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2006/04/19]독도 문제에 관한 성명 - 아시아공동행동 (AWC) 일본연락회의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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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문제에 관한 성명

2005년 3월 16일 일본 시마네 의회가 압도적인 다수의 찬성으로 ‘다케시마의 날’조례를 제정했다. 모두 3조로 구성된 ‘다케시마의 날’ 조례는 제1조에서 ‘다케시마의 영토권 조기 확립 운동을 추진하고 여론을 계발하기 위해 다케시마의 날을 정한다’고 하며, 제2조에서 ‘1905년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귀속을 고시한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한다’고 하며, 제3조에서 이 조례의 ‘취지에 따른 시책 실시를 현의 책무로 한다’고 삼고 있다. 일본 정부 외무성은 이 ‘다케시마의 날’조례 제정을 옹호하여 ‘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입장에서 교과서 검정에서 ‘독도를 일본 고유의 영토’로 명기하기까지 지시했다.

우리는 이 민족배타주의적 폭거를 노여움에 불타면서 규탄한다. 독도는 역사적으로 볼 때 절대로‘일본 고유의 영토’가 아니다. 에도 막부(江戶 幕府, 1600-1867)나 메이지 정부나 독도를 자기 나라 땅이라고 인식하지 않았다. 그런데 1905년 일본이 제국주의적 방법으로 독도를 약탈한 것이다. 우리는 일본 정부가 이러한 태도를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



(1) 역사적으로 조선 땅인 독도

에도 막부는 독도를 ‘마쯔시마’로 불고 ‘다케시마’로 불린 울릉도와 함께 두 섬을 일본인의 도항과 거주가 금지된 조선 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막부는 그 관선지도에 독도를 기재하지 않았다.

메이지 정부도 1905년 편입까지 독도를 조선 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1869년 조사를 위해 조선에 파견된 외무성 관료는 그 다음 해 제출한 보고서 ‘조선국교제시말탐서(朝鮮國交際始末探書)’에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 부속이라고 썼다. 1877년 당시의 최고 국가 기관인 태정관(太政官)이 ‘동해 내 울릉도와 기타 한 섬을 판도 외로 정한다’는 지령을 발했다. 두 섬은 판도 외, 즉 일본 영토가 아니다는 공식 선언이다. 1894년 메이지 정부가 국가사업으로 제작한 지도가 ‘대일본관할분지도(大日本管轄分地圖)’로 발간되었는데 두 섬은 기재되지 않았다. 일본 해군은 ‘조선수로지(水路誌)’1894년판과 1899년판에 두 섬을 기재했다. 이것은 독도가 조선 영토로 인식하고 있던 것을 나타낸다. 1900년 대한제국은 칙령41호에서 울릉도 주변에 있는 ‘석도(독도)’가 자국 통치하에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메이지 정부는 이견은 내지 않았다.



(2)조선 식민지배 시작과 연결된 독도 약탈

그런데 1905년 메이지 정부는 러일전쟁이 한창인 때 군사 시설 건설을 목적으로 함과 동시에 한국에 대한 식민지화 정책을 격렬하게 추진하는 상황 속에서 독도를 약탈한 것이다. ‘미국은 필리핀을, 영국은 인도를, 일본은 조선을 잡겠다’는 미영일간의 제국주의적 합의를 배경으로 하여 1904년 2월 일본군은 러일전쟁에 돌입함과 동시에 인천에 상륙하고 한성을 제압했다. 이 달 한일의정서 주인을 강요, 5월 대한(對韓)시설강령 각의 결정, 9월 제1차한일협약을 맺었다. 러시아 해군이 일본 수송선을 가라앉히는 상황 속에 11월 러시아에서 ‘리 앙코르도’로 불리던 독도에 러시아 해군 감시용 망루 건설이 가능하다고 예비 조사로 확인했다. 다음해인 1905년 1월 메이지 정부가‘리 앙코르도’를 ‘무주지(無主地)’로 단정하여 영토 편입을 각의결정해서 ‘다케시마’로 명명했다. 그 때 관계국인 조선과의 협의도 관보를 통한 공시도 없었다. 그 해 7월 독도에 망루를 착공하고 8월부터 감시 활동을 시작했다. 곧 러일전쟁을 이기기 위한 군사 시설 건설을 목적으로 해서 독도의 영토 편입을 비밀리에 강행한 것이었다. 이것은 전시임을 이유로하여 다른 나라 영토인 것을 인식하면서도 영토 편입을 한, 바로 제국주의적인 영토 획득이었다. (이상 역사 경과는 반월성 ‘일본의 독도 포기와 영토 편입’ (“조일관계사논집, 신간사, 2003)에 의거했음.) 그리고 그것은 1905년 10월 ‘을사보호조약’ 강제로 인한 조선 식민지배 시작과 하나로 벌어진 것이었다.



(3)민족배타주의에 맞서 아시아 민중과 함께 일본 침략 전쟁 체제와 투쟁하자

‘독도의 날’ 제정은 일본 우익 반동 세력이 추진하는 군국주의 부할 그것이다. 유사법제, 헌법 개악, 유엔상임이사국 진출, 미일 군사동맹 강화, 역사왜곡교과서 문제 등 일본 정부와 민간 우익 세력이 하나가 되어 추진하는 전쟁 책동의 일환으로 민족배타주의의 화살을 북한, 중국 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돌리기 시작한 조짐임이 틀림없다. 시마네현 의회는 이 조례를 즉각 철회해야 한다. 지난 날 일본제국주의는 영토 문제를 구실과 계기로 해서 잇따라 침략전쟁을 일으켜 아시아 민중 2000만 명의 생명과 삶과 권리를 유린하고 빼앗았다. 그런 과거의 추악하고 비참한 역사를 되풀이하려고 하는 움직임이다.

한국 민중은 이러한 일본 정부와 민간 우익 세력의 움직임을 지난 침략 전쟁과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려고 하는, 또한 다시 아시아 침략 전쟁을 준비하려고 하는 책동이라고 격렬한 투쟁을 시작했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일본 정부를 엄중하게 비판하는 3.1 생명과 3.24담화를 공표하여 ‘주변국의 신뢰도 얻지 못하고 역사도 반성하지 않는 나라가 국제 사회의 지도적인 역할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일본의 유엔안보리상임이사국 진출을 반대하다는 태도를 명백히 취했다. 그리고 중국에서도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나 지난 침략 전쟁 정당화를 비판하여 일본의 유엔안보리상임이사국 진출을 반대하는 투쟁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우리는 아시아 민중과 연대하여 이러한 전쟁 체제 만들기와 민족배타주의를 용납하지 않고 이것에 맞서고자 한다. 영토 문제로 민족배타주의를 선동하여 일본 노동자 민중을 일본민족우월주의로 사상적으로 지배하며 미군과 자위대가 한반도- 아시아에 대해 벌이려고 하는 침략 전쟁에 총동원하려고 하는 음모를 분쇄하기를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2005년 4월 18일
아시아공동행동 (AWC) 일본연락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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