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07] 새해정세좌담회 - 전환기 한미동맹과 한반도 정세전망<2004년>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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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정세 좌담회┃
전환기 한미동맹과 한반도 정세전망
날 짜 : 2004년 12월 28일
장 소 : 리영희 선생님 자택
참석자 : 평화통일연구소 명예이사장 리영희 선생님, 김민웅 교수, 강정구 교수, 평통사 박기학 정책실장
정 리 : 평화통일연구소 김현미 연구위원
●김민웅 : 선생님, 주변 환경이 참 좋군요. 지난 한해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리영희 : 두세 개 병을 가지고 있으니까 오로지 병 다스리며 보냈습니다. 공부라는 것은 못했어요.
●김민웅 : 2004년이 지나면서 제일 중요하게 짚을 문제가 아무래도 부시 재선이 아닌가 싶습니다. 부시가 세계정세, 특히 한반도의 기류를 모두 결정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재선의 고지를 넘어선 상황에서 정세관리의 유형이 다소 달라지지 않을까 합니다. 부시 2기는 몇 가지 요인에서 강경일변도로만 가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대선을 치르면서 미국 내부에서 부시에 대한 반대세력이 절반에 이르는 힘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특히 9·11의 현장인 뉴욕에서 전당대회까지 했는데 거기에서 이기지를 못했거든요. 부시가 제기했던 안보정책, 군사정책에 대한 거부감이 내부에 있고, 경기도 간단치 않고 세계 여론도 안 좋고, 이라크 전쟁도 수렁에 빠져있고 한반도에서는 전쟁 결코 안된다는 의지가 굳어져 있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동북아시아에 대한 군사주의적 패권체제의 강화’라는 부시의 기조는 바뀌지 않겠지만, 이를 실현시키는 방식은 일정하게 조절해내야 하는 지점에 도달한 듯 합니다. 집권 1기처럼 마구잡이 강공으로 치닫기는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리영희 : 앞으로 1, 2년은 재조정 단계이지 않겠는가 생각해요. 주한미군을 포함해 극동 지역의 전체 미군은 대변혁을 겪게 될 것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지상에 고정된 미군을 아주 유동적인 군대로 바꾸려고 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일본과 10가지 조약을 맺어 일본을 미국의 신군사전략에 편입시켰거든요. 이제는 남한 군대를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지역 군사전략 속에 편입시키고 일본과 한국 사이에도 삼각형 같이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려고 하는데 거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중국도 만만치 않습니다. 중국은 미국에 상당한 배려를 했는데 대만 문제가 첨예화되면 양국의 밀월관계는 어려워질 것으로 보입니다. 전 인류의 70%가 미국을 반대하고 있는데, 미국으로서는 고립된 자기 위상을 재조정하는데 1, 2년이 걸리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박기학 : 북한 핵문제에 대한 2기 부시정권의 태도는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리영희 : 이라크 전쟁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생각했던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은 부시 2기에서는 일단 주춤해졌다고 봅니다. 세계적인 지지가 워낙 없고 이라크 문제에 대한 미국 내외의 반발여론도 커지고 있고 미국 자신도 군사문제나 경제, 금융문제, 신네오콘 진영의 재정비도 해야 합니다. 앞으로 1년, 2년 시기에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미국에 대한 우리의 행동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김민웅 : 중장기적 차원으로 볼 때 미국의 대북한 정책의 변화 가능성은 결국 미국의 동북아 정책과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각도에서 그 변화에 대한 전망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리영희 : 어젠가 중국 국방백서에서 대만 문제를 엄중하게 이야기 했습니다. 미국이 최근에 대만에 주재시키고 있던 사실상의 국방대사 즉 군사대사를 처음으로 민간인에서 현역으로 바꾸었습니다. 미국이 대 대만 무기판매수준을 높이는 등 일련의 일들을 볼 때 부시의 네오콘들은 중국과의 일전을 위해 대만을 떼어내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럼 중국은 어떤 전략으로 대응할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이 북한 문제와 대만 문제를 동북아 패권전략 차원에서 서로 거래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런 가능성을 생각해 봤습니다. 부시의 네오콘 참모라면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중국과의 중기적 장래를 위해서는 대만에서 미국이 군사적으로 상당한 정도 후퇴한다는 것이지요. 즉 중국의 대만에 대한 군사 공격까지는 인정할 수 없지만 그 전 단계에서 미국이 대만에서 후퇴함으로써 군사적 긴장을 낮추고 대신에 미국이 북한과의 경제·금융, 군사까지를 포함해서 북한을 포용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20년 사이에 말입니다. 북한으로서도 동의할 것입니다. 미국이 중국의 동의 하에 북한을 남한의 절반 정도 수준으로 예속시킨다면, 중국으로서도 만주 국경의 압록강 가에서 분쟁이 일어나지 않으니 좋습니다.
●김민웅 : 말하자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 일종의 “완충지대”를 확보하는 것이니까요.
●리영희 : 그렇지요. 중국의 경제나 정치력이 20년 후면 미국의 위상에 버금갈 것이니까 대만은 상당한 정도까지 중국에 어차피 흡수되니까. 그냥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그 중간 정도 단계로 분쟁을 억누르면서, 근원적인 해결을 봉합하고 장기적인 해결을 미루면서 미국은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김민웅 :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시나리오가 가장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2기 부시는 여러 가지 장벽이 가로막고 있고 1차적으로 군사적인 강공을 치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전략은 두 가지라고 봅니다. 하나는 장기적인 군사전략의 재편과정에서 시간을 버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일정한 긴장 유지가 재편과정에 도움을 주고 또 당장 붕괴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클린턴 때처럼 자본으로 지배하는 방식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는 것이지요. 경제력을 중심으로 장기적인 자본의 지배전략을 취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북한으로서도 우선 당장에는 그것이 생존의 차원에서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기는 어렵고 말입니다.
●강정구 : 그런 방향이 남한이나 북한, 중국, 러시아까지도 모두 바라는 방향 아니겠어요? 문제는 미국이 그것을 정책적으로 지향할 것인가, 미국의 21세기 세계 지배전략이라는 것이 미국의 세계 패권에 도전할 잠재력을 가진 세력을 없애는 것, 도전하지 못하게 하는 구조를 만드는 게 가장 큰 핵심이니까. 그런 식으로 나가면 한반도 문제는 해결이 되는데 아까 리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현재의 경제성장 속도로 보면 2030년이 되면 중국이 미국을 능가하게 되거든요. 브릭스 즉 브라질이나 러시아, 인도, 중국의 경제력이 오히려 미국, 유럽을 능가할 것입니다. 이런 시점이 되면 미국의 패권이라는 게 지금 식으로 용인되지 않는 구도입니다. 기본전략에 차질이 생기면 네오콘이나 그런 기조를 가진 세력들이 한반도 문제는 그렇게 해결하더라도 대만 사태는 언제든지 중국에 개입할 수 있는 틀을 유지하려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요?
●김민웅 : 한반도를 장악하고 있으면 대만에 대해서도 훨씬 유리한 위치에 서지 않을까요. 한반도는 확실한 전진기지가 되는 것이니까요.
●강정구 : 미국이 이유 없이 전쟁을 할 수는 없잖아요. 대만이나 북한을 빌미로 해서 치는 방향으로 나아갈 건데.
●김민웅 : 한반도 문제가 아까의 경우처럼 풀려나가게 되면 미국이 동북아 지역정치의 패권을 일정하게 장악하는 모양이 되겠지요. 이렇게 되면 자본에 의해서 한반도가 지배되는 것인데 장기적으로 우리가 대응해야 하는 문제인 반면에 단기적으로는 그래도 평화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은 안전한 부분이죠. 시간을 버는 의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북한의 궁극적 관심이 개성공단의 예에서 보듯이 군사적 긴장을 풀고 대립관계가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경제적 관계를 만들어 살고 싶다는 것임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다른 하나의 가능성으로 생각해볼 만한 것은 새로운 금융도시 같은 것을 추진하는 것입니다. 홍콩의 경우에서 보듯이 50년에서 100년 기간의 조차지를 만드는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미국이나 서방에 상당한 정보를 주는 것인데 물론 도박이 될 수 있지만 현재의 상태에서 우선 살아남는 게 중요하니까요. 가령 해주 지역은 그 밑에 개성과 서울이 있고 동북아를 묶는 중심권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잘만하면 그 국제적인 효과는 대단할 것입니다. 북한측의 의지도 중요한데 신의주 특구의 경우를 봐도 비현실적인 발상은 아닐 수 있습니다.
●강정구 : 들어갈 자본의 성격이 문제입니다. 미국의 북한 포위 전략이 안 풀리면 어떻게 하나요?
●김민웅 : 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포위전략이 선차적으로 해결되어야 하기도 하지만 그 반대로 이러한 포위전략을 푸는 단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미국이 보호해야 하는 지역으로 바뀌는 거죠. 이야기를 바꿔서 6자 회담을 거론해 보지요. 6자 회담도 동북아 협력 체제를 짜는 과정인데 중국, 러시아, 일본을 어떤 눈으로 보면서 기조를 어떻게 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리영희 : 동북아 국제정세를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유리한 흐름으로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미국에 대한 주체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합니다. 미국이라는 세력, 힘과의 관계에서 자기부정적인 의존심에 빠져있는 게 우리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이걸 극복하는 문제가 시급합니다. 아시아 대지진도 그 중심이 있듯이 민족 문제의 핵심을 파고 들어가면 다시 한미관계의 종속성 문제로 돌아옵니다. 한미관계의 대미 종속성을 고치지 못하는 한은 주변 러시아가 어떻게 변하든 중국이 변하든 일본이 변하든 미국에 얹혀서 살고 매달려 살고 미국 없으면 죽고 미국이 하라는 대로 안 하면 큰일난다는 이런 의식의 문제를 고치지 않는 한은, 내부적으로 경제에 의존하는 미국의 체제를 고치지 않는 한은 동북아 정세를 한반도에 유리하게 이용할 수 없습니다. 이 점에서 깨친 지식인들이 매스컴을 충분히 활용하여 종속적 대미관계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을 바꿔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동과 서의 변화에 대해 적절히 대응해가는 우리의 역량을 키우고 대미관계를 조정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우리가 통일에 힘을 발휘하려면 남북간 문제를 평화 공존의 문제로 바꾸어야 합니다. 정치적 개체의 모든 역량이 소모적인 적대관계에서 벗어나야만 상승적인 효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김민웅 : 러시아, 중국, 일본의 변화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주체적 입장에서 끌고 나가야 하는가, 즉 이 나라들이 우리 입장에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 그런 상태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죠. 상황변화를 위한 주도적 계기마련이라는 차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강정구 : 우리가 주체적 입장을 견지해 나가면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수 있다는 거죠.
●김민웅 : 결국 동북아 나라들에 대한 우리나라의 전략 기조가 문제가 되는데요.
●강정구 : 첫째는 이쪽에서 치면 저쪽으로 넘어지고 저쪽에서 치면 이쪽으로 넘어지는 조선조 말엽의 상태가 더 이상 아니다, 우리 남북이 함께 개척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는 게 중요합니다. 둘째는 우리 혼자나 남북 민족 공조만 하는 게 아니라 탈미 동북아협력체, 이런 과정을 함께 해갈 수 있다는 거죠. 러시아나 중국의 이해관계는 분명히 우리의 이해관계와 일치할 수 있고 일본의 경우에도 사실 고이즈미가 극우적이라고는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 때 아셈회의에서 한반도 평화선언을 하고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은 일본의 경우에도 북한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만 시베리아 개발이라든지 장기적인 불황탈출이 가능하다는 이해관계가 일본 일각에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부시 식으로 핵문제를 전쟁으로 해결한다면 일본의 부담은 엄청나기 때문에 전쟁만은 안 된다는 유대관계가 김대중 정권 때 형성됐던 것입니다. 중국, 러시아와 쉽게 공동보조를 맞출 수 있고 일본이 이탈하지 못하게 노무현 정권이 잘 해야 이것을 잘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민웅 : 리 선생님이, 미국이 일본과 10가지 조약을 맺었다고 말씀하셨고 또 96년의 미일안보공동선언에 이어 2005년에 이를 재수정하는 미일안보공동선언 발표를 목표로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또 중국과 러시아가 맞대응하겠다고 하고 중국과 인도가 손잡고 있습니다. 한반도 주변의 새로운 지형이 짜여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느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중국문제도 양안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북공정을 보면서 그래도 미국과 같이 가야 중국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 아니냐 하는 여론도 있습니다. 우리가 완충중립적인 위치를 차지해야 하는데 과연 그렇게만 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 그럴 때 대안을 던져야 하는데 우리 자신도 지금 재조정의 과정 속에 있습니다.
●강정구 : 우리 스스로 주체적인 인식을 해야 합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하는데 우리가 왜 새우냐? 경제 규모가 세계 11위이고 남북 합치면 10위 안에 들고 군사력도 10위 안에 들고 IT산업도 선두주자고, 반만년 역사에서 이런 위치를 차지한 적이 없지 않았습니까? 동북아에서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수준이지만 세계에서 아주 큰 수준입니다. 우리가 동북아에서 세력균형이나 평화조정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새우가 아니다는 인식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에 있어서는 새우가 아니라 피라미밖에 안 된다는 민족 허무주의, 패배주의적 인식이 동시에 있습니다. 사실 동북공정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봐야 합니다. 동북공정이 문제가 되니까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비밀리에 왔습니다. 그가 남북이 통일되더라도 현재 국경선을 재확인하자라고 했습니다. 한국에서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김민웅 : 언제였죠?
●강정구 : 얼마 안 되었죠. 북한은 3년 전에 국경재확약을 했다고 합니다. 중국의 국경분쟁은 지역이 파키스탄, 인도, 베트남, 위구르,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등 전반적으로 걸쳐 있는데 중국이 양보를 하면서 매듭을 짓고 있습니다. 한국과도 매듭을 지으려고 했는데 좀 지나쳐서 고구려 역사를 일방적으로 해석한다던지, 동북공정이 실제 중국이 추진했던 것보다 더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우리로서도 동북아 정세를 총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왜곡되고 편협한 극우적 민족주의 정서에 빠지게 되면 결과적으로 한국을 끌어들여 중국을 포위하려는 미국이나 일본을 이롭게 할 거라는 인식을 당연히 해야 합니다.
●김민웅 : 동북공정은 두 가지 차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는 중국 자체의 주체적인 의도가 있는 한편 우리가 잘못한 것도 있죠. 그 하나가 과거 연변 조선족 자치주가 열리기 시작하면서 우리 쪽에서 고토 회복운동을 떠들고 다녔는데 그게 중국정부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당신들은 중국 사람이냐’고 할 때 연변 자치족 사람들이 중국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갔습니다. 중국을 매우 예민하게 자극해버린 셈입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이에 대한 대응적 성격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한국이 통일될 경우 조선족 자치주가 한반도에 들어가는 영토일 수밖에 없으니까 중국으로서는 강공을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일 거라고 생각됩니다. 또 하나는 한미동맹관계가 중국포위 측면에서 진행되고 있으니까 역사적 방어망을 쌓는 거죠. 강 교수님 말씀처럼 식민지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형성됐던 민족주의가 경계선을 넘으면서 공격적이고 팽창적으로 변질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동북아 정치 질서 속에서 우리 민족은 중립화로 가야 합니다. 중립화란 두 가지 근본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중립화 하면 처음에는 “아 좋죠!”라고 했다가 중립화의 전제는 한미동맹관계를 정비하는 거라 하면 딱 뒤로 물러나요. 또 하나 문제는 중립화가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잘못하면 외교적 능력이 부족할 때는 상전 넷이 갑자기 생기게 됩니다. 한반도를 어느 주변 나라에도 미혹되지 않고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고 중립적인 완충지대로 만든다 하더라도 그것을 꾸며나가는 게 쉽지 않을 겁니다. 주변 열강들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면서 끌어나갈 수 있는 힘이 있느냐 하는 문제죠.
●강정구 : 김대중 정권 때부터 동북아 정세를 주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북한 핵위기에 대해 나름대로 목소리를 내고 아세안 플러스 3 회담을 주도하고 연례화시켰습니다. AMF(아시아통화기금) 논의도 있었습니다. 우리 차원으로 끝난 게 아니라 북쪽에서 2002년 9월 17일인가 북일 정상회담을 하고 7월 1일 경제 관리개선조치를 해서 시장경제적 요소를 받아들이고 신의주 특구 등 개방으로 나왔습니다. 놀라운 것은 유럽에서만 26개국 정상이 참석한 아셈회의 때 한반도 평화선언을 이끌어냈고 한일 정상이 미국에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김대통령이 10월 초에 돌아와서 하룻밤 자고 났는데 부시가 특사파견을 미루던 기존 정책을 갑자기 바꾸고는 김 대통령에 전화를 해 북측에 특사를 파견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켈리가 북에 가서 농축 우라늄을 터뜨렸습니다. 탈미 동북아 협력체가 출발을 하려는 시점이었습니다.
●김민웅 : 동북아 협력체제 분열전략이었던 것이죠.
●강정구 : 노무현 정권이 김대중 정권 때의 동북아시아 협력을 향한 우리 독자적인 노력을 더욱 발전시켜야 하는데, 촛불시위에서 보듯 국내기반도 있는데 그런 역할을 못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번 노무현의 LA 선언은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김민웅 : 한미동맹의 성격전환문제로 넘어가 보죠. 한미 양국은 한미동맹의 성격을 2005년부터 지역동맹으로 공식화하기 위한 논의를 본격화할 계획입니다. 지역동맹의 내면의 성격은 침략동맹이죠. 이것이 전선이 확대되면 중국과 러시아와 대립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한반도 분단에 의한 구조적 긴장은 더 첨예화될 수밖에 없고 근본적으로 군비경쟁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소위 지역동맹으로서의 ‘유연성’은 미국이 한미동맹을 단순히 한국에 대한 방위약속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세계패권전략의 도구로 운용하겠다는 것인데 한미동맹의 성격 전환의 배경 및 그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대안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리영희 : 타원형이 두 개의 중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한미동맹의 전환에는 세 가지 중심이 있습니다. 하나는 좀 더 단기적인 문제로서 북한과의 관계에서 유리한 군사적 입지에 서서 군사적 봉쇄를 강화하고 선제공격능력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앞으로 2020년대에 가서는 미국의 군사전략 뿐만 아니라 정치전략이 중국에 대한 패권 유지 심지어 전면전을 불사하기 위해서 일본, 남한의 군대를 하나의 틀 속에 집어넣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반도에서의 미군 기지 재배치 문제입니다. 한미동맹 전환문제는 단기적으로 북한에 대한 대응을 제외한다면 총체적으로 중국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네오콘들이 말하는 언스테이블 아크(불안정한 호)입니다. 일본에서 한반도, 대만을 지나 아랍 세계 밑으로 깔리는 이른바 불안정한 아크로 불리는 이 지역전체를 관장하는 미군의 아시아·태평양지역 총사령부를 일본에 두고 일본 자위대와 한국군대를 그 하위동맹군으로 편입시키며 나아가 필리핀군과 태국군까지 동원하여 언스테이블 아크 전체를 군사적으로 장악하려는 구상입니다.
미 1군단 사령부를 일본 자마로 이전하는 것도 사실은 주일미군이 중동까지를 포함하는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총사령부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주일미군사령관이 미군 육군대장으로 승격하고 이때까지 없던 실제 전투의 삼군 총지휘부가 오게 되면 여기서 일본군은 물론 남한군까지 작전통제를 하게 된다고 봐야합니다.
미국은 이미 일본군이 미군의 군사기동대로 선두에 나서도록 하기 위해 10가지에 달하는 조약을 일본과 체결하였습니다. 일본은 또 미국이 일으키는 전쟁을 미일연합군 차원에서나 민간동원 차원에서나 거국적으로 뒷받침하는데 요구되는 모든 법률, 가령 주변사태법을 비롯하여 유사관련입법 등을 제정하였습니다. 한미동맹의 성격전환은 현재 대북한 방위에 고정되어 있는 한미연합군을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의 미군의 군사작전을 위해 동원되는 한미연합군으로 바꾸겠다는 것이지요. 한미연합방위체제는 이제부터 대만, 아랍세계까지를 대상으로 하는 미국의 침략전쟁을 뒷받침하는 한미연합전쟁체제로 변질되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두 가지입니다. 한 가지는 미국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던 지금까지의 일방적인 한미방위동맹의 성격을 우리 주체적으로 수정하고 우리가 미국 지배의 한미연합군사체제에서 빠져나와 우리를 위한 것으로 바꿔내야 합니다. 또 하나는 동북아시아의 러시아, 중국, 일본 등과의 관계를 실질적인 공존 관계로 유지·발전시켜야 합니다.
●김민웅 : 리 선생님은 어떻게 보세요? 전반적으로 한미동맹 성격도 변하고 미국이 동북아 전체에 대한 지배전략을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시간이나 작업들이 필요합니다. 미국의 일방적인 움직임에 대한 제동을 거는 문제는 1차적으로 한미동맹의 대미종속성을 극복하는 문제인 것 같은데요.
●리영희 : 앞으로 변화하는 정세에 대응하기 위해서 한미상호방위조약에서 수정해야 할 것은, 폐기는 당장 어려우니까 주한미군이 북한을 상대해서 대한민국을 보호한다는 골격을 빼면 좋겠어요. 항상 북한을 적대적 침략세력이라고 전제하기 때문에 남한이 북한과의 관계를 재조정하는데 방해가 되는 구실을 미국이 쥐고 있습니다. 북한과의 관계에서 남한을 보호한다는 상호방위조약 3조나 4조는 필요가 없습니다. 조약상 미국의 군사적 방어의무를 경감시켜야 합니다. 또 북한의 호응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야 남한이 한미동맹수정에 대한 두려움을 덜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언제 있을지 모르는 미국의 침략에 대한 자기 방어체계를 해체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적인 선언이나 시장경제적인 요소의 수용 등을 통해 남쪽이 불평등한 한미상호방위체제를 전면적으로 바꿔내는데 북한이 공조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반면 남쪽은 한미동맹에서 미국의 책임을 해제시켜 나가야 하겠지요. 미국은 자신의 필요상 많은 군사적 임무를 한국군에 넘기고 있습니다. 휴전협정에 규정된 자신들의 임무를 사실상 다 한국에 넘겼습니다. 또 한미동맹의 10가지 가량의 하부결정권도 한국군에 넘겼습니다. 자신의 세계전략적 목적을 위해 군사적 임무와 역할을 한국군에 넘기고 있습니다. 방위동맹의 명령과 지시를 받지 않는 대한민국 독자적인 군대, 이것이 우리가 확보해야 할 결정적으로 대등한 지위라고 할 때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대북한 적대성을 제거하는 것은 이러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자 변화 도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미동맹 형태와 한미동맹을 규제하는 방위조약에 대해 생각한 안이 있습니까?
●박기학 : 예. 신한미상호방위조약안이라고 해서 이미 2003년에 평통사와 한미관계연구회에서 불평등한 한미동맹을 청산하고 호혜평등한 한미관계의 기초가 될 수 있는 대안을 내놨습니다. 이 안은 주한미군 철수와 우호협력적인 한미관계를 목표로 가는 중간 단계로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불평등성을 전면적으로 수정하는 안으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리영희 : 주로 어디를 어떻게 고쳤습니까?
●박기학 : 사실 모든 조항에 걸쳐 전면적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고치고 새로 썼습니다. 특히 우리 주권을 침해하고 미국의 일방적인 군사적 개입을 허용하는 독소조항들을 삭제하거나 전면 수정했습니다. 가령 미군의 일방적인 배치권을 규정한 4조의 경우 한국 정부의 사전 동의 하에서만 배치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리영희 : 배치만 하고 배치해둔 군사력이 외부로 이동투입될 때는 어떻게 하나요? 그것은 이야기 안 했어요?
●박기학 : 사전에 한국 정부의 동의를 받도록 했습니다.
●리영희 : 한국정부하고 말이죠. 한 가지로 해야죠. 일본을 중심적인 거점으로 삼아 전체 아태지역에 출동하려고 하는 거니까 주한미군의 출동과 현황에 대해서 한국정부와 적어도 협의권과 동의권을 갖도록 해야 하겠죠.
●박기학 : 또 방위의 지역범위를 ‘대한민국 영토’로, 미군 주둔의 목적을 ‘대한민국의 안전’으로 한정함으로써 대한민국 영역에 대한 방어 목적의 배치 이외에는 다른 목적으로의 주한미군의 사용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법이 되도록 했습니다.
●리영희 : 그렇게 되면 미국의 총체적인 지구표면의 군사적 재배치의 기본 원리하고 정면 배치되는 건데 그걸 어떻게 하려고요? 방위조약의 수정은 부분적인 것을 고려해서 땜질하는 방식으로 해서는 안 되고 전반적인 기조에 대응해야 하는 거니까요.
●강정구 : 그런 점이 문제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전략적 유연성은 안 된다’는 발언도 미국 GPR에 어긋나니까 관철이 되기 힘들죠. 그러면 방안이 없잖아요. 근본적으로는 한미군사동맹의 폐기, 주한미군 철군 등을 이야기하면서 그 궁극적 단계를 실현시키기 위한 초보적 단계로서 전략적 유연성을 거부하는 식의 전술적인 접근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리영희 : 방위조약의 미국측 양해사항은 자기들이 한반도의 전쟁에 말려들지 않도록 만들어 붙인 겁니다. 말은 이러쿵저러쿵 갖다 붙였는데 뭐가 일어나도 앞의 1, 2, 3조, 5조, 6조 까지는 하는 척하고 사실은 우리는 빠지고 안 하겠다는 것이거든요. 전체 구조가 모순적인 것을 고쳐야지요.
●박기학 : 미국이 한국과의 관계에서 무제한적인 권리를 갖는데 의무는 지지 않게 되어 있는 것이 한미상호방위조약입니다. 미국의 일방주의를 허용하는 독소조항들을 폐기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사실 한국 정부가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서 사전 협의로써 대처하겠다고 하는데 이를 부정하는 조항, 가령 주한미군의 일방적 배치권(4조)이나 위협에 대한 일방적 판단과 조치(3조)가 모법에 있는 한은 무의미합니다. 따라서 상호방위조약의 전면 개폐가 전제되고 병행되어야 합니다.
●김민웅 :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불평등성을 완전히 제거하고 동시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것과 같은 전체 기조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쯤에서 한국군이 미군의 일방적인 지휘통제를 받도록 되어 있는, 그래서 한미동맹의 종속적 성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한미연합지휘체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죠.
●리영희 :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미국이 잠정적인 동맹상태로 공동군사행동을 하거나 장기적인 동맹체로 군사행동 할 때, 그것이 장기든 단기든 또 저강도든 고강도든 타국군과 연계되거나 협동하고 연합할 때 변함없는 원칙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미군이 지상에서 이동할 때는 엄호 차원에서 핵군사력이 따라갑니다. 핵 군사력을 뒤에 따르게 하지 않고는 절대 안 갑니다. 둘째는 어떤 형태의 연합이든 공동작전에서 미군이 사령관이 아니면 안 됩니다. 셋째는 군사작전 때 나타나는 미군의 반인도주의적 잔학행위, 국제법 위반 행동에 대한 형사처벌은 미군은 안 진다는 것입니다. 우리와의 관계에서는 작전 지휘권의 미군장악과 한미소파가 바로 그것입니다. 자 그럼, 고친 신한미상호방위조약의 경우 작전지휘권을 환수하면 미국의 이 원칙과 모순이 일어나는데.
●박기학 : 자위대도 작전지휘권은 일본이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리영희 : 미일안보조약하고 우리 것하고는 몇 가지 점에서 다릅니다. 일본과의 안보조약은 일본에 들어와 있는 미군이 해외에 파병될 때는 일본 정부와 협의하게 되어있습니다. 기지사령부도 미국이 고를 수 있는 게 아니라 일본 정부와 협의하게 되어있습니다. 일본은 원래 3급동맹으로 인정해서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4급 동맹이이거든요. 영국, 캐나다는 1급입니다. 2차세계대전 끝나자마자 미국이 핵무기에 관한 비밀을 공유하는 국가는 영국과 캐나다로 이들이 1급 동맹이고 나머지 불란서 등이 2급, 일본은 3급, 대만이나 한국은 4~5급 정도에 해당합니다. 그러니 동맹조약 자체가 차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박기학 : 작전통제권 문제만 보더라도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불평등성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습니다. 한미동맹이 지역동맹으로 전환되면 이제 한반도 방어차원만이 아니라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미군 작전에서도 한국군이 미군의 통제하에 들어갈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그렇게 되면 중국과 대만의 충돌 시 미국의 대중국 작전이나 다른 아시아 태평양에서 미국의 분쟁에 그대로 동원이 되는 것은 필연입니다. 따라서 작전통제권의 환수와 이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차원의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전면 개폐가 매우 중요합니다.
●리영희 : 이 문제는 굉장히 중요해요. 일본군과의 합동군(연합군)형성에 한국군이 편입되는 문제입니다.
●김민웅 : 작전권 환수 문제 더 이상 짚을 게 있을까요?
●강정구 : 원론적인 이야기인데 작전권 환수를 하기 힘들다는 논리에 대한 반박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김민웅 : 그런 세부적인 사항도 중요하지만 전체 기조를 흔드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기조를 흔들면 거기에 맞춰 나갈 수 있으니까요. 어느 나라가 대상이 되든 침략적인(적대적인) 동맹으로의 전환이 허용되어서는 안 될뿐만 아니라 현 상호방위 또는 동맹의 대북한 적대적 성격을 제거하는 것이 큰 기조로 제시되어야 합니다. 이런 바탕 위에서 동맹의 격이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작전권 문제는 거기서 해결이 된다는 거죠.
●강정구 : 그렇게 격상되면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동맹이 더 견고화 됩니다.
●김민웅 : 맞습니다. 제 이야기는 동맹의 격상을 논하는 것은 우리의 자율적 영역을 확대하자는 것이고 그러면서 동맹의 성격재조정에 대한 논의를 동시적으로 추진하는 것입니다. 한미동맹의 종속성과 침략성을 병렬적으로 극복하는 방안이 고민됩니다.
●박기학 : 1급동맹이나 2급동맹은 상대적으로 미국에 대해 자율성을 갖지만 미영동맹에서 보듯이 기본적으로 침략적 성격의 동맹입니다. 따라서 자율성 차원에서 말할 수는 있지만 단순 비교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또 상대적으로 자율성이 있다는 미일동맹도 그 군사지휘체계를 보면 미국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미일동맹이 한미동맹 전환의 모델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런 점에서 한미동맹의 대북한 적대적 성격을 제거하는 것과 함께 미국이 강요하는 또 다른 적대적 성격의 동맹으로의 퇴행적 전환 기도를 저지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저희는 FOTA회의에 대응해 왔습니다.
●김민웅 : 그것을 계속 하실 거죠?
●박기학 : 네.
●리영희 : 민간기관에서 학자들이 이와 같은 동북아 정세와 남북한 정세와 미국정책의 전망을 모두 꿰뚫어서 한미상호방위동맹의 형태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실체로서 군사적 관계에서의 한국의 주권행사의 한계성과 새로운 형태의 동맹조약을 연구하는 데가 있습니까?
●강정구 : 연구하는 데가 없죠. 지역동맹화를 정당화시키는 글들만 계속 나오죠.
●김민웅 : 어떻게 정당화 시키는 거죠? 어떤 논리로?
●박기학 : 중국 위협론이죠.
●강정구 : 동북아의 세력균형을 위해서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해야 한다, 한미동맹이 지역안보동맹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랜드연구소와 한국국방연구원의 공동보고서가 1994년 SCM에 보고되었습니다. 또 이를 받아 많은 연구가들이 이 같은 입장을 그대로 써내고 있습니다. 다른 대안의 연구는 전무하다고 봐야 합니다.
●김민웅 : 현 정부는 한미동맹 전환문제나 주한미군의 역할확대에 대해서 어떤 입장인가요?
●강정구 : 중국 포위를 목적으로 한 한미군사동맹의 전환이 용산기지 이전협정등을 통해 실질적으로는 벌써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고 봐야죠. 그러나 주한미군의 아태 기동군화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아직 정리되어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노무현 대통령이 11월 13일 LA에서 “전략적 필요에 의해 주한미군의 수를 줄이고 늘리는 문제를 미국이 융통성 있게 운용할 수 있게 한국이 협력해야 하지만, 내가 말한 융통성은 동아시아에 있어서 주한미군 역할의 유연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발언하였거든요.
●김민웅 :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반대한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강정구 : 했죠.
●김민웅 : 굉장히 중요한 발언인데 그걸 밀고나갈 정치적인 내용을 갖추고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또다시 선언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노대통령의 자이툰 부대 방문, 귀국 뒤 용산기지 이전 협정 비준동의, 이라크 파병연장 처리 등은 노 정권이 실제 문제를 푸는데서는 미국의 입장에 철저히 서있다는 증거거든요.
●강정구 : 바로 그것이 노무현 정권의 딜레마입니다. 노 대통령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누가 집권해도 그런 어려움에 봉착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요인입니다.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안 된다고 하는데 오히려 국방부 장관이나 외교부 장관은 대통령의 뜻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정책 지향과 실제 그것을 집행하는 관료들이 따로 노는 것은 리선생님 말씀처럼 미국 없으면 못산다는 세력들 대표적으로는 외교부, 국방부 고위 관료들과 한나라당 등이 한국 사회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용산기지 이전 협정이 국회 상임위에서 14대 1로 통과된 것을 보면 친미보수세력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김민웅 : 정부 내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거고 결국 시민사회운동이 나서야 한다는 거네요.
●강정구 : 그렇죠. 노무현대통령이 문제의식을 갖고 있어도 실제 이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해 줄 세력이 없습니다. 그것을 쟁점화 할 수 있는 세력이 민중시민사회의 평화운동, 사회운동세력밖에 없습니다. 민중시민사회가 치고 나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을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는 게 촛불시위를 보면 동력을 형성할 수 있는 기조는 어느 정도 된다고 봅니다.
●박기학 : 우선 시민사회운동이 한미양국 정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쟁점화를 시켜 내는 실천적 투쟁이 중요합니다. 그와 함께 동시적으로 내용 자체를 국민들에게 알려나가는 게 급선무일 것 같습니다. 이런 내용 자체를 모르거나 알아도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죠.
●김민웅 : 우리한테는 앞으로 1, 2년이 선택 가능성이 있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한미동맹과 관련해서 우리 민족이라면 누구든 두 가지 점을 결코 원치 않을 것입니다. 중국과 군사적인 적대관계를 원하느냐,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원하느냐, 절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미동맹은 미일동맹이라는 체계 속에 같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고 미국의 군사전략 속에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중국과의 적대적인 전선 그리고 일본에의 군사적 종속 바로 이 두 가지를 수용해야만 한미동맹은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우리가 바라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한미동맹은 재조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한다거나 한미동맹을 바꿔야 한다고 논의를 전개하는 것보다 중국과 적대국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일본에 또 종속돼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한미동맹의 성격전환에 대한 대응논리를 펴는 것이 훨씬 대중적인 설득력을 가지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강정구 : 저도 그런 논리가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80년대는 일본 위협론이지 중국 위협론은 없었습니다. 90년대 중반부터 중국 위협론이 미국에서 제기되기 시작하였는데 한국에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최근 1, 2년 사이에 대만사태에 관한 우려가 생겼습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꼴이 되는 셈입니다. 미국과 중국과의 분쟁에 우리 나라가 말려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인식과 함께 한미관계에 대한 새로운 주체적 인식도 확산되는 것 같습니다.
●김민웅 : 올해가 해방 60년인데 뭐 꼭 이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만한 세월이 지났으면 청산과 새로운 시작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5년을 맞이하면서 민족 내부, 민족간의 국제적인 과제를 떠올린다면 우선 순위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리영희 :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주권을 행사하는 세력이 한미동맹을 바꿔내야 합니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니까. 그럼 다시 어떤 역량이 있느냐? 별로 없습니다. 미국 없으면 죽는다는 의식이 팽배합니다. 어느 정도의 주권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결정적인 정치 행위로서 한미동맹 개정을 끌고 갈 수 있는 층이?
●강정구 : 정치행위로 나타날 수 있는 판은 잘 짜지지 않죠. 선거를 할 때 이런 문제를 쟁점화시키는 정치구조가 안 되어있거든요. 유권행사를 할 때 그것이 기준이 안 되니까 확산이 안 되는 거죠.
●리영희 : 그래서 확산이 안 되는 게 아니라 그런 것을 이슈로 들고 나오면 반드시 진다, 그러니까 안 들고 나온다고 봐야하는 것 아닌가요.
●강정구 : 그렇기 때문에 운동진영에서 효순이, 미선이 압사사건 이후 촛불시위를 통해서 정치투표행위를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60년 동안 반공 반북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되어있었으니 이런 이벤트 성을 활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이벤트로 쟁점화시켜서 의식을 변화시키는 데는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김민웅 : 여중생 사건 때의 촛불시위로 국민의 의식이 많이 변했죠
●리영희 : 젊었을 때는 좀더 빨리 이루어지지 않느냐 했는데 인내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국민의 70%가 보수고 종교인구의 절반이 기독교인이고 기독교인이 인구의 4분의 1인 상황에서 이런 화제들이 나오지 못합니다. 미국의 밥줄, 돈줄, 목숨줄, 교육줄 등을 고쳐나가면서 거기에 매달려 형성된 상호구조적인 의식을 바꿔내는 것도 필요해요. 이 과정이란 게 여학생 사건, 좀 거슬러 올라가면 광주 민주화 운동 사건으로 해서 20년이 걸렸습니다. 항상 같은 속도로만 가는 것은 아니지만 조급하지 않게 꾸준히 의식화해 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김민웅 : 한미동맹 성격을 바꾸는 과정에서 북한 나름의 적극적인 대응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리영희 : 중요하다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우리 군이 북한을 적으로 삼는 전략을 바꾸는 과정에서 대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 내부의 반발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북한이 군축 여론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또 전반적인 큰 틀을 서서히 고쳐나갈 수 있는 정치 권력을 남쪽에서 양성해 주는 의미에서 북한이 여러 가지 논란이 있는 문제에 대해서 이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입증해줘야 국민과 유권자들이 안심할 겁니다. 직접적인 군대의 문제와 한국의 전반적인 문제입니다.
●김민웅 : 불가피하게 직접적인 남북한의 군축문제로 진행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공개적인 대응, 군사적인 대응도 필요한 것이니까요. 그런데 미국과 일본이 군사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가 합동군사훈련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방적인 우리 민족 내부의 무장해제로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군축논의를 진행하는 경우 주변의 군사적 환경도 고려해야 되고 장기적으로는 남과 북이 민족방위군으로 서로 결합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할 것 같습니다. 잔뜩 어려운 이야기만 하고 만 듯한데, 선생님 최근에는 어떤 영역에 대해 새롭게 관심을 기울이시는지요?
●리영희 : 중국 고전하고, 불교 경전 본지는 한 10년 됐습니다.
●김민웅 : 어떠세요?
●리영희 : 난 예수님의 제자에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정신대로 살아가길 원하지. 마호메트의 가르침대로 살아가길 원하고, 부처님의 가르침과 인류의 사상과 세계관대로 살려 해요. 교회, 절간을 싫어합니다.
●김민웅 : 마음이 어떠세요? 부처님 만나시고, 예수님 만나시고.
●리영희 : 나는 무신론자이기 때문에 내세에 기본을 둔 어떠한 신앙도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종교가 없었다면 인류가 보다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특히 유일신 종교는 자기가 믿는 한 가지만 절대적이니까 자기가 하는 행위만 절대적입니다. 부시나 네오콘, 모두 그거 아닌가요. 아랍도 마찬가지고. 절대화 되면 절대라면 하나밖에 없는데 그럼 나머지 것과는 모두 적대적이다, 영원히 전쟁입니다. 과거의 가톨릭교가 해온 역사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지금도 종교 전쟁의 형식입니다. 종교가 없으면 다른 믿음 같은, 인간의 사랑, 인도주의가 더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김민웅 : 취미는 뭐 하세요?
●리영희 : 이젠 없어요. 예전에는 목공이었어요.
●김민웅 : 요즘에는요?
●리영희 : 요새는 못합니다. 책상, 의자. 실제 목재상에 가서 끌고와 키고 재고. 취미이기도 했고 30대 때부터 나의 철학입니다. 지식인은, 두뇌노동자는 반드시 육체노동으로 사고를 바꾸지 않으면, 밸런스를 맞추어야 합니다. 육체와 머리가 합쳐져서 물적으로 생산물을 만들어냅니다.
●김민웅 : 오늘 말씀 정말 고맙습니다. 건강히 잘 지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