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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1] 김종일 현장팀장 보석심리 최후 진술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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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통사 김종일 현장팀장 보석심리 최후 진술

"역사의 진보는 불의에 대한 분노로부터 시작됩니다."


재판장님!

지난 9월 1일 이후 40여일 구속되어 있는 동안 제주해군기지를 둘러싸고 국내외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우선, 지난 9월 3일과 10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제주해군기지 반대 강정마을 평화축제가 성황리에 개최되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부산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문제 해결을 위한 ‘희망버스’처럼 제주해군기지문제 해결을 위한 ‘평화버스’ ‘평화비행기’가 한국사회와 제주도에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비록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이 구속되어 있고, 지난 9월 2일 공권력 침탈 이후 중덕삼거리에 펜스가 쳐지고 구럼비바위가 일부 깨어지는 아픔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해군기지 반대운동의 열기는 점점 고양되고 있습니다. 지금 이런 상황은 주민대표와 평화운동가 몇 사람 구속시키고 구럼비 바위가 깨지기 시작하면 반대운동이 점차 수그러들 것으로 판단했던 정부당국을 매우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국회차원에서는, 해군기지 건설에 따른 부대조건을 조사 중인 ‘제주해군기지 사업조사 소위원회’의 보고서 채택이 여여간의 견해차이로 계속 미뤄지고 있습니다. 또한 사업명칭 결정과정과 15만톤급 크루즈 동시접안 가능여부 등 많은 논란이 야기되고 있습니다.

제주도의회 차원에서는, 제주해군기지 건설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지난 9월 20일부터 행정사무조사가 본격적으로 실시되었습니다. 강정마을 현장을 방문해 문화재 발굴과 보존문제, 환경영향평가 이행여부 등을 확인하는 한편 9월 23일과 26일 이틀간 ‘이중협약문제’ ‘크루즈 접안문제’ ‘문화제 발굴’ ‘환경영향평가 이행여부’ 등 4개 분야에 걸쳐 40여명의 증인과 참고인 진술이 이뤄졌습니다. 그리고 10월 4일 “감사원 감사 및 국회국정조사 요청, 국방부에 공사 중단 및 재검토 요구” 등의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채택했습니다. 제주도의회가 채택한 행정사무조사 보고서는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은 허구이며 명백하고 중대한 절차적 하자가 확인된 만큼 공사를 즉각 중단하고 해군기지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도의회는 펜스설치과정에서 전문가를 반드시 입회하도록 한 행정명령을 위반한 혐의로 김성찬 해군참모총장과 이은국 해군기지사업단장, 해군본부를 고발하고 불출석 증인에게는 과태료 부과방침을 밝혔습니다.

국회와 도의회 차원에서 ‘이중협약’과 ‘크루즈 접안’이 문제가 되자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민간전문가 6명으로 ‘민군복합형 민항시설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하고 검증을 의뢰했습니다. TF팀은 지난 9월 30일 기자회견을 통해 “설계상의 중대한 기준미달, 시뮬레이션 적용 데이터의 중대한 오류, 입출항 케이스별 문제점 등을 고려할 때 15만톤급 크루즈선 2척 동시접안은 불가능하다”는 검증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도의회 행정사무조사에서 밝혀진 내용들과 동일합니다. 이는 국방부와 해군이 애초부터 국회예산승인조건인 민항위주의 기항지나 국무총리가 주재한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결정된 민군복합형 관광미항도 아닌 오로지 대규모 해군기지만을 강행해왔음을 입증해주는 것입니다. 또한 국회와 정부, 제주도민과 국민을 속인 것은 물론 지난 2009년 한아세안 제주특별정상회의에서 “15만톤급 크루즈선 2척이 접안할 수 있는 세계적인 관광미항으로 건설하겠다”고 밝힌 이명박 대통령까지 우습게 만든 처사입니다.

이중협약서와 문화재 발굴조사, 환경영향평가 미이행 등의 불법성에 이어 무늬만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인 항만설계까지 드러난 이상 제주해군기지 공사는 즉각 중단되고 전면 재검토되어야 합니다.

지난 9월 29일에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제주도를 방문하여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해군기지 문제로 강정마을 공동체는 파탄나고 주민들에게 큰 고통을 주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참여정부 때 첫 단추를 잘못 끼워 문제의 단초를 제공한 책임이 있다”며 사과했습니다. 아울러 “MB정부 들어 민주적 절차를 밟고 주민대화를 통해 설득했어야 하는데 밀어붙이기 식으로 상황을 악화시켰다”며 “지금이라도 공사를 중단하고 해군기지 필요성과 입지타당성에 대해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9월 16일에는 세계적인 석학 노엄 촘스키 교수가 인터뷰를 통해 “제주해군기지 건설은 미국의 극단적인 제국주의의 발로”라며 제주사회 전반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걱정했습니다. 노엄 촘스키 교수는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시도에 대해 우리가 분노해야 하는 수많은 이유가 있지만 제주도의 경우 환경문제와 더불어 또 다른 외적인 이유가 있다. 군사기지 건설은 국제사회의 군사적 긴장을 증가시키고 전쟁 특히 핵전쟁의 위협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높아질 것”을 우려하면서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이 미국령으로 간주해 온 태평양지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의도가 분명하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오직 미국만이 전 세계 곳곳에 군사기지를 설치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제국주의적 발상”이라며 “이러한 발상이 서구에서는 좀처럼 도전받지 않기 때문에 당연하게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추진됐다고 본다. 이는 중국의 성장에 대해 미국이 크게 긴장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어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운동에 대해서 “지속적인 저항과 용기, 고결한 투쟁에 박수를 보낸다”며 “아름다은 자연을 보호하고 보다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정당한 권리를 지키기 위한 주민들의 투쟁이 지속되도록 외부에서 보다 많은 지원이 이루어지기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영국의 BBC, 미국의 CNN과 뉴욕타임즈 등 각국의 유력 언론들도 제주해군기지 반대운동에 대해 지속적으로 보도하며 관심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제주해군기지를 둘러싼 정세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라는 성경말씀처럼 제주해군기지를 둘러싼 해군과 정부당국의 거짓과 치부는 때가 되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재판장님!

제2의 4.3을 방불케 하는 해군기지 공안몰이의 단초가 되었던 지난 8월 24일 강동균 마을회장 등 5명의 연행사건을 상기해주시기 바랍니다. 당시 서귀포경찰서장은 제주도의회 문대림 의장과 천주교 제주교구 고병수 신부와의 합의를 통해 연행자 전원 석방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밤 12시 석방을 약속한 시간을 넘기고도 연행자들은 풀려나지 못했고 오히려 3명이 구속되었습니다. “시위대와 합의하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며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한 것이라고 합니다. 서귀포시청에 불법장비로 신고된 대형 크레인을 조립하는 것이 불법입니까, 아니면 두 달 동안 방치되어 있던 크레인 조립이유를 묻는 주민들과 평화운동가들이 불법입니까. 주민들과 평화운동가들이 적입니까? 법과 원칙은 국민과 약속한 것마저 완전히 깔아뭉개야 지켜지는 것입니까? 해군과 경찰, 정부당국은 ‘대화와 타협’이라는 자유민주주의의 근간마저 이렇게 헌신짝처럼 내팽개쳐도 되는 것입니까?

저는 8월 24일 현장에서 상황을 지켜보면서 지난 2009년 1월 제주에서 열렸던 소위 관계기관대책회의를 떠올렸습니다. 당시 제주도정과 검찰, 경찰, 해군과 국정원 등 정보기관이 참석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당시 제주도 환경부지사는 “도민들을 분열시키고 갈등을 조장해야 하며 몇 명은 구속시켜야 해군기지 건설이 잘될 것”이라고 발언했습니다. 공안기관 관계자는 “제주도에서 조그만 것이라도 고소고발해줘야 경찰도 조치가능하며 인신구속이 있어야 반대운동 수위가 낮아질 것”이라고 거들었습니다.(MBC PD수첩, ‘제주도 강정마을은 왜 분노하는가’ 중에서, 2009년 1월)

지금 해군과 정부당국은 한술 더 떠 해군기지 사업부지 전체에 대한 업무방해금지 가처분신청을 통해 39명에 대한 공사방해금지와 공사방해행위 1회 당 2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또한 강정마을 중덕해안의 각종 시설물에 대한 폭력적인 행정대집행을 앞두고 육지응원경찰을 계속 증원하고 있습니다. 제주 4.3때나 지금이나 강정주민들과 제주도민들을 적으로 간주하지 않고서야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4.3은 여전히 전체 제주도민들에게 심각한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지응원경찰까지 불러들여 제주해군기지 건설강행을 위해 강정마을 주민들과 제주도민, 평화운동가들에게 물리적 탄압과 인신구속을 자행하는 것은 제주해군기지 찬반을 떠나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해군과 정부당국은 공안세력을 내세워 제주해군기지문제를 풀어보려 하지만 이는 자신들에게 더 큰 화로 돌아갈 뿐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재판장님께 호소합니다.

지난 8월 26일 강동균 마을회장 등 3명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되는 시간에 서울 대검찰청에선 임정혁 공안부장 주재로 국정원, 국방부와 해군, 기무사, 경찰 등이 참가하는 공안기관대책회의가 평택 쌍용자동차 사건 이후 2년 만에 부활되었습니다. 동시에 조중동 수구언론이 연일 이성을 잃고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일부 종북좌파 외부세력의 소행으로 매도하면서 강력한 공권력 집행을 한목소리로 사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숨 가쁘게 공안몰이를 해왔는데 결과적으로 지금 상황은 어떻습니까? 해군과 정부당국의 의도대로 정세가 바뀌었습니까? 강정에서 해군기지 반대운동이 수그러들었습니까? 제주도민여론이 찬성여론으로 바뀌었습니까? 해군과 정부당국은 정세를 오판한 것입니다. 오히려 지금 제주해군기지 문제는 제주도를 넘어 전국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역사의 진보는 불의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됩니다. 저희들은 그 분노를 비폭력 평화행동으로 표출해왔습니다. 비폭력은 폭력을 멈추게 하는 확실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비폭력 평화기조는 강정마을 주민들과 평화운동단체 모두의 투쟁기조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구속되기 전 4개월 동안 강정마을 현장에서 각종 촛불문화제 및 집회와 행진, 평화미사와 기도회 등 200회에 달하는 각종 집회와 행사가 치러졌음에도 특별한 물리적 마찰이나 불상사가 없었습니다.

사법부를 상징하는 법의 여신 디케를 떠올려 봅니다. “눈을 가리고 저울을 들고 있는 디케의 모습은 보이는 것만 보지 말고 양심의 눈으로 균형있는 판결을 하라”는 취지가 아니겠습니까. 지금 사법부는 그렇게 하고 있다고 거리낌 없이 대답할 수 있습니까? 적어도 강정 해군기지와 관련해서는 너무나 편파적인 판결을 해왔다고 판단합니다. 그렇게 되면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법치주의의 근간이 무너질 것입니다. 법에도 눈물이 있다고 믿습니다. 지난 4년 반 동안 피눈물을 쏟아왔고 지금도 여전히 죽음의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고 있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피눈물을 닦아주는 민주적 판결을 당부 드립니다.

끝으로 저희들은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인멸의 우려도 없습니다. 불구속재판을 통해 충분한 방어권이 보장되도록 보석판결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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