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5/13] 2차 정기 용산미군기지 둘러보기(답사) 보고-펌입니다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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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의 땅
예전에 대학에서 강의할 때입니다. 매 학기마다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있습니다. 사당에서부터 동작대교까지 칠판에 지도를 그립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지하철이 사당에서부터 이촌역까지 잘 가다가 거의 90도로 꺾어서 신용산역으로 간 후, 다시 거의 90도를 꺾어서 삼각지역으로 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도로가 과천에서부터 동작대교까지 곧게 잘 오다가 동작대교를 건너면서 90도로 꺾어서 길이 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학생들은 어리둥절해합니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내 질문을 듣고는 굉장히 신기해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서울 한복판, 여의도보다 넓은 땅이 대한민국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거기에 용산 미군기기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외세가 한반도를 점령했을 때, 매번 외국군대의 사령부가 주둔해 왔던 곳입니다. 그러다 구한말 청나라의 군대가 주둔한 이후로
일본군과 미군으로 주인이 교체되면서, 아직까지 한반도의 민중들이 마음대로 밟을 수 없는 땅으로 남아있습니다.
민족의 운명을 민족이 결정하지 못하고, 외세가 지 꼴리는데로 장난질 칠 때, 용산은 그 외세의 군대가 주둔해 왔던 굴욕의 역사가
있습니다. 용산 미군기지는 우리의 역사를 우리가 개척할 권리를 박탈당한 굴욕의 상징일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역사적이고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방위비분담금
5월 13일 “용산기지 둘러보기 정기답사”에 다녀왔습니다.
첫 번째 간 곳은 용산 고가차도가 있는 곳입니다. 한국과 미국은 2002년부터 용산기지 반환 논의를 시작합니다. 2003년 5월에
한․미 정상이 합의를 하지요. 그런데 2003년 미국은 129억원을 들여 메인포스트와 사우스포스트를 잇는
고가차도를 건설합니다. 미군기지가 반환된 후 공원으로 조성하려면 철거해야할 건축물입니다. 그 129억은 대한민국의 방위비
분담금으로 전액 충당됐습니다.
용산기지 내 건축은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2004년 6월 주한미군 가족용 아파트를 276억원을 들여 건설합니다. 물론 이
돈도 전액 대한민국의 방위비 분담금입니다. 2004년부터 용산기지에 있는 한남 빌리지 개보수 공사에 들어갑니다. 255억원을
들여 2009년까지 완공한다고 하네요. 물론 이 돈도 전액 대한민국 방위비 분담금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낸 세금이 몇 년 후에는
철거해야만할 주한미군 편의시설 건설을 위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미 SOFA 제 5조에는 주한미군의 유지비용은 미군이 부담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1991년 특별협정을 체결하여 주한미군
유지 경비의 상당부분을 방위비분담금이란 명목으로 대한민국이 부담하고 있습니다. 불평등하다고 평가되고 있는 SOFA협정조차 지키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2007년 방위비분담은 7,255억원입니다. 이 돈이면 전체 고등학생의 1/3의 수업료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2004년에 한․미 양국은 미군기지 이전과 관련하여 대체시설 자금을 누가 부담해야하는지에 대한 협정을
개정합니다. 그 협정에 의하면 반환되는 미군기지 34개소 중 3개소는 대체시설이 불필요하며, 8개소의 대체시설 자금 부담을
한국정부가 하고, 23개소 대체시설의 자금부담을 미국정부가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불평등한 한․미 관계에서 미국이 23개소 대체시설의 자금을 부담하는데, 대한민국정부는 8개소밖에 부담하지
않습니다. 이 협상을 진행한 인간들은 이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자신들의 뛰어난 협상력의 결과라는 것이죠. 그러나 그들이
숨기는 것이 있습니다. 미국이 부담하기로 한 23개소 대체시설의 자금 부담은 대한민국의 방위비분담금으로 지불된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대체시설이 필요한 31개소 중 8개소는 대한민국이 부담하며 나머지 23개소는 대한민국 방위비분담금으로 부담한다는 얘기입니다.
미군기지 이전과 관련하여 대체시설이 필요한 31개소 전부의 비용을 대한민국 국민이 낸 세금으로 부담한다고 협상한 것입니다. 미국
국민의 세금은 한 푼도 안 쓰고, 온전히 대한민국 국민이 낸 세금으로만 부담한다고 협상한 것입니다. 그것을 대한민국은 8개소만
부담하고, 미국은 23개소를 부담한다고 표현합니다. 말 그대로 협상의 귀재인 셈입니다. 이런 협상의 귀재들이 맺은 한미 FTA도
보나마나 뻔합니다.
파괴된 환경
녹사평역 주변을 갔습니다. 이태원에 볼 일이 있어 몇 번 가봤던 곳입니다. 이런데 뭐가 있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양손
엄지와 검지를 이어 만들 수 있는 원 정도 크기의 지하수 관측정이 내가 걸어다녔던 길 위에 있었습니다. 아니 무엇인지 모르고
무심히 지나쳤던 그것이 지하수 관측정이었습니다.
2001년 사우스포스트 지역에 있는 주유소와 지하유류저장탱크의 기름유출로 인해 녹사평역 터널 내 기름오염이 발견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 녹사평역 지역의 지하수 오염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지하수 관측정을 만든 것입니다.
관측정에 의하면 미군기지에서 녹사평역 쪽으로 흐르는 지하수가 오염되었고, 오염된 지하수를 정화하기 위해 서울시에 정화시설을
만들었더군요. 서울시가 나름대로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그 정화시설에는 지하수에 떠 있는 기름을 모아둔 기름통도 있었습니다.
지하수가 오염됐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봤습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우리 동네에도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하는 집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서울에 그런 집은 없겠지요. 특히나 녹사평역 주변에는 없을 듯 합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오염된 지하수로
구체적인 피해를 받는 분은 없을 듯 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유엔에서 인정하는 물 부족 나라입니다. 언제 대한민국이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지하수 오염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의 후손을 위해 막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염지역을 답사하고 있는데 답사단들이 괴담처럼 한두 마디 합니다. 녹사평역에 있는 ‘***호텔이 지하수를 쓴다 카더라’고 하는
‘카더라 통신’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수돗물이 아니라 지하수를 사용하는 목욕탕도 더러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냥 이래저래
퍼지는 말 그대로 유언비어인 셈입니다.
2006년 6월에 서울시에서 관련 보고서를 냅니다. 그 보고서에 의하면 미군기지에서 추가로 유류가 유출되었으며, 오염원이 그대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물론 이 서울시 보고서도 ‘카더라 통신’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군기지 안을 조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단지 이전에는 오염되지 않았던 지역이 추가로 오염된 사실을 가지고 추론한 것일 뿐입니다. 미군기지에서 녹사평역
쪽으로 흐르는 지하수가 아니라 한강 쪽으로 흐르는 지하수의 오염이 발견됩니다.
2006년 11월 이수정민주노동당 서울시 의원과 서울시가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이렇습니다. 미군기지에서 한강으로 흐르는
지하수에서 벤젠이 정화기준치의 1998배 검출됩니다. 특히나 지하수 흐름을 따라 설치한 지하수 관측정 모든 곳이 오염되어
있었습니다. 추가로 지하수 관측정을 계속 설치하지 않는 이상, 어디까지 오염되었는지 알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뭐 사실 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겠지요. 한강 쪽으로 방향에는 정화시설이 없으니까요.
미군기지가 반환된 곳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33곳에 환경조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31곳이 심각하게 오염되었다고
나왔습니다. 오염이 안된 2곳은 대구에 있는 K-2 야구장과 서울역 안에 있는 미군사무소입니다. 야구장과 서울역 안에 있는
미군사무소를 제외한 모든 곳이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었습니다.
2007년 4월 13일 14개 미군기지가 반환 절차를 완료합니다. 이중에는 용산에 있는 유엔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땅은
토양환경보전법상 공장용지, 도로, 철도용지 및 잡종지로도 사용이 불가능할 정도로 오염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이 오염된 땅의 정화
비용도 너무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부담합니다. 장하다, 대한민국!
공원이야, 정원이야?
용산 미군기지는 역사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반환이 되면 그 부지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도 중요합니다. 그
역사성과 상징성을 살려야 합니다. 그 땅은 100년이 넘도록 이 땅에 살아온 사람들이 다닐 수 없는 금지의 지역이었습니다. 그
땅이 반환되면 이제 모두의 땅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치욕의 역사를 떨치고 평화의 새 시대를 상징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시민사회단체에서 시민을 위한 평화공원으로 조성하자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뛰어난 정치인입니다. 그 역사적 의미를 정확하게 읽고 있습니다. 시민사회단체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반환되는 용산
미군기지 땅에 시민들을 위한 공원을 조성하겠다고 합니다. 역사적 의미만 정확하게 읽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시도해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고 합니다. 반환되는 용산 미군기지 중간에 있는 2만 5천평에 미군을 잔류시킨다고 합의합니다.
그러면 그가 조성하고자 하는 공원은 미군기지를 중심으로 그 주위를 둘러가며 조성되게 됩니다.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는 공원이
조성되는 것입니다. 군사기지를 중심으로 조성되는 공원! 노무현 대통령의 엄청난 상상력에 다시 한번 감복하는 순간입니다.
미국대사관은 현재 광화문에 있습니다. 물론 그 건물은 1980년대부터 미국이 불법 점유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용산 미군기지에는
8만평에 달하는 부지에 대사관 직원들 숙소 및 편의시설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 땅은 1960년대부터 부지사용료도 내지 않은 채, 미
대사관 직원들이 불법점유하고 있는 곳입니다.
미 대사관이 자행하는 불법행위를 해결해주기 위해, 반환받는 용산 미군기지 머리부분에 미 대사관이 들어올 수 있는 부지를 줍니다.
처음에는 경복궁터를 준다고 합의했다가, 그것은 좀 심했다고 느꼈는지 용산 미군기지 반환된 곳으로 바꾸더군요.
반환된 용산 미군기지는 시민을 위한 평화공원으로 조성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머리부분에는 미 대사관 및 대사관 직원 숙소 및
편의시설이 들어섭니다. 심장부분에는 미군부대가 잔류합니다. 그 왼쪽 밑에는 미군 헬기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밑으로 미군 병원이
있습니다.
새롭게 조성되는 평화공원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우리가 돈과 땀을 들여 조성하는 공원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우리는 평화공원을 조성하고자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미군을 위한 아름다운 정원을 조성해 주고자 하는 것입니까?
평소에 쉽게 지나쳤던 용산 미군기지입니다. 그 뻔한 장소 답사를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아무나 열어볼 수 있는 지하수
관측정.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 함께 그 관측정을 열어보고 짙은 석유냄새를 같이 맡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 합니다. 그 역한
석유냄새와 함께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