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0/04] 강정구교수에 대한 3차 소환조사 규탄 집회 및 기자회견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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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교수에 대한 3차 소환조사 규탄 집회 및 기자회견]
2005년 10월 4일 서울경찰청 앞, 옥인동 대공분실 앞
2005년 10월 4일 서울경찰청 앞, 옥인동 대공분실 앞
10월4일, 강정구교수에 대한 3차 소환조사가 오후 1시부터 옥인동 대공분실에서 있었다. 강정구교수가 인터넷 언론 매체에 기고한 학문적 발표에 대한 국가보안법 적용을 위한 보완조사 때문이다.
▲서울경찰청 앞 집회에서 강정구교수에 대한 사법처리 방침을 철회하고
국가보안법을 즉각 폐지하라고 주장했다.
‘강정구교수 사법처리 저지 및 학문의 자유 쟁취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수사를 주도하고 있는 서울경찰청 앞 항의 집회와 수사 장소인 옥인동 대공분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벌이는 등 강력하게 항의하는 투쟁을 진행했다.
강정구교수의 재자들인 동국대학생대책위는 오전 11시30분 서울경찰청 앞에서 규탄집회를 개최했다. 학생들과 시민단체 50여명이 모여서 학문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을 당장에 폐지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국보법’이라고 쓴 떡을 떡메로 치는 퍼포먼스를 통해 국가보안법 폐지의 의지를 표현했다.
▲'국보법'을 떡메로 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집회를 마치고 이들은 서울경찰청장에게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
이어 기자회견을 위해 삼삼오오 모여서 옥인동 대공분실 앞으로 걸어갔다. 한 무리의 초등학생이 지나가다 피켓을 보며 ‘맞아요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해요’라며 ‘국가보안법 폐지’를 외치기도 했다. 말 그대로 삼척동자도 이제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옥인동 대공분실을 향해서 삼삼오오 걸어가고 있다.
옥인동 대공분실 앞에서 공대위 주최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이천재 서울연합 상임대표는 군사정권 때, 그 국가보안법의 피해자라고 자처하며 집권 시 폐지하겠다고 얘기한 김대중정권, 노무현정권이 결국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며 강력하게 규탄했다. 또한 학자에게 학문은 생명과도 같은 것이라며 학문의 자유를 탄압하는 국가보안법을 반드시 폐지시키자고 주장했다.
강정구교수는 ‘색깔 아닌 이성적 논증으로 맥아더와 6•25에 접근할 것을 촉구한다!’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강정구교수는 시종일관 차분한 모습으로 준비한 입장을 발표했다.
강교수는 첫째, 이제껏 6•25의 전쟁성격에 대한 연구나 언급은 수많은 필화사건을 남긴 냉전성역 0순위였다고 주장하고 탈냉전통일시대를 맞은 이 시대적 상황에서 이제는 제발 색깔몰이 단골 메뉴인 6•25나 한국전쟁의 냉전성역을 어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둘째, 색깔몰이 1등인 모 신문처럼 ’경애하는 지도자 품으로 가버려’하는 식의 세 살짜리 수준의 막말은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 논리대로라면 친일 권력자들은 일본으로, 그 모 신문사들을 포함한 친미를 넘어 맹목적 숭미주의자들은 모두 미국으로 가야 하냐고 꼬집었다.
또한 1950년10월7일 유엔결의안(376호)도 한국전쟁을 통일전쟁으로 규정했다며 이를 부정하려면 유엔결의안의 폐기도 요청하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통일전쟁은 전쟁주체자의 전쟁목표를 기준으로 내린 전쟁성격 규정이고 침락전쟁은 국제법적 기준에 의해 내려진 전쟁성격 규정이라며 차원이 다른 이 둘을 배타적으로 비교하는 무식함을 보이지 말라고 당부했다.
동국대 사회학과 학생들은 강정구 교수에게 엽서를 이어 만든 편지를 전달해서 기자회견 참가자들을 흐믓하게 했다.
▲강정구교수의 제자들이 힘내시라며 준비한 편지를 보이고 있다.
한편 '우국충정단' 등 보수단체 회원 10여명이 기자회견장 맞은 편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 회원은 차량 위에 올라가 기자회견 참가자들에게 "빨갱이들은 북으로 가라"는 세 살짜리 수준의 막말을 계속 외쳤다.
강정구 교수가 발표한 입장 전문 색깔 아닌 이성적 논증으로 맥아더와
6․25에 접근할 것을 촉구한다! 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강정구
‘6․25통일전쟁론 필화사건’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는 현주소에서 이 땅의 수구, 숭미 세력들이 지난 60년 동안 우려먹던 색깔몰이와 폭력몰이를 아직도 극복하지 못했음이 확인됐다. 칼럼 들머리에 맥아더 동상 철거공방에서 폭력몰이와 색깔몰이는 이제 그만하고 냉정한 이성적 논쟁을 하자는 당부를 비웃기나 하듯이 그들은 논증이나 설득이나 설명이 아니라 색깔몰이 일색으로 또 일부에서는 폭력몰이로 결판을 내고자 한다. 여기에 공안당국마저 덩달아 춤추는 듯 사법처리 운운하고 있는 기막힌 실정이다. 이 결과 6․25나 맥아더의 참과 진실은 더욱 색깔로 덫 칠 해져 일그러지고 있다.
현대사, 통일, 평화, 미국과 주한미군, 북한사회 등 왜곡과 불가침의 영역으로 존치되어 왔던 분야를 학문연구 중심영역으로 삼고 있는 학자로서 이들에게 다시 한 번 냉정한 이성에 기초해 논증과 설명력을 중심으로 논의를 펼칠 것을 호소하면서 아래 사항을 특별히 촉구한다.
첫째, 탈냉전통일시대를 맞은 이 시대적 상황에서 이제는 제발 색깔몰이 단골메뉴인 6․25나 한국전쟁을 빌미로 또다시 필화사건을 만들지 말아달라고 당부한다. 최근만 보드라도 1983년 리영희․강만길 관련 ‘기사연’사건, 1993년 한완상 사건(일명 『한국전쟁과 한국사회의 변동』사건), 1997년 이장희 사건, 1997년 박지동 사건, 1998년 최장집 사건,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의 국군의 날 연설사건 등으로 이장희사건 외에는 모두 냉전성역 0순위인 6․25의 전쟁성격에 대한 연구나 언급이 화근이 되었다.
이 냉전성역은 지난 반세기 이상 극단적인 냉전분단체제 아래 남북이 서로를 원천적으로 적대 및 부정하여 상대방에 극단적인 덫 칠을 가하여 악마화 하고 자기 것은 절대적인 선으로 미화하거나 신성시 해온 과정에서 형성된 불가침의 금기영역이다. 이에는 단일 표준정답이 있어 다른 해석이나 평가는 비록 학문연구라 하더라도 옥살이나 죽음 또는 불이익을 강요당할 정도여서 냉전성역은 파시즘 그 자체다.
이에는 6․25, 주한미군, 연방제 통일, 주체사상, 김일성, 김정일, 민족자주, 평화협정, 정통성, 항일무장 투쟁, 민간인학살 등이지만 6․25는 냉전성역 0순위로 성역 중에 성역이다.
냉전성역은 그 기반이 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종교적 신념과 같은 맹목적 반공반북이데올로기다. 反과학이기에 진실의 왜곡․은폐이고 反이성적이며, 맹목적이기에 극단적이고 폭력적이다. 이래서 남북의 진정한 화해, 협력, 평화, 통일을 원천적으로 가로막으며 학문사상의 자유 등 민주주의의 기본을 침해한다. 그래서 이 성역은 허물어져야 한다. 이성적이라면 응당 이 냉전성역 0순위인 6․25에 대한 필자의 성역 허물기를 색깔몰이 할 게 아니라 밀어주고 끌어줘야 할 것이다.
둘째, 색깔몰이 1등 신문으로 정평이 나 있는 어느 신문처럼 ‘경애하는 지도자 품으로 가버려’ 하는 식의 세 살짜리 수준의 막말은 하지 말기를 바란다. 필자는 자신을 친 민족으로 분류했지 친북으로 여겨 본적이 한 번도 없다. 설사 친북이라 하더라도 북으로 추방하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있을까?
이 논리라면 이 남한 땅에 그 많던 친일 권력자들은 모두 일본으로 가야했고, 지금 기성 주류의 대부분은 친미를 넘어 맹목적 숭미주의자인데 이들도 모두 미국으로 가야하는 것 아닌가?
자신의 논리에 따르면 이 주류 종이신문들은 모두 한국에 있을 것이 아니라 미국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닌지 자신에 되물어야 할 것이다.
셋째, 통일전쟁론을 부정하려면 맹목적인 색깔몰이로 결판내려 하지 말고 북의 민주기지론과 남의 북진통일론이 전쟁목적에서 통일을 배제하고 있다는 사실차원의 역사자료를 제시해(이는 불가능하겠지만) 객관적으로 반증(反證)하기를 바란다. 동시에 1950년 10월 7일자 유엔총회 결의사항 376호 폐기를 요청해야 한다.
이 ‘한반도 통일결의안’은 1950년 10월 1일 이후 유엔군이 38도선을 넘어 북으로 진격한 시점에서 이를 사후 승인하는 결의안으로 “한반도의 평화회복, 통일선거 실시, 통일국가 수립을 위해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의결했다. 곧 유엔은 유엔군의 38도선 이북 진격을 허용하면서 이 행위를 통일전쟁으로 규정했다.
넷째, 표준정답이었던 침략전쟁도 이제 내전형식의 침공으로 전쟁성격 규정을 수정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국제법상 별개의 주권국가 사이 전쟁이 아니면 침략전쟁으로 볼 수 없다. 유엔은 50년 6월 25일과 27일 결의안에서 6․25를 침략전쟁으로 규정하지 않고 ‘평화파괴’라고 규정했고, 10월 7일 통일결의안 역시 통일을 전쟁목적으로 삼아 한 나라 안의 문제 곧, 내전으로 성격규정 했다. 6․25이전에 유엔은 남한만을 38선 이남 합법정부로 승인했지 북을 별개의 주권국가로 승인하지 않아 침략전쟁의 성격규정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국제법적으로 성립되지 않는 것을 일방적으로 또 이데올로기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보편주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 설사 냉전기간에는 그랬다하더라도 이제 탈냉전시대에는 이런 구각의 굴레에서 응당 벗어나야 한다.
다섯째, 이제까지 학문적 결론을 이적이나 찬양으로 몰았던 과거행적에 사과하고 진정한 민주사회의 기본 요건인 다양한 평가와 해석이 존중돼야 한다고 역설해야 한다. 학문은 어떤 이해당사자에게 때로는 득이나 실도 되고, ‘찬양’도 되고 ‘이적’도 될 수밖에 없다. 학문적 결론은 희망사항이 아니라 학문적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연구 결과가 어느 단체나 특정인의 이해득실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과학적 지식이나 학문이 아니다. 이는 진실과 진리를 배반하고 학자의 양심을 파는 것이며, 곡학아세해 지식인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자기부정이며, 학문공동체의 존립기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여섯째, 어떻게 국민정서에 반대하는 통일전쟁론을 감히 주장하느냐 하면서 국민 핑계를 댈 것이 아니라 국민이나 권력이 뭐라 하든 학문적 귀결은 이에 구애되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해야 한다. 국민정서에 맞는 학문만이 허용될 때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바뀌는 코페르니쿠스혁명도 불가능 했을 테고, 미국의 이라크침략전쟁도 정당화 되고 말 것이다. 또 국민정서는 수시로 바뀌므로 학문적 귀결은 국민정서의 변화에 따라 춤을 추듯 바뀌게 되는 이 엄청난 사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일곱째, “침략전쟁인데 감히 통일전쟁이라고?” 라는 무식의 극치를 보이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통일전쟁론은 전쟁주체자의 전쟁목표를 기준으로 내린 전쟁성격 규정이고 침략전쟁은 국제법적 기준에 의해 내려진 전쟁성격 규정이다. 차원이 다른 규정이므로 상호 배타적이 될 수 없다.
1950년 6월 25일과 27일 유엔 안보리는 6․25를 별개 주권국가 간의 무력행위인 침략전쟁이 아닌 ‘평화파괴’전쟁 곧 내전으로 규정했다. 또 10월 7일 유엔 총회 통일결의안 역시 6․25를 나라 안의 일인 내전으로 규정하고 동시에 통일전쟁으로 규정했다. 6․25 발발 당시 우리는 모두 6․25동란으로 불렀듯이 유엔이 침략전쟁을 부인하고 통일전쟁과 내전으로 전쟁성격을 규정한 것이다.
설사 6․25를 공식 규정인 침략전쟁이라 하드라도 여전히 통일전쟁일 수 있다. 그러므로 침략전쟁을 통일전쟁으로 성격규정 했기 때문에 정체성을 위배했다는 등의 주장은 소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올해는 해방과 분단 60년 환갑의 해다. 환갑은 지난 일생을 성찰하고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전환의 출발입니다. 이번 필화사건을 마지막 소모적인 진통으로 마무리시키고 분단 60년에 즈음해 우리 남북 모두는 잘못된 지난날을 겸허히 반성하고, 시야를 남북 한 쪽에 고착시키는 외눈박이가 아니라 전 민족 차원으로 넓히고, 외세가 강제한 분단과 적대를 직시하고, 19세기 말의 각축전이 재연되고 있는 엄중한 오늘의 동북아정세를 남북이 함께 대처하고, 평화와 통일을 이루기 위한 실천에 나아가기를 염원하고 촉구한다.
2005년 10월 04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