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4/21]4월 1일부터 계속된 한미FTA저지 허세욱 열사 추모 광화문 마지막 촛불행사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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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21 오후 7시, 청계광장
4월 21일(토) 오후 7시, 쳥계광장에서는 지난 4월 1일 허세욱 열사가 분신한 후 매일 열리던 광화문에서의 마지막 촛불행사가 한미FTA저지범국본 주최로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습니다.
이 날 추모행사는 그 동안 매일같이 열리던 촛불행사의 마지막 집회로, 앞으로는 매 주 금요일 종각에서 촛불행사를 여는 것으로 전환됩니다.
이 날 행사에는 민주노동당과 청년학생들이 많이 참가하였습니다.
4월 21일(토) 오후 7시, 쳥계광장에서는 지난 4월 1일 허세욱 열사가 분신한 후 매일 열리던 광화문에서의 마지막 촛불행사가 한미FTA저지범국본 주최로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습니다.
이 날 추모행사는 그 동안 매일같이 열리던 촛불행사의 마지막 집회로, 앞으로는 매 주 금요일 종각에서 촛불행사를 여는 것으로 전환됩니다.
이 날 행사에는 민주노동당과 청년학생들이 많이 참가하였습니다.
이 날은 전국 각지의 미군기지 앞에서 허세욱 동지를 추모하는 행사를 열기로 한 날입니다. 그리하여 이 날 평통사는 팽성읍 내리에서 평택대책위, 대추리 주민들과 공동으로 허세욱 열사를 보내는 삼우제를 열었습니다. 그래서 서울에 남아있던 몇몇 회원들이 추모촛불집회에 참가하였습니다.
[촛불행사에 참가한 서울평통사 여성분회 박정자, 박희정 회원]
[촛불행사에 참가한 서울평통사 여성분회 박정자, 박희정 회원]
낮에는 더웠는데 해가 지고 저녁이 되면서 세찬 비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그 바람에 간간이 촛불도 꺼졌지만 허세욱 열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한미FTA와 한미동맹을 폐기하자는 참가자들의 외침과 함성은 여느때보다 더 힘차고 컸습니다.
먼저 민주노동당 관악구 지구당 신장식 당원이 허세욱 동지를 떠올리며, 담담한 목소리로 발언을 해주었습니다.
"허세욱 동지를 처음 만난 것은 1994년 봉천동에서 철거싸움 할 때였습니다. 봉천동이 철거되고 허세욱 동지는 독신이어서 임대아파트를 받을 수가 없었고, 그래서 이주비 3천만원을 받아 지하 전세방에 들어가셨습니다. 그 이후 관악주민연대에 가입하셨고 민주노동당이 창당할 때 함께 하셨습니다. 허세욱 동지는 항상 겸손하셨고, 민중을 위한 세상, 미군을 몰아내는 세상을 꿈꾸시며, 그에 따른 원칙을 세우고 절대로 타협하거나 물러서지 않아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허세욱 동지의 그 정신과 말씀을 이어받아 이제는 타협하지 않고 원칙에 충실하게 살아가겠습니다."는 결의를 밝혀주었습니다.
"허세욱 동지를 처음 만난 것은 1994년 봉천동에서 철거싸움 할 때였습니다. 봉천동이 철거되고 허세욱 동지는 독신이어서 임대아파트를 받을 수가 없었고, 그래서 이주비 3천만원을 받아 지하 전세방에 들어가셨습니다. 그 이후 관악주민연대에 가입하셨고 민주노동당이 창당할 때 함께 하셨습니다. 허세욱 동지는 항상 겸손하셨고, 민중을 위한 세상, 미군을 몰아내는 세상을 꿈꾸시며, 그에 따른 원칙을 세우고 절대로 타협하거나 물러서지 않아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허세욱 동지의 그 정신과 말씀을 이어받아 이제는 타협하지 않고 원칙에 충실하게 살아가겠습니다."는 결의를 밝혀주었습니다.
다음으로 민주노동당 인천시당 김은호 사무처장은 "오늘 인천의 미군기지 앞에서 허세욱 열사의 유품을 태우며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한 약식집회를 진행하였습니다. 언제까지 열사가 투쟁을 돌파하기위해 자신의 몸을 내던지며 희생해야 합니까? 우리가 이러한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가열차게 투쟁해 나가야합니다."는 발언을 해주었습니다.
[학생들을 대표하여 발언에 나선 서대련 대표가 열사의 뜻을 이어 투쟁하겠다는 결의를 밝히고 있다.
학생들은 허세욱 열사 49제날인 6월 2일, 열사정신 계승 투쟁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학생들을 대표하여 발언에 나선 서대련 대표가 열사의 뜻을 이어 투쟁하겠다는 결의를 밝히고 있다.
학생들은 허세욱 열사 49제날인 6월 2일, 열사정신 계승 투쟁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학생대표 발언 다음으로 발언에 나선 평통사 박석분 교육팀장은 "미국 버지니아 참극이 일어나자 노무현 대통령이 세 번씩 사죄했다는 그 날 허세욱 동지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허세욱 동지에 대해선 한 마디도 없었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조승희는 미국 자본주의의 희생양으로, 버지니아 참극은 바로 미국 자본주의의 비인간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허세욱 동지는 바로, 이 같은 미국 자본주의가 FTA를 통해 이 땅을 지배하는 일을 막기위해 나선 것입니다. 지금 미 제국주의는 한미동맹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을 송두리째 손아귀에 넣으려 합니다. 통일이 된 후에도 영구히 지배하기 위한 계획아래 한반도 평화체제를 운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허세욱 열사의 뜻을 기리고 그 뒤를 따르려면 FTA를 폐기하고 한미동맹을 파탄내는 투쟁을 전개해야 합니다."며 허세욱 열사 분신투쟁의 의미를 말했습니다.
박석분 팀장은 또 "그런데 허세욱 열사의 뜻을 따라 우리가 투쟁에 나서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배워야 합니다. 그것은 첫째, 공부해야 합니다. 허세욱 동지는 택시노동자로 힘들게 노동을 하고 나서도 한미FTA에 대해 공부를 했습니다. 허세욱 동지의 분신은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공부의 결과입니다. 제대로 알지 않으면 제대로 투쟁할 수 없습니다. 둘째, 동지들을 존중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허세욱 동지는 동지들을 만날 때마다 고생합니다, 수고하십니다며 인사를 건네셨습니다. 그 누구보다 고생하고 수고하신 허세욱 동지가 항상 자신을 낮추고 동지들을 존경했습니다. 우리의 투쟁의 동력은 바로, 동지들에 대한 애정입니다. 셋째, 좌와 우, 작은 것, 큰것을 가리지말고 단결해야 합니다. 허세욱 동지는 몸으로 단결을 실현하신 분입니다. 허세욱 동지는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참여연대, 평통사에 참여하셨습니다. 그 것은 범진보운동의 단결을 온몸으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분열하지 않고 단결하여 한미FTA와 한미동맹을 폐기하고 한반도의 자주와 평화를 위해 매진해 나가야합니다. 37년전 전태일 열사가 노동자 권리의 불꽃으로 우리들에게 영원히 남았다면 허세욱 열사는 우리 민중의 자주와 평화의 불꽃으로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는 발언을 해주었습니다.
참가자들은 마지막으로 촛불을 들어 허세욱 열사의 염원을 담아 청와대를 향해 힘찬 함성을 외치고 모든 일정을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