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2003. 12. 23] 미국의 동북아 전략과 북핵 다자회담 (3)-서보혁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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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동북아 전략과 북핵 다자회담 (3)
북핵 문제의 본질과 구도


서보혁


1. 초국가적 규범과 주권 원리의 경합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북한과 미국의 외교적 갈등을 살펴보기에 앞서 이 문제의 본질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북핵문제를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 양국간 입장 차이와 이를 둘러싼 다자회담에 대한 분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북핵문제는 탈냉전기에 들어 경합하고 있는 두 국제규범의 갈등을 반영하고 있다. 냉전기까지 국제질서는 주권평등 원리에 따라 유지되어 왔지만, 냉전 붕괴 이후 경제의 세계화와 초국가적 이슈의 증대로 초국가적 행위규범이 주권 원리에 도전하면서 이 둘 중 어느 하나가 압도적인 지위를 획득하지 못하면서 경쟁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북한은 주권평등 원리를 강조하며 핵개발이 ‘자주권’ 옹호의 일환이라고 주장하며 이에 대한 국제적 개입은 주권 존중을 전제로 할 때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미국은 북한의 주장을 일축하고 핵문제는 대량살상무기의 비확산을 실현하는 초국가적 관심사이므로 주권 제한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은 탈냉전기에 들어 표출된 다양한 위협들 사이의 연결고리로 인식되었다. 클린턴정부는 이러한 과제를 기존의 억지전략을 대체하는 예방전략으로 실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탈냉전 초기 미 행정부의 비확산정책은 체계적으로 확립되었다고 보기 어려우며, 여기에 핵개발 우려국가로 분류된 ‘불량국가’에 대한 고정관념이 합리적 핵정책 수립에 제약을 가하였다. 미국은 소련 붕괴 이후 국제질서를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으로 특징짓고 그 대응방향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주요 위협세력을 ‘불량국가’로 설정하고 이들 국가의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위험으로부터 자기 정체성을 강하게 부여받았다(Campbell, David. Writing Security: United States Foreign Policy and the Politics of Identity.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2. 2-8).
요컨대,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적대적 정체성은 국제사회의 비확산규범의 강화 노력과 결합하여 북한에 대한 절대주의적 핵외교의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한편, ‘자주성’ 옹호를 제일의 대외정책 원칙으로 일관되게 유지해온 북한은 탈냉전기에 들어서도 주권의 지속성을 강조하고 이를 초국가적 규범의 침투 가능성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북한이 주권 평등을 국가 정체성으로 활용하는 배경은 그것이 주권국가의 불완전성을 만회하는 국가성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먼저, 주권 평등론은 북한의 자주성 테제와 상응한다. 김일성은 사회주의권이 붕괴되어 가던 1990년 “자주성은 자주독립국가의 생명이며 모든 국제관계의 기초”라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하고, 외부세계의 체제위협적인 요소에 맞서는 대립항으로 ‘민족자주성’을 제시하였다<김일성. “우리나라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더욱 높이 발양시키자(1990. 5. 24).”『김일성저작집 42』(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1995) 320쪽>.
둘째, 북한은 주권평등 규범이 약화되는 탈냉전기에 들어서 “세계에 큰 나라와 작은 나라는 있어도 높은 나라와 낮은 나라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논리로 주권 평등 원리를 일관되게 국제질서의 근간으로 강조하고 있다<김일성. “일본 교도통신사 사장이 제기한 질문에 대한 대답(1991. 6. 1).”『김일성저작집 43』(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6), 76쪽).
북한의 이런 입장은 북한이 주권평등 규범의 강조를 통해 약소국의 독자노선을 견지하고 강대국 혹은 국제사회의 압력에 의한 독립성의 훼손 가능성을 차단하는데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북핵문제의 본질은 비확산규범과 주권 원리가 제로섬게임의 구도로 대립한데서 찾을 수 있으며, 따라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양자의 상호존중 하에서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오늘날 비확산 규범이 국제적 영향력을 높아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북한이 비핵화를 이행하도록 유도하는 방안 모색이 현실적인 문제의 초점이라고 할 수 있다. 비확산과 주권 존중이라는 두 가지 국제 규범이 반드시 모순적이지 않다면 병행 해결의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양자의 동시 행동 원칙 즉, 상호주의 정신이 다시 발휘되어야 할 것이다. 제네바 핵합의는 여기에 도달했지만 적대적 양국관계에서 파생되는 상호 불신과 대내 정치적 제약으로 그 이행 과정에서 상호주의 원칙이 약화되어갔다<서보혁「제네바합의 붕괴 원인에 관한 다차원적 분석」『통일문제연구』제15권 1호, (서울: 평화문제연구소. 2003) 5-26쪽>.
이런 점에서 북핵문제에 대한 외교적 접근은 최선의 선택이며 다자회담 방식은 비확산과 주권 존중의 상호주의 원칙을 보장하고 그 이행을 감시하는 유력한 방법일 수 있다.

2. 핵억제력 확보와 핵선제공격의 대립

북핵문제의 본질을 초국가적 규범과 주권 원리간의 경합으로 파악하고 양자간 협력게임의 가능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북핵문제의 실상은 두 규범간, 혹은 북미 당사국간 제로섬게임의 형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양국은 자국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하여 일정한 정책 수단을 갖고 필요시 이를 현실화할 가능성을 시사함으로써 상대국의 순응을 도모하고 있다. 여기에는 물리적 수단과 심리적 수단이 모두 포함될 수 있으나 아래에서는 전자에 국한하여 논의해보고자 한다. 다만, 물리적 수단을 조성하고 확대하는데 사용되는 외교적 방안도 논의에 포함시키고 있다.

북미 양국이 가용할 수 있는 정책수단의 범위로 볼 때 미국이 북한보다 더많은 대북압박 수단을 갖고 있다. 미국은 비확산 규범을 수호한다는 명분과 유일 초강대국으로서의 지위 및 능력을 활용하여 유엔 및 동맹․우방국과의 외교적 협력, 경제제재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양한 군사적 선택치를 갖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간 갈등은 미국의 공세와 북한의 방어라는 기본 구도 속에서 작용-반작용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첫째, 미국은 단독 혹은 동맹국과 협조하여 각종 대북 제재 조치를 취할 수 있다. 한국전쟁 이후 대북제재를 정책을 전개하고 있는 미국은 2002년에도 34회, 2003년 들어 이미 12차례의 대북 제재를 단행한 바 있으며 현재 10여 건의 제재를 검토하고 있다. 미국은 또 2002년 12월 핵공급국(Nuclear Suppliers Group) 특별총회에서 핵 재처리 및 농축과 관련된 부품 목록을 배포하는 등 북한으로의 핵물질 유입을 차단하는 국제적 협력을 전개하고 있다. 나아가 2002년 말부터 미국과 일본은 대북 원조를 중단하고 있으며 각각 북한자산 동결 및 대북송금 차단을 해오고 있다. 미국과 동맹국들의 이런 조치는 경제난에 처한 북한을 압박함으로써 행동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추가적 제재를 선전포고로 간주할 것이며 일본에 대해서는 2002년 북일 정상회담에서 밝힌 양국관계 개선 합의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납치문제의 원만한 해결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각각 경고하고 있다.

둘째, 외교적 압력으로서, 북한의 상황 악화 조치에 대한 국제적 공조를 이끌어내는데 있어서 가장 주효한 방법은 유엔 안보리에서의 대북 결의안 채택을 꼽을 수 있다. 이는 그 자체로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유엔 총회의 대북 결의안 혹은 관련국들의 대북제재를 촉진시켜 국제사회의 대북압력에 정당성을 부여해줄 수 있다. 미국은 2003년 상반기 두 차례에 걸쳐 안보리의 대북 의장성명 채택을 추진하였나 중국,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그럼에도 1차 6자회담에 참가한 중국, 러시아가 한반도 비핵화와 상황악화 조치 반대에 공감대를 표명한 이상 북한의 상황악화 조치가 발생할 경우 미국은 안보리 의장성명 채택을 다시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주1)

한편 IAEA도 2003년 1월과 2월에 북한의 IAEA 사찰단 추방 및 핵재처리를 비난하고 북핵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기로 결정한 바 있고, 9월 17일 열린 총회에서도 대북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다. 이에 대하여 북한은 NPT 탈퇴 및 핵재처리는 미국의 핵공격 위협에 맞선 정당한 조치이자 평화적 활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유엔 안보리에서의 북핵 논의는 ‘전쟁 전주곡’이라고 주장하는 한편, ‘미국의 책임’도 거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조선중앙통신 2003/04/06; 06/28).

셋째,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및 밀거래 행위에 대한 연합국의 봉쇄조치이다. 미국은 2003년 들어 10개 동맹․우방국들과 함께 몇 차례에 걸쳐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 회의를 갖고 실제로 9월 13일 호주 동북부 해상에서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였다. 물론 PSI 자체가 북한만을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미사일 및 관련 부품․기술의 판매로 외화벌이를 해온 북한에 경제적․외교적 압박 효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북한은 PSI를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을 보여주는 것이자 대화를 통한 핵문제 해결을 저버리는 처사라고 비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은 PSI 훈련이 실시된 13일 이를 “우리에 대한 군사적 도발이며 조미관계를 폭발적 계선으로 이끌어 가는 행동”이라고 비난하고 “미싸일을 개발하고 핵억제력을 갖추는 것은 미국의 침략으로부터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하였다(로동신문 2003/09/13).

북미 양국이 상정할 수 있는 최악의 수단은 군사적 충돌이다. 부시정부의 대북 (핵)선제공격 경고는 북한의 핵개발과 벼랑끝행동(주2)을 억제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북한의 핵 재처리․농축․실험 혹은 장거리미사일 발사시험을 위협으로 간주하고 선제공격을 할 수도 있다. 미국의 핵선제공격 독트린에 대하여 북한은 정당방위를 위해 물리적 억제력→핵억제력→핵억제력보다 더한 것을 갖출 것이라고 반응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미국의 대북 압박 수단들은 국제법적 정당성은 물론 한국, 중국 등 주변국들의 협조 여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판매 및 총련으로부터의 송금 규모 축소 그리고 확전(擴戰) 가능성 등으로 인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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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주1) 지난 6월 23일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은 미국이 작성한 북핵 의장성명 초안이 채택을 보류시켜 놓고 있다.
(주2) 북한은 미국 등 서방언론이 북한의 핵외교를 ‘벼랑끝전술’이라고 하는데 대하여 북한의 대외적 명예를 훼손시키는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벼랑끝전술을 추구하는 쪽은 미국이라고 반박하고 있다(조선중앙통신 2003/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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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대 국제관계학과에서 “탈냉전기 북-미관계에 관한 구성주의적 접근”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평화네트워크 운영위원이다.
전공분야는 북한정치, 남북관계, 국제정치이론이다.
주요 저작으로는『한반도의 선택: 부시의 MD구상, 무엇을 노리나』(2001, 공저),『전쟁과 평화』(2001, 공저), “부시행정부의 대북정책 결정구조”(2002), “탈냉전기 북한의 대미 정체성 정치”(2003), “벼랑끝외교의 작동방식과 효과”(200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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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03년 11월 21일 한신대에서 개최된 민주사회정책연구원 개원 3주년 기념 학술회의 ‘미국의 패권, 기로에 선 한미관계’에서 발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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