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26] 용산참사 해결을 위한 범국민추모대회 -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어린이책 작가 모임 김해원 씨 추모사(녹취록)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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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6 용산참사 해결을 위한 범국민추모대회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어린이책 작가 모임 김해원 씨 추모사(녹취록)
지난 1월 20일 시뻘건 불길 속에 당신들이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할아버지며, 누군가의 아버지며, 누군가의 아들이었던 당신들이 있었습니다. 살고자 올라간 길이니 걱정 말라며 가족들에게 손 흔들어주던 당신들이 있었습니다. 차가운 망루 위에 서 있어도 가족들 생각에 추운 줄 모르던 당신들이 있었습니다. 세상이 뭐라 하든 빼앗으려는 게 아니라 지키려 한 것뿐이니 부끄러울 것이 없는 당신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끝내 당신들은 살아서 내려오지 못했습니다. 가족을 지키고 이웃을 지키려 한 것이 이런 참혹한 결과를 낳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당신들이 그리 처참하게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정말 세상이 좋아졌다는 말을 믿었습니다. 민주주의도 완성되고 세계 초일류국가로 나가는 마당에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일은 걱정 말라는 말을 믿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들의 죽음은 이 모든 것이 허상이었음을 보여줬습니다. 살만한 세상이 되었다고 자족하던 우리 모습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었는지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가 위태롭게 쌓아 올린 모래성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결코 이 세상은 없는 사람들의 몫이 아니었습니다. 당신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이들은 당신들을 죄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가진 것 없는 모든 이들은 죄인입니다. 당신들이 살고자 올라갔던 그 망루는 당신들만의 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또 누군가는 용역에 쫓겨 경찰에 내몰려 이를 악물고 망루에 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당신들을 외면하며 오히려 손가락질 하는 이들은 당신들을 테러리스트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당신들의 이웃인 우리는 모두 테러리스트입니다. 당신들처럼 가족을 지키려면 이웃을 지키려면 싸울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정부는 우리가 당신들을 잊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이 바로 우리 자신인 것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들을 통해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다시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러하기에 당신들이 스러져간 그 자리는 더 이상 통곡의 벽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우리가 높이 쌓아만 왔던 세상을 허물고 더 넓게 나누는 세상을 만들도록 깨우쳐 주는 성지여야 합니다. 이처럼 당신들의 이웃은 당신들이 가르쳐 준 것을 서서히 깨달아 가고 있지만 어리석고 우둔한 정부는 여전히 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무릎 꿇고 사죄한다 한들 당신들은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없고 유가족의 상처는 씻어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아십니다. 여전히 이 서글픈 땅을 떠나지 못할 당신들은 아십니다. 그들이 사죄를 해야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고개를 들고 미래를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들이 사죄를 해야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희망을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 희망을 얘기하는 날 비로소 우리들은 당신들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당신들을 보내드릴 수 있을 겁니다. 그래야 당신들도 저 세상에서 진정한 안식을 누리시겠지요. 그날까지 우리는 당신들이 그리 아끼고 애달파 하던 가족들 곁에 함께 있겠습니다.
2009년 9월 26일
너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모임 김해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