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3. 5] 한미동맹 50년 무엇이 문제인가? -리영희 선생 인터뷰, 평화누리 통일누리 41호 2003. 8.
평통사
view : 2742
특집
반세기에 걸친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호혜평등한 한미관계로!
한미동맹 50년 무엇이 문제인가?
-리영희 선생 인터뷰-
한미동맹이 맺어진 지 어언 50주년. 우리 국민은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청산하고 호혜평등한 한미관계 수립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와 미국은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이라는 이름 아래 한미 관계의 불평등성을 더욱 고착·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새로운 한미동맹을 짜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에 한미관계의 최고 전문가이신 리영희 선생님을 모시고 한미동맹을 규정하는 미국의 동북아 정책, 새로운 한미동맹의 틀로써 제시되는 '주한미군 재배치' 및 국방부가 말하는 '자주 국방'의 본질, 북한 핵문제의 본질, 대미 종속을 극복하기 위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정 필요성 등에 관한 의견을 들어 봤습니다. 주제가 방대하여 인터뷰는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습니다. 2차 인터뷰에서는 1차 인터뷰에서 명백히 드러난 대미 관계의 예속적 실상의 뿌리가 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문제점과 이를 개폐해야 할 실천적 과제를 중심으로 선생님의 의견을 들어 봤습니다. 평화와 통일에 관한 인식과 실천 활동의 지평을 넓히는 데 많은 도움을 주리라 생각됩니다. ―편집자주
날 짜 : 2003년 7월 7일(1차 인터뷰), 7월 15일(2차 인터뷰)
장 소 : 경기도 산본 리영희 선생님 자택
대담자 : 홍근수 상임대표, 박기학 정책실장
정 리 : 유홍·김현진
홍근수 목사(이하 홍 목사) :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평통사 회지 독자들에게 근황을 좀 설명해 주시죠.
리 선생 : 한 2년 반 전에, 그러니까 2000년 11월에 뇌출혈로 쓰러져서 몸 오른쪽 전체에 마비가 왔던 건데, 다행히도 많이 회복되었어요. 이제 절룩거리지만 지팡이 짚고 걸어 다닐 만하고 지팡이 안 짚고도 다니고 있죠. 그런데 문제는 오른쪽 어깨에서부터 팔, 손, 손가락 끝까지 마비가 안 풀렸다는 것인데, 글을 쓴다든가 단추를 채운다든가 이러한 미세한 동작을 못하는 것 때문에 좀 문제가 있죠. 지금과 같이 장마철엔 특히 고생이 많은데, 그래도 이 정도면 소위 ‘중풍 환자’로서는 오히려 감사할 정도로 좋은 상태입니다. 기독교 신자라면 하나님에게 감사하겠지만……하여간 감사하면서 살고 있어요.
홍 목사 : 참 다행입니다. 빨리 쾌유되시길 빕니다. 후배들이 리 선생님이 혼자서 하시던 일을 나눠서 하고 있는데요.
리 선생: 아주 흐뭇하죠. 한때 정말 외로이 군사 문제에까지 영역을 넓힐 수밖에 없었던 그런 적막한 시대에 비하면 후배 후학들이 다방면에서 활약하기 때문에 지금이야 든든하지요. 아직도 상대적으로는 열세이지만 과거에 아예 제로에서 싸우던 때를 생각하면 큰 차이죠. 아주 잘 하고 있어요. 이 먼 길 홍 목사님께서 오셨지만 군사적인 문제를 포함한 민주화, 한반도 평화 등 전반적 문제에 대하여 후학들의 훌륭한 영도를 목격하고 있는 거죠, 저로서는. 참 수고 많이 하셔요. 제가 오히려 감동합니다.
미국의 동북아 군사전략은 중국을 봉쇄하는 데 있다
홍 목사 : 먼저 동북아 문제에 대해서 여쭤 보겠습니다. 한미 동맹은 그보다 큰 틀인 미국의 동북아 패권 전략의 구도 속에서 움직여 왔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리 선생 : 미국의 동북아 전략 가운데 특히 군사적 측면을 말한다면 세 가지로 나눠 봐야겠죠. 첫째로 전세계적 규모의 전략 개념에서는 옛 소련과 소련을 중심으로 했던 사회주의권이 해체된 이후의 21세기를 통해서 아마도 과거 소련의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의 국력 증강과 전 아시아적 영향력을 모든 수단을 다 하여 억제, 봉쇄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일본으로 하여금 대중국 장기 전략의 미국 대리인 역할을 수행케 하는 지역 구상입니다. 미국은 2차 대전 전 루스벨트 대통령 시대에 구 일본제국이 패전, 패망한 뒤에 아시아 전체 지역의 지도 국가(leading nation)로 중국의 장개석 정부와 중화민국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예상과 희망과는 반대로 중국 대륙에서 친미 자본주의적 장개석 중화민국 정권이 패망하고 모택동 중국공산당 정권이 집권함으로써 미국은 전쟁 후의 중국의 역할을 단념하고 바로 2, 3년 전까지 전쟁 상대였던 적국인 일본에게 아시아의 지도 역할을 위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연합국인 소련과 중국을 배제하고 사실상 독점적인 대일 강화조약을 체결하여 미국 단독의 일본 대국화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셋째는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 강화와 특히 대북한 전쟁 목적을 위해서 일본의 평화헌법을 사실상 유명무실화함과 동시에 급속한 군사대국화 계획으로 막강한 일본 군사력을 미국의 대한반도 군사 전략과 일체화시키는 것입니다.
또 다른 면에서는 중국의 대국화를 방해 및 억제하기 위한 몇 가지 정책과 전략이 있습니다. 첫째는 대만 문제입니다. 미국은 1972년의 중·미 국교 정상화 협정에서 대만을 중국 본토의 영토로 규정하고 대만 주민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지 않으며 당시의 대만 장개석 국민당 정권의 대륙 무력 수복 계획을 단념시키고, 또 대륙 수복을 위한 군사력 강화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네 가지 기본 문제를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미국은 그 협약 이행 의무를 흐지부지 회피하는 쪽으로 일관해 왔습니다. 또 대만의 독립국가화 운동에 대해서도 미국의 공화당 정권을 구성하는 수구 냉전, 자본, 군수 세력과 유태인 세력이 지배하는 미국 언론과 금융계, 그리고 과거의 대소련 반공 냉전 세력이었던 기독교 원리주의 세력들이 지난 20여 년 동안 꾸준히 대만의 군사력 강화를 지원해 왔습니다. 이것은 21세기에 예상되는 중국의 대국화와 그 아시아적 영향력을 봉쇄하는 지극히 효과적인 전략이죠.
둘째는 중국의 소수민족에 작용하여 중국 내부의 끊임없는 정치적·사회적 불안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중국은 54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회교 민족은 인구학적으로 봤을 때 5천만∼6천만에 이르는 큰 세력입니다. 그들의 이슬람 종교로 인한 중국 내부의 갈등과 혼란은 상시적으로 존재합니다. 티베트도 이런 목적과 전략에서 미국의 초점입니다. 가령 미국의 반중국 세력이나 학자, 지식인, 종교 세력이 티베트 문제를 오로지 종교 분쟁 또는 인권 문제처럼 포장해서 세계에 내놓는 데는 그와 같은 장기적 목표와 정치적 의도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국인들은 이해해야 합니다.
셋째는 동남아시아의 20여 개에 이르는 작은 국가들을 중국의 영향권에서 떼어내는 정책입니다. 아세안을 비롯해서 많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공동체적 노력에 미국이 금융·경제·정치·문화적으로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동남아시아 대부분 국가들과 군사협정을 체결함으로써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군사적으로 강대해질 중국에 대한 군사적 측면의 미국 전략입니다.
넷째, 세계적 경제 군사 국가인 일본과 남한을 대중국 포위·억제를 위한 장기 전략에 편입하고, 필요하다면 21세기를 중국과의 군사적 대결 태세로 끌고 가려는 전략은 우리가 다 아는 바입니다.
홍 목사 : 부시 정권 들어서는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리 선생 : 부시 정권 들어서 변화는 질적인 변화라기보다는 그 이전 정권이 취해 왔던 전략을 보다 촉진하고 강화하는 양적 변화라고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우선 대만 관계를 보면 클린턴 정권까지만 하더라도 대만 독립 군사화를 원조한다는 의심을 받는 행위를 피해 왔습니다. 그런데 부시 행정부 들어와서는 중국 본토의 비판이나 반대를 거의 개의치 않는 대담한 발언이나 행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특히 부시 정권에 와서 두드러지는 현상은 대만에게 중국의 군사력에 대응할 수 있을 만한 정밀 현대식 무기들을 대폭적으로 원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예로 중국 공군이 소유하는 전투기보다 성능이 우세한 미국의 현대적 전투기와 유도미사일과 해군 이지스함 등의 공급을 들 수가 있겠죠.
홍 목사 :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한 중국의 역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리 선생 : 지금 중국이 한반도의 군사 위기 상황과 미국의 북한에 대한 무력 공격 의도에 대해서 ‘중재자적’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까닭은 앞서 말씀드린 약점 때문입니다. 중국으로서는 대만 문제뿐만 아니라 그 밖에 앞서 설명한 여러 가지 중장기적 국가 발전 및 안보 계획에서 미국의 방해와 위협을 어떻게든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또 미국과의 요구 조건 교환으로 미국에 일정한 양보를 해야 하기 때문에 국력이나 국가의 크기에 비해 아시아에서 미국에 대한 대응력은 훨씬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미국은 북한과의 문제에서 계속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중국에게 일정한 역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속셈이 무엇인가 하면 “당신들이 북한의 유일한 군사적·전략적 보호국이니 북한과의 군사동맹 관계를 폐기하든가 아니면 좀 더 강력하게 북한에 대해서 미국에 굴복하게끔 압력을 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대만 문제, 중국의 올림픽 개최 문제, OECD 가입 문제 등 여러 가지 중국이 원하고 있는 문제가 그렇습니다. 특히 세계은행이나 IMF 등 세계 금융기구와의 관계를 중국이 획득하기 위해서는 사실상의 거부권을 갖고 있는 미국의 환심을 사지 않을 수가 없는 입장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미국과 중국과의 이해 관계의 얽힘이 한반도 문제와 특히 미국의 북한에 대한 전쟁 위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미묘하게 중국이 관련되면서 그 영향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미국의 정책
홍 목사 : 일본에서는 지난 6월 6일 국회에서 유사법이 통과됐습니다. 이것과 미국의 동북아 전략이 어떤 관계에 있다고 보시는지요?
리 선생 : 일본의 최근 입법 문제는 일본의 완전한 군사대국화를 급속도로 지향하는 것이니까 그 두려움이라는 것은 이루 형용할 수가 없잖아요? 특히 일본 패망 이후에 소위 세계 헌법사상 초유의 일로서 국가의 전쟁권과 군사력을 포기한 이른바 ‘평화헌법’을 완전히 뜯어고치겠다니까…… 이건 바로 1945년 전의 군사적 패권주의 내지 이 지역에서의 일본의 군사적 지위의 확고한 확립을 위한 것으로 아주 겁나는 거죠. 일본 군사대국화는 물론 일본인들의 사무라이 정신이나 제도에 따라 무(武)를 숭상하는 일본 국민의 독특한 정치 형태도 있고 문화도 그렇지만, 일본 국민의 대부분은 여론조사를 해보면 일본 평화헌법이 제정된 이후에 압도적 다수가 군사대국화에 반대해 왔어요. 그런데 소수의 우익, 더욱이 극우, 반공, 냉전주의적 세력과 개인, 그리고 패망 전에 일본 군국주의의 주역을 맡았던 인간들이 일본 정치를 장악하면서 옛 일본으로 복귀하는 방향으로 헌법을 포함한 모든 제도의 개정을 추구해 왔습니다.
이들은 소수이지만 압도적인 다수의 국민들을 반대하는 방향으로 갔어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인데도…… 하지만 그렇게 이뤄져 왔고, 최근 5∼6년 사이에 급속도로 군사대국화되었어요. 그것은 대다수 일본 국민들의 의사이기보다 미국의 일관된 정책 때문이에요. 만약 미국이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원치 않았다면 일본이 그처럼 무모할 정도로 모험주의적인 군사대국화의 길을 걷지 못했을 겁니다. 잘 아시다시피 일본은 정치·외교 분야에서는 우리 한국이 미국에 예속되어 있는 상태보다 별로 나은 것이 없을 만큼 비자주적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 군사적으로 위험한 노선으로 간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미국의 동아시아 장기 전략의 결과예요. 미국이 요구하고 압력을 가해서 평화헌법 체제를 야금야금, 일본말로 ‘공동화’한다고 하는데, 껍질만 남겨 놓고 실체는 다 빼버리는 그런 과정이 지난 20∼30년간 꾸준히 계속되어 오다가 최근 5~6년 사이에 마무리 작업이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해서만 욕을 할 것이 아니라 문제의 핵심과 그 책임이 어디 있나 하는 것을 알아야해요. 미국이란 말이에요! 일본을 동북아시아에서 군사적 목적으로 써먹기 위한 미국의 요구에 의해서 그렇게 변화해 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홍 목사 : 일본은 벌써 오래 전부터 미일동맹을 강화하기 위한 입법조치들을 취해왔는데 이에 관해서 말씀해주시죠?
리 선생 : 1960년대의 상황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1978년에 미국이 일본을 동북아시아의 군사 전략 동맹으로 격상하기 위한 조치로서 이른바 미일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시점으로 하여 1993, 1994년에는 그동안 일본 군사력 행동의 범위를 주로 전수방위(專守防衛), 일본 본토 주변 군사 공격에 대한 대응에 한정했던 것을 확대하여 미국의 대북 전쟁 준비를 위해서 한반도를 포함하는 전 공간에서 미국 군사행동에 협력하는 이른바 ‘주변사태’로 더욱 강화시켰어요. 1999년 5월에는 일본 군대의 본격적인 아시아 전체 지역 활동을 합법화하는 ‘주변사태법안’, ‘자위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는데, 이와 같이 ‘평화헌법’을 유명무실화하는 일련의 미·일 공동조치에 따라서 일본 군대는 1991년 캄보디아 파병을 시작으로 동티모르 파병과 그 밖에 세계 많은 지역에 파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소위 ‘자위대’라는 일본 군대는 ‘방위’로 제한되어 있어 해외에서의 군사행동은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었으나 이제 미국과의 공조로 전지구적인 파병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밖에 미국과의 군사적 합동작전 체제를 강화하는 최종 단계로 2003년 6월 소위 한반도에 대한 선제 군사행동까지를 전제로 하는 ‘무력공격사태법’을 성립시켰습니다. 이렇게 미국은 본격적이고 강대한 군사력을 갖춘 일본과 ‘상호협력계획’ 및 ‘공동작전계획’을 세워 대북한 무력 공격 준비에 들어간 것입니다.
주한미군 재배치는 첨단 전력 위주의 전쟁 방식을 적용하기 위한 것
홍 목사 : 미국은 주한미군의 재배치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군사적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또 그것이 한반도 평화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죠.
리 선생 : 미군의 배치 이동에 대해서는 세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어요. 하나는 1991년에 있었던 1차 이라크 전쟁부터 미국은 초현대 무기, 전자공학화된 무기, 모든 자동화된 무기, 정밀화된 무기로 인간적 요소를 대체하는 새로운 전략 구상을 실행했단 말예요. 그 구상이 이번 2차 이라크 전쟁에서 아주 완벽하게 성공한 거죠. 왜냐하면 이번 이라크 침략 전쟁에서는 전쟁 기간에 사용된 인간의 병력수는 얼마 안 되거든요. 더군다나 미국 쪽 인적 피해라는 것은 118명인가, 하여간 하나의 전쟁을 치르는 데 10단위, 100단위 이하의 인명 피해로 전쟁이 끝난다는 것은 1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에요. 전쟁 무기학적으로 아주 혁명적인 현대화 때문에 가능해진 것 아니겠습니까? 그 결과 미국은 오히려 전세계에 미군을 배치해야 될 필요가 생겼어요. 이라크 침략 전쟁에서 승리하고 아프간을 새롭게 자신의 패권주의 하에 완전히 장악했잖아요? 또 미국은 과거에 공산권이었던 18개 동유럽 국가들, 가령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루마니아·불가리아 등 이런 국가들을 이라크 전쟁에 동원했단 말이에요. 이번에 그들이 미국에 완전히 밀착했거든요. 따라서 러시아와 서유럽 사이 중간 지대에 하나의 넓은 띠, 아마 500∼600km에 이르는 폭의, 그러면서 한 2000km에 이르는 길이로 아프가니스탄 바다 이쪽까지 이르는 광대한 영역이 미군 장악 하에 들어왔단 말이에요. 그럼 미군이 재배치해야 할 군사 병력이 당연히 어딘가에서 이동해야 되겠죠. 전세계적인 규모에서 군사 병력의 재배치가 이루어져야 하니까 당연히 가는 거예요. 남한에서의 평화 구축을 위해서, 안정을 위해서 미군 병력을 철수하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미군이 더 강력한 세계 지배를 위해서 혁명적인 무기학적 변화로 말미암아 생기는 결과적인 이득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죠.
둘째는 1950년 6월에 시작된 한국전쟁 때부터 남북간 군사 대치 구조의 기본 개념이 다량의 무기와 많은 병력이 필요한 양적인 군대 개념이었어요. 그런데 미국으로서는 방금 설명한 것과 같은 무기학적 변화의 결과로 해서 한반도에서도 양적 전쟁을 할 필요가 없고 또 하지 않고서도 충분히 북한을 견제하고 북한과 전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병력을 줄이거나 배치를 변경함으로써 그전보다 오히려 몇 배 더 전력이 강화되었어요. 병력을 5천 명, 8천 명 줄인다고 해서 미군의 전쟁 능력이 그만큼 축소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는 거죠.
셋째로 얘기해야 할 것은 그동안 소위 말하는 ‘인계 전략’이라는 것이 북한의 어떤 군사행동이 있을 때는 미군이 공격 대상이 된다는 가정 하에서, 그렇게 되면 미국이 반드시 보복을 하기 위해 군사행동에 개입할 것이므로 남한 보호를 위해서는 미군이 서울 근처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오히려 이제는 남한 국민이 미국의 북한 공격 전쟁 전략의 볼모가 되었어요. 잘 들어 보셔야 돼요. 그전에 인계 전략이니 한 것은 미군이 북한의 공격 대상이 되기 때문에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지 못하는, 말하자면 미군이 볼모로 되기 때문에 오히려 남한이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전략이었잖아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식자들이나 대통령이나, 지난 4월인가요 노 대통령이 미국 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어! 미군이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면 안 된다. 그 자리에 있어야 북한이 공격을 못한다!”, 즉 미국 군대를 북한의 군사 공격에 대한 볼모로 잡아놓음으로 해서 남한의 안전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구요.
그런데 이제는 이 전략이 거꾸로거든요. 아까 말한 것처럼 미국 군사력의 성격 자체가 재래적 개념하고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에 미국은 이제 한강 북쪽 서울 부근에 있지 않으면서, 구체적으론 평택으로 내려간다 하면서도 북한에 대한 억제력이나 전쟁 능력은 그전보다 강해진단 말이에요. 거기에 더 보태서 미군이 평택 이남으로 간다는 것은 미국이 걱정했던 휴전선 바로 북쪽에 배치되어 있는 6천 문의 자주포, 로켓포와 장거리포의 사거리 밖으로 미군을 빼는 것이에요. 미국 군대는 북한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대남한 군사 무기인 장거리포의 사정 밖으로 빠짐으로 해서 안전한 지역에 놔두고 거기서 새로운 전략 군대에 의해서 북한에 대한 전쟁 능력을 확보한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제는 북한의 장거리포나 로켓포라는 것이 남한 국민에게 피해를 줄 수 있게 됨으로 해서 미군에 대한 북한의 공격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바뀌게 되었어요. 남한 국민의 재산과 모든 것이 지금 볼모로 잡혔다 이거예요. 아주 절묘한 전략 구상이죠. 북한으로선 굉장히 위험한 상태가 전개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죠. 뿐만 아니라 우리 남한으로서도 미국 군대의 대북한 군사전략·공격전쟁을 관리할 수 없는 입장에서는 미군이 자기들 일방적으로 북한에 대한 전쟁을 결정하고 집행할 때 우리만 당하는 꼴이 될 위험성이 있어요. 한 일주일 전인가요, 주한미군 2사단 배치 전환 문제에 관해서 발표한 북한의 공식 발표는 아주 그 문제를 적절히 이해하고 있어요. 뭐라고 했냐면 “미군의 평택 이남 전속 배치는 남한을 희생으로 내보낼 그런 위험한 수법이다. 그리고 미군의 위험한 행동은 앞으로 결국 남한이 그 피해를 대신 짊어지게 될 것이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고 했거든요. 그리고 미국이 발표한 것만 하더라도 110억 달러어치 최신 무기를 갖다 놓겠다고 그러지 않았어요? 그것은 바로 이라크 침략 전쟁에서 사용했던 군사력, 무력이 바로 이리로 온다는 얘기예요. 그리고 우리보고 그에 상응하는 첨단 무기를 사라. 그럼 50억 달러 내지 100억 달러 되겠죠. 결국 이렇게 되면 미국 군대가 지휘하고 그 집행 능력 체계 속에 들어가는 군사력은 두 배가 되는 겁니다. 미국이 최신형 아파치 헬기 등을 들여오고 남한이 그만큼 사면 북에서 보면 지금까지 없던 분량만큼의 군사력이 남쪽에 배가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반도 정세는 위험 수준을 높여 가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국방부가 말하는 ‘자주 국방’이란 한국군과 한국 돈으로 미국의 대북 전쟁을 치르자는 것
홍 목사 : 최근 국방부가 ‘자주 국방’을 내세우면서 전력 증강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리 선생 : 난 도대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군대라는 것을 개념화할 자격이 있나부터 묻고 싶어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미국과의 관계, 특히 군사 관계에서 완전히 예속된 국가이거든요. 내가 어딘가에도 썼지만 대한민국의 처지는 1905년부터 1910년까지 보호조약에 의해 일본의 보호국이 됨으로써 주권이 박탈된, 즉 외교권·정치권·군사권이 없는 상태와 유사합니다. 가령 우리 한국 사람들, 지식인들까지도 구축함 4500톤짜리를 사왔다든가 이지스함을 사오게 된다든가 F-16 전투기를 160대 보유하게 된다든가 아파치 헬기를 도입한다든가, 또 한반도에서 가령 전쟁을 하더라도 독자적인 군대 운용에서는 전혀 필요가 없는 에이왁스라는 공중정보수집기―태평양이나 상당한 거리에서 필요한 것입니다―라든가 장거리 작전에 필요한 전투기에 공중 급유를 하는 급유기 같은 것들을 사오게 된다고 해서 막강한 군사대국이 됐다고 박수치고 좋아하거든요. 우리 한국과 미국의 군사 관계의 실체를 전혀 이해 못해서 그러는 거죠.
우선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 완전히 묶여 있고 작전지휘권이 완전히 미국한테 가 있어요. 또 지휘 계통이나 지휘 구조가 전투 군사동원령이 내려졌을 때 자동적으로 미군사령관에게 귀속되게 돼 있거든요. 그렇게 사오는 무기는 전쟁을 가상할 수 있는 조건에서 사용되는 건데, 그런 상황에선 이미 대한민국 군대는 미국 군대에 완벽하게 편입되어 버립니다. 한국의 혈세와 돈으로 사서 마치 우리 소유인 것처럼 생각하는데, 사실은 미국의 전쟁을 위해서 미국 사령관의 지휘를 받는 군대가 돼버리는 거지요. 미국의 전쟁을 위해서 우리 혈세로 우리 젊은이들의 생명을 바치면서 만들어지는 군대거든요. 이 실체를 한국 사람들은 상당한 양식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조차도 인식을 못하고 있어요. 자주 국방의 실상이 바로 이런 건데, 우리에게 자주 국방을 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 이거예요. 자주 국방을 한다는 것이 지금 미국하고 어떤 전쟁 행위를 할 것을 전제로 한 것도 아닐 테고 러시아하고도 아닐 테고 일본하고도 아닐 거란 말이에요. 북한과의 전쟁을 상정해서 자주 국방인데 미국이 원하는 북한과의 전쟁을 하지 않는 한 그런 무기를 막강하게 소유하고 그것에 돈을 쓸 필요가 없거든요. 그게 필요하다는 것은 미국의 북한과의 전쟁 경우이거든요. 한국군은 하수 용병의 형식으로 미국 군대에 편입돼서 대북한 전쟁에 동원되는 것이지요.
베트남 전쟁이 일단 끝난 뒤인 1973, 1974년경 미국의 전략은 북한에 대해서 제2전선을 구축한다는 것이었어요. 제2전선을 구축한다는 것은 당시 소련이나 중공의 군사적 역량이 베트남 쪽으로 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제2전선, 베트남 전선과는 또 다른 전선을 구축하는 전쟁을 상정한 거죠. 그때 구체적인 전략이 나왔어요. 전쟁 자체는 한국군이 하고 미국은 핵무기로 엄호한다. 지금 자주 국방이란 미명하에 보유하게 된 국방력은 실제로 미국의 대북한 전쟁을 위해서 미국인들이 사와야 할, 자기들의 돈으로 사오고 자기들의 필요에 의해서 보유해야 할 군사력을 한국군에게, 한국 국민에게 떠넘긴 거예요. 문제의 근본적인 성격의 인식 없이 한국의 자주 국방이니 뭐니 하는 것은 우리의 이성적인 냉철한 판단을 마비시키는 위험한 언어의 마취, 유희이지요.
북핵 문제의 배경은 미국의 대북 압살 정책
홍 목사 : 북핵 문제로 미국이 북한에 압력을 가하는데, 북한 핵 문제가 터져 나온 배경에는 무엇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리 선생 : 결론부터 말하자면 과거 30년 동안 한반도에서의 미국 군사 전략과 기본 구상을 볼 때 최종적으로 미국이 전쟁을 감행할 것이 분명하니까 결국 북한이 스스로 방위하기 위해서, 핵 선제공격에 대비한 자위책을 강구해야겠다는 동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즉 핵에 대한 동기를 미국이 북한에 부여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겁니다. 이를 위해서는 한반도에서의 군사 정세 변화의 역사적인 추이를 알아야 합니다. 휴전협정 제2조 제13항 ㄹ목에는 “북한이나 미군이나 휴전 당시에 소유했던 그런 질의, 그런 유형의 무기가 아닌 무기를 들여올 수 없다”고 돼 있어요. 이건 뭘 말하느냐 하면 바로 핵무기를 말하는 거예요. 6·25 전쟁에서 쌍방이 핵무기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데 1956년에 미국 합참의장 레드포드가 한국에 신무기를 도입했다고 발표해요. 뿐만 아니라 휴전협정이 거기에 방해가 되니까 1957년 5월 22일 “휴전협정 제2조 13항을 폐지한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하지요. 이처럼 미국은 휴전이 된 지 4년밖에 안 지나 핵무기를 들여왔어요. 엄청난 휴전협정 위반이죠. 휴전협정을 다 깬 거나 다름없는 범죄적이고 무모한 짓을 한 거죠.
더욱이 그 후에 미국은 핵확산금지조약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도 위반했어요. 이 조약이 체결된 때부터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5대 국가는 핵을 보유하지 않은 국가에 대해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없다는 의무 조항이 있는데, 핵무기를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사용하기 위해 배치했거든요. 이는 휴전협정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핵확산금지조약의 의무를 방기한 거예요. 그 뒤로도 미국은 일관되게 북한에 대해서 핵 선제공격을 하겠다는 것을 기본 지침으로 삼아 왔어요. 주한미군이 북한에 대해서 핵 공격을 할 수 있는 절차는 북대서양동맹 국가 안에서 미국이 소련에 대해서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간단합니다. 저해 요인이 없다는 거죠. 한반도에서는 북한에 대한 주한미군사령관의 상황 판단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그리고 양국 대통령, 주로 미국 대통령이지만, 승인도 아니고 보고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북대서양동맹 국가에서는 미국을 제외한 15개 회원국끼리 핵 협의회의라는 것을 구성해 가지고 수시로 과거 소련 및 동유럽 국가에 대한 핵무기 사용에 관한 핵전쟁 전략에 대해서 미국과 상의를 했어요. 적어도 미국이 그 정도로 상대방 동맹 국가들의 위상을 높이 평가했다는 거죠. 또 그 15개 국가 가운데 5개 국가가 핵 협의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 가지고 미국의 핵무기 목표 설정, 핵무기 이동, 핵무기의 교체 또는 핵무기 사용, 발사 등 모든 문제에 대해서 공동 협의를 하게 되어 있어요. 상설위원회거든요. 이 5개국 위원회가 15개국 유럽 국가들을 대리해서 핵 전략의 발언권을 행사하는 건데, 물론 거부권을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으로서는 그걸 존중하지 않을 수 없거든요. 심지어 그 다섯 국가 가운데 하나인 서독은 그때 “서독에 배치된 미국 핵무기는 동독을 목표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미국에게 제시해서 미국이 응했어요.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줄곧 핵전쟁 위협을 받아와
이 정도로 자주성이 있는 나토 국가들과 달리, 남한은 북한에 대해서 제발 핵무기를 써달라는 꼴이었으니…….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상시적으로 미국의 핵전쟁 위협 하에 살 수밖에 없지 않았겠어요. 그러니까 핵무기에 대해 핵무기로만 의존하는 자기 방어 수단을 절실히 필요로 했던 거지요. 그런데도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았던 까닭은 1990년까지는 소련과의 군사동맹으로 해서 소련이 북한에 대한 핵 우산을 제공하고 있었단 말예요. 남한에 대해서 미국이 핵우산을 제공했던 것처럼. 그런데 1990년 고르바초프가 남한과 수교하면서 북한과의 군사동맹을 실질적으로 백지화해 버리지 않았습니까? 평양에서 세바르드나제 소련 외상이 그렇게 통고하니까 북한 외상이 격노하면서 북한도 그럼 자위책을 강구하겠다, 모든 무기의 자체적인 수단을 강구하겠다, 다소 협박적인 톤이지만 그런 결의를 표명하거든요. 그래도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중국이 북한에 대해서 절대로 핵무기 생산을 허용하지 않으니까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핵 공격 위험을 느끼고 핵무기개발 필요를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지만, 적어도 1994년 10월 클린턴 정부와 핵 협정을 체결하면서 핵 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언질을 받았으므로 그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 거지요. 그 뒤 일단은 핵을 실용화할 필요성을 다급하게 느끼지 않았는데, 부시에 이르러서 핵 선제공격을 공언하고 나오니까 아마 그때부터 상당히 구체적으로 핵 문제에 대한 행동으로 들어갔으리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미국의 전문가들도 아직 북한이 핵탄두를 생산하는 단계가 아니라고 하는 데는 대체로 일치하고 있거든요. 중국이 지금도 군사동맹을 맺고 있고 상당히 견제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독자적으로 핵 전력을 보유하려면 아직 멀었다고 난 생각합니다. 많은 서방 전문가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반대로 뭔가를 자꾸 띄우는 것은 미국의 일부 강경 보주주의자들이죠.
예측 불허의 한반도 전쟁 위기
홍 목사 : 한반도 전쟁 위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리 선생 : 지금 승리를 자신하고 있으니까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전에 일어날 가능성도 있고, 선거 후에 일어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미국 내부의 필요성으로서 나는 선거 전의 가능성에다 좀 더 무게를 둡니다만. 역시 여기에는 중국이라는 요소가 굉장히 무겁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중국의 국가적 체면과 이익에 타격을 주면서까지 북한에 전쟁을 할 수 있겠는가. 전쟁을 한다는 것은 북한을 바로 이라크처럼 만들어 버리는 건데, 중국에 대한 전략적이고 범세계적인 판단을 미국으로선 안 할 수 없다는 말이죠. 차원을 조금 낮춰서 생각하면 지금 북한이 맺고 있는 군사동맹은 중국밖에 없질 않습니까? 이미 소련과는 해체되었고 통상적인 우호조약으로 대체되었어요.
하지만 1961년 7월에 체결된 중국과의 군사동맹은 지금도 존속한단 말예요. 중국으로서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전쟁 행위가 있을 때 굉장히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되지 않겠습니까? 동맹의 의무를 짐으로 해서 미국과의 군사적 대결 상태에 들어가느냐, 아니면 미국의 북한 파멸을 이라크처럼 그냥 방치할 것인가, 눈앞에서 자기 국경 바로 접경 지대에서 일어나는 이 중대한 사태 변화를 묵과할 것인가. 중국에선 아주 국가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거든요.
지금 미국이 북한에 대해 모든 정치적·군사적인 상황을 다 조성해 놓고 있으면서도 미적미적하고, 또 온건파와 강경파가 대립해 있다는 식으로 보이는 건 다름 아닌 바로 중국과의 관계, 중국의 대응이 어떻게 나올 것이냐? 미국이 장기적인 정책으로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이걸 결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미국은 러시아는 거의 도외시하고 있다시피 합니다. 어차피 한국 문제 때문에 러시아가 핵무기를 쓸 이유도 없고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러시아는 외교적 배후 세력이 됐지만 중국은 다르단 말예요. 중국의 이익과 의사를 꺾으면서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을 미국이 결의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죠. 미국이 대만의 독립을 부추기고 막강한 최신 무기를 계속 제공함으로써 중국의 국가 목표인 대만 수복을 지연시키고 있는데, 이것을 무기로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압력도 굉장히 가하고 있거든요.
그러나 중국의 현 위상과 잠재적인 역량, 그리고 20∼30년 후 우리가 상정할 수 있는 역관계를 전제로 할 때,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전쟁 행위를 시작하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미국이 북한 문제를 놓고서 모스크바로 가는 일은 별로 없는데 뻔질나게 북경은 가거든요. 북경이 딱 버티고 있으면 또 UN 성명 발표 같은 제재 조치를 하려고 해도 중국하고 러시아가 반대하니까 후퇴했지만 그런 의미에서 아주 미묘한 가능성의 균형에 한반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중국이 조금만 허약하게 나오면 미국은 그냥 전쟁으로 나갈 기회를 포착할 것이지만, 현재와 같은 중국을 이 문제의 주요 요소로 상정할 때 미국이라도 섣불리 감당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고 봅니다. 상당히 위험한, 그러니까 금년 가을부터 내년 여름까지가 아주 판단하기 어려운 시기라고 봅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필요없는 조건을 국민의 힘으로 만들어 내야
박기학 실장(박 실장) : 지난 번 1차 인터뷰 때는 주로 불평등한 한미 관계의 실상과 그 정책적 배경에 관하여 선생님의 고견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불평등한 한미 관계를 고쳐 나가는 데서 요구되는 실천적 과제에 대해서 선생님께 여쭤 보고 싶습니다. 저희 평통사나 자통협은 한미상호방위조약 및 그 하위 협정들의 개폐 없이는 대등하고 자주적인 한미 관계가 있을 수 없다고 보고 이를 제기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대해서 일반 대중은 물론이고 우리 운동하는 사람들도 사실 그 내용을 거의 모르거든요. 그래서 개정 필요성에 대해서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시면 저희한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리 선생 :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개정해야 한다거나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 여론이 국내에 있습니까? 개정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진 사람이 전체 국민들 속에 차지하는 인구적 비율이 또는 여론상의 비율이 어느 정도 되나요?
박 실장 : 말씀드리기가 어려운 것이, 우리 국민들이 이제 한미 SOFA는 불평등하다는 것은 대강 알거든요. 그러나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대해서는 내용 자체를 거의 모르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개정 요구 이전에 내용 자체도 잘 모른다고 보시면 정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리 선생 :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에 내가 궁금한 것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정이 필요하다, 또는 그렇게 개정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기 혼자만의 생각인지, 어떤 단체나 어느 정도의 인구인지…… 뭔가는 있을 게 아니겠어요?
박 실장 : 한미 SOFA나 두 여중생 문제가 생기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군사주권, 영토주권, 정치주권을 송두리째 내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있다고 보고 그걸 제기해 나가야 되는 시점에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런 굴욕적인 내용들을 대중들에게 알려 나간다면, 지금 한미 관계의 불평등을 해소하기를 바라는 국민 여론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다고 보고요. 또 하나는 올해 2월 라포트 주한미군사령관의 언급처럼 미국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대해 재검토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미국의 군사 전략적 요구, 아까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한미 동맹을 대중국 포위 전략 속에 편입시키기 위한 차원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 적용 범위를 단순히 한국에 대한 방위 차원이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안보 차원으로 넓히려고 하는 움직임이라고 봅니다. 이런 객관적 정세나 우리의 주체적 조건으로 봤을 때 이제는 한미상호방위조약 개정을 대중들한테 제기해 나가야 될 그런 시점이 됐다, 이렇게 저희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 준비 차원에서 이에 관한 연구를 해왔고 7월 29일 토론회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 개정안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리 선생 : 주한미군사령관이 개정을 하려고 한다는 얘기를 했을 때 어떤 점을 개정하겠다고 말했는지요?
박 실장 : 딱히 어떤 부분을 개정하겠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현행 한미상호방위조약상의 방위 범위를 남한 이외로 넓히려고 하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리 선생 : 유일하게 미국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고치고 싶어하는 조항이 있다면 그거예요. 그 지역적인 제한을 바꿔 보려는 것이죠. 나머지는 미국이 손대야 할 이유가 없어요. 왜냐면 전문에 UN 정신에 입각한다는 거 있고, 그리고 태평양 지역이 있고, 그 다음에 외부적인 공격을 받았을 때 있고, 그리고 4조에 대한민국의 영토를 무조건 미국의 군사적 배치를 위해서 제공하고 미국이 수락한다는 이게 제일 중요하거든요. 미국은 계속 있고 싶으니까 어느 것도 고칠 게 없어요.
미국이 상호방위조약을 정정하겠다 그러면 마치 여태껏 한미방위조약에 대해 국민들이 많은 불평을 했으니까 불편을 제거하는 쪽으로 바꾸려나 보다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 미국이 뭔가를 손대려고 할 때에는 그것과는 정반대로 작전 지역 확대를 위해, 일본 군대와 남한 군대를 이끌고 둘을 결합시킨 채 실제 삼각군사동맹으로 일체화시켜서 앞으로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전 지역적인 하수 군대로 삼는 거죠. 결국 남한 군대를 중국과의 전쟁에 동원하겠다는 것밖에 안 되는 거죠.
한국 국민들이 여중생 문제니 SOFA 개정이니 하니까 주한미군사령관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고치겠다고 발언하면 국민들의 염원에 부응하는 것처럼 들리잖아요. 전혀 아니지요! 완전히, 더 완벽하게 미국의 아시아 전략 개념 속에 한반도를 집어넣으려고 하는 거예요. 이번에도 이라크 전쟁에 한국군을 파견할 때, 나도 물론 강력하게 제기했지만, 그 작전 지역이라는 게 태평양 지역에 한정되어 있는 거란 말이에요. 과거에 베트남 전쟁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렇고 언제나 끌려 다니게 마련이지만, 미국의 대아시아 전략 개념 속에 남한 군대를 집어넣고 일체화시키려니까 그런 발상이 나올 수밖에 없죠. 이건 굉장히 위험한 거죠. 그런데 어떤 점을 개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박 실장 : 거의 모든 조항이 개정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4조에 규정된 주한미군의 일방적인 주둔권과 무기나 병력의 일방적인 반입·배치에 대한 우리의 주권이 최소한 미쳐야 된다, 그러니까 제한이 가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임대 관계랄까요.
리 선생 : 임대 관계라는 게 뭐죠?
박 실장 : 현행 4조에 의하면 주한미군 배치의 권리, 주둔의 권리가 미국에 있지 않습니까? 권리 행사의 주체가 한국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한국의 허락을 받아서 주둔하는 형태가 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입니다. 특히 3조를 보면 “어느 일방의 행정 지배 하에 있거나 또는 향후 합법적으로 행정적 지배 하에 들어가게 될 영역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무력 공격에 대해서” 이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 밑에 양해사항을 보면 “미국에 의해서 결정된 영역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무력 공격”에 대해서만 미국은 방위 의무를 진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이는 우리 영토주권에 대한 결정적인 훼손입니다. 상호방위조약에 의거해 맺어진 54년 한미합의의사록 1항을 보면 “한국은 국토 통일에 있어서 반드시 미국과 협의”하게 되어 있는데, 통일에 관한 미국의 간섭을 합법화하는 이러한 부분도 개정되어야 하고요.
리 선생 : 우선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어떻게 체결되었느냐 하는 데서부터 문제가 있는 거예요. 6·25 전쟁에 대한 휴전이 성립되려고 하니까 이승만 대통령이 휴전 성립을 방해하다 못해서 결국은 동의하는 대가로 미국에게 대한민국의 보호와 방위를 책임지는 상호간의 권리 의무를 체계화하는 조약을 요구했던 거 아닙니까? 첫째로 이게 중요해요. 누가 이 조약을 체결하자고 했는가? 우리 인간 생활에서 남자하고 여자하고 결혼하자고 그랬는데, 어느 쪽이 구걸을 하면서 사랑한다고, 당신 없으면 죽으니까 결혼하자고 했느냐에 따라서 결혼한 후의 위상이 결정되는 거 아니겠어요? 다행히 그 당시에 비해서 이제 북한의 위협은 없어졌고, 북한이 남한을 공격할 군사적 역량도 없고, 그러할 이유도 없고 오히려 협력을 원하고 평화가 한반도에 정착함으로써 북한의 국가적 번영과 안정이 이루어지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에게 방위조약을 구걸하다시피 요구할 때의 위기 상황은 어떤 면에서는 거의 해소되었다 말이에요. 이런 상황 변화를 배경으로 해서 이 방위조약의 부분적인 변경에 대한 발상이 나오겠죠. 아니면 상황이 이렇게 달라졌다면 조약의 전면적인 폐기도 제기할 만한 겁니다. 순서가 그렇지 않으니까 우선 한국 입장에서는 전자의 경우를 드는 거죠.
박 실장 : 저희도 폐기 입장하고 개정 입장으로 나뉘어서 논쟁도 벌였습니다.
리 선생 : 아, 그런가요? 그런데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국과 대한민국만의 특별한 조약, ‘특별한’이라는 뜻은 다른 조약들과는 다른 미국과 남한만의 조약이냐 할 때 사실 그렇지가 않거든요. 미일안보조약, 과거 미대만방위조약, 미비방위조약, 그 밖에 지금 미국이 전세계 54개 국가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어요. 상당수는 임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꼭 우리의 방위조약과 같은 무게를 지닌 조약 형식이 아니지만. 그러나 북대서양동맹은 우리와 같지요. 이런 식의 조약으로 미국이 군대를 주둔하고 있는 나라가 한 25∼26개 정도 되죠.
그런데 아시아의 경우를 보면 미국과 일본, 미국과 대만, 미국과 필리핀, 미국과 과거의 베트남, 미국과 남한 이런 조약의 문장 구성이 거의 같습니다. 같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결국은 폐기가 아니라 부분적인 조항의 수정이라는 것이 어렵다 할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됩니다. 필리핀이나 대만, 베트남은 아예 조약 자체를 없앤 거예요. 어느 국가하고도 수정한 일이 없어요. 1960년에 일본의 전 국민적인 폭동이 나다시피 한 소위 안보투쟁이라는 게 있어요. 이것으로 아이젠하워 정권 때 일본 국내에서 해외로 주일미군이 파병, 군사작전을 위해 나가거나, 핵무기 적재함의 출입국 등을 조약 본문이 아니라 부속 협정에 규정·규제한 일은 있어요. 그러나 본문의 변경은 사실상 어렵습니다. 불가능합니다. 내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까닭은 할 필요가 없다거나, 할 수 없다든가, 하지 말아야 한다든가 하는 뜻이 아니에요. 미국이 군사력을 다른 나라에 장기 주둔시킬 때는, 장기 주둔이라는 것은 북대서양동맹 국가나, 우리나 일본처럼 이렇게 방위조약 형태로 주둔할 때는 그 내용이 사실상 동일한데, 이것은 미국의 의회가 하나의 정형을 만들어 놓고 있기 때문에 그래요. 여기서 우리 조약하고 다른 조약하고가 조금 차이가 있다면 미일안보조약은 유효기한이 10년이에요. 그러나 우리는 처음부터 아예 조약 기한이 없이 무기한으로 되어 있어요. 이것은 본질적인 문제와는 조금 다릅니다. 이건 미국이 볼 때 상대 국가의 위상에 따라서 조금 대접을 해준 것이죠. 우리는 완전히 속국에 속하는 조약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흔히 한국 사람들은, 특히 주한미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 않느냐고 고민하고 현실적으로 행동하는 소수의 개인들도 소위 주한미군의 법적 지위를 규제한 소파가 방위조약과 별도로 개정될 수 있는 줄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아요. 주한미군 법적 지위 문제에 대해 지극히 지엽말단적인 손질은 조금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서 오염 물질 취급에 관한 거라든가, 또는 자동차 번호판을 다는 정도의 얘기는 이 협정의 본질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즉 운용상의 문제이기 때문에 할 수 있지만, 방위조약을 이대로 놓고서는 소위 미군지위협정 즉 소파의 주요 내용은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상호방위조약과 한미소파는 두 개가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이고, 방위조약 체계와 법적 권리 의무 체계 속에 주한미군지위 협정이 완전 일체화돼서 들어앉아 있는 거거든요.
가령 예를 들어 봅시다. 여학생 탱크 압살 사건의 범인들을 처벌하라, 책임자를 처벌하라 요구했는데 미국이 군법회의에서 살인 미군에게 무죄를 선언하고 내보냈단 말예요. 이것은 언어도단인데, 소위 소파에 그대로 적용시켜서 말한다면 무죄예요. 내가 무죄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주한미군 법적 지위협정(한미소파) 상 주한미군이 미국 지휘관의 명령을 받아 지휘관에 의해 세워진 계획에 의해서 행동할 때, 즉 군사훈련을 할 때, 이건 공무란 말이에요. 공무로 규정하거든요. 명령 계통에 의해서 공식적으로 수행하는 거니까. 이것은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을 아시잖아요?
박 실장 : 공무 중 사건은 그 재판권이 미군에 있죠.
리 선생 : 물론이죠. 만약 그 사병이 명령이나 작전계획에 의하지 않고 탱크를 술 취해 가지고 혼자 몰고 나와서 같은 일을 저질렀다면 그것은 별도의 문제예요. 그것은 법적 관계가 달라지는 거니까. 그런데 불행하게도 해외 주둔 미군의 지위와 운영에 관한 미국 의회의 어떤 결의가 있냐 하면 이런 게 있어요. 거기에 의거해서 방위조약도 체결되는 건데, 이겁니다.
첫째, 미국이 방위조약을 체결할 때에는 미국이 부담하는 피해나 의무는 최소한으로 줄인다는 것. 그리고 그 법적 해석은 항상 미군의 이익, 주장에 맞게 하는 것이죠. 여중생 사건처럼 미국 군대 장교나 사병은 그 주둔국이나 그 지역의 형사재판에 절대로 임하지 않는다는 것, 그게 면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걸 벌써 미국은 국제형사재판 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미국 군대만의 예외를 강력히 요구했고, 잘 안 되니까 개별적으로 다 격파해서 경제원조나 군사원조로 협박을 해서 지금 거의 50개 국가, 정확하게는 아마 45개 국가에서 다 받아냈어요. 45개 국가라는 게 뭐냐면 미국이 주둔하고 있는 국가와 지역의 수가 45개입니다. 2차 대전 전에는 2개였어요. 즉 파나마하고 필리핀밖에 없었어요. 2차 대전 후에는 공식적으로 주둔하는 건 12개 국가이고 지금은 40여 개 국가가 되었거든요.
둘째는, 미군이 장기 주둔할 때는 뭐 한 달이든가 일주일이든가 왔다가 가는 게 아니라 장기 주둔할 때는 우리 방위조약 4조에 규정된 것과 같이 미국의 의지에 따라서 어디에나 배치할 수 있고 병력 이동할 수 있고, 무기의 종류도 하여튼 배타적인 미국의 권한에 속하게끔 해요.
셋째, 해외 주둔 또는 파견되는 미국 군대의 경우 다국적 군대이건, 개별적 군대이건, 특히 다국적 군대의 경우이지만 나토의 경우도 그렇고 우리 한미상호방위조약 경우도 그렇고 반드시 미국군 사령관, 장교가 지휘관이 돼야 한다고 돼 있거든요. 그러니까 주둔국의 사령관이 미군을 지휘한다든가 하는 것은 어림도 없죠. 그런 것이 조금이라도 요구되면 미군은 철수해야 돼요. 우리가 미군 철수를 요구해야 되는데 제일 좋은 것은 우리가 작전지휘권 내놔라 하면 미국은 나가요. 작전지휘권이 제일 큰 관건이에요.
이렇기 때문에 방위조약 개정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인데, 방위조약의 개정은 국가의 위상, 미국과의 관계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존재 양식 자체의 변화 없이는 되지 않아요. 따라서 우리가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서고자 한다면 첫째, 우리가 예속 국가라는 아주 처절하고 뼈저린 자기 의식에서 출발해야 해요. 미국에 대한 우리나라의 예속적 지위를 일정한 시간을 두고 거부하려면 미국이 우리에게 가할 보복이라든가 또는 불리한 조건 같은 것을 감내하고 참아 나갈 국민적인, 정권적인 아주 굳건한 결의가 있어야 해요. 그냥 말로만 대등하고 평등한 대미 관계와 소파 개정을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하지 말라는 건 아니지만 그것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미국이 우리에게 대응할 불이익을 감수할 만한 자기 관리 능력과 희생을 무릅쓸 그런 주체 의식이 있느냐, 이것부터 다짐해야 해요. 우리 민족으로서의 주체적 인격을 꼿꼿이 세워 배고픔을 참겠다, 이런 결의 없이는 안 됩니다.
지금 북한이 미국하고 대등한 씨름을 하고 있어요. 남한 사람들이 반공주의자들도 그건 놀라거든요. 북한이 굶고 있다면서 어떻게 그전부터, 김일성 때부터 미국에 대해서 저렇게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가? 북한이 이데올로기적으로 폐쇄적이어서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게 아니에요. 강대국과 군사동맹을 맺지 않고 강대국의 군사기지와 군대가 주둔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소련은 1963년 흐루시초프 때부터 북한에 대해서 원산과 청진, 두 해군항의 양도를 요구했는데 북한이 거부했거든. 중국 군대도 휴전협정이 체결된 지 5년 후인 1958년 11월 1일을 기해서 완전히 철수하거든요. 그건 중국의 표현도 있고 김일성의 민족자주의 표현도 있고, 또 북한 내의 정치권력 투쟁에서 소련파, 연안파 이런 것이 이제 불편스러웠기 때문에 결국 외세를 공식적·물리적으로 물리침으로써 강대국 세력을 등에 업고 나타날 세력을 배제한 거예요. 그러니까 남한처럼 강대국의 이빨이 먹혀 들어가지 않는 이유는 북한에 소련과 중국의 군사기지와 군사 병력과 작전지휘권으로 하나가 된 예속적 군대 체계가 없기 때문이에요. 만약 북한 군대가 강대국에 예속돼 있는 용병과 같은 군대라면 북한이 중국이나 소련에 대해서 감히 반발할 수 있어요? 중국이 ‘뭐뭐 양보해!’ 하면 그만이지. 소련이 김정일보고 ‘거 핵 문제에 대해서 우리 입장 곤란하니까 양보해!’ 하면 안 들을 수 있어요? 워싱턴에서 한국의 노 대통령에게 손가락 한 번 움직이면 움쩍 못하는 게 다 그런 거예요.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문제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각성하고 얼마나 결의가 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주한미군이 필요 없도록 한반도에서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박 실장 : 앞으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없애 자주성을 회복하려면 우리 국민이 어떻게 해야 할지 말씀해 주시죠.
리 선생 : 미국이 남한에 군대를 갖다 놓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한반도에서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합니다. 미국이 구실을 들어 주저앉지 못할 명분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평화적인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 가기 전인 2000년 5월 22일 남북 문제에 관심을 가진 각계 전문가들을 청와대로 초청해서 갔던 일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주한미군 없는 한반도를 한번 구상해 보십시오”라고 대통령에게 권고한 일이 있어요. 이와 관련하여 3단계 평화구축 방안을 얘기했습니다.
우선 첫 5년간 경제·사회 문화교류를 꾸준히 지속해 나간다. 그렇게 5년간 계속하면 긴장이 낮아지고 평화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며 미군 주둔의 허구성이 인식된다. 다음 5년간은 남북간에 군축을 실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한미군이 맡고 있는 휴전선에서의 방위 역할을 주한미군을 포함한 다국적군(평화유지군)으로 교체하고 동시에 미군도 단계적으로 철수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10년간 신뢰를 쌓은 다음 5년간 미군을 포함한 외국군이 필요 없는 단계까지 남북한에 평화 안정 정책이 정립되면 그때는 미군을 포함한 외국 군대가 다 빠져 나가게 됩니다. 이 같은 방안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또 김대중 대통령에게 이런 말도 했어요. 남북정상회담이 발표된 다음날, 바로 미국 국방장관이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은 한반도에 주둔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어요. 그래서 내가 김대중 대통령에게 “이게 무슨 소리냐? 통일은 남북이 스스로 하는 것이고 그 이후의 정치적 결정은 우리가 하는 것인데, 이 얼마나 오만하기 짝이 없는 행동인가? 대통령께서 평양 가기 전에 미국의 그런 행동들에 대해서 점잖게 한 말씀 하시고 가시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나의 제안에 대해서 굉장히 불편해했어요.
통일은 말이나 구호로만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통사 등 단체에서 국민 대중을 교양하고 이끌어야 할 임무가 큽니다. 그래서 기대를 크게 갖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주한미군이 없어도 되는 상황과 조건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스스로 자주·자립하는 주권 의식을 세우는 우리 국민의 각성과 결단, 의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박 실장 : 몸도 편치 않으신데 두 차례에 걸쳐 장장 네 시간 가까운 대담에 응해 주시고 귀한 말씀 해주신 데 대해서 정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