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3/26] 강정구 교수 항소심 심리공판 보고(강교수 공대위)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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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10시 서울중앙지법 320호 법정에서 항소심 심리 공판이 있었습니다.
이번 재판은 동국대 이철기 교수님이 증인으로 나오셔서 남북 군사력 비교에 대한 전문가 증언을 진행하셨습니다.
검찰 측은 시종일관 북한이 적화통일의 야욕으로 무력 남침을 의도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강정구 교수님이 남한의 군사력이 북한보다 우세하며, 침략의 공포는 오히려 남한 보다 북한이 더 크게 느끼고 있다고 주장하여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고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본 재판의 중요한 쟁점 중 하나입니다.
이철기 교수님은 기존 남북 군사력 평가가 저급한 수준의 수량적 비교에만 머물려 있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시면서 검찰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해 주셨습니다.
검사와 판사가 군의 정신력 등 군사비로 측정되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군사비 만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하자 이철기 교수님은 "당연한 이야기다. 정신력이나 다른 여러 사회적 조건 등도 군사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군사비를 제외한 다른 조건을 볼 때, 더욱 북한이 남한보다 열세에 있다. 북한 군은 평소 남한 군보다 체계적인 훈련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남한의 다른 모든 사회적 조건은 북한을 훨씬 압도하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는 오히려 북이 더 큰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취지로 답변하셨습니다.
핵개발 등의 이야기를 꺼내며 검사와 판사는 어떻게든 북이 남을 적대시하고 무력침략을 노리고 있다는 인상을 주려고 애썼습니다.
한반도는 2.13 합의로 평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우리 사법부와 공안당국은 아직도 50년대 냉전적 사고에서 전혀 벗어나고 있지 못한 모습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21세기의 사람들이 20세기 법정에서 19세기에서나 있을 법한 법으로 재판받고 있는 광경이었습니다.
그나마 이철기 교수님이 명쾌한 근거와 논리로 이들의 케케묵은 사고방식에 일정한 자극을 줄 수 있었던 것은 성과였던 것 같습니다. 얼마나 변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증인 심문이 끝나자, 이번에는 강정구 교수님께서 직접 판사에게 본 재판의 부당한 진행 몇 가지에 대해 항의하셨습니다.
크게 세 가지 문제제기를 하셨습니다.
첫째는 강선생님이 지난 재판 속기록을 확인해 봤는데, 지난 번 재판에서 판사가 항소심 선고를 취소하고, 심리를 재개한 이유에 대해 설명한 부분이 전부 누락되어 있었다고 항의했습니다. 피고 입장에서 재판부가 바뀌고, 선고가 취소된 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판사의 설명 부분이 기록조차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본 재판의 공정성까지 의심할만한 일이었습니다. 강선생님은 여기에 대해 명확하게 항의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확실한 조치를 요구하셨습니다.
둘째는, 단기-장기적으로 예측가능한 재판 진행을 요구했습니다. 그동안의 재판이 피고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판사의 재량으로만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공판중심주의나 구술중심주의에 맞는 재판 준비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재판부는 변호사와 우리가 재판준비에 내실을 기할 수 있도록 예측가능한 재판 일정을 공지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예정되어 있던 선고가 일주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취소되고, 또 새 재판부가 구성되자 마자 재판 내용에 대한 깊이 있는 숙지도 없이 바로 심리가 진행되는 등 지켜보는 방청인의 입장에서도 불합리한 진행이었다고 판단됩니다.
마지막으로는 작년 판사가 우리 측의 석명권을 받아들여줬음에도 검사측이 불성실하게 답변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전혀 시정하고 있지 않다고 항의했습니다. 또한, 새로 부임한 판사들이 본 사건과 관련된 자료를 제대로 숙지 하고 있는지도 물어보았습니다. 사건의 특성상 관련 자료가 방대하여 판사가 이끄는 재판 일정으로는 도저히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양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항의하셨습니다. 따라서 관련 자료 숙지에 대한 재판부의 석명을 요청하셨습니다.
모두 후련한 항의였습니다. 판사는 세 가지 문제 대한 비판에 대해 어느 한 가지도 반박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검사가 "우리 재판부의 현실조건상 모든 재판 내용을 촬영이나 녹음 등을 이용해 기록할 수 없다", "피고가 예측가능한 재판진행보다 신속한 재판 진행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신속한 재판을 요구하는 피고들도 있다" 는 식의 말도 안되는 이의만 재기했습니다. 당연히 기록되어야 하는 내용이 누락된 것에 대한 아무런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하고, 공정하고 제대로된 재판보다 신속한 재판에 더 큰 가치를 두는 검사가 과연 자격이 있는 검사인가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물론 강선생님께서 검사의 주장에 대해 다시 한번 조목 조목 반박하셨습니다.
어제 재판은 월요일 아침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셔습니다.
특히 강선생님과 이철기 선생님의 훌륭한 발언과 증언으로 더 알찬 재판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판사는 다음 재판 기일을 4월 19일(목) 오후 4시 30분으로 잡았고, 법정은 423호입니다.
어제 재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변호사가 이철기 교수님에게 전문가로서 남북군사력의 의견을 묻자, 검사와 판사가 '확실한 사실관계만을 대답하라. 재판이 의견을 말하는 곳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문제제기를 한 대목이었습니다.
사실 이번 재판 자체가 어떤 사실보다는 악의적인 정치적 '해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 스스로 본 재판의 부당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봅니다.
검사의 공소장이나 1심 판사의 판결문에서도 수많은 자의적 판단과 해석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거꾸로 가는 우리 사법부의 현실에 대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재판이었습니다.
다음 재판에도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