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12] [제주해군기지] 법적 근거 없는 해군의 해상교통로 보호 주장 / 박기학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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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근거 없는 해군의 해상교통로 보호 주장
평화·통일연구소 박기학 상임연구위원
해군은 ‘전쟁억제’와 함께 해군의 중요역할 중의 하나로 ‘해상교통로 보호’를 꼽으면서 제주해군기지가 필요한 것도 남방해역 교통로 보호와 해저자원 확보를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해군은 해상교통로 보호가 ‘아측 상선의 이동로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이는 어디까지나 명분이며 해상교통로에 대한 공격과 방어를 해군의 임무로 하겠다는, 이른바 대양해군론을 정당화하기 위한 구실이다. 그러나 해상교통로 보호가 평시 해군의 역할이라는 해군의 주장은 법적 근거가 없다.
첫째 해군의 임무를 규정한 국군조직법 제3조 제2항(2011.7.14개정)에 비추어 볼 때 해상교통로 보호를 해군의 평시임무로 하는 것은 적법하지 않다.
위 조항에 의하면 “해군은 상륙작전을 포함한 해상작전을(중간생략) 주임무로 하고 이를 위하여 편성되고 장비를 갖추며 필요한 교육.훈련을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면 해군의 해상작전의 목적이나 지리적 범위에 해상교통로 보호가 포함될 수 있는가? 이는 상위법인 헌법의 ‘국군의 사명’에 의해서 판단해야 한다.
우리 헌법(제5조)은 침략전쟁을 부인하고(제1항)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제2항)를 수행하는 것을 국군의 사명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헌법 규정에 따라 자위적이고 방어적인 해상작전만이 인정된다.
그러나 해상교통로는 우리 나라의 관할권 밖의 영역이며 자유 항해가 보장되는 공해 영역이다. 이런 해상교통로에서 평시에 아측 상선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없는데도 가상 적을 설정하고 해상교통로에 대한 공격과 봉쇄를 위한 대규모의 기동함대(대양해군)를 구축하고 운영한다면 이는 우리 헌법의 평화주의적이고 자위적인 국토방위 원칙에 어긋난다.
둘째 우리 헌법 제2조 제2항은 국가의 ‘재외국민 보호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 헌법 조항에 의해 해군의 해상교통로 보호 임무가 적법성을 가질 수 있을까?
이 헌법규정에 근거해 재외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 외무공무원법이다. 외무공무원법 제5조는 재외국민 보호 육성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즉 재외국민의 보호 의무를 외무공무원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국가의 보호를 받는 ‘재외국민’의 정의-이에 대해서는 ‘재외국민등록’ 관련법에 규정돼 있다-를 보면 선원수첩을 가지고 해외에서 활동하는 선박승조원이나 우리의 국적선 또는 화물이 재외국민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또 재외국민의 보호에 관한 정부의 의무내용과 범위가 세부적이고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지 않다. 재외국민 보호를 규정한 헌법 및 외무공무원법 조항에서도 해군의 해상교통로 보호 임무의 법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셋째 해상 교통로 상에서의 아측 상선의 보호는 해양경찰과 관련한 정부조직법에서 그 법적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정부조직법 제37조제3항은 “해양에서의 경찰 및 오염방제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국토해양부장관 소속으로 해양경찰청을 둔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조직법의 위 조항에 따르면 해적 또는 테러로부터의 우리 선박의 보호는 해경의 임무로 보는 것이 타당하고 적법하다. 그리고 해양경찰청은 해경의 주요업무로 ‘경비구난, 해상교통안전관리, 해상치안, 해양환경보전, 해양오염방제, 국제교류협력’(해경 홈페이지) 등을 들고 있다. 군은 아무리 군 작전과 관계되는 것이라도 직접적으로 치안유지를 담당하지 않는다. 군대 주변의 교통이나 범죄예방 등 활동도 경찰의 몫이다. 다만, 계엄 시, 군사작전을 위한 민간인의 소개, 군대 내부의 질서유지 등을 위해 예외적으로 치안유지 즉 경찰작용을 할 뿐이다. 이는 바다라고 다르지 않다. 소말리아 해적 대응을 위한 우리 해군함정의 파견이 비록 국회비준동의를 거쳤다고는 하나 이 문제의 본질도 해상치안 문제라는 점에서 해경에 의한 대응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넷째 해상교통로 보호를 해군의 평시 임무로 하는 것은 공해에서의 항해의 자유를 보장하고 배타적 경제수역 및 공해에서의 타국에 대한 무력사용 또는 위협을 금지한 국제법에 위배된다.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우 연안국의 주권적 권리가 유엔해양법협약에 의해 보장되므로 굳이 이를 보호하기 위한 별도의 군대가 필요치 않다. 그리고 유엔해양법 협약은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모든 국가는 항해, 비행의 자유를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약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가 문제된다면 유엔해양법협약은 이 문제를 대향 또는 인접 국가 간의 합의에 의해 해결하도록 하고 있어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은 협약위반이 된다.
공해에서는 항해의 자유가 보장되고 우리 선박이나 군함 등이 타국의 군대로부터 공격을 받을 경우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 유엔총회의 ‘침략의 정의’도 “일국의 군대에 의한 타국의 육군, 해군, 공군 또는 선대 및 항공기대에 대한 공격”을 침략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는 공해에서 무력공격을 받을 때 자위권 행사의 정당성을 말하는 것이지 이것이 해상교통로 보호를 평시 해군의 임무로 설정하고 대규모 기동전력을 상시 운영하여야 할 법적 근거로 되는 것은 아니다.
해상교통로 보호를 명분으로 한 평시 공해상의 해군활동은 필연적으로 중국, 일본, 북한 등의 대응조치를 불러와 무력분쟁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도리어 해군의 가장 중요한 ‘전쟁억제’ 역할에 역효과를 낸다.
그동안 해경은 해상 안전 및 해상치안과 해양권익 보호 활동을 충실히 벌여왔고 또 비국가적인 해적 또는 테러 위협에 대해서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전력과 경험을 갖추고 있다.
해양사고의 경우 2010년 기준으로 86.4%가 연안해역에서 발생하였고 공해 해양사고는 2.3%(37척)에 불과하며 공해 해양사고에 대해서도 해경이 대응하고 있다. 또 해경은 EEZ에서의 해양권익 보호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총기로 공격받은 사례가 한건도 없다고 밝히고 있다. 또 해경은 1,000∼5000톤급의 대형함정 29척을 포함하여 총 288척을 보유하고 있고 광역초계용 비행기 1대 등 항공기 19대를 보유하는 등 원양에서도 작전할 수 있는 능력(전력과 경험)을 갖고 있다. 아울러 공해상에서의 해상대테러(해적) 활동으로 해경과 러시아 국경수비부가 2001년부터 정례적으로 합동훈련을 실시하고 있고 2010년에는 북태평양해상치안기관 6개국이 모여 다자간 해상합동훈련을 실시하였으며(『2011년 해경백서』) ‘아시아 해양경비책임자회의’나 ‘아시아 선박에 대한 해적 및 무장강도 퇴치에 관한 지역협력 협정’처럼 동아시아 해상교통로 보호를 위한 국제협조체계에도 참가 중이다. 그리고 우리의 해상교통량이 집중돼 있는 동남아시아항로의 경우 해적 건수가 전세계의 10%(2009년 45건)로 가장 낮으며 감소추세에 있다. 따라서 굳이 해군이 해경임무와 중복되게 해상교통로 보호를 자기의 일반적 임무로 할 현실적 필요성도 없다. 그리고 우리 국적선적취율(수입물량기준)이 2009년 기준으로 20.8%에 불과해 설사 해군이 아측 상선의 이동로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해상교통로 보호를 자기임무로 설정한다 하더라도 나머지 79%정도의 외국선은 보호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그 실효성도 별로 크지 않다. 소말리아 해적의 경우도 해경 차원의 대응이 가능하며 ‘생계형 해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군사적 접근보다는 소말리아의 경제적∙정치적 안정을 위한 국제적 협력이 병행 또는 우선되어야 할 문제다.
재정적 측면에서도 해경이 해상치안 예산과 장비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해군의 해상교통로 보호를 명분으로 한 제주해군기지 건설과 부대운영은 중복투자로 낭비다.
따라서 해상교통로 보호를 해군의 임무로 설정한다면 이는 군비증강으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예산 중복투자를 초래하여 국민부담을 가중시키고 주변국과의 군비경쟁을 자초하는 등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