’를 외치는 대통령을 보고 있자면 실제 전쟁의 포문이 열릴 수도 있다는 심각한 우려를 지울 수가 없다.
더군다나 윤석열 대통령의 ‘전쟁 준비’ 발언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박수현 전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군 통수권자로서 바람직하다”(SBS, 2022.12.29)고 평가하고 있다. 이제 정치인 중에서 “한반도에서 또 다시 전쟁은 안 된다”는 입장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인가 하는 비통한 생각마저 든다.
분명한 것은 이번 북한 무인기의 영공 침범과는 비교할 수 없을 수준의 ‘도발’, ‘위협’이 발생하더라도 전쟁을 불사해야 할 경우란 절대 없다는 것이다. 위협이 있을 때 우리의 유일한 선택지는 위협을 해소하여 위기 확대를 막는 것뿐이다. 전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남북이 9.19 군사합의서를 즉각, 전면 이행해야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북한 무인기의 영공 침범이 “지난 수년간 우리 군의 대비태세와 훈련이 대단히 부족했음을 보여준다”며 위기 때마다 등장하는 수구보수 세력의 ‘단골메뉴’인 9.19 군사합의서의 효력 정지를 재차 꺼내들었다.
9.19 군사합의서는 지상에서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5km 안에서 포병 사격훈련과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을 금지하고 있다. 공중에서는 무인기의 경우 군사분계선 상공 동부지역은 15km, 서부지역은 10km 안에서 비행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한국군 방공 포대와 드론대대는 금지구역 이외 지역에서 얼마든지 훈련을 할 수 있으며 실제 훈련을 지속해왔다. 윤석열 대통령의 주장은 그야말로 사실 왜곡인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위기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모든 공간에서 일체의 적대행위 전면 중지’를 규정한 9.19 군사합의서를 남북이 즉각, 전면 이행하는 것이 급선무다.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를 보장하는 데 필수적”(9.19 군사합의서 전문)이기 때문이다.
남북 정권에 의해 빛을 잃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9.19 군사합의서를 비롯한 남북 합의들은 한반도 평화, 번영, 통일에 대한 우리 민족의 염원이 만들어 낸 합의들로 남북을 막론하고 일개 정권의 이해에 따라 파기되거나 그 이행이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