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6/02] "그리워라. 사무치게 그리워라" - 허세욱 열사 49재 행사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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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정신 계승, 한미FTA 전면 무효 민족민주노동열사 허세욱 49재 행사
- 2007.06.02, 마석 모란공원, 대학로 및 시청 일대 -
한적한 토요일 오전, 눈부신 햇살이 살풋 내려와 앉은 마석 모란공원은 경건했다. 빼곡히 누운 묘 사이를 조심스레 다니는 사람들의 움직임에도 경건함은 배어 있다.
어느덧 49일이 흘렀다. 이제 마지막으로 이승의 혼을 하늘로 올려보내는 때이다. 남은 이들은 가신 님의 뜻대로 '한미 FTA를 폐기'하지 못한 미안함과 그래도 기어이 '한미 FTA와 한미동맹을 폐기'하겠다는 각오가 뒤섞인듯한 표정들이다.
제를 지내기 앞서 허세욱 열사의 묘비 제막식이 있었다. 비에는 신영복 선생의 글씨로 열사의 살아온 내력과 추모의 글이 빽빽이 쓰여 있다.
여기 한 사람,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서울 봉천동 달동네 막걸리
꽃 배달, 택시기사로 54년 고단한 노동의 생 끝맺기까지
분단의 시대, 천민자본의 모진 세월
가슴 따뜻한 이웃, 정직한 노동자, 진실과 정의에 목마른
시민으로
몸 낮추어 가슴 뜨겁게 사랑하고 탐구하고 투쟁하다가,
2007년 4월 1일 끝내 단 한 번도 자신을 버린 적 없다던 조그만 반백의 육신
불살라
그 몸뚱이 재 되기까지 ‘한미FTA 폐기’를 외치고 또 외쳐
마침내 신자유주의의 어둔 세상 밝히는 꺼지지 않는 등불로 타올랐으니,
언제나
민중의고통을 향해 박동 치던 님의 맥박, 묵묵히 궂은 일 도맡던 님의 거칠고 따뜻한 손,
삶과 노동 앞에 한 순간도 겸손함을 잃지 않고 진실을
향해 반짝이던 님의 선한 눈동자,
노동운동 시민운동 진보정당운동에 박봉의 일상을 쪼개 참여하며
미선이 효순이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평택 황새울
들녘까지
평화와 정의를 향한 실천의 현장 어디든 가장 먼저 달려와 대열의 맨 뒷자리에서
마지막까지 우리와 함께 했던 님의 조용한 열정 수줍은
미소 남은 자들 가슴에 영원히 살아
그리워라. 사무치게 그리워라.
홍근수, 오종렬, 정광훈, 한상렬 네 분 장례위원회 공동위원장들이 먼저 예를 올리고, 각 단체와 정당의 대표들이 절을 올리고 추도사를 하였다.
홍근수 상임대표는 추도사에서 "우리 모두를 일깨워 준 허세욱 열사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하였다. 이어 가수 박준이 "또다시 투사가 되어" 라는 추모노래를 불렀다. "한평생 후회없이 싸우다 간다. 내 다시 태어나면 투사가 되어."라는 노래 가사가 정말 허세욱 열사의 삶을 그린 것 같아 참가자들은 주먹을 불끈 쥐며 열사의 뜻을 이어갈 것을 결의하기도 했다.
49재에는 모두 170여명이 모였으며, 행사가 끝나고 나서 모든 사람들은 허세욱 열사의 묘에 하얀 국화꽃을 바치며 열사의 혼을 위로했다.
행사 직후에는 허세욱 열사 추모사업회(준)을 결성하였다. 준비위원회는 1년동안 추모위원을 모집하고, 1주기에 맞춰 허세욱 열사 평전을 내는 등 활동을 벌이고 정식 추모사업회를 출범시키기로 하였다.]
평통사 회원들도 결의를 다지며 기념 사진을 찍고, '허세욱열사 49재 및 한미FTA 전면무효화 6월 총궐기 선포 결의대회'가 열리는 대학로로 바로 이동하였다.
대학로에서 열린 결의대회에는 모두 5000여명이 참가하였다. FTA 범국본은 며칠 전 공개된 한미 FTA 협정문을 비판하며 '미국 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우리의 헌법을 훼손하고 사법 주권을 내주었다'고 하였다. 특히 지적재산권 문제와 의약품 분야 협상, 광우병 쇠고기 수입 문제 등 우리나라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독소조항을 들어 한미FTA를 전면 무효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미FTA 범국본 간부들에 대한 소환장을 남발하는 등 FTA 반대 목소리는 무조건 제압하겠다는 노무현 정권이 최소한의 민주주의마저 부정하는 독재정권이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집회가 끝난 후 참가자들은 시청까지 행진 한 후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촛불문화제는 한시간 조금 넘게 이어졌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 저녁 6시가 안된 시간에 도착한 행진대오는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한편, 6월 1일에는 허세욱 열사가 근무했던 한독운수 앞 마당에서 한독운수 노동조합과 민주노동당 관악위원회가 주최한 촛불행진이 열렸다. 약 300여명의 참가자들은 한독운수에서 열사의 생전 보금자리까지 행진을 하였다. 급하게 경사진 언덕을 올라 이어지는 골목길을 허세욱 열사의 가장 친한 벗들이 촛불을 들고 추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