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1/22][조약국장] 용산기지 이전 바로알고 논의하자 --> 조약국장이 쓴 내용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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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기지이전협정, 바로알고 논의하자.hwp | |||||||||||||||
2004. 11.
외 교 통 상 부
용산기지 이전협정, 바로알고 논의하자 서울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유엔군사령부(이하 유엔사), 한미연합사령부(이하 연합사), 주한미군사령부(이하 주한미군사)를 평택지역으로 이전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용산기지이전협정이 지난 10월26일 한미 양국 정부간에 서명되었다. 용산기지이전협정은 기본적인 원칙과 절차를 정하는 포괄협정(UA)과 그 이행에 관한 절차적ㆍ기술적 세부사항을 정하는 이행합의서(IA)로 구성되는데, 포괄협정은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기 위하여 10월29일 국회에 제출되었다. 이행합의서는 국회의 비준동의 대상이 아니지만 국회가 포괄협정에 대한 비준여부를 검토하는데 참고할 수 있도록 참고자료로 국회에 제출되었다.
용산기지 이전은 나라의 안보에 관련되고 많은 예산이 소요되는 사업으로서 국민의 관심이 크기 때문에 용산기지이전협정 교섭 과정에서부터 많은 논란이 있어 왔으며 앞으로 국회의 비준동의 과정에서도 이에 관한 많은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요한 국사에 대한 각계각층에서의 활발한 논의와 비판은 건전한 민주국가의 기본이지만 그러한 논의와 비판은 실체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기초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 책자에서는 이러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용산기지이전협정의 주요 쟁점사항에 관한 사실과 법리를 정리해 본다.
2004. 11. 8 외 교 통 상 부 조약국장 정 해 웅 - 목 차 -
1. 왜 용산기지를 옮겨야 하나? 2. 용산기지이전협정의 요지는 무엇인가? 3. 미군기지를 옮기는데 왜 우리나라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나? 4. Rhein-Main 공군기지이전합의서는 원인제공자 부담원칙에 대한 예외인가? 5. 왜 총소요예산을 협정에 표시하지 않나? 6. 이행합의서에 대해서는 왜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는가? 7. 왜 임무와 기능을 옮긴다는 개념을 사용하나? 8. 유효성을 확인한다(validate)는 것은 어떤 법적 효력을 가지는가? 9. 현물제공(in-kind) 방식과 turnkey 방식은 어떻게 다른가? 10. 지휘ㆍ통제ㆍ통신ㆍ컴퓨터ㆍ정보체계(C4I) 이전비용은 천문학적인가? 11. 왜 우리나라에서 미국 국방부 시설기준을 적용하나? 12. 우리나라가 기타 비용을 지급하게 되어 있는데 이것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 아닌가? 13. 1990년에 서명한 합의각서/양해각서(MOA/MOU)와 이번에 서명한 용산기지이전협정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14. 용산기지 이전으로 인하여 미국인이나 우리나라 국민이 손실을 입게 되는 경우에는 어떻게 보상받는가? 15. 캠프 그레이와 캠프 킴의 이전비용은 누가 부담하나? 16. 반환되는 용산기지 오염치유는 누가 하나? 17. 맺는 말
첫째, 용산기지 이전은 우리 정부가 오래전부터 유지해오던 정책이기 때문에 계획대로 추진되어야 한다. 우리 영토에 외국 군대를 주둔시킬 것인가, 주둔시킨다면 어디에 주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국가안보에 관한 중차대한 결정이다. 용산기지 이전 방침은 우리 정부가 오랜 기간 반복해서 내린 결정이다.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용산기지 이전을 공약으로 제시했고 대통령에 당선된 후 용산기지 이전방침을 정책으로 확정했다. 이에 따라 1990년 합의각서(MOA)와 양해각서(MOU)가 채택되었다. ’90년 합의서가 절차상, 내용상 문제가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그것이 용산기지를 이전하기로 하는 한미 양국간의 최초의 합의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 후 용산기지 이전계획이 극히 일부만 시행된 채 지지부진하다가 2002년 1월 용산기지 이전을 재추진한다는 정부의 방침이 정해졌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2003년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용산기지를 조속히 이전하기로 하는 합의가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10여 차례의 협상 끝에 협정안이 채택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볼 때 행정부 차원에서는 15년 이상 용산기지 이전을 정책으로 유지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국회 차원에서는 지금까지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논의한 적이 없었으나, 앞으로 용산기지이전협정에 대한 비준동의안 심의를 통하여 국회의 입장을 정하게 될 것이다. 둘째, 국가안보 측면에서 볼 때 용산기지 이전약속의 이행이 필요하다. 크게는 주한미군 전체, 작게는 용산기지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하여 다양한 의견들이 있지만 용산기지 이전을 계획대로 추진하는 것이 안보를 위하여 긴요하다.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핵심 요소이다. 동맹국이란 평화시에는 힘을 합하여 전쟁을 억제하고, 만일에 전쟁이 나면 함께 피를 흘리면서 싸우기로 약속한 나라를 말한다. 이러한 동맹관계에서는 신의가 생명이며, 약속을 지키는 것이 신의의 기본이다. 용산기지 이전은 우리가 미국에게 15년간 되풀이 해온 약속이다. 이 약속을 지키는 것이 동맹체제의 유지를 위하여 긴요하다. 미국은 이 약속을 믿고 주한미군의 운영을 계획해 왔을 것이다.
셋째, 민족의 자존심을 위하여 용산기지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지금 용산기지가 있는 자리는 구한말 청나라 군대가 주둔했었고, 일제시대에는 일본의 조선군사령부가 주둔했던 곳이다. 물론 지금 유엔사ㆍ연합사ㆍ주한미군사가 용산에 주둔하고 있는 것은 구한말 청군의 주둔, 일제시대 일본군의 주둔과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그런데 주한미군의 주둔이 우리의 안보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굳이 수도 한복판에 미군의 사령부를 두어야 할 필요가 있는가? 지금 지구상에서 수도에 외국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나라가 어떤 나라들인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는 전후처리 단계에 있어서 한시적으로 외군이 수도에 주둔하고 있다. 지부티(Djibouti) 같은 나라는 수도에 외국군을 주둔시키고 있지만 도시국가에서는 수도와 수도가 아닌 지역의 구분이 없다. 이런 몇몇 나라들 외에 외국 군대를 수도에 주둔시키고 있는 나라를 찾아보기 힘들다.
넷째, 경제사회적인 측면에서도 용산기지의 반환은 커다란 의의를 가진다. 용산기지는 서울의 강남과 강북을 연결하는 요충지에 위치하여 서울의 도시계획에 막대한 장애가 되어왔다. 90년 합의서에 따라 용산기지중 9만평을 미측으로부터 반환받아 용산가족공원 부지로 활용하고 있는데 이제 용산기지이전으로 인해 여의도보다 넓은 115만평을 반환받으면 서울의 모습이 확 달라진 것이다.
물론 용산기지를 대체할 기지가 들어설 평택지역에서 52만평의 부지사용권을 공여해야 하는데 이로 인하여 삶의 터전을 다른 데로 옮겨야 하는 주민들의 고통, 그리고 기지를 옮기는데 들어가는 많은 예산 등 용산기지 이전의 대가가 적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정치, 안보, 민족적 긍지, 경제사회적 측면의 가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용산기지 이전의 긍정적 효과가 대가보다는 훨씬 더 크다고 할 것이다.
용산기지이전협정은 포괄협정(Umbrella Agreement : UA)인「대한민국과 미합중국간의 미합중국 군대의 서울지역으로부터의 이전에 관한 협정」과 이 협정을 이행하기 위한 절차적ㆍ기술적 세부사항을 규정하는 이행약정(Implementing Arrange- ment : IA)인「대한민국과 미합중국간의 미합중국 군대의 서울지역으로부터의 이전에 관한 협정의 이행을 위한 대한민국정부와 미합중국정부간 합의서」로 구성된다. 가. 포괄협정(UA)의 주요 내용
포괄협정은 현재 용산에 주둔하고 있는 유엔사ㆍ연합사ㆍ주한미군사를 평택지역으로 이전하기로 한다는 합의와 이를 이행하기 위한 제반 원칙과 조건을 정하는 조약으로서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상세는 협정문 참조)
1) 기지이전에 관한 합의
서울지역에 주둔하는 유엔사ㆍ연합사ㆍ주한미군사를 평택지역으로 이전한다.(제2조제2항) 2) 기지이전의 시기
2008.12.31까지 이전을 완료한다. 단, 유엔사ㆍ연합사ㆍ주한미군사 본부는 2007.12.31까지 이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제2조제3항) 3) 토지의 공여와 반환
대한민국은 유엔사ㆍ연합사ㆍ주한미군사가 사용할 새 기지를 건설하기 위하여 평택지역에 52만평 범위내의 토지 사용권을 미국측에 공여한다. 미국은 현재 서울지역에서 유엔사ㆍ연합사ㆍ주한미군사가 사용하고 있는 토지 중 연락사무소를 위한 일부 면적을 제외한 토지를 대한민국에 반환한다. (협정에는 용산기지의 면적이 표시되지 않았지만 전체 면적은 118만평이며, 연락사무소용 부지 약 2.5만평을 제외하고 약 115.5만평을 반납하게 된다.) (제3조제3항) 4) 시설의 공여와 반환
대한민국은 유엔사ㆍ연합사ㆍ주한미군사가 용산기지에서 수행하는 임무와 기능을 평택기지에서도 동일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시설을 공여한다. (제2조제9항) 단, 한미 양측이 공히 유효성을 확인하는 시설만 공여한다. (제2조제4항) 지휘?통제?통신?컴퓨터?정보체계(C4I) 장비는 용산에서 사용 중인 것을 평택으로 옮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옮겨서 사용할 수 없거나 옮기는 비용이 새로 사는 비용보다 더 들어가는 장비는교체를 하되, 대한민국이 부담하는 교체비용은 총 900만 불을 초과할 수 없다. (제5조제3항) 5) 운송용역
대한민국은 부대의 시설과 인력의 이전을 위한 운송용역을 제공한다. (제2조제4항 및 제5조제1항 나호) 6) 기타 비용
대한민국은 기지이전과 직접 관련된 것으로서 지출이 불가피하다고 한미 양측이 유효성을 확인하는 잡비를 부담한다. (제2조제4항 및 제5조제1항 다호) 7) 보상처리 문제
대한민국은 용산기지 이전으로 인하여 용산기지내에서 영업을 하는 업체가 입은 손실에 대하여 보상책임이 없다. (제5조제2항) 주한미군을 상대로 제기되는 피해보상 청구로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이 적용되는 청구는 SOFA에 따라 처리하고, SOFA가 적용되지 않는 청구는 주한미군에 적용되는 미국법령에 따른 행정적 절차에 따라 해결된다. 청구인은 민사소송을 제기할 권리를 가진다. (제5조제2항) 8) 환경조치
반환될 기지와 새로운 기지의 환경치유를 포함한 환경조치는 SOFA 및 그 밖의 관련 합의에 따른다. (제2조제8항) 9) 가용예산 범위내 시행원칙
한미 양측은 각각 자국의 국내법에 따라 이 목적을 위하여 승인되고 배정된 가용예산의 범위내에서 이전사업을 시행한다. (제2조제7항) 10) 다른 협정과의 관계
용산기지이전협정은 한미상호방위조약과 SOFA에 기초한다. (전문 및 제2조제1항) 한미 양측은 SOFA 합동위를 통하여 이 협정의 이행을 위한 절차적?기술적 세부 사항을 정하는 이행약정을 체결할 수 있다. (제6조) 나. 이행합의서(IA)
1) 용산기지 이전계획을 위한 절차적 사항
시설의 기획ㆍ계획ㆍ설계ㆍ시공을 위한 절차는 SOFA합동위가 승인하는 기술양해각서에 따른다. (제3항 가호) 쌍방은 기술양해각서에 따라 시설종합계획(Master Plan : MP)을 공동으로 작성한다. (제3항 나호) 2) 용산기지 이전계획 추진 일정
용산기지 이전계획을 시행하는데 필요한 토지를 2005년까지 공여한다. 공여될 토지의 정확한 규모와 경계는 양측이 합동조사에 의하여 정하고 SOFA 합동위가 승인하여 결정한다. (제4항 나호) 미국은 서울에 있는 12개의 캠프를 2006년부터 2008년에 걸쳐서 반환한다. (제4항 다호) 3) 주요 기관의 위치
유엔사ㆍ연합사ㆍ주한미군사 본부는 평택에 있는 캠프 험프리로 이전한다. 서울에 있는 미8군 사령부와 그 예하부대는 캠프 험프리로 이전한다. 그 밖의 주한미군사 부대는 시설종합계획에 따라 오산 공군기지, 캠프 험프리, 캠프 캐롤, 또는 캠프 헨리로 이전한다. (제4항 바호) 유엔사ㆍ연합사ㆍ주한미군사는 서울에 연락부대를 유지한다. 한국은 이를 위한 장소를 제공한다. 주한미군사는 용산에 있는 드래곤 힐 호텔과 캠프 모스에 있는 통신시설을 유지한다. (제4항 바호) 4) 비용처리 절차
쌍방은 용산기지 이전계획을 시행하기 위하여 발생하는 비용을 검토하고, 유효성을 확인하여 지급하기 위한 구체적인 절차를 개발하여 SOFA 합동위원장의 승인을 받아 시행한다. (제5항) 5) 환경조치
공여되는 기지와 반환되는 기지의 환경 치유 등 환경관련 조치는 SOFA 및 관련 합의서에 따른다. 공여와 반환하기 전에 환경조치를 취하되, 양측이 특별히 합의하는 경우에는 환경조치를 연기할 수 있다. (제4항 마호)
미군기지를 옮기는데 왜 우리가 그 비용을 모두 부담해야 하는가 하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미군기지를 옮기는 비용을 우리가 부담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국가안보를 위하여 아직도 미군의 주둔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거하여 우리 영토에 주둔하도록 우리가 스스로 허용한 동맹군이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주한미군의 주둔이 절실히 필요하여 주한미군 감축시기를 늦추고 감축인원을 줄여보려고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외국군대를 자국 영토에 주둔시키는 것이 좋아서 주둔시키는 나라는 없다. 현실적 필요 때문에 주둔시키는 것이다.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미군을 이 땅에 주둔시키는 이상, 미군이 주둔할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주한미군이든, 주일미군이든, 주독미군이든 미군주둔에 관한 공통적인 기본원칙은 주둔지 국가가 미군이 주둔할 장소와 시설을 제공하고 미군은 주둔하는 동안 시설 유지비를 부담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둔지 국가가 기지를 옮겨 달라고 하는 경우에 새로운 기지가 들어설 장소와 시설을 미군에게 제공해 주는 것이 순리이다. 물론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전을 요구하는 경우에도 주둔지 국가가 새로운 장소에 토지와 시설을 제공해야 할 부담을 지게 되는 것은 타당치 않을 것이다.
일본이 오끼나와 공군기지 이전비용을 전부 부담하기로 한 것은 이와 같은 맥락이다. 미일 SOFA 제2조제1항에는 일본이 미군기지의 구역과 시설을 제공한다고 규정되어 있고, 제24조제1항에는 주일 미군은 기지의 유지비만 부담하게 규정되어 있는데 기지이전 비용은 유지비가 아니라 새로운 기지에서 부지와 시설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일본측이 부담해야 한다는 해석을 한 것이라 한다. 한미 SOFA 제2조제1항과 제5조제1항도 미일 SOFA 제2조제1항 및 제24조제1항과 동일한 조건으로 되어 있다. 1)
1) 관련 조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독일에서는 미군기지를 옮기는 경우, 이전을 요구한 측이 이전비용을 부담한다는 원칙, 즉「원인제공자 부담원칙(Veranlaser-Prinzip)」을 적용하고 있다. 1976년 바이에른주 탄약고 이전, 1993-2005 Rhein-Main 공군기지 이전 등에 이 원칙이 적용되었다.
한미간에도 이미 연합토지관리계획(LPP)협정에서 이전을 요구한 측이 이전비용을 부담하는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
미국이 해외주둔미군재배치(Global Defense Posture Review: GPR) 추진의 일환으로 용산기지를 옮기는데 왜 우리가 비용을 전부 대어야 하는가 하는 의견도 있다. GPR은 미군의 전투력을 현대화하고 기동성을 높여서 재배치하려는 계획이며, 사령부와 행정부대로 구성된 용산기지는 GPR에 따라 이전하는 것이 아니다. 용산기지이전은 GPR개념이 형성되기 이전부터 우리가 유지해온 입장인데 오늘에 와서 그것이 결과적으로 미국의 GPR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고 해서 입장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용산기지이전과 GPR은 별도로 추진되어 온 것으로서 결과적인 연관성은 있을지 모르나 인과관계가 없다. 특히 GPR의 개념으로 보나 GPR과 용산기지 이전방침 결정의 선후관계로 보나 GPR이 용산기지 이전의 원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독일 Frankfurt am Main 공항의 일부를 유럽주둔 미공군이 수송용 공항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Frankfurt 공항의 확장을 위하여 독일측의 요구로 이 Rhein-Main 공군기지를 Ramstein 공군기지와 Spangdahlem 공군기지로 옮기기로 하고 두 차례에 걸쳐 이전합의서를 체결했다. 1993년 체결된 제1차 이전합의서에서는 이전비용 전부를 프랑크푸르트 공항 주식회사(Flughafen Frankfurt/Main AG)가 부담하게 되어 있으며 1999년 체결된 제2차 이전합의서에서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주식회사, 독일연방정부, 프랑크푸르트 시정부, 헤센 주정부, 라인란트-팔츠 주정부가 이전비용을 분담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제2차 합의서에는 특이한 조항이 하나 있다. NATO측이 전체 이전비용의 21%에 해당하는 1.5억 마르크 상당의 비용을 분담해 줄 것을 기대한다는 조항이 있는 것이다.2) 그리고 만일에 NATO측이 비용을 분담할 수 없는 경우에는 NATO측에 기대했던 부분을 독일연방정부, 헤센 주정부, 라인란트-팔츠 주정부, 프랑크푸르트 시정부가 분담한다고도 규정되어 있다.3) 이 규정은 기지이전을 요구한 측에서 이전비용을 전부 부담한다는 것이 확립된 관행이 아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을 던진다.
2) 라인마인기지 이전협정 제2조 제1항 f목 제1문
The Parties of the Agreement expect that the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 will contribute a minimum amount of DM 157.5 million to the funding of vital projects to be constructed at Ramstein Air Base (in accordance with Annex B). “라인마인 기지이전 협정”은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공항주식회사, 헤센 주정부, 라인란트-팔츠 주정부, 연방정부 및 미국정부 등 사인(私人)에서부터, 지방정부, 연방정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당사자들간에 체결된 계약(契約)이다. 그렇지만, NATO는 이 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다. 따라서, 이 계약에 들어있는 “NATO의 비용부담 규정”은 NATO에 대하여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다. 더구나, 상기 “NATO의 비용부담 규정”은 NATO의 출연(出捐)을 “기대한다(expect)"라고 하고 있어 제3자인 NATO에 대한 법적 구속력을 의도하고 있지도 아니하다. 3) 라인마인기지 이전협정 제2조 제1항 f목 제2문
In the case that, against all expectations an for reasons that can currently not be foreseen, the expected NATO funding will not be provided in full or in part, the FRG, the States of Hesse and Rhineland-Palatinate, and the City of Frankfurt will make a separate agreement to close the financial gap. 합의서를 해석할 때 문안만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다. 특히, NATO 분담기대 조항과 같은 좀 이례적인 조항을 대할 때는 그런 조항을 두게 된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Rhein-Main 미공군기지가 옮겨갈 Ramstein 과 Spangdahlem 공군기지는 주로 NATO 군이 사용하는 공항인데 NATO측은 전력증강을 위하여 이들 공항에 대한 투자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NATO의 투자사업이 이루어지면 활주로, 창고 등 미공군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 일부 있어서 NATO가 그런 기존의 투자계획을 추진해 주기를 기대한다는 뜻을 그런 식으로 협정에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만일에 그런 기대가 실현되지 않으면 독일측이 미공군에 필요한 시설을 제공해주기로 한 것이다. 즉, Rhein-Main 공군기지 건설비용의 일부를 NATO에 전가시킨 것이 아니라, NATO 자체의 투자계획에 무임승차하려는 ‘희망사항’을 가지게 되었고, 그러한 희망사항이 실현되지 않으면 그 부분을 제공할 의무를 독일이 지게 되어있다. 따라서 Rhein-Main 공군기지이전합의서에서도 원인제공자 부담원칙이 적용되었다.
용산기지이전협정에는 비용부담의 원칙만 규정되어 있고 총사업비 또는 소요예산의 상한선이 설정되어 있지 않다. 협정에 소요예산을 표시하지 않는 것이 잘못인가 하는 의문이 있다. 협정의 이행에 소요되는 비용을 우리 정부가 추산해 보는 것 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물공여 협정에서는 공여할 현물의 내역을 명시하면 충분하며 그 가액까지 명시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용산기지이전협정은 우리나라가 주한미군이 사용할 토지와 시설을 미국에게 현물로 공여할 것을 약속하는 조약이다. 현금을 공여하는 조약이라면 금액표시가 필수적이겠지만 현물을 공여하는 조약에서는 공여할 물품의 물량과 질적 수준을 정하면 충분한 것이지, 얼마짜리를 공여해 주겠다고 금액까지 약속할 필요는 없다.
미국에게 약속한 현물을 공여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이 얼마가 되는지를 계산해 보는 것은 우리나라 내부의 문제이다. 즉, 우리 행정부와 국회가 이 조약을 체결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 정도의 예산을 투입해서 이 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는지, 소요예산을 조달할 방법이 있는지 등의 관점에서 판단을 하기 위한 근거로서 소요예산을 추산해 보아야 한다. 그런데 협정에 소요예산을 표시하면 그것은 미국에 대한 또 하나의 새로운 약속이 된다. 또한, 현물공여 약속에 더하여 현금표시 약속까지 하는 경우, 확정금액 방식으로 표시하든 상한선 방식으로 표시하든 현물기준과 금액기준이 일치하지 않으면 복잡한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예를 들면, 평택지역에 52만평 이내의 토지를 공여하겠다고 약속하면 충분한 것이지 그 52만평이 얼마짜리여야 한다고까지 미국에게 약속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토지를 얼마에 매입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리 정부가 해결할 문제이지 미국에 대하여 미리 약속할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52만평의 토지를 어떤 가격으로 매입할 수 있을지는 땅 주인들과 합의를 보기 전에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조약에 소요예산을 명시하기 위해서 조약체결 전에 토지를 모두 사 둘 수는 없다. 상한선을 조약에 명시해 놓았다가 토지 매입가격이 예상보다 높아서 40만평밖에 매입하지 못하면 전반적인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이다. 조약에는 명확하게 기술할 수 있는 것은 명확하게 기술하는 것이 좋지만 불확실한 것까지 억지로 명확하게 표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이지만 재정적 부담의 액수를 명시하지 않는 조약이 많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는 유엔을 비롯한 수십 개 국제기구의 회원국인데 국제기구에 가입하면, 매년 의무 분담금을 납부해야 한다. 그러나 가입조약에 분담금 액수를 표시하지 않는다. 다만, 행정부와 국회는 가입당시를 기준으로 우리나라가 연간 부담할 분담금이 얼마인지를 파악해 보고 가입여부를 결정한다.
그런데 Rhein-Main 공군기지이전합의서에는 총사업비의 상한선이 설정되어 있다. 이것을 보고 우리는 왜 독일처럼 못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일본은 오끼나와 공군기지를 이전함에 있어서 왜 사업비 총액이나 상한선을 미리 정해 놓지 않고 사업을 추진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기업경영에서 ‘최상의 길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There is no one best way.)’라는 명제가 있듯이 큰 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모범답안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업의 규모가 비교적 작을 때는 기본원칙과 세부사항을 모두 자세히 검토한 다음에 일괄해서 확정지을 수 있다. 그러나 사업이 아주 크고 복잡할 때는 원칙을 먼저 정하고 원칙에 따라 단계적으로 세부사항을 정해 내려가는 top-down 방식이 더 합리적일 수도 있고 때로는 불가피할 수도 있다. 용산기지 이전사업을 추진함에 있어서 기본원칙은 협정에서 정해지고, 세부사항은 이행합의서, 그리고 시설종합계획(Master Plan: MP)에서 정해진다. 좀 더 세부적인 것은 기술양해각서, 설계도 등에서 단계적으로 정해진다. 용산기지가 어디로 옮겨지게 될지, 새 기지의 면적이 얼마나 될지, 새 기지에 어떤 시설이 들어설지, 우리가 어떤 비용을 부담하게 될지 등의 기본원칙은 협정에서 정해야 할 사항이며, 이런 원칙들이 정해지기 전에는 MP가 작성될 수 없고, MP가 작성되기 전에는 총 소요예산을 산정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협정에는 사업비 총액이 명시되지 못하였다.
그런데 Rhein-Main 공군기지이전합의서에는 어떻게 사업비 상한선이 명시될 수 있었을까?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추정해 볼 수 있는 것은 Rhein-Main 공군기지 이전사업은 용산기지 이전사업에 비하면 규모가 작고 단순한 사업이기 때문에 소요예산 추산이 비교적 쉬웠을 것이라는 점이다. Rhein-Main 공군기지 이전사업비 상한선은 7.2억 마르크(약 4.7억 불)로서 용산기지 이전사업비의 1/8 정도이다. 또한 독일의 경우에도 처음부터 소요비용을 완벽하게 예측하고 사업을 추진하였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Rhein-Main 공군기지 이전합의서를 2차에 걸쳐 체결하였고, 사업비 총액을 협정에 명시한 것이 아니라 상한선만 설정했으며, 또한 실제 사업비가 상한선을 초과하게 되는 경우에는 사업을 축소하기로 한다고 규정한 것 등을 볼 때 독일도 상당수준 불확실성을 안은 채 사업을 추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Rhein-Main 공군기지이전합의서에서는 비용부담 주체가 프랑크푸르트 공항주식회사, 독일연방정부, 헤센주정부, 라인란트-팔츠주정부, 프랑크푸르트시정부 등 다양한 지위의 실체인데, 공항주식회사의 경우 부담의 규모를 확정적 또는 상한선으로 설정해야 할 필요성이 정부기관보다 더 높았을 것이라는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Rhein-Main 공군기지이전 사업에서는 주식회사가 비용부담 주체 중 가장 중요한 실체로 참가했다는 점이 용산기지 이전이나 오끼나와 공군기지 이전과 다른 점이다.
협정에서 MP가 도출되고, MP에서 사업비가 도출되기 때문에 협정에는 사업비가 표시될 수 없다면, 정부는 사업비가 얼마나 들지도 모른 채 사업에 착수한다는 것인가? 행정부와 국회는 의사결정의 단계별로 필요한 만큼 신빙성 있는 자료를 근거로 의사결정을 한다. 협정체결 단계에서는 행정부와 국회가 소요예산의 추정치를 가지고 협정체결 여부를 판단한다. 이 추정치도 주먹구구가 아니라 상당히 정교하게 계산된 추정치이다. 사업의 시행에 착수하기 전에 정부는 협정의 조건에 따라 좀 더 상세하고 확실한 예산소요를 계산하여 예산안을 작성하고, 국회는 이를 기초로 예산심의를 하게 된다.
이처럼 국회는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수반하는 조약체결과 관련하여 2단계로 권한을 행사하게 되는데 용산기지이전협정은 이 두 가지 권한을 완전하게 보장하고 있다. 즉, 국회는 기획단계에서 ‘예비 MP’를 기초로 추산된 대략의 소용비용과 협정의 내용을 검토하여 조약 비준동의 여부를 결정하게 되며, 시행단계에서는 행정부가 제출하는 구체적인 예산안에 대해서 승인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용산기지이전협정은 이렇게 승인된 예산의 한도 내에서 이전사업을 추진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Herbert A. Simon의 ‘제한적 합리성의 의론(the theory of bounded rationality)'에 의하면 인간은 인식능력의 한계로 인하여 언제나 제한된 합리성을 가지고 의사결정을 할 수 밖에 없으며 목적에 비추어 충분히 좋으면(good enough) 만족한다고 한다. 또한, 정밀한 계산을 추구하는 회계학에서도 재무제표에 모든 세부사항을 담을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이용자의 판단이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도의 ‘중요성(materiality)’을 가진 정보를 담을 것을 요구한다. 단계적 의사결정이 불가피한 방대한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서 초기 의사결정 단계인 협정체결 시점에서 소요예산에 관한 모든 정확한 세부정보를 확보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필수적이지도 않다.
용산기지이전협정은 일련의 문서로 구성된다. 모협정에 해당하는 소위 포괄협정(Umbrella Agreement : UA)에서는 용산기지 이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하고, 이행합의서(Implementing Arrangement : IA)에는 UA의 이행에 관한 절차적ㆍ기술적 세부사항을 규정하게 되며, 그 외에도 필요에 따라 다른 합의서를 채택할 수 있다.
어떤 조약이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아야 하는지는 그 조약의 내용에 따라 결정된다. UA는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할 이유가 되는 내용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IA는 UA에 의하여 위임된 범위 내에서 다음과 같은 절차적?기술적 사항들만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국회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
- 기지이전에 필요한 토지 공여시기 - 서울에 있는 유엔사ㆍ연합사ㆍ주한미군사의 각 캠프별 반환시기 - 서울에 잔류할 연락사무소의 범위 - 주요기관의 위치 - 반환될 기지와 새로 공여될 기지의 환경조치에 관한 사항 IA에 수록된 이상의 내용들은 UA에서 위임된 절차적ㆍ기술적 세부사항이므로 헌법 제60조제1항에 열거된 ‘상호원조 또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 중요한 국제조직에 관한 조약, 우호통상항해조약,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 강화조약,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 중 어떤 범주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용산기지 이전사업을 추진함에 있어서 재정부담의 근거가 되는 내용은 모두 UA에 있다.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할 이유가 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 협정에 대해서까지 국회의 동의를 받는다면 이상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 외에도 헌법상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권력분립주의를 토대로 하는 우리 헌법에 의하면 조약을 체결ㆍ비준하는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고(헌법 제73조), 국회는 헌법 제60조제1항에 열거된 특정 범주의 조약을 체결ㆍ비준함에 있어서 동의권을 가진다. 따라서 헌법 제60조제1항에 열거된 범주에 속하는 조약을 국회동의 없이 발효시킨다면 국회의 권한을 침해하게 된다. 그 반면에 그러한 범주에 속하지 않는 조약에 대해서까지 국회의 동의를 받는다면 이는 대통령의 조약체결권을 제한하는 결과가 된다. 권력분립의 원칙에 내재한 기본원리는 ‘견제’만이 아니고 ‘견제와 균형’이다. 국회의 견제가 너무 약해도 균형이 깨지지만 너무 강해도 균형이 깨진다. 그런데 어떤 조약이 헌법 제60조제1항에 열거된 범주에 속하는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사람에 따라 견해차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IA의 경우에는 국회의 동의 필요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 IA는 UA에 종속된 조약으로서 UA를 이행하기 위하여 UA로부터 위임받은 절차적ㆍ기술적 사항을 규정하는 문서이기 때문이다. 즉, IA에는 UA에서 정한 이전 목표시한(사령부 본부 이전은 2007.12.31까지 완료, 나머지 모든 시설의 이전은 2008.12.31까지 완료)을 실현하기 위한 주요한 일정, 서울에 남겨 둘 연락 사무소 시설로 사용할 일부 시설 지정 등 절차적ㆍ기술적 세부사항을 규정하고 있을 뿐 새로운 재정적 부담의 근거가 되는 내용이 일체 없다. 그러한 문서에 대하여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법률에서 위임된 사항을 정하는 시행령에 대하여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협정 제2조제9항은 유엔사ㆍ연합사ㆍ주한미군사의 임무와 기능을 이전한다는 원칙을 정하고 있다. 용산에 있는 시설을 평택에 그대로 똑 같이 지어주는 방식으로 하지 않고 왜 “임무와 기능”을 이전하는 개념을 사용했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의문은 두 가지 우려에 기초하고 있다. 첫째로 평택기지의 임무와 기능이 용산기지의 그것보다 확대되어 주한미군이 지역방위 임무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우려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주한미군의 임무와 기능이 용산기지이전협정이 아닌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하여 정해진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용산기지이전협정에는 “임무와 기능이라 함은 상호방위조약상의 공약을 달성하기 위한 합중국군대의 임무와 기능을 말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에 의하면 태평양 지역에서 양 당사국 중 어느 일방의 영토가 제3국으로부터 무력공격을 받을 경우, 타방은 그러한 무력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공통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자의 헌법상 절차에 따라 행동하기로 되어 있다. 주한미군의 임무는 여기에서 도출된다. 만일 주한미군의 임무와 기능을 변화시키려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개정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용산기지이전협정은 그런 문제를 다루는 협정이 아니다. 그런데 용산기지이전협정에 임무와 기능을 언급한 것은 유엔사ㆍ연합사ㆍ주한미군사가 용산에서 수행하던 일정한 임무와 기능을 평택기지로 옮겨 가서도 그대로 수행해야 한다는 것과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를 규정한 것이다.
둘째로 임무와 기능 이전의 개념으로 기지이전을 하게 됨에 따라 우리가 부담할 소요비용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이다. 임무와 기능을 이전한다고 해서 비용이 무작정 늘어난다고 속단할 근거는 없다. 소요 비용은 추상적인 어휘에서 바로 산출되는 것이 아니고 양측이 공동으로 작성하는 구체적인 사업계획서를 기초로 산출되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소위 ‘거울영상 이론(Spiegelbildtheorie)’이라는 것이 있어서 마치 구 기지를 그대로 복사해서 새 기지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유발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비용증가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그러나 거울영상 이론은 구 기지와 새 기지가 규모와 기능상 동일한 가치를 이룬다는 의미이지 구 기지와 똑 같은 모습으로 새 기지를 지어 준다는 의미는 아니다. Rhein-Main 공군기지이전합의서에서도 ‘임무’를 이전한다는 개념을 사용한다. Frankfurt 공항에 있는 하나의 공군기지를 Ramstein과 Spangdahlem 의 2개 공군기지로 분산하여 이전하는데 구 기지와 새 기지의 모양이 어떻게 동일할 수가 있겠는가? Frankfurt에서 수행하던 임무를 Ramstein과 Spangdahlem에서 나누어서 동일하게 수행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군사기지 이전은 문화재 복원사업과는 다르다.
협정 제2조제4항 및 제5조제1항 다호에는 대한민국이 시설을 제공하고, 기타 비용을 부담함에 있어서 한미 양측이 유효성을 확인(validate)한다는 선결적 조건이 부과되어 있다. 그런데 ‘유효성 확인’이라는 조건이 미국측의 부당한 시설공여 요구와 기타 비용 요구를 우리측이 견제할 수 있는 충분한 통제장치가 되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사전적 의미로 validate라 함은 '유효하게 하다(make valid)', 즉 어떤 것이 유효하도록(valid) 해 준다는 뜻이다. 따라서 validate가 되지 않은 것은 무효(invalid)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그러나 협정에 사용된 어휘를 사전적 의미만 가지고 해석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미국법에서 validate라는 어휘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지, 그리고 이 협정에서는 유효성 확인이 어떤 장치로 설정되어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법에서 validate는 일반적으로 ‘효력을 부여하다’ 또는 ‘효력을 인정하다’ 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Zemel v. Rusk 사건에서 여권의 ‘효력을 부여한다’는 의미로 validate가 사용되었다. Kedroff v. St. Nicholas Cathedral 사건에서 헌법이 금지한 행위의 효력을 법률이 인정할 수 없다고 할 때 validate는 ‘효력을 인정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일반적으로 validation은 법적인 효력을 발생시키기 위하여 사전에(ex ante)취하는 조치이다. 즉, validation이 되면 그에 뒤따라 효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사후적으로 효력을 부여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때 validation은 승인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Purvis v. U.S. 사건)
조약에 사용된 어휘는 그것이 통상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었는지 또는 어떤 장치로서 설정되었는지를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용산기지이전협정에서 validate는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어떤 시설이나 비용의 성격이 협정의 목적과 원칙에 비추어 유효한지를 한미 양측이 각각 검증하고 양측이 모두 유효하다고 확인해야만 그러한 시설이나 비용이 공급될 수 있다는 구조로 되어 있다.
예를 들어 기지이전을 기획하는 사람 중의 누군가가 평택기지에 미군의 여가시설로 카지노를 만드는 안을 시설목록에 포함시켰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한미 양국 정부는 그 제안이 용산기지이전협정의 목적과 원칙에 맞는지를 검토하여 validate해 줄지를 결정하게 된다. 미국측 대표는 미군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하여 그런 시설이 필요하다고 인정하여 validate해 주었고, 한국측 대표는 그것은 협정의 목적과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validate해 주지 않았다고 하자. 그러면 그 카지노 건설계획은 쌍방의 validation을 득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폐지된다. 이 때 한국측이 취한 행동은 거부권 행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협정상의 거부권 행사는 자의적인 거부권까지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즉, 협정의 목적과 원칙에 부합하는 것에 대해서까지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 가령, 계획서를 작성하는 실무자가 평택기지 내에 미군에게 무상으로 공여할 주택 333세대분의 건설계획을 세웠다고 하자. 협정 제4조제1항에 의하면 ‘대한민국은 합중국 국방부가 용산기지 내에 현재 소유하고 있는 모든 주택에 대하여 대체주택을 제공할 것이다’라고 규정되어 있고, 현재 용산기지 내에는 그러한 주택이 333세대분이 있다. 그렇다면 이 주택건설계획은 협정의 목적과 원칙에 부합하기 때문에 한국측이 이를 거부할 근거가 없다.
미국측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가령, 군인주택용 주택의 설계도를 작성했는데 미국 국방부 시설기준에 미달하는 부분이 있었다면, 미국측이 이 설계도의 유효성을 확인해 주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그 설계도는 폐기되거나 수정되어야 한다. 이처럼 협정의 목적과 원칙에 벗어나는 것에 대하여는 어느 일방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협정의 목적과 원칙에 합치되는 것에 대하여는 협정 준수의 의무가 있기 때문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불완전한 거부권은 아니다. 어떤 협정도 그 협정의 목적과 원칙에 부합되는 것에 대해서까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자기파괴적 조항을 두지는 않는다.
이 협정에서는 한미 ‘양측이’ 각각 유효성을 확인해야만 사업이 추진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것은 강력한 상호 견제장치이다. 위의 예에서 본 바와 같이 어느 일방의 의사만으로는 어떤 시설이나 비용이 제공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협정에서 validate라는 어휘 대신에 승인(approve)이나 합의(agree)등이 사용되었어야 거부권이 확실하게 보장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approve나 agree 보다는 validate가 더 적절하고 더 강력한 견제력을 가진다.
일반적으로「approve」는 사후적으로 취해지는 조치인 반면, 「validate」는 사전에 취해지는 행위이다. 특히 이 협정에서는 validate가 시설 공여와 비용 지급의 선결조건으로 설정되어 있다. 기정사실을 놓고 취하는 승인보다는 일이 진행되기 전에 가부간 결정을 내려주는 validate가 더욱 강력한 통제장치임은 말할 것도 없다. 또한 승인이라 함은 일반적으로 하위자가 하는 행동에 대하여 상위자가 취하는 행위이다. 한미 양국은 동등한 주권국가이다. 주권국가 상호간에는 승인이라는 말이 적절치 않다. 또한 승인이라 함은 승인하는 사람의 재량권에 따라 가부를 결정하도록 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그러나 유효성 확인이라 함은 어떤 객관적인 기준을 정해 놓고 그것에 합치하는지를 따져서 적합성 여부를 결정하게 한다는 의미이므로 자의적인 판단의 여지가 적다.
「합의(agree)」와 「쌍방에 의한 유효성 확인」 사이에는 공통적인 요소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 합의는 쌍방이 공동으로 취하는 하나의 행위이고, 유효성 확인은 각자가 개별적으로 취하는 행위인데, 어떤 사안에 대하여 쌍방이 모두 유효성을 확인했다면 양측의 의사가 일치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유효성 확인이 합의와 동일한 효과를 가진다. 그러나 합의는 단순히 양측의 의사가 일치하였다는 사실만을 의미하는 반면에, 쌍방에 의한 유효성 확인은 어떤 객관적인 기준을 정해 놓고 그것에 합치하는지를 따져서 적합성 여부를 결정하게 한다는 의미이므로 자의적인 판단의 여지가 적고 객관성이 높다. 만일, 협정이 합의에 따라 시설을 제공한다고 규정했다면, 쌍방이 평택기지에 카지노를 짓기로 합의하면 지어질 수 있다. 그러나 쌍방에 의한 유효성 확인이라는 조건하에서는 쌍방이 카지노를 지을 공통된 의사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협정의 목적과 원칙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카지노는 지어질 수 없다.4)
이처럼 쌍방에 의한 validation이라는 조건은 승인이나 합의라는 조건보다도 더 강력하고 객관성이 높은 통제장치이다. validation은 고무도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고무도장이라도 그것이 찍어져야만 효력이 발생한다면 그 고무도장은 충분한 법적인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반면에 옥도장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찍지 않아도 효력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무용지물인 것이다.
4) 이러한 차이는 비유컨대 두 개의 의사표시의 합치에 있어서 계약행위(契約行爲)와 합동행위(合同行爲)의 차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합의”는 “대립하는” 의사의 합치를 의미한다. 그러나 "유효성확인"은 주어진 객관적 기준이 충족되었음을 확인하는 “같은 방향의” 의사의 합치를 의미하는 것이다. “합의”에서는 대립하는 의사를 합치시키기 위하여 협상이 필요하다. 반면, “유효성확인”에서는 객관적 기준 충족 여부에 대한 의견 교환이 있을 뿐 협상의 여지는 없다. 객관적 기준이 충족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하여 유효성확인을 해 주기 위한 협상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용산기지이전협정 제3조제2항에 의하면 대한민국이 현물로 시설을 제공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시설을 만들기 위한 현금을 미국에 주어서 미국이 시설을 확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시설을 만들어서 미국에 공여한다는 의미이다. 공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현물제공 방식은 현금제공 방식에 비추어 크게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시설공여에서 시종 주도권을 가진다는 것이다. 만일 소요자금을 미국에 현금을 공여한다면, 그 자금이 협정의 목적과 원칙에 맞게 사용되는지를 우리가 검증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현물로 제공하게 되면 우리가 주도권을 가지게 되므로 협정의 목적과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시설은 지어주기 않으면 되는 것이다. 둘째, 현물공여로 할 경우에는 소요자금이 국외로 유출되는 것이 아니라 거의 전부 국내 납품업체에게 떨어진다는 점이다. 극소수 외국인에 대한 용역비 및 국내에서 구입할 수 없는 특수 장비의 수입을 위한 자금지출을 제외하고는 우리 국내업체의 수입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렇게 쓰이는 돈은 국부유출이 아니고 경기부양효과를 내는 재정지출이다.
독일과 일본에서는 turnkey방식으로 시설을 제공한다는데 우리는 왜 turnkey방식으로 하지 않는가하는 문제 제기도 있다. 현물(in-kind) 제공과 turnkey 방식은 어떻게 다른가? Turnkey 방식이라 함은 건물이나 플랜트의 공급자가 완성품의 형태로 납품한다는 뜻이다. 현물제공은 돈으로 제공하지 않고 필요한 물건을 준다는 뜻이다. 따라서 turnkey와 현물제공은 어떤 사업을 전혀 다른 기준에서 구분하는 것이다. 현물제공 중에는 turnkey인 것도 있고 turnkey가 아닌 것도 있다. 현물을 완성품으로 주면 turnkey가 되고, 미완성품 또는 부품으로 주면 turnkey가 아닌 것이다. Turnkey 방식은 발주자와 납품업자가 체결하는 계약에서 채택하는 방식중의 하나이다. 현물제공은 대체로 무상제공을 할 때 사용되는 개념이다.
한국 정부가 미군에 제공할 시설을 어떤 하나의 종합관리회사에게 통째로 발주하고 종합관리회사가 하청업체에게 사업을 나누어 준다면, 한국 정부와 종합관리회사 사이에 체결되는 계약은 turnkey 방식이 된다. 그런데 시설을 공여하는 한국과 공여받는 미국의 관계에서 보면 현물공여가 되는 것이다. 이 경우, 한국정부는 원청
업체로부터 turnkey방식으로 납품을 받아서 미국측에 현물로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관계를 도해하면 다음과 같다. turnkey in-kind
원청업체 → 한국정부 → 미군 따라서 turnkey 방식이 유리한가, 현물공여 방식이 유리한가 하는 질문은 우문이다. 제대로 된 질문을 하려면 두 가지로 나누어서 해야 한다. 첫째, 미국에 시설을 공여함에 있어서 현금공여가 유리한가, 현물공여가 유리한가? 둘째, 시설을 발주함에 있어서 turnkey 방식으로 발주하는 것이 유리한가, 부문별로 분할하여 발주하는 것이 유리한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현물공여가 유리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상황에 따라 다르며 비용/효과에 관한 제반 상황을 고려해야만 나올 수 있다.
협정 제5조제3항에는 C4I 이전에 관한 원칙이 규정되어 있다. 이 조항의 내용은 C4I 장비를 우리가 미국측에 새로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용산기지에 있는 장비를 평택기지로 옮겨서 재설치 해주되, 다만 옮겨서 재설치하는 것이 불합리한 장비는 교체해준다는 것이다. 옮겨서 재설치 하는 것이 불합리한 것으로는 기술적으로 옮겨서 재설치할 수 없는 장비 및 옮겨서 재설치 하는 비용이 새 장비를 구입하는 비용보다 더 많이 드는 장비이다. 이 두 가지 종류의 장비는 교체를 해 주되, 총 교체비용이 900만 불을 초과하지 않도록 상한선을 설정했다. 따라서 C4I 이전관련 우리측이 부담할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C4I 기반시설, 둘째, 용산기지내에 있는 C4I시설의 이전 및 재설치 셋째, 용산기지에 있는 C4I시설 중 옮겨서 사용할 수 없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